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물주기
시월 넷째 토요일이다. 간밤 일찍 잠들어 한밤중 잠을 깨 전날 서북산에서 봉화산 임도를 따라 걸으며 야생화를 탐방한 산행기를 남겨도 날이 밝아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더랬다.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재탕으로 달이면서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의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펼쳐 읽었다. 저자는 책 제목 앞에 ‘어차피 살 거라면’이란 수식어를 더 붙여 놓았더랬다.
날이 덜 밝아온 새벽에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텃밭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도지사 관사 앞 용호동 주택가를 지나니 자동찻길에 오가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경남교육청 청사 앞 중앙대로로 나가니 노랗게 물드는 은행잎이 가로등 불빛에 아롱져 비쳤다. 도청 광장과 도의회 앞에서 토월공원 들머리를 지난 시립테니스장을 거쳐 신월동 주택지와 법원 앞을 지났다.
사파동 축구센터 체육관에 이르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즈음이었다. 비탈길을 따라 텃밭으로 오르니 전날 산행을 함께 다녀온 친구는 농장에 먼저 나와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나는 고구마를 모두 캤고 가뭄을 타는 무와 배추 이랑에 물을 주는 일이 기다렸다. 들통과 커다란 주전자로 웅덩이로 내려가 물을 길어와 푸성귀 이랑에다 뿌려주었다. 연속해 다섯 차례나 물을 길어왔다.
웅덩이를 오르내리며 여섯 번째 길어온 들통의 물은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아껴 두었다. 텃밭 가장자리로 팥을 심었는데 잎줄기만 무성했지 콩 꼬투리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결실이 시원찮았다. 그래도 팥이 여문 콩깍지를 하나씩 손으로 따 모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콩 한 톨도 허투루 내버리지 않는지라 작황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성의껏 마무리를 지어주어야 했다.
익은 팥 꼬투리를 거두어 놓고 팥을 심은 이랑 근처 완두콩을 심었다. 완두콩 씨앗은 이미 한 달 전 반송시장 노점 채소 가게에서 사 놓았더랬다. 그 이후 비가 오길 기다려도 여태 가뭄이 계속되어 파종을 마냥 늦출 수가 없어 이번 텃밭 걸음에 완두콩을 심었다. 호미로 씨앗 묻을 자리를 파 놓고 완두콩을 몇 알씩 던져 놓고 흙으로 덮고는 아까 받아둔 들통의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이제 힘을 써야 할 새로운 일거리가 기다렸다. 광쇠농장 친구는 올해까지만 사파동 텃밭 농사를 짓고 내년 봄부터는 의령으로 귀촌해 새로운 농장을 경영하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 광쇠농장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경작을 의뢰해 놓았고 여산농장과 인접한 곳은 내가 경작을 승계받게 되었다. 지난여름 옥수수와 오이를 가꾼 이랑 뒷그루로 양파 모종 심을 두둑을 만들어 놓을 셈이다.
먼저 낫으로 시든 옥수수 대를 자르고 검불을 치웠다. 호미로 이랑에 무성한 잡초를 뽑아내고 비닐을 걷어치웠다. 이후 삽으로 흙살을 파 일구어 두둑을 만들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단단히 굳어 삽이 잘 꽂히지 않아 힘이 들긴 해도 인내심을 발휘해 두둑 짓기를 마무리했다. 광쇠 친구가 쓰고 남겨둔 퇴비를 뿌려 앞으로 심을 예정인 양파 모종에 도움이 되도록 해 놓았다.
광쇠농장서 고구마를 캐던 친구는 지기 자제 결혼식 하객으로 가야 해 집으로 먼저 내려갔다. 나는 시금치밭에 돋아난 잡초의 김을 매고 지난번 잘라 말려둔 들깨를 털었더니 깨알과 함께 이름 모를 벌레들도 바글바글했다. 알곡을 털어 모은 들깨를 집으로 그냥 가져갈 수 없는 형편이라 검불을 걷어내고 햇볕에 바래었다. 볕을 쪼이고 바람을 쐬면서 벌레들이 사라지도록 해두었다.
이번 가을 아욱과 케일을 심어둔 이랑에 김을 매고 나니 거기도 가뭄을 타 물을 주어야 할 형편이라 들통으로 물을 퍼 날라 뿌렸다. 작물의 생육에는 병충해를 막아주고 영양분의 결핍이 없도록 함이 중요하지만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함도 신경이 쓰였다. 특히 올해는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비가 무척 귀한 한 해였다. 당분간 비가 온다는 소식은 기대하지 않아야 할 듯하다. 2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