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편. 할매, 밥 됩니까
어느 때보다 왕성해지는 식욕이 가는 곳마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가을. 영혼까지 살찌우는 할매 밥 먹으러 떠나보자~ 오랜 시간 한자리에 머물며 마을을 지켜온 할머니들의 밥집에서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철 식재료 곁들여 마법처럼 뚝딱 차려내는 밥 한 끼 맛보는 가을 식도락 기행. 세월을 따라 나이 든 풍경들이 오랜 경험과 지혜가 되어
더 깊고 단단해진 인생의 맛을 만나본다. 1부. 촌스러워서 맛있다 - 통영의 시장을 돌고 인근 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40여 년간 통영의 음식 문화를 연구해 온 요리 연구가이자 사진작가 이상희 씨. 그가 매일 들러 아침밥을 먹고 간다는 할매밥집이 있는 서호시장을 찾았다. 통영 여객선터미널 앞에 자리한 서호시장은 통영의 여러 섬에서 어머니들이 배를 타고 오가며 가지고 온 좋은 식재료들이 모여 있는 통영의 대표 시장으로, 이른 새벽부터 분주한 시장길을 따라 사시사철 신선한 제철 생선과 채소를 만날 수 있어 매일 서호시장에 들러 장을 본다는 이상희 씨. 아침 식사를 위해 년우 할머니의 밥집을 찾았다. 서호시장에서 23년째 백반집을 운영 중인 강년우 할머니는 새벽이슬 맞으며 일하는 상인들에게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매일 매일 다른 국과 반찬을 만들어 든든한 아침을 책임져오고 있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반찬가게 나복희 할머니와 근처 상인들은 속속히 년우 할머니네로 모인다. 자신의 음식은 촌스럽다 말하는 강년우 할머니. 집에서 늘 엄마가 해준 듯한 밥상이지만 결코, 그 맛은 평범하지 않다는 이상희 씨. 무엇보다 먹는 동안 마음이 편해 자꾸 오게 되는 밥집이란다. 20년 단골은 기본, 손님들이 알아서 반찬을 차려 먹고 배달을 해주지 않아도 직접 쟁반 들고 찾아와 챙겨가는 년우 할머니의 밥집! 밥 먹으러 오는 모두가 ‘손님’이 아닌 ‘식구’라는
강년우 할매의 따뜻하고 정겨운 아침밥을 맛본다.
2부. 곰탕과 건진호박국수 - 강원도 원주 도심 골목에 자리한 옛날 집, 마치 시골 외할머니 집에 온 것만 같은 이곳은 강영수&안상기 노부부의 오래된 밥집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곰탕 맛과 집에서 따라 해보려 해도 도저히 비법을 알 수 없는 건진호박국수 맛에 노부부의 밥집은 늘 문전성시. 맛은 물론 오래된 옛집이 주는 정감에 더 찾게 된다는데. 40여 년 전 강원도 횡성 산골에서 먹고살 길 찾아 원주 도심으로 내려왔다는 노부부. 손맛 좋은 할머니가 살림집 한쪽에 곰탕집을 차려 운영하던 중 몇 해 전 벌목 일을 하던 할아버지가 크게 다친 후 부부가 함께 밥집을 꾸려가고 있다. 마당 안쪽엔 할아버지가 농사지어 말린 고추가 한가득하다. 음식에 사용할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어깨에 이고 근처 방앗간으로 향하는데 밥집에서 쓰는 양념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쓴단다. 매일 아침 텃밭에서 그날 재료가 될 채소를 바구니 한가득 담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노부부는 소머리를 푹 고아 진한 곰탕을 끓이고, 갓 따온 신선한 호박을 볶아 국수의 고명으로 올려 건진호박국수를 만드는데 맛의 비법은 사랑과 정성이란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가 주는 기쁨에 매일 아침이 설렌다는 노부부의 옛집에서 정겨운 할매의 맛을 느껴보자. 3부. 억새집, 그리움을 맛보다 - 200년 된 억새집에서 홀로 민박을 운영하며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내어주던 김채옥 할머니. 팔순이 넘은 나이에 이제는 힘에 부치다 싶던 때 정년퇴직한 맏아들 공상곤 씨가 4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봄, 고사리 농사를 도우러 내려왔다가 굽은 허리로 무거운 짐이고 나르며 고생하는 어머니가 걱정돼 그날로 눌러앉게 됐다는데. 