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운용 장기펀드 분석해보니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펀드
수익률 1040%로 1위 차지
미국의 유명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의 마젤란펀드는 13년 동안 2700%가 넘는 수익률을 거뒀지만 투자자의 절반은 손실을 기록했다.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따라서 파는 단기 매매에 치중한 결과로, 당시 투자자들의 평균 투자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다.
잘 분산된 공모펀드에 장기 투자할 경우 우수한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미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운용된지 20년 이상된 장기펀드에 꾸준히 자금을 넣었을 경우 상당한 투자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지수펀드(ETF) 부상으로 국내 공모펀드가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장기 공모펀드는 설정 이후 최대 1000% 이상 누적수익률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하고 있다.
25일 한국펀드평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장기펀드의 최근 20년 평균 누적수익률은 269%를 기록했다. 20년 전 1억원을 넣었다면 현 시점에서 4억원 가까이 자금이 불어났다는 얘기다. 국내 공모펀드 열풍을 주도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디스커버리펀드와 인디펜던스펀드를 비롯해 신영자산운용 밸류고배당펀드·마라톤펀드와 베어링자산운용 고배당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대다수가 국내 주식형 펀드로 긴 운용경력을 토대로 장기 투자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수익률 선두를 지키고 있는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펀드의 2001년 설정 후 누적수익률은 1040%(24일 기준)에 이른다. 신영 마라톤펀드 역시 2003년 설정 이후 누적수익률이 603%를 기록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디스커버리펀드의 경우 저평가된 국내 우량주 가운데 독점적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고 꾸준한 이익 성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에 집중해 운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펀드는 각 운용사의 운용철학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펀드로도 꼽힌다. 미래에셋 디스커버리펀드와 인디펜던스펀드는 2000년대 국내 공모펀드 열풍을 주도한 대표적인 펀드다. 가령 인디펜던스펀드는 2001년 출시 이후 자금이 밀려들며 이듬해 설정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운용 기간이 긴 만큼 펀드 매니저 역시 디스커버리펀드는 3차례, 인디팬던스펀드는 4차례 바뀌기도 했다.
신영자산운용 역시 1996년 설립 이후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일관된 투자철학을 고수하며 밸류고배당, 마라톤 펀드 등을 운용해 가치투자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규모가 큰 장기운용 펀드들의 상당수가 안정적인 고배당주에 주로 투자하는 배당주 펀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 설정 이후 732%, 베어링고배당펀드 603%로 높은 성적을 내고 있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2003년 5월 설정돼 현재 순자산 규모는 1조1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베어링고배당펀드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코스피 지수 보다 수익률이 낮았던 것은 단 7차례에 그쳤다. 최근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 강화 정책 등에 힘입어 고배당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상현 베어링자산운용 주식운용총괄본부장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주도주를 쫓는 것이 아니라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꾸준한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특히 배당주는 주가 예측가능성이 높고 투자 원칙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는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말했다.
20년 이상 장기운용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이들 장기 운용 펀드 수익률도 -40%에 이르는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펀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시장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장기 투자한 이들은 결국 수익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공모펀드 투자금이 꾸준히 증시로 유입되면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전문가들은 장기 운용펀드라고 할지라도 펀드매니저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지는 않았는지, 꾸준한 투자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섭 한국펀드평가 본부장은 “꾸준한 투자철학을 갖고 오랜 기간 운용함으로써 상징적인 펀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라며 “다만, 일관성 가진 투자 전략을 토대로 운용하고 있는 펀드인지 여부는 확인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운용 펀드의 설정액 규모가 최근 크게 늘지 않고 정체돼 있다는 것은 한계로 꼽힌다. 수수료가 보다 저렴하고 투자 종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ETF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간접투자수단으로 ETF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특히 주식형 공모 펀드의 위축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유독 뚜렷한 모습”이라며 “액티브펀드로 운용되는 상당수 공모 펀드들이 충분한 초과수익률을 내지 못했고 거래 편의성이 떨어져 투자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