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클림트의 “KISS” 실물크기 모작을 봤을 때의 충격이 원본그림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 하는 생각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배달부 키키를 보았다면 그 붉은 지붕을 따개비 마냥 다닥다닥 모아놓은 곳이 지구 상에 정말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이번 여행을 실행에 옮겼다. 모든 여행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그 주제의 설정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주제는 클림트와 두브로브닉이다.^^ 또한 프로젝트 명은 Eastern Europe 6 Packs로 정했다.
사전준비
이번 여행의 경로는 프라하 IN, 프랑크푸르트 OUT이다. 내부 일정은 프라하-체스키꼬룸로프-할슈타트-빈-브라티슬라바-부다페스트-자그렙-류블랴나-플리트비체-스플릿-두브로브닉, 여기서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INOUT의 경로는 국내항공사 직항을 이용했고 두브로브닉에서 프랑크푸르트구간은 크로아티아 항공을 이용 자그렙을 경유하는 기편을 예약했다. 그게 가장 싼 것이었으므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들은 유레일패쓰니 동유럽 몇 개국 패쓰니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몰려있는 업무로 미쳐 준비하지 못했다. 심지어 2주간 머물 숙소 조차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제일 처음 도착하는 프라하의 한인 민박 이틀치 만을 아는 동생을 통해서 예약했을 뿐이다.
여행은 모자라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집을 두고 떠나는 일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정형화 된 내 일상을 떨쳐내고 가는 일정이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야 내가 얼마나 행복한 곳에 살고 있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 7월 4일 환전
400만원 환전하니 2,400유로를 준다. 약 1,650원의 적용환율. 으~~ 올라도 너무 올랐다. 정말 이리도 바보같이 환율개입을 해서 원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말인가? 기껏 모아 논 외환 보유고 잘 하면 헛간 털고 날리겠네.-_-;
* 7월 5일(토) 흐리다 간간히 비 뿌리다.
아침에 신문에 안철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수익은 기업활동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맞다. 자본주의가 극명하게 발달한 일본과 미국의 교육에 물든 한국사회에 이리도 명쾌하게 현상을 정의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큰 수확이다. 기분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공항을 향해서 집을 나섰다.
공항 기내식
체코 리퍼블릭의 루지네 공항에 18시 25분 도착했다.
썸머타임을 도입하기 때문에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이 아닌 7시간 빠르다.
여기는 그 시간이면 우리나라 오후 3시정도의 밝기를 가진다.
보통 오후 10시 정도 되어야 완전히 깜깜해 지는 것 같다.
예약해 놓은 민박에 전화를 하면 에스코트 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공항을 빠져나와 전화를 걸려했다. 헌데 문제는 콜렉트 콜을 거는 것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공중전화의 모양이 다양한데 다 잘 걸리지 않는다.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는 전화기도 있었지만 통화가 되질 않는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거는 방법을 물었더니 아예 지 전화기를 내어준다. 우왕 굿~~ ^^
여기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초 가을처럼 바람이 서늘하고 하늘은 맑다.
긴 팔 옷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7월 인데 반신반의 하면서 준비는 했는데 아주 유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민박 사장님을 기다리며 한 컷!
헌 데 공항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에게 부탁했더니 내 발을 잘라 먹었다.
-_-;
마침내 키 작은 보히미안이 원조 보헤미아 지방으로 들어왔다. 체코는 그 낭만의 단어를 탄생시킨 곳이 아니던가, 여기가 전생에 내 고향이지 않았을까 하는 잠시 착각에 빠져 들었다. ㅋㅋㅋ
이 나라의 통화는 “꼬른”이다. 1유로에 23.5꼬른 정도의 교환비율. 그럼 1 꼬른은 우리 돈 약 70원에 해당한다.
일단 민박 집에 짐을 풀고 시내구경을 가기로 했다. 민박의 위치가 공항에 가까이 있기에 시내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 데이비츠카로 가서 까를교가 있는 시내 스타로메스츠카 역에 내려야한다.