연로한 어머니를 보며 이제는 일을 좀 줄였으면 싶지만 천성이 부지런한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는 아들 상곤 씨. 40년 만에 한집에 살다 보니 티격태격 싸울 일도 있지만, 늘 그리웠던 엄마 밥은 된장 하나만 있어도 꿀맛! 그 곁에서 어머니의 인생이 깃든 억새집을 변함없이 지켜주고 싶다. 억새집으로 채옥 할머니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찾아왔다. 아들은 직장 생활만 한 선비로 농사는 물론 닭 잡는 것도 서투니 직접 해야 성이 차다는 채옥 할머니. 손수 토종닭을 잡아 밥상을 차리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 오래된 주방에선 노릇노릇하게 전을 부치는 소리와 함께 깍두기 담고 고사리나물 무치느라 바쁜 할머니의 분주한 움직임이 가득하다.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저승에 가서도 살고 싶은 억새집에서 죽는 날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는 채옥 할머니의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인생 밥상을 만나본다. 4부. 64년 노포의 손맛 - 등산로를 따라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만들어 낸 폭포가 어우러진 절경으로 가을철이면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경북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 이곳에 오면 산행을 한 이들이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는데. 낡은 간판 위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주왕산 초입에 자리한 64년 전통의 노포 식당으로 올해 95세 이영수 할머니가 여전히 홍두깨로 직접 반죽을 밀어 손칼국수를 만드는 주왕산 명물 밥집이란다. 32살에 홀로돼 자식들 건사하기 위해 안동에서 청송으로 와 여관을 운영했다는 이영수 할머니. 당시 목욕탕까지 갖춰진 일류 여관으로, 손님들에게 밥을 내던 할머니는 64년의 긴 세월을 지나 73세 며느리와 함께 여전히 밥집을 운영 중이다. 95세의 고령이지만 손칼국수는 물론 바쁠 때면 설거지도 돕고 매일 아침이면 산나물 밭을 찾아 풀을 맬 만큼 여전히 정정하신 할머니. 항상 같은 자리에서 64년을 빚어낸 할머니의 손칼국수와 이제는 할머니가 된 며느리가 함께 농사지어 차린 산채비빔밥까지 그 세월의 맛을 느껴본다. 5부. 산골 마을 별난 밥집 -
충남 홍성 오서산 아래 자리한 고즈넉한 산촌, 상담 마을. 81세 이상예 할머니는 새벽부터 텃밭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나면 곱게 단장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할머니의 직장은 다름 아닌 마을 초입에 자리한 마을 식당! 상예 할머니를 비롯해 마을 할머니들이 속속들이 모여드는데~ 가을철 억새가 장관인 오서산으로 등산객들이 오고 갈 때, 길가에서 농사지은 콩도 팔고 마늘도 팔고 하던 할머니들은 이 동네에 밥 먹을 곳 없냐는 등산객들의 말에 마을도 살릴 겸 우리가 밥집 한번 시작해보자 싶었단다. 다 같이 똘똘 뭉쳐 밥집을 운영해 온 지 벌써 9년째! 이 산골까지 누가 밥을 먹으러 올까 싶지만, 점심시간 하루 4시간만 운영하는 할매들의 손맛을 보기 위해 지역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란다. 각자 수확한 농작물을 가져오면 그날 식재료로 쓰는데.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정성스레 손두부를 만들고, 내 식구 먹인다는 마음가짐으로 들깨 칼국수도 끓인다. 일은 고돼도 여럿이 만나 세상 이야기 듣고,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어 노년에 큰 기쁨이라는 할머니들. 작은 산골에서 한평생 농사짓던 손으로 시작한 상담마을 할매들의 행복한 밥집을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