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 강릉 거제 경남 경주 고령 고창 광주 기계 기장 김해 남원 남평 달성 대전 덕산 무송 밀양 백천 분화 수원 순흥 신영 야성 양주 여주 영천 예천 전주 죽산 진주 청주 칠원 태평 파평 팔판 평산 평창 함안 함평 해남 해주 해평 현풍
총 44개의 본관과 834,081명이 있다.(1985년)
- 윤씨는 옛 문헌상에 14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현재는 44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11개의 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해평, 무송, 칠원, 해남, 평산을 제외한 모든 본관은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
- 그리고 나머지 남원 윤씨, 신영 윤씨, 야성 윤씨, 함안 윤씨, 평산 윤씨 등은 파평으로 다시 합본이 되었다고 한다.
- 파평 윤씨는 고려때부터 세족으로 이조 개국이후에는 왕비와 훈신 학자를 배출하여 거의 이조 전기에 걸쳐 세력을 크게 떨쳤다
- 남원 윤씨(南原 尹氏)
- 시조 윤위(尹威, 시호는 문헌)는 윤신달의 8세손이며, 윤관 장군의 증손자이다.
- 윤위는 1176년(고려 명종 6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 이부랑중, 예빈소경 등을 지내고 1200년(고려 신종 3년) 국자사업으로 안렴사가 되어 호남에 갔을 때 남원에서 복기남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자서 적을 회유하여 해산시키고 평정 시켰다.
- 그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지고 남원을 식읍으로 하사 받자 그의 직손들이 남원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여 남원으로 하였으나 파평 윤씨로 다시 합본 하였다고 한다.
- 윤위의 묘소는 남원 문덕산에 있으며 음력 3월 18~20일에 향사 한다.
- 방산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 [ 대표적 인물 ]
윤형(衡) : 형조, 이조판서를 지냈다. 윤섬(暹) : 선조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들어가 태조의 조상이 이인임(李 仁任)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아, 그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 되고 사복시정을 지냈다. 윤집(集) : 윤섬의 손자. 척화론자로서 청나라에 잡혀가서 장렬한 죽음을 하여 오 달제, 홍익한과 함께 3학사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윤행임(行恁) :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을 지냈다. 윤정현(定鉉) : 예조, 이조판서,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윤병정(秉鼎) : 대사성, 이조판서, 돈령부판사를 지냈다. 윤전(鐫) : 남인의 거물이며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냈다.
- 37,838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4세 섭(燮)/ 25세 재(在)/ 26세 호(鎬)/ 27세 영(永)/ 28세 상(相)/ 29세 현(顯)/ 30세 배(培)/ 31세 종(鍾)/ 32세 원(源)/ 33세 수(秀)/ 34세 성(性)
- 무송 윤씨(茂松 尹氏)
- 무송 윤씨는 본래 소호씨이다.
- 상고시대에 소호 금천씨 차비의 아들 반이 궁정이 되었는데 황제로부터 옹주의 윤성에 봉해서 윤씨로 하였다고 한다.
- 오계시대에 후손인 윤경이 병란을 피하여 동래하여 하남도 무송(전북 고창)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송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후의 기록은 알 수가 없다.
- 후손 양비가 향리로서는 처음으로 고려 예종때 보승랑장을 역임하여 무장현 호장의 택호를 받게 되면서부터 시조가 되었다
- 양비의 묘소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 있다.
- [ 대표적 인물 ]
윤택(澤) : 윤비의 증손. 정당문학, 첨의찬성사를 지냈다. 윤소종(紹宗) : 윤택의 손자. 조선시대 병조전서(兵曹典書)로 '고려사' 편찬에 참 여, 회군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윤회(淮) : 윤소종의 아들. 세종 때 병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는데 주호(酒豪)로 유명하다. 윤자운(子雲) : 윤회의 손자. 우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윤형(泂) : 선조 때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호조판서, 중추 부판사를 역임하였다.
