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84장 (구 434장) / 골로새서 1 : 9 – 1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8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골로새서 1장 9절 – 16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아멘!
기도가 가는대로 우리 인생도 갑니다. 기도가 가는 대로 가정, 교회, 국가가 갑니다. 이 고백은 모든 신실한 성도들의 삶의 고백입니다. 오직 영적 존재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존재로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기도는 삶의 고백입니다. 체험입니다. 기도의 언어는 위대한 영혼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외 없이 영혼의 언어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 영혼의 언어가 바로 기도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잉태한 기도가 있는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의 정열이 있고,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가슴 떨림 있으며, 장차 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영적 사람입니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사도 바울은, 위대한 영혼의 언어를 소유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세밀한 기도의 언어를 통해서, 주님 앞에 올려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에베소에 전파된 복음이 골로새까지 전해져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골로새라는 도시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교회내의 부패성, 교회 밖에서의 이단과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소문으로 들었을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떠올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9절a).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너무나 물질화, 세속화 되어서 기도의 영광을 주목하지 못합니다. 기도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기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자원과 풍성한 은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라는 도구를 주셨음에도 그것을 사용치 않고 영적으로 메마른 채로 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간절히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는 로마감옥에서 마치 유언장을 쓰듯 부모와 스승의 심정으로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 몇 가지 기도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원리를 우리의 기도생활의 기둥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영적인 지식의 풍성함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 당시에는 할례와 절기문제 같은 유대 율법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영지주의, 금욕주의 같은 그리스와 로마의 잘못된 철학과 사상이 뿌리박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천사를 숭배하여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하는 비 복음적인 생각들로 인해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영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을 영적으로 잘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지식의 풍성함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다음세대에 물려줄 것은 신앙의 온전한 분별입니다. 사도 바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와 같은 골로새교회에 대해서, 영적 지식의 풍성함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영적 지식의 풍성함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우리는 영적지식의 함양과 영적인 웰빙을 위하여, 주님의 진리에 우리 자신의 인생을 걸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순서로서 가장 합당한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열려있는 관계의 깊이가 모든 기도의 넓이를 결정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생활의 풍성함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앞부분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 주님께 합당히 행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성도다운 신앙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곧 삶’ 이기에 영적지식은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감을 채워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풍성함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면 자신으로부터 슬픔을 얻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마음을 쏟으면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주님께 드리기를 기뻐하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마음속에 더 큰 기쁨으로 함께 하십니다. 진정한 성도들의 기쁨은 주님과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님께 합당히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영적인 지식이 풍성해 질수록 삶은 빈궁에 처하지 않을까 오해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무한한 자원에 참여하여 육신적, 정신적, 영적으로 풍성해 지는 것을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늘 부족해서 어려운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모든 자원에 참여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자녀들입니다. 영적인 풍성함은 반드시 삶의 풍성함으로 이어집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도덕적인 탁월함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11~12절)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위로부터 공급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아무리 다른 것이 구비되어 있다 해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영적 능력이 없다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을 받아도 큰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모든 것 받아도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가 빠져버린 성도는 2% 부족한 성도가 아니라, 전부가 부족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부요를 아무리 누린다 할지라도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감사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의 감사지수는 어떠합니까? 나의 지식과 감사는 비례합니까? 나의 직분과 감사는 비례합니까?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주도권과 도덕적 주도권을 확실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고 삶의 탁월성과 은혜에 따라 우리의 진리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영적 지식과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아 주님과 이웃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