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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키스해주었네
프롤로그
한창 사형제도의 대한 대립이 되고 있을 때 정부는 사형제도의 대한 기발한 대안 법을 만들게 된다. 그것은 바로 팔진도법. 제갈공명의 팔진도에서 연상시킨 법인데, 어찌나 기발한지 이 법에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사형수는 지하에 설치된 거대한 미로 속으로 들어가서 어떠한 물건을 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들어가자마자 만나는 수십 개의 갈림길은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지도가 주어지지만 등불 하나 없는 미로에서는 힘들다. 대신 건전지 한 개를 넣은 손전등을 준다. 건전지가 다 닳면 지도도, 앞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사형집행일을 일주일 앞두고 사형수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곧바로 사형을 당할 것이냐, 미로 속으로 들어 갈 것이냐. 선택은 물론 자유다.
처음으로 미로로 들어가는 사람은 유아살해범 김인주이다. 그가 살해한 유아들은 대부분 4-6세 정도인 작은 아이들이었는데 열 명의 유아시체들이 그의 집에 나뒹굴고 있었다. 흉기를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손으로만 유아들을 살해한 그는 열명째 살해하는 날 경찰에 자수했다. 자수를 했지만 그의 잔인성이 충분히 인정이 되어 첫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미로로 들어가는 날은 전지역에 생중계로 방송이 되었고 그 시청률이 70%가 넘으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 법안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미로 속으로 홀연히 사라 질 때, 수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셔터가 미로 저 안쪽까지 비추었다. 결국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손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가져 온 지도를 손에 꼭 쥐고 앞으로 향했다. 갈림길이 나오면 지도를 볼 생각이었다. 미리 토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한참동안 가도록 갈림길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겨 지도를 펴고 손전등을 비추어서 거대한 미로가 굵직한 선으로 그려져 있는 걸 확인했다. 그때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점차 다가왔다. 손전등을 아무리 소리가 나는 쪽을 비춰도 소리의 정체는 도무지 드러내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소리는 그를 엄청난 불안감속으로 밀어 넣었다. 불안감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서서 소리를 듣는 것인데 계속 듣자니까 낯선 소리가 아니었다. 익숙한 소리는 아니지만 기억 속에 희미하게 자리잡혀 있는 소리였다. 뭘까.
자르다.
그가 생각해낸 말이다. 이 소리는 무언가 자르던 소리임에 분명했다. 뭘 자를까? 사람? 동물? 아니다. 그것들을 자를 때는 이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묵직한 소리가 들리지. 아악- 아아악--.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리의 정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잔뜩 겁에 질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그가 왔던 길을 뛰었다. 그의 뒤를 따라 오는 소리는 더욱 빨라졌고 그의 뒤까지 쫓아왔다. 소리는 그가 입고 있는 죄수복을 찢었고 곧 그의 몸을 찢어버렸다.
1
"만약 못 찾으면 어떡하죠? 찾기도 전에 손전등의 건전지가 다 닳면요?"
그는 굉장히 불안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나는 잠시 아무말 하지 않다가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할 수 있을거야. 토끼같은 자식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나? 이대로 죽으면 자네 자식들을 아빠없는 아이로 만드는거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업 팀장으로 일하던 그는 타회사의 뇌물을 받고 회사에 쫓겨났다. 퇴직금은 물론 없었을 뿐더러, 벌금으로 그나마 모아두었던 재산마저 날리게 되었다. 첫 째는 막 초등학교를 들어 갈 때여서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워 했다고 한다. 험한 일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그였기에 다른 일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 안으로 결정하게."
그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나와서 내가 향한 곳은 관리실이다. 그곳은 팔진도법과 미로의 대한 것을 관리하고 있는 곳인데, 철저하게 비밀로 관리되고 있어서 사형수들을 상담해주는 나조차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처음 상담했고 처음으로 미로속으로 들어간 김인주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로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동의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시체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가 만들었긴 했지만 그 정부조차 미로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이 향좀 줄였으면 좋겠구만……."
관리실은 허브향으로 가득했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나를 감싸 돌았다.