- 10,320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0세 영(永)/ 21세 종(鍾)/ 22세 순(淳)/ 23세 병(秉)/ 24세 헌(憲)/ 25세 세(世)/ 26세 선(善)/ 27세 태(泰)/ 28세 상(相)/ 29세 희(熙)/ 30세 재(在)/ 31세 석(錫)/ 32세 영(泳)/ 33세 동(東)/ 34세 섭(燮)/ 35세 규(圭)/ 36세 회(會)/ 37세 영(永)/ 38세 식(植)/ 39세 용(容)
- 양주 윤씨(楊州 尹氏)
- 시조 윤덕방의 선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양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로 고려 시대에 판전의사사를 지냈다.
- 그래서 후손들이 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 2,315명이 있다.(1985년)
- 항렬
12세 래(來)/ 13세 희(熙)/ 14세 성(聖)/ 15세 헌(憲)
- 영천 윤씨(永川 尹氏)
- 시조 윤절생(尹切生)은 고려시대에 호장을 지냈다.
- 그의 4세손 윤승관이 정당문학을 지내고 고울(영천)백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본관을 영천으로 하였다.
- 영천윤씨의 인물로는 태종 때 군수 윤순(淳), 성종 때의 이조참의 윤긍(兢), 선조 때 중추부참지사 윤빙(聘) 등이 있다.
- 1,745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8세 두(斗)/ 29세 택(澤)/ 30세 수(樹)/ 31세 환(煥)/ 32세 재(在)/ 33세 현(鉉)/ 34세 영(永)/ 35세 식(植)
- 예천 윤씨(醴泉 尹氏)
- 시조 윤충(尹忠)은 고려시대에 추밀부사를 지내고 예빈사소윤에 추증되었다.
- 그의 후손들이 예천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본관을 예천으로 하였다.
- 증손 윤상(祥)은 태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성, 예문관제학, 성균관박사를 지냈으며, 성리학과 역학에 밝아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 1,965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3세 (日)변/ 24세 (月)변/ 25세 (水)변/ 26세 (木)변/ 27세 (火)변/ 28세 (土)변/ 29세 (金)변/ 30세 (日)변
- 칠원 윤씨(漆原 尹氏)
- 시조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자태사로서 고명원로에 이르렀다.
- 그러나 그의 아들 윤황 이후의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고려시대에 칠원백호장을 지낸 윤거부를 1세 조상, 중시조로 하고있다.
- 그의 17세손인 윤길보(시호는 충의)가 구성(칠원의 별호)군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칠원군에 살면서 본관을 칠원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에 있다.
- [ 대표적 인물 ]
윤수(秀) : 고려 충렬왕 때 군부판서(軍簿判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을 지 냈다. 윤저(抵) : 윤수의 증손. 조선 태조 때 상장군이 되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책록, 찬성사가 되었다. 윤석보(碩輔) : 옥당(玉堂),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윤풍형(豊亨) : 윤석보의 아들. 관찰사,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윤탁연(卓然) : 윤석보의 증손. 명종 때 춘추관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 하고, 옥당, 3도관찰사, 형조,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선조 때 종계 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칠계군에 봉해졌다. 윤지술(志述) : 숙종 때 유생으로 신임사화에서 화를 입었으며, 임창, 이의연과 함께 3포의(三布衣)로 일컬어졌다.
- 44,874명이 있다.(1985년)
- 항렬
31세 환(煥)경(敬)/ 32세 국(國)/ 33세 재(載)/ 34세 의(義)의(誼)/ 35세 영(永)/ 36세 학(學)근(根)/ 37세 병(炳)형(炯)/ 38세 원(遠)규(逵)/ 39세 종(鍾)호(鎬)/ 40세 순(淳)수(洙)/ 41세 상(相)주(柱)/ 42세 묵(默)훈(勳)/ 43세 효(孝)교(敎)/ 44세 흠(欽)진(鎭)/ 45세 해(海)부(溥)/ 46세 식(植)모(模)/ 47세 찬(燦)혁(爀)/ 48세 균(均)배(培)/ 49세 용(鎔)기(錤)/ 50세 한(漢)연(淵)/ 51세 동(東)정(程)/ 52세 환(煥)섭(燮)/ 53세 규(圭)규(奎)/ 54세 전(銓)갑(鉀)/ 55세 철(徹)자(滋)/ 56세 영(榮)권(權)/ 57세 현(炫)희(熙)/ 58세 기(基)곤(坤)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 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 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채속에 누워 있었다.
