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때는 기억 안나지만 30대말인듯 하다.
어느 목사님 설교중에 "너무 먼 미래를
설계하며 버거워 말고 다가오는 하루
하루를 잘 살아내자."는 내용이었다.
그때의 내 하루는 참 버거운 나날이었다.
주어지는 생활비는 극심히 적고,
아이는 요즘말로 독박육아중이었지만
다행이 아이 키우는 일은 내겐 기쁨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목사 아내의 길을 걷기로 한 이후 예상한
일이었기에 상식밖의 생활비가 (월 사례가 28,000원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아이 우유값등 육아비가 그대로 빚이 되곤했다) 참을만 했는데 , 의료사고로 시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 홀로 살게되신 시아버님이 마음에 씌여 내 권유로 우리집으로 모신 이후
시부의 하루걸러 이어지는 주사는
나를 지옥에서 살게 했고,
시부의 폭력적인 주사가 이해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교회에 올라가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 할 수 없어 울며 기도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시간이 15년여 흐르자
내가 유치원 원장 연수 일환으로 독일로 연수나간 다음날 시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이후 1년7개월
누워 대소변을 받아 내다가 소천하셨다.
지금처럼 양노원도 많지 않았고
시누이가 4명이나 되어도 모두 자기
살기에 바빠 시부 돌보는 일도 내게 독박으로 지워졌지만 것도 내일이라 생각하고 감당할 수 밖에 없어 언젠가 들었던 "하루만 잘 살자."는 생각으로 감당하다 보니 그 버거웠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힘들었던 시간중에 사라회라는 사모모임이 생겨 서로 기도 제목도 나누고 위하여 기도를 나누기도 하며 내겐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내게 멘토가 되어주신 강선우사모님
(김진홍목사님의 사모)을 만난것이 큰 운명같은 일 있었고 그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즐겁게만 교회 다니던 내가 시부의 연단 때문에 더 기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니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결실이다.
교회일과 유치원 일, 그리고 내살림으로
하루가 버겁게 바쁜 나날들이 지나던
어느날 원장 연수에 갔더니 강사한분이
우리나라 출산률이 격감해 앞으로
원아모집이 심각해질거라고 , 때문에
그에 대한 대처를 생각해둬야 할거라는
강의를 들었다. 하루 살기에 급급했던
내겐 어떤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그려지는 그림이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입지조건이 안좋던
우리원은(면소재가 아닌 리 단위 위치) 원아모집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지만 남들이 하는 영리적인 비정상적이 파행 운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바른 유아교육을 하려
애 쓴걸로 충분하지 싶어 버겁게 운영하느라 무리한 애를 쓰느니 폐원하는걸로 밤잠 못자며 고심 끝에 마음을 정하고 나니
이번엔 남편의 폐원반대가 심했다.
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해도 계속
폐원을 반대해서 차선책으로 임시휴원
을 하게 된것이 올해까지 벌써 8년여
시간이 흘렀다. 이젠 더 미룰것 없이
폐원절차를 밟아야될 시간이 다가온듯 하다.
폐원 반대하던 남편도 주변에
아이들이 없는걸 이젠 확실히 알테고, 젊은 시절의 체력이나 열정이 내게서
고갈된것도 한몫을 한다.
그러던중 아들이 결혼하고 2년뒤 손주를 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주 봐주는 일은 하지 말라고들 말하곤 했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중에 하나가
아이 돌보는건데 싶어서 손주육아를
기꺼이 자원했고 아들 키울때와는 또 다른 육아의 기쁨을 누리다 보니 지금은 손주가 7살이라 아마 내년이면 손주도 초등학교에 가게 되고 손주육아도 끝나지 싶다.
농촌교회도 지난해 12월에
42년간의 목회를 은퇴하게 됐다.
교우들도 무던하셨고 남편과 나도
견디는데 특화?된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상황들을 견뎌낸듯하다.
문제는 은퇴는 하는데 은퇴할 경제적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점이었다.
농촌교회 실정이 어렵다보니 마음은
준비하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또다시 걱정의 폭풍속으로 휩싸이지
않으려니 걱정을 기도로 맡기며
또 하루씩을 살아 낼 수 밖에 없었던
어느날 아들아이가 "은퇴후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느냐?"고 물어왔다.
