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로 854-12 (구제리 116)
신앙생활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하며 인근의 교우촌올 관할했던 본당
완주군 운주연 구제리에 위치한 고산 성당 수청 공소는 1888년에 설립되었다.
고산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시기는 1791년 이후부터이다.
타 지역에서 전라도로 이주하는 관문 구실을 한 고산은 진산(당시 전라도)과 충청도 신자들이 목숨을 보존하고
신앙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숨어들어 왔다.
그러다가 1801년 신유박해 후부터는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1866년 병인박해 이후로는 전국에서 이주해 온 교우들로 절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이곳은 박해를 경험한 교우들과 순교자들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많이 살았다.
처음 박해률 피해 신자들이 정착한 곳은 차돌박이(현 백석)였다. 우도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신축하려 하였으나
마땅치 않아 미루어오다가,1893년 부임한 비에모(P.Villemot,우일모 禹一模) 신부가 1894년 본당을 되재로 옮기고
성당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박해 때는 산골짜기여서 좋았으나 성당의 교세가 약해지고 교통이 불편하여 미사 참례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전교 목적과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교통이 좋은 수청 공소를 1942년 6월 10일에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되재 성당은
수청 성당의 공소가 되었다.
6.25 한국전쟁으로 수청리 성당 관할 교우촌이 많은 피해를 입고 서정수 신부가 군종 사제로 떠나 1951년에 상례성당 공소로 편입되었다가
1958년에 설립된 고산 성당 관할로 바뀌었다.
1982년에는 콜타르 함석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꿨다.
1986년에 서울로 이사 간 박광희 형제가 성모상을 기증하였고 1989년에 신자들이 기금을 모아 종탑을 봉헌하였다.
수청 공소는 교통의 중심지로 인근의 교우촌올 관할하며 신앙생활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7년 11월 9일 드망즈(플로리아노. 안세화 安世華, 1875-1938) 주교는 이곳을 방문하여 주보성인을 성녀 소화 데레사로
정하고 경당 축성식을 하였으며, 이날 100여 명의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 경당은 3년 전부터 되재 성당 주변에서 목재률 사서 교우들이 부역으로 운반하고,주위 공소 신자들이 저축한 금액과
되재 본당 송 회장의 기부금 3백원,1922년 되재 성당에 부임하신 파르트네 신부가 나머지룰 담당하여 건립한 양쪽으로
날개가 있는 17칸 십자 모양의 성당이었으며,지붕은 함석에 콜타르률 입힌 것이었다.
그러다 몇 년에 한 번씩 콜타르를 칠하는 것이 번거로워 1982년 공소 건물올 보수하면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를 했는데 아쉬움이 많단다.
수청 성당은 1942년 여름 김영태 도밍고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초대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런데 어르신들 앞에서 불붙이기도 어려운 긴 담뱃대를 물고 계셨단다.
당시에 긴 담뱃대는 양반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신부님께서 긴 담뱃대를 물고 이야기를 하시면 어르신들은 다 무릎을 꿇고 신부님을 받들 정도로 순명 그 자체였다.
신자들이 바쁜 일이 있어 미사를 하지 못하거나 동네에서 말다툼을 하여 신부님의 마음을 언짢게 해드린 일이 있으면,
신자들이 사제관 앞뜰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빌어 신부님의 마음을 달래드렸다.
그러면 신부님께서 나오셔서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신앙 정신이 순명으로 이어졌다.
부활과 성탄 대축일 때나 소화 데레사 주보축일 때는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엿을 만들어 한 뭉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성탄 때는 신파극을 하기도 하고 연극도 하였다고 전해온다..
1947년 6월 16일 김영태 도밍고 신부가 수류 성당으로 전임되고 서정수 알렉시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서정수 신부는 1950년 6.25전쟁 때 성당에서 인민군한테 잡혀 끌려갔는데 능암산 모퉁이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낮에는 산에 숨었다가 밤이면 마을로 내려와 양식을 다 털어가는 인민군들의 행패가 날로 더해가자 서 신부는
인민군으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한청년단’올 결성하고, 원구제,석장,수청 공소까지 다 들리도록
산 위에 손으로 돌리는 사이렌을 매달아 놓고 위급한 상황이 되면 울렸다.
그러면 마올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모였다. 수청 공소는 1951년 서정수 신부가 종군사제로 떠나게 되어
본당이 폐쇄되면서 삼례 성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가 1958년 고산 성당이 신축되면서 고산 성당 관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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