"아저씨 오셨어요?"
형중은 읽던 만화책을 올려놓고 나를 맞이했다.
"금방 두 번째, 상담 보셨죠? 어떠셨어요?"
"뭐, 그렇지. 그런데 김인주 소식은 아직 없나?"
"죽은 게 분명해요.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거 물으세요?"
"그냥…. 난 솔직히 사형을 하는 것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
내가 말을 마치자 형중은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사형이 별로 좋은 제도가 아니라고요? 저는 지금 팔진도법이라는 어디 주워 놓은 쓰레기같은 법이 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형중에 내게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이어서 말했다.
"인권이요? 도대체 그 인권이라는 게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죠? 죽은 사람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하냐고요. 그러니까!"
잠시 침묵으로 있더니 "아……. 죄송해요. 제가 그만 너무 흥분해버렸네요." 라고 말했다. 형중은 정말 죄송한 것 같았다. 이어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경보음이었다. 관리실 천장에 달려 있는 경보벨이 반짝반짝거리며 소리를 냈다. 형중은 모니터를 확인 하더니 무전기로 "B-2 문제 발생" 이라고 말했다.
"사형수들이 또 문제 일으켰나 봐요. 역시 사형수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말 끝을 흐렸다.
"차 마실래요?"
"녹차."
형중은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 놓았다. 형중은 거의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대부분 다 있었다. 소형냉장고는 물론, 샤워실까지 있었다. 샤워실은 아무래도 정부가 형중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심심해서 어떻게 사나?"
"이렇게 만화책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하죠. 하루에도 몇 번씩 저 경보음이 울리는데 심심 할 틈이 없어요."
머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사형수랑 1:1 상담하는거요."
"하하하하."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와 대통 웃어버렸다. 내가 웃는 이유를 알기나 하는지 형중은 따라 웃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을 죄수들과 지냈으니까."
"난 아직 50대야. 평생이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금방이라도 꼴까닥 하고 죽을 줄 알겠다."
"아저씨도 참…. 농담하지마요. 제가 보기에는 아저씨는 100살도 살 것 같아요."
"에잇. 징그러워라."
형중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의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유지인. 어떤 사람이죠? 무슨 잘못을 했길래 사형수가 된 거에요?"
사뭇 진지한 형중의 말에 긴장이 되었다. 그의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슨 잘못이긴…. 사람을 죽였어."
"왜요?"
"하핫. 대부분이 한정된 이유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겠어? 돈이냐, 원수냐. 대부분 이 두가지 이유지. 안 그래? 유지인, 그는 돈때문이야. 돈."
나는 그의 속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털어놨다. 이 사실을 그가 알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죽였나요?"
"강도였어. 빈집인 줄 알고 들어 갔던 집에 여자가 있었어. 당황해가지고 목졸라서 죽인거지."
형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래도 그가 여러명을 죽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여자를 죽이고 당황하고 있을 때 가족들이 들어와서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죽여버렸다. 형중이 이런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 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형중도 애써 모른 체 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는 그에게 다시 갔다. 아까부터 계속 고민했는지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고 나를 보자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정했나?"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찌보면 미로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밑져야 본전 같지만 미로속에서 실패를 할 경우에는 뼈저린 공포를 느끼면서 천천히 죽어야 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나도 가끔 생각해보는데 결정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결정이 어려운데 실제로 갈등을 겪는 죄수들은 얼마나 괴로울지 대충은 알 것도 같다.
"난 자네가 하게다고 결정했으면 좋겠어."
"전 괴로운 것이 싫고, 죽기는 더더욱 싫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모순이다. 나는 그가 죽기를 바라지를 않거니와 꼭 살기를 원하지만 그 말은 내 속으로 찡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난 좀 있다가 자네의 결정을 정부에 알려야 하네. 자네가 결정할 때까지 이곳에 있겠지만, 죽지 않는 방법은 미로속으로 들어가는 법 밖에 없다는 걸 알아두게."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곧 결정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잘 결정했네. 앞으로 일주일간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웬만한 건 다 줄거야. 그동안 못 먹었던 거 마음껏 먹게나. 그럼 난 지금 정부에 자네가 미로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걸 알려주러 갈테니 일주일 후에 만나세."