상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물어오는 아들아이에게 답할 말이 없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것도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이 목울대까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 잠이 안오던
불면의 날들엔 기도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믿지 않는 집에서 시집 온
며늘애에게 그런 가난한 우리모습이 부끄럽지 않기를 하소연하듯 주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할줄 아는 지인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옛학부형중 한분이
주택관리사로 일하는데 남편과 이야기중에 은퇴후 주거 할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는데,
그분이 우리 사는 지역 면소재지에
경기주택공사에서 지은 임대주택이
우리 형편에 잘 맞는곳 같다는 정보를
컴퓨터 검색해 알아봐 주었다는데도
남편은 자세히 더 알아보지도 않고 걱정만 하던 중에 후배 목사님께서 지나다가 들러 그런저런 얘기 나누다
그 정보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고
그자리에서 후배 목사님께서
컴을 열고 확인후 신청서 작성까지
해 주고 가셨다는데 그날이 신청 마지막 날이더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조마조마 하다.
밤잠 못자며 기도하고 걱정하던 나는
그 주택 조건을 들으니 딱 우리 여건에
맞는 집인듯 해서 그집을 주십사
기도 방향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집은 25평형에 방3개에 화장실
2개인데 보증금 800만원에
월 30만원 정도의 조건이란다.
6년여전에 지어진 빌라2층.
65세 되던해 부터 노인연금으로
나오던 연금 전부를 주택부금으로
부어 두었는데 그돈이 850여만원
정도 모여 있었기에 빚을 지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거다.
지난 2월 29일 5시에 입주자
당첨 여부가 컴퓨터에 발표된다고 공지되어 있었다.
정말 마음 조리는 기도 시간들을
보낸후 발표당일 컴퓨터를 열어보니
1순위 당첨자 이름으로 남편이름이
있고 2순위, 3순위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얼마나 가슴 쓸어내리던 순간이던지...
믿어지지 않아 보고 또 보고 또다시
공지사항을 열어보곤 했다.
3월1일자로 새로 부임해 오신
목사님께서 설교하기 시작하셨고
서로 이사 시간을 넉넉히 갖기로
양해를 하고 기존사택이 너무 낡고
형편없어 새로오신 목사님의 동기 친구목사님들 중에 목수로 자비량 목회 하시는 목사님들 4분이 서울 어느 교회에서 사택 보수 공사비를 물질지원 해 주기로 결정해 주어서 그 네분 목사님들이 오셔서 사택 보수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이사 갈 시간이 넉넉히 주어졌고
이사갈 새집은 4월1일부터 이사가 가능하다기에 그뒤로 조금씩 내차로 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달여 시간 동안에 매주말마다
내차로 옮긴 짐들이 정리됐고
6월말경에 이사를 끝마쳤다.
새집으로 이사간다니까 이구동성
낡은 물건들 과감하게 버리라는
얘기들을 여러사람들이 해 주시기에 과감하게 많이 버리고 최소한 새로 구비할것들을 찾아 정리하다보니 새집이라 조금만 신경 써도 깔끔하고 예쁘게 쌧팅이 되어갔다.
남편은 새집에서 자고 일어날때마다
"주님 감사합니다~! "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며 감사해 하고
나도 집에 들어갈때마다 놀랍고
신기해 하며 감사해 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 청년들이 집들이로
놀러왔다가도 가면서도 "어쩐지?
우리 내외가 남의 집에 와 있는것 같다"
면서 감사해 한다.
남편은 42년 목회 선물로 주께서
주신거라며 신앙고백을 하곤 한다.
그간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생길때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피할길을 열어주시고 은혜와 위로를 내 마음
가득 채워주셔서 힘든 가운데서도
버티며 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하다~!
첫댓글
진솔하게 써내려간 순희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하고, 간절한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게 너무 감사하네.
새로운 곳에서 시작된 순희와 목사님의 삶이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은혜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양숙희 살다보니 벌써 오늘이네 그냥 오늘을 살았을뿐인데...
아멘 ~~~!
순희 글 잘 쓰네. 너무너무 축하하고 새집에서 신혼부부처럼 오손도손 호호깔깔 내내 행복하시라.
안그래도 짐 옮기면서 집안 정리하는 날 남편이 보면서
신혼살림 준비하는 신부 보는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새집에선 서로 화 낼 일 더는 없었으면 하고 있지~!
참 많은 일들이 지나갔네~!
아무렴 화낼 기력이라도 남았겠냐?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저 행복하기만 하자스리.
@Eun Ju 이사만 주말마다 세달여에 걸쳐 했단다. 행복하기만 하라는 말에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