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썼다 / 조미숙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딸이 남악(우리 집에서 보면 끝 쪽)에 있는 미용실로 머리를 하러 간다기에 가는 길에 있는 천아트 공방에 내려 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무튼 차를 두 대나 움직이는 건 효율적이지 못할 거라 여겨 차 한 잔 마시고 천천히 버스를 타고 가면 딸이 미용을 마치는 시간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버스비는 얼마더라? 커피집 사장에게 차비를 빌렸다. 정류장에서 옆 사람에게 물으니 1,500원이란다.
몇 년 만에 타는 버스는 정겨웠다. 아이들 몇이 핸드폰에 빠져 있고 나이 든 어르신이 몇 분 보인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텅텅 빈 버스는 좀처럼 손님을 태우지 않고 지난다.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속버스로 서울을 다녀오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일이 고작인데 그것마저 케이티엑스를 이용하면 손쉽게 택시를 잡는다. 상전벽해다. 빠르게 타성에 젖는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데 그것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같은 범인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한 해를 돌이켜 보기는커녕 김장은 언제 할 것이며 아이들 집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매몰되어 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새해가 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세월은 어김없이 시간을 가져 와 부려 놓고는 또 어느새 데려가 버린다. 하던 일이 거의 매듭지어지니 한껏 여유를 부리지만 이는 곧 게으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기도 하다. 해마다 같은 고민을 하지만 늘 한결같은 결과를 내놓는다. 하는 일 없이 긴 겨울잠에 빠진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제주도에 놀러 가자고 주위에서 꼬드긴다. 난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더구나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남편 보기가 민망하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결국 무산되었고 1월로 바통을 넘겼지만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두 눈 질끈 감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주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만 하다가 뒤늦게야 부랴부랴 글을 쓴다. 글이 얕고 무미건조하다. 미물의 관념에 갇혀 머물러 있는 공허한 문장이 마음에 안 든다. 소위 작가라는 허울 좋은 거죽을 걸치고 보니 정말 답답하다. 책을 낸 게 땅을 칠만큼 후회스럽다.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동전의 양면 같다. 글이 너무 재밌다는 칭찬에 내 인생이 빛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걸로 끝이다. 허우적대면 더 조여드는 덫에 걸린 것 같다.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이만큼 살아간다는 것이 실로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늘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번 건 아니지만 꾸준히 돈벌이도 했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착실하게 썼다. 그런데 왜 난 늘 헛헛한 마음에 시달릴까? 날로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하지만 내 한계를 아는지라 잠깐의 실의에서 서둘러 빠져나온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피할 도리가 없다.
어깨도 아프고 다른 일도 있어 운동을 빠진 날이 많았다. 오랜만에 몸을 비틀면서 혹사하니 죽을 맛이다. 왼쪽 어깨에 자극이 가면 여전히 아프다. 심하게 몸살을 앓은 뒤라 조심해서 운동을 마친다. 뒤이어 줌바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조심조심 움직인다. 따라가기 쉽진 않지만 신난다. 젊은 엄마들이 힘차게 구령 붙이고 뛰어주니 살판난다. 그 틈에 살짝 묻어가니 허둥대다가도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라도 땀 흘리고 나면 개운하다.
내가 가진 것에 늘 불만이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이만한 여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 무탈하게 올 한해도 잘 살아낸 내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래, 애썼다.
오늘 밤에도 텔레비전 앞에 통마늘을 가져다 놓는다. 올해도 김치가 맛있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첫댓글 “얼마 전에 큰아이가 티브이를 보다가 아빠랑 헤어지면 다시 결혼할 것이냐고 물었다. 화면을 쳐다보니 이상민, 탁재훈 씨가 나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글쎄. 그건 가 봐야 알 일이고. 심장이 약간 두근댔다. 그런 일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야! 진짜 소설책 한 권은 뚝딱이겠는데.”
(황선영 선생님 글중에서)
"소위 작가라는 허울 좋은 거죽을 걸치고 보니 정말 답답하다. 책을 낸 게 땅을 칠만큼 후회스럽다.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동전의 양면 같다. 글이 너무 재밌다는 칭찬에 내 인생이 빛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걸로 끝이다. 허우적대면 더 조여드는 덫에 걸린 것 같다."
두 글이 겹쳐 보이네요,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가님 맞으십니다.
맞아요, 통마늘은 텔레비전 앞에서 까야 잘 까져요.
하하! 마늘 까는 여인의 마음을 잘 아시네요. 고맙습니다.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가 좀 진정을 해야겠죠. 하하.
조 선생님뿐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생각일 거예요. 1년 동안 애 많이 썼네요. 건강 챙기기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한해 동안 정말 바쁘게 사셨네요. 작가가 된 이후의 삶, 정말 듣고 싶어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그저 살아 갈 뿐이죠.
선생님. 얕고 무미 건조하지 않아요.
엄청 깊어요.
오늘 결말은 산뜻하기까지 합니다.
팬입니다!!!
아프지 마세요.
좋게만 보려고 해서 그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재치있는 선생님의 글. 저는 언제쯤 그 경지에 이를까요?
선생님도 욕심이 많은 게 확실합니다!
맞아요. 송향라 선생님 말씀처럼 욕심이 많은 게 아닌가요?
황선영 선생님처럼 며칠씩 고민하지도 않다는 거 다 압니다. 하하.(우린 같은 과)
충분히 재밌고, 재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쁜 와중에 '나, 글 쓰는 여자'를 칭찬합니다.
그러네요. 다른 선생님 말처럼 욕심이 많으시네요. 책도 선생님 요즘 글도 아주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선생님 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