*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작곡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테마곡인 "클라우디아의 테마",잔잔한 기타의 선율
과 이에 하모니를 맞춰나가는 관현악의 울림이 아름답기가 그지없습니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The Unforgiven> ]
형 만한 아우가 없고,스승 만한 제자가 없다는 옛말이 있지만 복잡해진 현대에서는 꼭 그렇지만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TV 연속극인 <로하이드1959)>에서 두각을 나타내다,이태리 출신의 개혁적인 명감독,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 이태리)에 의해 마카로니 웨스턴인 <황야의 무법자 (1964)>의 주인공으로 픽업된 이후,그와 함께 계속 만든 '무법자 3부작'으로 월드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평생의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그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바치는 (헌정)작품이라고 미리 발표를 하고,그와 첫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되는 시점에서 만든 이 서부극,<용서받지 못한 자>는 레오네가 평생에 이룬 성공의 몇 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두었으니,과연 제자인 이스트우드가 이국인 스승,레오네 보다 못하다고 그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부 영화로 스타가 되었고 또 그때 번 돈으로 자신의 프로덕션(말파소)을 설립하여 (연기는 연기대로 하면서 한편으로)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새로운 영화인생을 출발한 그는 여전히 자기의 고향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 서부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하였죠.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1971)>가 성공을 한 이후,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로 연기자로서의 인기를 유지하면서,<Joe Kidd(1972)>같은 서부극에도 출연 하였고, 또 <High Plains Drifter(1973)>와 ‘The <무법자 조지 웨일즈(1976)>를 1970년대에 직접 만들기도 하였지만(감독) 별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도 <Pale Rider(1985)>라는 서부극을 한 번 더 만들었지만 역시 성공을 하지 못하여서, 이젠 정말 서부영화는 한 물 갔구나 하고 다들 생각하던 1990년대 초에 그는 마치 무슨 큰 도박이나 하듯 만사를 제쳐놓고 이 영화에 매달렸는데, 그동안에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의 안목도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지난 20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았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된 명작 서부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 작품은 평론가들의 대단한 호평 속에 1993년도, 제65회 아카데미상에 무려 9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가 되고 작품상을 비롯한 4개의 상(작품상,감독상,남우조연상,편집상)들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스승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못 받았던 상들까지 대신 다 수상해준 것일까요?
* 악당 보안관 대커드(진 해크먼 분),유곽을 찾아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서부극으로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대 성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AFI (American Film Institute)가 2000년에 선정한 100년간의 최고 필름 100에도 당당하게 선정이 되기도 했죠.
줄거리, 캐스팅, 촬영, 편집 등 한결 업그레이드가 된 이 서부영화에서 영화음악 역시 매우 세련되어 극중 분위기를 더욱 고급화 시킨데 큰 일조를 하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인 ‘클라우디아의 테마’는 10대 때부터의 꿈이었다는 음악가로서의 희망과 자질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스트우드가 실제로 직접 작곡한 곡이라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꾀죄죄한 몰골로 캔자스 시골에서 돼지를 치고있는 왕년의 무법자 빌 머니
기타가 주 멜로디를 리드하고 잔잔하면서 관현악과 합쳐져 가는 이 주제곡의 성공은 이스트우드로 하여금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까지 손을 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작품이전에도 그는 이미 두 개의 영화음악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 영화의 성공 이후, 그는 오랫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재즈에 기반을 둔 창작 실력으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와 <미스틱 리버 (2003)>,<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아버지의 깃발(2008)>,<그랜 토리노(2010)>에서 만만치 않은 음악적인 재능도 과시하였던 것입니다. 대단한 노익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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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금을 찾아 마을에 온 총잡이 밥 잉글리쉬,대커드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을을 쫓겨납니다.
옆에는 전기작가 보샹
[ 문학적 관점에서 본 <용서받지 못한 자>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리얼리즘에 근거한 새로운 감각의 서부영화입니다. 리얼리즘 영화답게 이 영화에서도 역시 영웅은 없죠. 늙은 총잡이 주인공은 말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총도 제대로 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적어도 과거 서부영화의 특징인 허황된 과장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고갈시켰던 서부영화(여러편의 마카로니 웨스턴에 출연하였던 것을 말함)를 이번에는 자신이 나서서 소생시키는 속죄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현상금을 찾아 길을 떠나는 빌 머니 일행
이 영화의 주인공 빌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원래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무차별 학살했던 무법자였습니다. 그러나 착한 여인과 결혼한 후 과거를 청산했으며,아내가 죽고 없는 지금은 두 아이와 캔자스주의 시골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돼지를 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젊은 총잡이 스코필드 키드가 나타나,죄 없는 창녀에게 큰 상처를 입혀 현상금이 붙은 악당들을 죽이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점은 빌이 아이들만 놔두고 먼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굳이 현상금 때문이라기보다는,피해자가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죠.
