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등학교 교사들이 유명 입시 학원들을 상대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 출제, 입시 컨설팅, 강의 등을 해주고 매년 거액을 받은 정황이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최근 국세청은 메가스터디, 대성학원, 시대인재, 이강학원, 이투스 등 매출액 50억원 이상인 대형 학원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대형 학원들은 예외 없이 현직 교사들을 활용하고 일종의 ‘급료’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꼬리가 잡힌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픽=박상훈
세무 당국은 대형 학원들의 세무 자료를 토대로 지난 10년간 학원에서 ‘5000만원 이상’을 받은 교사를 추려냈는데 모두 130여 명 규모였다고 한다. 그중 1억원 이상 받은 교사는 60여 명이었다.
일부 교사는 최근 5년간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업무에 참여하면서 유명 학원에서 수억 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원은 수능 문제를 출제하고 대입과 관련한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현직 교사들도 수당을 받고 업무에 참여한다. 그런 활동을 한 현직 교사가 어떤 형식으로든 거액을 입시 학원들에서 받은 것은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립·사립학교 모두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고 영리 활동을 하려면 학교장에게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교사가 참고서나 문제집을 쓰기도 하고, EBS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능을 출제하는 평가원에 관여한 교사가 입시 학원의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입을 좌우하는 수능 출제와 관련해 교사가 자신의 노하우를 특정 학원에 전하고, 학원은 이를 이용해 수험생을 끌어모아 큰돈을 버는 ‘사교육 카르텔’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그들이 평가원 업무에 참여한 내용과, 입시 학원에서 한 활동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상당한 파문이 일 것”이라고 했다.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한 대형 입시학원의 '2024 수시·정시 합격 예상 점수 공개 및 수험생 지원전략 설명회'에서 한 학부모가 정시모집 배치 참고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에선 지난 10년간 대형 입시학원들로부터 5000만원 이상의 돈을 받은 현직 고교 교사가 13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대형 학원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은 교사는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 A씨였다. 메가스터디 등에서 10년간 총 9억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학 상담을 하는 경기도 지역 교사 B씨는 이투스교육 등에서 10년 동안 총 5억9000만원을 벌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대성학원 등에서 4억6000만원을 받았다. 이강학원 등에서 3억6000만원을 받은 경기도 교사, 시대인재 등에서 3억2000만원을 받은 서울 지역 교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의 한 수학 교사는 대성학원 등에서 10년간 3억3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이 입시 학원에서 받은 돈이 거액인 점으로 미루어, 일부는 학원에서 제작하는 수능 모의고사 ‘킬러 문항’ 출제 등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명 입시 학원들은 ‘수능 킬러 문항’ 대비를 주요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 학원생들을 모집해 왔다.
서울 한 일반고에서 사회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는 지난 5년간 대성학원 등에서 3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가원에선 최근 5년간 총 4000만원을 받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대형 입시 학원들에서 총 4억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평가원에서 600만원을 받았다.
국어를 가르치는 서울의 고등학교 교사 C씨는 5년 동안 여러 입시 학원에서 2억원을 벌었는데, 같은 기간 평가원에서 3000만원을 받았다. C씨는 대형 입시 학원에서 번 소득을 누락해 세무 당국 감시망을 피하려 한 정황도 발견됐다고 한다. C씨의 5년간 소비 지출은 약 24억원인데, 세무 당국은 수입에 비해 과다한 규모로 보고 C씨의 소득 내역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C씨가 부동산 등을 취득했는데 그 자금의 출처도 석연치 않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 당국은 현직 교사들이 입시 학원에서 수년 넘게 돈을 받아오면서 세율이 낮은 ‘기타 소득’으로 신고한 것은 잘못됐다고 보고 세금을 추가로 물릴 예정이라고 한다.
또 교육 당국이 교사가 평가원 참여 경력을 활용해 수익을 취득했는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당국 관계자는 “이들이 대형 입시 학원에 문제를 유출한 혐의 등 유착 정황에 대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