-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 그래서 파평 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 [ 분파 ]
함안파 남원파 덕산군파 문정공파 신령공파 대언공파 양주파 봉록군파 소공파 야성파 전의공파 소정공파 원평군파 소도공파 판도공파 소부공파 태위공파
- 846,632명이 있다.(1985년)
- 항렬
(함안파) 29세 검(儉)/ 30세 희(喜)/ 31세 석(錫)/ 32세 영(泳)/ 33세 임(林)/ 34세 용(容)/ 35세 재(在)/ 36세 종(鍾)/ 37세 원(源)/ 38세 상(相)/ 39세 섭(燮)/ 40세 기(基)
(남원파) 29세 태(泰)/ 30세 병(秉)/ 31세 섭(燮)/ 32세 재(在)/ 33세 호(鎬)/ 34세 영(永)/ 35세 상(相)/ 36세 현(顯)/ 37세 배(培)/ 38세 종(鍾)/ 39세 원(源)/ 40세 수(秀)
(덕산군파) 29세 여(汝)/ 30세 래(來)/ 31세 희(熙)/ 32세 규(奎)/ 33세 종(鍾)/ 34세 태(泰)/ 35세 상(相)/ 36세 렬(烈)/ 37세 재(在)/ 38세 두(斗)/ 39세 일(一)
(문정공파) 29세 방(邦)/ 30세 여(汝)/ 31세 상(相)/ 32세 섭(燮)/ 33세 치(致) 종(宗)/ 34세 석(錫) 병(秉) / 35세 원(源) 훈(勳)/ 36세 식(植) 재(在)/ 37세 지(志) 병(炳))/ 38세 곤(坤) 규(奎)/ 39세 종(鍾) / 40세 수(洙) 영(永)
(신녕파 : 화산군) 29세 희(熙)/ 30세 재(在)/ 31세 종(鍾)/ 32세 원(源)/ 33세 동(東)/ 34세 환(煥)/ 35세 규(圭)/ 36세 강(康)/ 37세 재(宰)/ 38세 중(重)/ 39세 규(揆)/ 40세 용(用)
(대언공파) 29세 주(柱)/ 30세 진(鎭) 영(榮) / 31세 자(滋) 토(土)/ 32세 상(相) 의(儀)/ 33세 병(炳) 水변/ 34세 중(重) 상(相)/ 35세 석(錫) 섭(燮)/ 36세 여(汝) 기(基)/ 37세 식(植) 용(鎔)/ 38세 섭(燮) 원(源)/ 39세 재(載) 동(東)/ 40세 종(鍾) 희(熙)
(양주파) 31세 영(永)/ 32세 영(榮)/ 33세 욱(煜)/ 34세 혁(赫)/ 35세 석(錫)/ 36세 순(淳)/ 37세 수(秀)/ 38세 렬(烈)/ 39세 재(在)/ 40세 현(鉉)
(소정공 : 상호군파) 30세 진(鎭)/ 31세 재(宰) 자(滋)/ 32세 임(壬) 상(相)/ 33세 규(揆) 병(炳)/ 34세 갑(甲) 중(重)/ 35세 봉(鳳) 석(錫)/ 36세 병(丙) 여(汝)/ 37세 녕(寧) 식(植)/ 38세 무(茂) 섭(燮)/ 39세 범(範) 재(載)/ 40세 강(康) 종(鍾)
(소정공 : 구방파1) 31세 목(木) 자(滋)/ 32세 보(普) 영(榮)/ 33세 주(周) 혁(赫)/ 34세 현(鉉)/ 35세 한(漢)/ 36세 근(根)/ 37세 렬(烈)/ 38세 준(埈)/ 39세 수(銖)/ 40세 태(泰)