이렇게 해서 그는 두 번째로 미로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정부에 그가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리고 집으로 왔다. 30년간 교도관으로 일한 나는 팔진도법이 생기고 나서 상담원으로 직업이 바뀌었다. 그것은 내 결정이 아니라,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는 내가 교도관으로 일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상담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매우 편하고 내 자신의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런데도 월급은 교도관시절보다 더 많이 받았다.
모두 대학생인 두 아들은 모두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둘이 살기에는 큰 집이 나를 맞이 해준다. 아내도 사형수의 대해 호기심이 많아 나에게 자주 묻지만 나는 말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 아내는 형중과는 달랐다. 아내에게 옷을 벗어 주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잤다.
아침에는 인터넷을 했다.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배운 인터넷이지만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문명이었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모니터를 쭉 보고, 또 클릭하고. 그러면서 인터넷뉴스를 보았다. 감동적인 뉴스라고 쓰여 있는 게시판은 일주일이 지나도 한개의 뉴스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볼 것도 없다 느껴져서 다른 뉴스를 보고 있는데 화재가 되어 있는 뉴스를 발견했다. 엽기적인 살인마라는 타이틀 제목이었는데 살인마는 남자 간호사며 주사에 독약을 넣고 입원중인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살인마는 더 살 가망이 없는 사람들만 골라 죽였다는 것이었다. 김모씨 88세 암말기, 이모씨 40세 암말기, 최모씨 37세 식물인간. 살인마가 죽인 사람들이다. 그외 더 있지만 뉴스에는 밝히지 않고 있었다. 나는 뉴스에 달려있는 댓글을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내 스스로 분노에 못 이겨 소리 칠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내가 아침밥을 먹으라고 날 불렀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약간 넘어서고 있었기에 아침이라기보다는 이른 점심에 더 맞았다.
"국 맛있는데."
"굴이랑 제첩좀 넣었는데 어때요?"
"시원하고 좋아."
아내는 요리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만큼 아내가 만들어 낸 음식에는 실망한 적이 없었지만 집에서는 거대한 음식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레스토랑에서 몇 십만원짜리 요리-
"일하는 거 어때요?"
"편해."
이제와서 이런 걸 묻는다는 게 어딘가 어색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리모콘을 가져와서 TV를 켰다. 마침 오전뉴스를 하고 있었다.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많이 들은 국회의원얘기는 오늘도 하고 있었다. 내가 국을 다 먹고 아내에게 더 달라고 했을 때 아나운서가 '모' 병원 남자간호사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한 뒤, 기자에게 말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더 기자가 말하는 내용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TV 앞으로 가까이 갔다. 그런 기사를 처음 맡은 듯, 기자는 굉장히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경찰들이 연행해 가는 모습이 잠깐 나왔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해서 얼굴은 보지 못했다. 잠깐동안 내가 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오히려 고마워 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겪는 고통은 보통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3년 전,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까지 고통을 호소하며 주위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여보, 뭐해…."
"아, 알았어."
오후에는 책을 좀 사러 서점에 갔다. 종이냄새와 잉크냄새가 나를 몽몽하게 만들었다. 먼저 와서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가 나갈 때까지는 한명도 오지 않았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알바생이 졸린 듯 하품을 길게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지 고개를 반대로 쑥 돌렸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아이가 맞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맞았다.
시집코너를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어 제목을 보니 「편지」였다. 책을 빼서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전국을 떠들석 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마 김영철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어 놓은 책이었다. 이런 것도 책으로 나오니 신선함이 느껴져서 내용을 무척이도 보고 싶지만 비닐로 밀봉이 되어 있어서 내용은 보지 못했다. 대신 뒷표지를 보니 한편의 편지가 나와 있었는데 학창시절 은사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은사님께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 한 것이 죄송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다는 말을 진수를 통해 들었습니다.
중략...
