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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풀향이 풍기는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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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쓰는 풍경 스크랩 우보강은 흐르고
뜰에봄 추천 0 조회 59 08.06.14 19:0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군위’라는 지명을 나는 2~3년 전에 처음 들었다. ‘구미’를 잘못 들었나 했다.

혼자 살고 싶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들어가 버린 친구를 찾아가면서

주소를 물었더니 군위라고 했다.

모든 길은 결국 사람에게 이르는가, 그녀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지명.

작년 초행길에선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올해는 근처 한밤마을을 마음에 두고 갔다.

풍산류씨의 안동 하회마을이나 여강이씨의 경주 양동마을은 몇 번 다녀왔어도

부림 홍씨 집성촌 한밤마을은 처음이었다.

북쪽 멀리 팔공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마을에는 이끼 낀 돌담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강돌을 주워 켜켜이 쌓은 돌담에는 바위솔이 자리를 잡았고,

담쟁이가 열심히 담을 넘고 있다.

캄보디아의 타프롬사원이 생각났다. 나무뿌리가 사원의 담장을 휘감고 있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심어놓은 산수유나무에는 갸름한 열매들이 과육을 불려가고,

호두나무에도 매실나무에도 튼실한 열매가 달려있다.

어른 눈높이로 쌓인 돌담을 따라 이리 굽고 저리 휘어진 마을길은 미로 같다.

정면으로 부는 바람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란다.

저 담장 아래서 소꿉놀이하며 자랐을 한 여인을 생각한다.

“종가댁 아지매한테 내 얘기하면 아래채에서 하룻밤 재워줄낀데...”

어릴 때부터 꽃에 매료되어 살았던 그녀는 지금도 꽃과 함께 살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그녀를 알았고, 그녀의 고향을 들었고,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한밤마을 고샅길을 걷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였는지도 모른다.

장소는 사람의 기억 중에서도 가장 집요한 부분이 아닐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장소에 대한 기억은 옛날에 머물러 있다. 아니, 머물고 싶어 한다.


 

한밤마을이 유명해진 건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씨 덕분이 아닌가 싶다.

전통가옥과 어우러진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하는데 그의 마인드가 큰 역할을 했다.

경오년(1930) 대홍수로 떠내려 온 돌로 쌓았던 담이 오늘날 문화재가 되다니.

고진감래라고 해야 하나, 새옹지마라고 해야 하나.

고만고만한 돌을 생긴 모양대로 아귀를 맞춰 쌓은 지혜가 놀랍다.

좁다란 고샅길이 막힐 듯 이어지다가 툭 트이더니 부림홍씨 종갓집이 나온다.

고요한 성품으로 보이는 안주인이 나그네에게 음료수를 내 온다.

딸을 두었으면 참 미인이겠다 싶었더니 아들만 몇을 낳았다나?

종가, 종손, 종택. 모든 ‘종’은 희생을 강요한다. 특히 여자들에게.


 

 한밤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남아있는 상매댁(上梅宅)에는

3백년 넘은 잣나무가 두 그루 서 있어 쌍백당(雙栢堂)으로 불리는데

250년 전 건립 당시 의흥현(義興縣) 최고의 가옥이었다고 한다.

건물 배치가 흥할 흥(興)자의 특이한 구조였는데 지금은 받침이 날아간 형세다.

기와지붕 아래 이층 같은 다락방과 작은 봉창 문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저 다락방에서 어떤 개구쟁이는 꿀을 훔쳐 먹었을 것이고,

어떤 말괄량이는 술래를 피해 숨었다가 잠이 들었을 것이다.

“쌍백당 주인 아저씨가 내 친군데... 부림홍씨 13대손 막내아들.”

몸은 안산에 마음은 한밤마을에 와있는 여인이 전화기 저쪽에서 안달한다.

그녀의 고향마을을 배회하면서 현장실황을 중계하는 나는 얼마나 잔인한가.


 

 쌍백당 옆,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곳에 대청(大廳)이 있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조선중기 건축물로 질박하고 고졸한 멋이 풍긴다.

임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종 때(1632) 중창된 학사(學舍)로

나무의 살결이 그대로 드러나 마음에 든다. 단청이 없어 더 아름답다.

대청마루 그늘에 누워 바람을 즐겼다. 오수에 잠긴 마을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2백호가 넘는 큰 마을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마을 안길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한밤마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한창 농번기라는 것을. 부지깽이도 나와서 일을 한다는.

 

 

 해거름녘 우보강이 보이는 친구네 집에 깃들었다.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그녀는 내 다리를 걱정한다.

구들장에 뜨끈뜨끈 다리를 지지면 금방 나을 거라고 연기를 마시면서 웃는다.

처음 그녀가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들어왔을 때, 친정 언니가 찾아와서는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 났다. 네가 타락을 해서 시골 들어갔다고 우시더라.”

7순의 노모 눈에는 혼자 시골로 들어간 딸이

세상에 환멸을 느껴 현실도피를 한 것으로 보였나 보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잣대로 남을 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용인하지 못한다.

제가 아는 것이 전부이고, 제 가치관이 가장 옳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이 먹으면서 나도 비로소 깨닫는다.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틀릴 때도 있다는 것을.


 

 친구는 꿈을 위해 도회지생활을 청산했고, 자유를 누리면서 흙을 만지고 있다.

머지않아 그 흙은 도자기가 될 것이고, 막사발이 될 것이고, 화분이 될 것이다.

흙담 아래 뱀이 스르르 기어가고, 문틈으로 지네가 스며드는 촌집.

가마솥에 중탕으로 쪄낸 닭백숙에 두견주(杜鵑酒)를 곁들여 멋진 겸상을 차렸다.

무논에서 우는 개구리소리, 우보강이 흐르는 소리, 초여름 밤이 깊어가는 소리...

불빛을 보고 날아든 장수하늘소가 갓등에 부딪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에 놀랐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는 녀석을 날려 보내는 친구를 보며 내일은 집으로 가야지 생각한다.

뱀, 지네, 장수하늘소랑 같이 지내는 건 하룻밤으로 족하다.

아무래도 나는 그녀의 인생에 하룻밤 길손일 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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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06.14 19:11

    첫댓글 위 여행기는 내 블러그에 드나드는 이화에월백님이란 사람이 내 고향 한밤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인데 풀향기님 고향가까운 쪽이기도 해서 올려 봅니다.

  • 08.06.14 21:00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내 고향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아마도 나 역시 촌놈이라 질퍽한 농촌 냄새만 풍겨도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그림도 참 좋습니다......^^

  • 08.06.16 17:11

    사진 참 잘 찍었고 글도 맛깔스럽네요.. 언니네 동네가 참 이쁘던걸요

  • 08.06.18 12:55

    어린시절에 제가 갈망했던 집들이네요 / 어릴때 우리집은 초가집이였는데 그에 비하면 대궐집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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