(소정공 : 구방파2) 31세 화(禾)/ 32세 영(榮)/ 33세 왕(王)/ 34세 종(鍾)/ 35세 승(承)/ 36세 동(東)/ 37세 렬(烈)/ 38세 기(基)/ 39세 호(鎬)/ 40세 택(澤)
(소정공 : 장령공) 30세 진(鎭)/ 31세 자(滋)/ 32세 상(相)/ 33세 병(炳)/ 34세 중(重)/ 35세 석(錫)/ 36세 여(汝)/ 37세 식(植)/ 38세 섭(燮)/ 39세 달(達)/ 40세 종(鍾)
(소정공 : 백천공파) 31세 영(永)/ 32세 의(儀)/ 33세 水변/ 34세 주(柱)/ 35세 희(熙)/ 36세 기(基)/ 37세 석(錫)/ 38세 수(洙)/ 39세 병(秉)/ 40세 섭(燮)
(소정공 : 영천부원군) 30세 식(植)/ 31세 현(顯)/ 32세 오(五)/ 33세 석(錫)/ 34세 원(源)/ 35세 주(柱)/ 36세 희(熙)/ 37세 재(在)/ 38세 용(鏞)/ 39세 영(泳)/ 40세 직(稷)
(소정공 : 원평군) 32세 상(相)/ 33세 병(炳)/ 34세 재(在)/ 35세 석(錫)/ 36세 영(泳)/ 37세 모(模)/ 38세 영(榮)/ 39세 규(圭)/ 40세 현(鉉)
(판도공 : 제학공) 29세 영(永)/ 30세 변(변)/ 31세 훈(勳)/ 32세 기(起)/ 33세 용(鏞)/ 34세 태(泰)/ 35세 상(相)/ 36세 희(熙)/ 37세 규(奎)/ 38세 종(鍾)/ 39세 락(洛)/ 40세 병(秉)
(판도공 : 부윤공) 30세 규(圭)/ 31세 현(鉉)/ 32세 순(淳)/ 33세 모(模)/ 34세 희(熙)/ 35세 기(基)/ 36세 탁(鐸)/ 37세 호(浩)/ 38세 집(集)/ 39세 덕(德)/ 40세 구(球)
(판도공 : 정정공1) 31세 토(土)/ 32세 의(儀)/ 33세 水변/ 34세 주(柱)/ 35세 희(熙)/ 36세 기(基)/ 37세 백(伯)/ 38세 태(台)/ 39세 렬(烈)/ 40세 효(孝)
(판도공 : 정정공2) 31세 배(培)/ 32세 선(善)/ 33세 영(永)/ 34세 수(秀)/ 35세 용(容)/ 36세 덕(德)/ 37세 녕(寧)/ 38세 성(成)/ 39세 범(範)/ 40세 강(康)
(판도공 : 정정공3) 31세 영(榮)/ 32세 교(敎)/ 33세 선(善)/ 34세 제(濟)/ 35세 변(변)/ 36세 병(炳)/ 37세 중(重)/ 38세 의(義)/ 39세 순(淳)/ 40세 상(相)
(소부공파1) 31세 대(大)/ 32세 효(孝)/ 33세 진(鎭)/ 34세 영(永)/ 35세 상(相)/ 36세 희(熙)/ 37세 재(在)/ 38세 용(鎔)/ 39세 영(泳)/ 40세 표(杓)
(소부공파2) 29세 병(秉)/ 30세 헌(憲)/ 31세 재(在)/ 32세 현(鉉)/ 33세 태(泰)/ 34세 영(榮)/ 35세 병(炳)/ 36세 기(基)/ 37세 호(鎬)/ 38세 락(洛)/ 39세 동(東)/ 40세 환(煥)
(태위공파) 30세 성(成)/ 31세 태(泰)/ 32세 식(植)/ 33세 병(炳)/ 34세 기(基)/ 35세 종(鍾)/ 36세 영(永)/ 37세 동(東)/ 38세 묵(默)/ 39세 용(用)/ 40세 석(錫)
- 함안 윤씨(咸安 尹氏)
- 시조 윤돈(尹敦)은 남원 윤씨의 시조인 윤위의 손자이다.