정말 평범하고 은혜롭기까지 한 편지였기 때문에 더욱 공포가 느껴졌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사람 죽이는 걸 즐기는 사람이였다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책을 둘러보면서 꾸준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니 그 키가 190은 되었고 검은 정장에 무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검은가방과 젤로 올려친 머리는 어딘가 귀족적인 풍이 느껴졌다. 내가 꾸준히 쳐다봐도 나를 쳐다보는 법은 없었고 가끔 안경을 치켜 올리는 것을 빼면 변함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두 권의 책을 계산하고 서점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마네킹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은 서점에서 사온 책을 읽으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지냈다. 그가 미로로 들어가는 시간은 오후 2시로 아직까지는 3시간이 남아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관리실에 들러 형중을 만났다.
"두 번째인데 그 사람 살아 올 것 같아요?"
나를 보자 대뜸 말했다.
"글쎄, 살아 올 것 같은데…."
내가 대답하며 형중 옆에 가 앉았다.
"살아오지 못해요."
나는 형중이 어째서 그리도 장담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형중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나는 그것을 건네 받아서 펼쳐보았는데 복잡하게 꼬인 곡선들이 있었다.
"그 미로 지도예요."
이 지도를 본 사람은 아직 김인주 한 명밖에 없다. 혹시라도 지도가 밖으로 돌아다니면 미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사태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도는 사형수가 미로로 들어가기 직전에 주어진다.
"이거 어디서 구했지?"
"저 관리실에서 일하는 거 그냥 폼인 줄 아셨어요?"
"아, 아니. 그래도 아무나 이거 못 보는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봐도 되나?"
"아저씨 믿으니까 보여 준 거에요. 사실은 그 지도 말고는 아는 게 없어요."
이런 게 정말 있기나 할까, 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지도는 말도 안되게 복잡했다. 대충 눈으로 따라가봤는데 눈이 아파서 톡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죽은 목숨을 살려주는데 그정도는 해야겠지요."
나는 이 지도를 지금이라도 그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걸 챙기려고 할 차에 형중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거 그 사람에게 주려고 하는거죠? 엄연히 불법이에요. 저는 아저씨를 믿고 그걸 보여 준 것이고. 아저씨가 그 사람 살리고 싶어하는 건 알지만 법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형중이 이리도 진지하게 말하는데 거기서 지도를 가져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그를 만났다.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얼굴이었다. 시간은 한 시간 반정도가 남았을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격려였다.
"잠은 편히 잤나?"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오늘이 저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아요."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말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지금 한 시간 반정도가 남았는데 그동안이라도 눈 부치겠나?"
"아뇨. 자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과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게. 뭐든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봐도 좋아.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숨김없이 모두 말하겠다고 약속하겠네."
그는 잠시 생가하는 듯 하더니 이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미로의 대해 뭐 아는 것이 있으세요?"
나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몇 분 전에 미로의 지도를 잠시 보았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아는 게 없어……."
실망한 듯한 얼굴을 하고 다시 물었다.
"규칙을 다시 말씀 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 자네는 미로 앞에서 손전등과 지도를 받게 될거야. 나는 아직 모르지만 그곳에서 누군가 자네에게 가져와야 할 물건을 말해주면 그걸 가져오면 돼.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자네가 잘 알거야. 첫 째로 들어 간 김인주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실패 한 것 같아. 하지만 너무 걱정말게. 자네는 할 수 있을거야. 규칙은 이것이 전부라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2시가 되어 젊은 교도관이 상담실의 철문을 열고 나오라고 말했다.
"내가 데려 갈테니 먼저 가 있게."
젊은 교도관은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아직 준비 안됐으면 조금 더 있어도 되네."