여기서는 근처 따박이라 부르는 담배가게나 트라피카라 부르는 교통부스에서 1회용 교통권을 26꼬른에 사면 75분 내에서는 버스,지하철,트램을 무제한 환승이 가능하다.하지만 1분이라도 경과하여 혹 검표원에게 발각되면 700꼬른의 벌금을 물어야 하니 조심해야 한다.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한번도 검표원이 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기만하다 발각되면 돈 보다 국가의 수치다. ㅋ
역에서 내려 잠시 걸으면 곧 스타로메스츠카 광장이 나온다.
여기에는 얀 후스의 동상이 있다. 보헤미아 소읍의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한 얀 후스는 당대 최고의 종교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그는 독일의 마틴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 개혁운동을 시작했다.면죄부 판매나 카톨릭 교회의 부정한 관례나 사치스러운 형식, 그리고 부유함에 대한 그의 반발은 귀족이나 농민 할 것 없이 수많은 체코인의 공감을 얻었다.프라하의 베들레헴 교회에서 행한 개혁주의적인 설교는 더욱 많은 추종자들을 생겨나게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로마 교황은 그를 파문했고, 1412년에 바츨라프 4세는 그에게 프라하를 떠나도록 요청했다. 1414년 10월 후스는 콘스탄스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투옥되었고, 다음해 이단으로 판결을 받아 화형에 처해졌다. 현재까지 체코의 국민적 순교자로 존경받고 있으며 순교일인 7월 6일은 공휴일로 까지 지정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천문시계에는 정각을 알리는 시계소리를 듣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광장에서 표지판을 따라가면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까를교가 나온다.
다리로 걸어가는 길가의 모습들은 진정한 보헤미안의 풍물이 즐비하다. 마리오네뜨 인형이 있고, 보석가게가 있고, 스와로브스키 유리공예가 있고,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셰익스피어 전문 서점이 있다.
거리는 전세계의 인종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주로 유럽과 북미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동양인들은 한 10% 정도 되나? 그나마 일본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만이나 우리나라 사람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해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개방스런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
여기도 로마같이 조상들 덕분에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별 달리 사람들이 서비스를 잘 해서 돈을 번다던가 시간을 칼 같이 지켜 뭘 하지 않는다.
까를교는 어두워 지고 프라하 성의 조명이 켜지면서 낭만적인 느낌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다리에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 장신구를 파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블타바 강에는 프라하 성 야경이 가장 잘 잡히는 뷰 포인트가 3개정도 있다.
천년이 넘었을 것 같은 도보는 로마시대에 깔렸을 것 같은 벽돌로 도로를 구성한다.
민박집에 돌아와 들었는데 체스키꼬룸로프에서 짤쯔부르크로 넘어가는 기차편도 없을 뿐더러 버스도 체스케부데요비체로 가서 다시 린쯔로 넘어가 거기서 기차를 환승해야 한다고 한다. 첫 날부터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일정을 변경해야 하겠다. 내일 하루 종일 프라하 관광을 하고 월요일 아침 일찍 꼬룸로프 관광을 하고 화요일 빈을 향해서 떠나기로 했다.
빈에서는 짤쯔부르크가 가기가 쉽다니까
* 7월 6일(일) 화창하다가 저녁에 소나기가 내리다.
아침 일찍 국립박물관 앞으로 향했다. 여기서 쭉 앞으로 펼쳐있는 거리가 바츨라프 광장이다. 박물관 바로 앞에 바츨라프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성 바츨라프는 10세기 경의 인물로 국난이 닥쳐왔을 때의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구에서 깊은 잠에 빠진 기사들을 깨워 그들을 이끌고 적군을 격퇴시켰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는 프라하의 봄 시발지로 더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라하 시민의 대표적인 만남의 광장이다.