- 윤돈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전의정랑을 거쳐 이부시랑에 올랐다.
- 이 때 함안에서 반왕의 난이 일어나자 왕이 원수 겸 자사에 봉하고 난을 평정토록 명하자 병사들을 이끌고 평정하여 그 공으로 수문전 태학사, 판밀직 문하시중에 특진되고 함안백에 봉해졌으며 함안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 윤돈에게 아들 4형제가 있었는데 첫째 아들 윤희보(주부공)은 본관을 함안으로 하였고, 나머지 3형제는 남원윤씨를 이었다.
- 그러나 후에 파평 윤씨로 합본하였다고 한다.
- [ 대표적 인물 ]
윤각(慤) : 조선 숙종 때 무과에 급제, 삼군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를 지냈다. 윤의검(義儉), 윤태연(泰淵) : 어영대장을 지냈다. 윤기무(起畝) : 세종 때 문과에 급제, 봉상시판사를 지냈으며, 연산군의 외조부이다.
- 6,106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9세 검(儉)/ 30세 희(喜)/ 31세 석(錫)/ 32세 영(泳)/ 33세 임(林)/ 34세 용(容)/ 35세 임(任)/ 36세 종(鍾)/ 37세 원(源)/ 38세 상(相)/ 39세 섭(燮)/ 40세 기(基)
- 해남 윤씨(海南 尹氏)
-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중엽 때 사람이나 그후 7세손 까지는 출생지와 거주지 묘소 등이 분명하지 않다.
- 중시조인 8세손 윤광전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 직장을 지냈으며 탐진감무의 허락을 받아 차자 단학에게 노비를 준 노비문서가 전해 온 것으로 보아 광전을 중시조로 받들고 탐진에 세거한 사실이 분명하지만 당시는 본관을 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고려가 망하자 광전의 5세손 효정이 비로소 아들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피하여 살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고 후학을 계도하여 삼개옥문의 적선 등으로 덕을 쌓아 가문의 기틀을 굳건히 세우고 적선가이자 덕망이 높은 윤씨가 해남에 산다는 것이 드러 나면서 강진에 거주하는 3종간은 물론 이요 시조까지 소급해서 본관을 해남으로 하게 되었다.
- 윤광전의 묘소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한천동에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10일에 향사한다.
- [ 대표적 인물 ]
윤구(衢) : 중종 때 호당에 뽑히고 사성을 지냈다. 윤의중(毅中) : 윤구의 아들. 대사헌·대사간·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윤선도(善道) : 윤의중의 손자. 시조의 대가로 유명하며, 한성서윤, 예조참의, 중 추부첨지사 등을 역임하였고, 남인의 거두로서 예송 때는 송시열( 宋時烈) 등과 대립하였다. 윤두서(斗緖) : 윤선도의 증손. 숙종 때 화백으로서 심사정, 정선과 함께 3재로 일 컬어졌다.
- 48,780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4세 호(浩)/ 25세 주(柱)/ 26세 하(夏)/ 27세 재(在)/ 28세 현(鉉)/ 29세 영(泳)순(淳)/ 30세 상(相)식(植)/ 31세 병(炳)/ 32세 배(培)/ 33세 용(鎔)/ 34세 수(洙)/ 35세 동(東)/ 36세 환(煥)/ 37세 기(基)/ 38세 탁(鐸)/ 39세 해(海)/ 40세 식(植)/ 41세 덕(德)
- 해주 윤씨(海州 尹氏)
- 시조 윤중부(重富)는 조선 세종 때 중추부지사를 지냈으며, 아들 윤희평(熙平)은 연산군 때 무과에 급제, 공조판서와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 서흥 윤씨(瑞興)라고도 했었다.
- 350명이 있다.(1985년)
- 해평 윤씨(海平 尹氏)
- 원조는 고려 인종때 문하시중을 지낸 신준이라 하지만 그 세계를 상고할 수가 없다
- 시조 윤군정(君正)은 고려 고종, 원종 때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좌복야, 공부판사(工部判事)를 지냈다.