"지금 몹시도 떨리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이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얼른 가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간 줄 알았던 젊은 교도관은 문 앞에 서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도망이라도 칠까봐 안절부절 못 하는 젊은 교도관을 보자 내 교도관 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직종이던 신참일 때는 당돌하고 겁이 없지만 나의 경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고 보면 된다. 내가 그에게 더 정감이 가는 이유도 그런 점에서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쁜 생각을 해서 살인까지 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지금 무얼 하던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꼭 살아남길 바라는 것이다. 높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어둡고 침침한 수용소 바닥을 비추었다. 미로는 이곳에서 차로 5분정도 가면 나온다. 김인주는 이렇게 내가 직접 데리고 가지 못했는데 그것은 정부와 내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긴 복도를 빠져나오니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양 옆에 있는 경찰들은 마치 저승사자 두명이 가마의 양 옆에 서서 죽은 자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그가 죽을 것 같은…….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역시 잔뜩 긴장되어 입을 약간 벌려 거친 호흡을 하고 있었다. 나와 그가 차에 타자 저승사자들도 탔고 미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 수많은 셔터가 그를 향해 터졌다. 수첩을 들고 질문을 하는 기자도 있었고 마이크를 갖다대는 기자도 있었다. 그들은 그가 매우 위험한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자신 있으신가요?
왜 그곳으로 들어 간다고 결정하셨습니까?
한마디 해주세요.
그는 표정을 살짝 찡그렸지만 셔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미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판사와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와 검사가 하는 일은 그냥 종이를 보고 서약서를 외우는 일이었다. 그조차 판사가 모두 하기 때문에 검사는 거품밖에 되지 않았다. 짧은 서약서를 마이크에 말할 때는 주위가 쌩 조용했다. 그의 심장박동소리가 판사의 말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모두 말한 뒤 경찰이 그에게 다가와서 손전등과 지도를 주었다. 그리고 작은 종이를 하나 주었다. 아마도 찾아와야 할 물건이 쓰여 있겠지만, 그는 그걸 받고 펴지 않았다.
"이젠 들어가십시오."
판사가 짧게 말하자 그는 망설이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두손으로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미로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갔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려니 속이 타들어갔다. 부디 살아오기를…….
판사와 검사가 먼저 자리를 뜨고 기자들이 다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참이나 서서 미로의 어둠을 바라보는데 경찰 두 명이 미로로 향하는 계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한참후에 주위를 둘러보니 나밖에 없었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건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차피 수용소와는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걸어가도 상관은 없었다.
수용소로 와서 형중을 만나러 갔지만 자리에 있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용소에는 사형수들만 수용된다. 얼마 전에 지은 새 건물이기 때문에 시멘트 냄새가 산뜻하게 풍겼다. 10명의 사형수가 있는데 혹시 모르는 사고를 방지 하기위해 모두 독방에 있다. 그렇다고 독방이 일반 교도소처럼 아무것도 없는 방이 아니라 TV도 있고 샤워실도 있었다. 컴퓨터를 놓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혹시 인터넷을 통해 외부로 연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처럼 사형수이지만 살 의욕이 있고 본심이 착한 사형수가 있는 반면, 악질도 있었다. 그중에 한철희라는 사형수는 두 달 후에 결정을 하고 죄값을 치르게 된다. 난동이 심해 한번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 학원식구들이랑 외식하느라 좀 늦을 것 같아요. 국만 데우면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어요. 미안해요."
"미안하긴… 알았어."
오늘따라 초승달의 끝이 더욱 뾰족해 보였다. 토끼가 저곳에서 절구를 찍다가 쭈르륵 미끄러 내리면 어떡하지.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살지는 못할텐데 어떡하지. 하지만 토끼는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다. 토끼는 영리했고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돌아다니다가 김인주의 시체를 만나는 모습을 간신히 떠올렸지만 그 뒤는 알 수가 없었다.
9시 뉴스에서 그가 미로로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자꾸 기분 나쁜 생각이 들었다. TV속에 나온 미로의 입구는 꼭 이빨이 날카로운 악마가 입을 쫙 벌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가 그곳으로 들어가면 콱 입을 다물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 삼켜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비명소리. 그 비명소리를 듣는 건 자신 뿐이었다.
계속....
첫댓글 아.. 정말 잼있는데요!! ^^* 담편이 넘넘 기다려집니다..
오우~ 참신해라!! 미로속으로~ 쪼아,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