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이후의 일련의 폭거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값진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문맹(文盲)이란 이야기밖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선 '경제 대통령'이 되기 전에 '정치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직(職)을 '매우 강력한 경제 부처 장관'쯤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은 전문 분야의 기술 관료와는 달리 총괄 리더, 바로 최고의 정치행위를 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그가 한 발 더 나아가 깨쳐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정치의 1장 1절이다. 정치의 1장 1절은 적군(敵軍)이 누구이고 아군(我軍)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분간하는 것이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이며, 나를 살리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을 '최소'로 고립시키고, 내 편을 '최대'로 엮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을 전후해 이걸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좌·우를 떠나서…" "이념을 떠난 실용주의…" "나도 상당히 진보적, 나도 운동권 1세대인데 왜 몰라주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를 반대하고 찍지 않은 편이 잘 봐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정치의 실체를 모른 소박한 착각이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그가 아무리 "나는 보수 아닌데…"라고 말해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재벌회사 사장 출신 이명박'을 '진보의 친구'로 인정해줄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안시성(安市城) 맞은편에 토성(土城)을 쌓아 '명박산성'을 공격하고, '×명박' 잡으러 8000번 버스 타고 청와대로 진격하자는 사람들―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아무리 나긋나긋 유화적으로 나간다 해도 그를 '타도 대상'으로 칠 뿐 협력 대상으로 칠 사람들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초보적인 피아(彼我) 식별조차 없었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꿈 깨야 한다.
8·15 해방 공간의 가열한 대립구조는 옛날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10년'에 "청와대로 진격하자"는 쪽은 남한에서 50년 만의 '혁명' 성공의 기회를 잡았었다. 그러다가 지난 대선(大選)과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그냥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는가? 그들이 투표함에서 빼앗긴 것을 가투(街鬪)로 쟁취하려 할 것이란 점은 그들의 속성과 족보를 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냄새 맡을 수 있는 일이었다. '쇠고기'란 그들에게 굿판을 마련해준 멍석이었을 뿐이다.
이제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불능화 정권'으로 가든지 목숨 걸고 회생하든지 둘 중 하나다. 후자(後者)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할 바는 자명하다. 불교계를 화나게 한 것 같은 어리석은 '반대편 늘리기'를 하지 말고, '골수' 적의 환심이나 사려는 투항주의를 지양하고, 아군과 동맹군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를 찍지 않은 850만 표의 일부 '골수'를 의식하지 말고, 그를 찍었던 1150만 표의 마음을 다시 사야 한다. "여러분을 위해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밀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해야 한다.
정계 차원에서는 박근혜·이회창씨에게 진정성을 보이며 원군(援軍)을 청해야 한다. 박근혜·이회창씨도 정부와 '불법'을 대등하게 취급하는 양비론을 치워야 한다. 국민 차원에서는 '맥아더 동상 철거' '연방제 추진' '선군정치 찬양' '평택 미군기지 반대' '미친 교육 운운' '광우병 거짓 방송' '북한 인권 외면' '종북(從北)주의' '노동귀족'과 혈투할 광범위한 대한민국 호헌(護憲) 진영을 결집해야 한다. 이럴 전의(戰意)와 정치력이 없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대책 없는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