- 그의 손자 윤석이 고려 충숙왕 때 충근절의 동덕찬화 보정공신, 벽상삼중대광, 도첨의사, 우의정, 판전리사사로 해평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등공신으로 전답을 하사받았다
- 그래서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 [ 분 파 ]
문영공파(文英公派) : 윤지현(之賢)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충간공파(忠簡公派) : 윤지호(之彪)은 윤군정의 증손이다. 오음공파(梧陰公派) : 윤두수(斗壽)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으로 충간공파에서 갈라 졌다. 월정공파(月汀公派) : 윤근수(根壽)는 윤두수의 동생으로 대제학을 지내고 충간공 파에서 갈라졌다. 치천공파(稚川公派) : 윤방(昉)은 윤두수의 아들이다. 장주공파(長洲公派) : 윤휘(暉)는 윤방의 동생이다. 백사공파(白沙公派) : 윤훤(暄)은 윤휘의 동생이다.
- [ 대표적 인물 ]
윤은보(殷輔) :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윤승훈(承勳) :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윤방(昉) : 윤두수의 첫째 아들.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냄으로써 부자 영상으로 이름 을 떨쳤다. 도승지, 한성판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인목대비의 폐 위에 반대하여 은퇴하였으며, 인조반정으로 예조판서에 등용,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윤흔(昕) : 윤두수의 둘째 아들. 우승지를 지내고 계축옥사로 파직되었다가, 역시 인조반정 뒤 예조참판·중추부지사 등을 지냈다. 윤휘(暉) : 윤두수의 셋째 아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인조를 따라서 적진 을 왕래하면서 화의를 교섭하였고, 뒤에 형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이 르고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윤훤(暄) : 윤두수의 넷째 아들. 병조판서를 지냈다. 윤오(旿) : 윤두수의 다섯째 아들.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윤급(汲) :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글씨에 뛰어나 윤상서체를 이룩하였다. 윤비(尹妃) : 순종왕비. 영의정 방의 후손이다. 윤치호(致昊) : 흔의 8세손이며, 아버지 웅렬(雄烈)은 한말에 군부대신이었다.
- 22,757명이 있다.(1985년)
- 항렬
24세 영(榮)/ 25세 섭(燮)/ 26세 노(老)/ 27세 진(鎭)/ 28세 홍(洪)/ 29세 식(植)/ 30세 병(炳)/ 31세 규(圭)/ 32세 용(鏞)/ 33세 준(準)/ 34세 수(秀)/ 35세 환(煥)/ 36세 기(起)/ 37세 호(鎬)/ 38세 원(源) |
첫댓글 안녕하세요, 님의 글을 허락없이 이곳 자유 게시판으로 옮겼습니다. 뿌리찾기 게시판에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위한 곳이므로 부득이 게시판에 어울리는 곳으로 자리 이동하였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파평윤씨의 분파에서 "양주파"는 아직 파평윤씨로 합본이 되지않아서 우리 파평윤씨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소공파"는 "판서공파"의 오류입니다. 모두 16개 계파로 나뉘어집니다.
양주파는(전의공 휘 승휴(承休)의 손자 되시는 昌花伯 司直公 휘 崇), 파평윤씨 에서 분파하였고 합본이 된 派라고 대종회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발간된 문중보감에도 "양주파"는 명시가 안되고 "전의공파"에 포함되어 있으니 앞으로는 "양주파"라고 하지않고 "전의공 사직공파"라고 해야 되겠네요.
문중보감에도 명시가 안되고 16파에도 없는 합본이 안된파라 양주파가 거슬린다면 13세 영평군 휘 陟 의 장남 전의공파에서 분파 되었으니 전의공 사직공파라고 해도 되겠죠... (답변자 답이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수도 있지만, 저하고 전화 대화한 도우미(정보주간) 는 그랬습니다.(파평윤씨 대종회 전화번호 02) 424 - 13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