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정찬주 소설 『광주 아리랑 1,2』
80년 광주
소설은 2020년 05월 18일에 출간됐다. 그즈음 나도 이 책을 구입한 것 같다. 한 동안 책장에 꽂아 놓고 읽지를 못 했다. 몇 번의 시도는 했었지만. 그러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개와 천둥이 치는 새벽에 귀신에 홀린 듯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결말을 알기에, 그 상처가 어떠한지를 알기에 괴롭지만 가슴 쿵쾅거림을 느끼며 찬찬히 읽어나갔다.
다들 아시겠지만 80년 광주 항쟁은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이 것은 광주시민은 물론, 우리나라 국민과 군대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사건이었으며, 1987년 체제를 완성하는 밑거름이었다.
우리는 광주 항쟁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기록물로, 영화와 다큐멘터리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린 또한 망각의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세월이 흐르면서 80년 광주는 정치적인 의미로 형해화되고, 속살이 빠져 나간 겉살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작가는 서두에서 ‘은유를 버리고 콜로세움처럼 정면으로 사건을 다룬다’, ‘그동안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쓴다’, ‘ 또한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다’는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 부치고, 빨갱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공수부대가 잔인하게 행동한 것은 시민들이 ‘빨갱이 새끼’라고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빨갱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죽여도 좋다는 신념은 누구에게서 교육된 것일까? 한 줌도 안 되는 신군부 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남북분단에 의한 색깔론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난 믿는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해서 80년 광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의 역사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일부 권력을 탐하는 자들과 색깔론은 항상 연결될 수 있다. 거기에 우리 국민들은 쉽게 현혹되어 우중화될 수 있다. 여기에 우리가 80년 광주를 떠올리고, 되새김하면서 다시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항쟁에 참여한 시민군들을 우상화하거나 영웅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항쟁 과정에서 그들이 실수하고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소설은 80년 05월 14일부터 27일까지의 14일 간의 일지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항쟁에 참여한 광주시민들의 14일의 삶을 읽으며 그들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라도 평화롭기를 기도하며 읽었다.
역사의 겉살
광주항쟁기간 사망자수는 166명. 행방불명자는 179명으로 집계되었다. 계엄군 사망자수는 23명이었고, 시민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8명이 숨졌다고 한다. 군인들간의 오인전투로 인한 사망은 15명이었다.
광주항쟁과 관련하여 검거된 사람은 총 2522명이었다. 이 중 훈방이 1906명. 616명이 군법에 회부되어 212명은 불기소, 404명이 기소되었다. 당시 정보기관은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간첩으로 몰려 했다. 또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엮기 위해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80년 10월 24일 계엄보통군법회의 1심에서 149명은 선고유예, 255명은 유죄로 선고되었다. 12월 29일 2심에서는 80명을 형 집행면제,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이듬해 3월 31일 대법원은 피고인 83명에게 계엄법위반, 내란주요임무종사, 살인등의 죄목으로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형 확정 후 3일 후 83명 전원에 대해 특별감형, 특별사면, 복권조치가 이뤄졌다. 그해 12월 24일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사형, 무기등을 언도받은 12명 모두 풀려났다. 내가 이렇게 사실을 쓰는 것은 행간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의 속살-1
80년 0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리고, 그 순간 일제 사격이 시작됐다. 전날 밤 발생한 광주역 발포는 우발적이었지만, 이 것은 집단발포였고 조준사격이었다. 저격수에 의한 발포도 있었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쓰러졌다. 10분 후 천여 명의 시민이 모여들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때 5~6명의 청년이 대로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도청에서 불과 300미터. 이 때 총성이 울렸고 그들은 피를 흘리며 꼬꾸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이어서 벌어졌다. 몇몇의 청년이 대로로 뛰어든 것이다. 또 총격. 이렇게 대 여섯 번. ‘정말로 충격적인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역사의 속살-2
80년 05월 18일 아침 전남대 정문 앞. 계엄령이 전국에 확대되고 밤사이 전남대에 진입한 공수 7여단 33대대 군인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시나브로 모여든 학생들이 야유를 보내자 곧바로 돌격. 도망간 학생들을 대신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등학생이나 자동차 정비공,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젊은 농삿꾼을 잔인하게 매질해 연행해갔다. 시내로 옮겨간 시위대들도 무자비하게 연행해가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광주시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항쟁에 학생들보다 시민들의 모습이 더 많아졌다. 시작이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책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