* 마을어귀에 도착한 빌 머니
그는 악당이 창녀의 유두를 도려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악당에게 상처받은 그 창녀에게서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1년 만에 다시 총을 잡고 떠나는 빌의 여행은 곧 죽은 아내를 위한 여행이자 자신의 과거로의 여행이 됩니다. 과연 빌과 동행하는 친구 네드 로건(모간 프리맨 분)도 역시 “만일 자네의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이번 일을 맡지 않았겠지”라고 말합니다.
* 마을을 지긋이 바라보며...
그러나 지난 11년 동안 총을 잡지 않은 머니의 ‘과거로의 회귀’는 심리적,육체적으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가 왜 폭풍우 속에서 그렇게 심한 고열에 시달리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빌 머니의 변화의 과정을 ‘폭풍우 속의 열병’이라는 상황을 통해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윽고 문제의 마을에 도착해 악당이기도 한 보안관 리틀 빌 대거트(진 해크만 분)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머니는 의식을 잃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납니다. 상징적인 죽음을 겪은 다음,이제 그는 비로서 예전의 빌 머니로 되돌아갑니다.
* 대커드에게 죽임을 당한 빌의 친구 네드 로건(모간 프리먼 분)
다시 깨어나는 순간,그는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그 상처입은 창녀를 보고 잠시 천사(죽은 아내)로 착각합니다. 그는 “당신과 나는 둘 다 상처투성이군요”라고 말함으로써 자기들을 동일시합니다.
사실 악당 보안관에게 맞아 얼굴이 깨진 총잡이들과,악당들의 칼에 찢긴 창녀들은 둘 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을 대표합니다. 머니의 친구들이 흑인과 소년으로 설정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을 겁니다.
* 적정을 살피는 빌
광야에서의 모험에 늘 동반자가 되어주는 유색인과 백인 주인공과의 우정-미국 영화에서 늘 나타나는 그 보편적 패턴이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한 자>를 정통 서부극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마을의 보안관 리틀 빌 대거트입니다. 그는 창녀에게 칼질을 한 목동들을 처벌하는 대신,포주에게 말(동물)로 배상하라고 판결함으로써 여성의 권익을 철저히 무시하는 남성 우월주의적 태도를 보여 주죠.
* 걸리기만 해 봐라
그는 창녀들을 포주의 소유물로만 취급할 뿐만 아니라,그녀들의 인격을 철저히 무시합니다.그는 또 현상금을 노리고 찾아온 총잡이 잉글리쉬 밥(리차드 해리스 분)과 빌 머니를 무참히 구타해 쫓아내고,머니의 흑인 친구 네드 로건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도 그를 법과 질서의 수호자로 착각하기 쉽지만,사실 그는 잔인한 무법자이자 독재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선인인가? 예전의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선악의 대립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다만 악인과 악인의 대립이 있을 뿐입니다. 여자의 얼굴에 칼질을 한 목동들,그들을 죽이려고 오는 총잡이들,목동들의 편을 들어 총잡이들을 구타하는 보안관-이들 중 선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 악당들을 작살내고 떠나는 빌 머니(허긴 그도 악당 중의 악당이었죠)
오직 악인은 또 다른 악의 힘으로만 응징이 가능하죠. 왕년의 무법자 빌 머니는 악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도 역시 또 다른 악인이 됩니다.
이윽고 복수는 이루어집니다. 네드 로건을 죽인 보안관과 머니는 술집이자 유곽에서 대결합니다. 법의 가면을 쓴 무법자와 대결하기 위해 머니는 다시 옛날의 무법자로 되돌아갑니다. 머니는 순식간에 혼자서 다섯 명을 해치운 다음,그곳을 떠납니다.
* 비는 추섬추섬 내리고...뒤의 성조기가 눈에 뜁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갑니다. 그는 이제 비로서 아내를 잊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내의 부탁을 저버리고 다시 한번 폭력의 세계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빌은 아내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으로 인해 그는 역설적으로 ‘용서받은 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번만큼은 죽은 아내가 상징했던 ‘연약하고 소외된 선한 사람들’을 위해 싸워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였기 때문입니다.
* 마을을 떠나는 빌 머니,그는 용서받았을까,아니면 용서받지 못했을까 이것이 이 영화의 화두
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은 보샹이라는 전기작가입니다. 잉글리쉬 밥을 따라 다니며,전설적인 총잡이 영웅의 전기를 쓰려던 그는 잉글리쉬 밥이 보안관 리틀 빌에게 형편없이 구타당하자,이번에는 리틀 빌의 전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빌 머니가 리틀 빌을 쓰러뜨리자,이번에는 빌 머니의 전기를 쓰겠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바보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작가 보샹을 통해,사실 영웅이란 없으며 영웅은 다만 조작되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영화 마지막 부분,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다시 옛날 무법자로 돌아가 악당들을 작살내는 장면이
전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