트램을 타고 말라스트라나의 Ujezd로 가서 등산열차를 타고 뻬뜨리진 공원의 Lozhledna(어떻게 발음하는지 잘 모른다 ^^) 꼭대기에 올랐다. 모든 유럽의 여행기에서 충고 하듯이 힘들더라도 도시의 높은 곳에 올라가야 정말 좋은 앵글을 잡을 수 있다 해서다. 빠리의 에펠 탑을 모방했다 하지만 그만한 규모도 아니고 높이도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무려 70꼬른의 입장료를 감수하고 올라간 경관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걸어서 스트라호프스키 수도원과 로레타 수도원을 거쳐서 대통령궁과 비타성당,바실리카 성당과 구황궁과 황금소로가 함께 있는 프라하성에 도착했다.
무려 30분을 줄을 서서 들어간 비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체코의 대중예술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빠리 노틀담 성당의 그것과 비교되는 화려함과 신성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게 한다.
또한 성당 외부의 빗물받이는 기묘한 형상의 동물과 사람들이 입으로 빗물을 토하듯 처리되어 있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시 노틀담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하나하나가 죄다 예술품이다.
구황궁과 바실리카 성당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황금소로(원래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가 있는 곳이었으나 연금술사들의 거주지로 조성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구간을 들어가려 했으나 입장료가 250꼬른이나 된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라 왠만하면 들어가 보려했으나 우리가 거꾸로 코스를 도는 바람에 3~4군데 패키지 가격으로 여기만 들어가는 게 넘 아까워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ㅋ
포도밭을 만드는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해서 블타바 강가의 어느 식당에 들러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메뉴를 보니 Fork Rib이 있어서 시켰는데 웨이트리스가 “Fork Knee”를 가지고 온다.내 발음이 그리 나쁜가? -_-; 어쨌든 먹음직스럽게 생긴 돼지 앞발을 맛있게 먹었다.근데 2인이 먹을 수 있는 양(2인분)을 시켰는데 이 아줌마, 두덩이를 갖다 준다. 먹다 먹다 양이 넘 많아서 남겼지만 맛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밝은 날의 까를교는 어떨까 해서 다시 그리로 가기로 했다. 여전히 사람은 많고 숱한 거리의 화가,연주가,그리고 전세계 관광객들로 다리는 가득 차 있었다. 12세기에 만들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고딕 양식의 다리이고 다리를 장식한 모든 조각들은 전부 모조품으로써 진품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어디서나 기쁜 낯빛의 사람들로 메워져있다.
남단의 교각 탑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기는 어디를 올라가든 입장료가 있다. 30꼬른 정도였나? 올라가니 동양인 한 명이 있어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임 프롬 차이나,웨어 아유 프롬? 재패니즈? 짜샤 내가 어디를 봐서 쪽바리로 보이냐?
시내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밤의 블타바와는 또 다른 활기를 가진 도시였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더워 돌아다니기 힘들었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서너구역 떨어진 대형 슈퍼 테스코(TESCO)에서 멜론을 비롯한 장을 보고 내일을 위하여 민박으로 일찍 귀환하였다.
여기 프라하의 교민은 약 1,000여 명 된다고 몇 년 전에는 연속극 프라하의 연인이 히트할 때 한인들이 몰려 들었지만 지금은 경기가 그만 못하고 한국의 경제사정에 민감해서 요즈음은 민박집이 잘 안된다고 한다.
체코 말 한가지 배우기: Please -> 쁠라삼
* 7월 7일(월) 아침에 비가 듯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다.
오늘은 체스키꼬룸로프로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민박집 여대생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첫 차를 타기위해 아침 일찍 프로렌츠 버스터미날에 도착했다.
헌 데 부쓰에 가니 표가 없단다. 12:45분 표 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 밖에 시간이 없는데… 거기서 에곤쉴레를 들러야 하는데… 역시 나와는 인연이 없는건가?... 온갖 별스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밉살스런 매표원 아가씨에게 우리가 서서 가도 좋으니 입석표는 없는가 했는데 일언지하에 “노!”
일단 버스 가는 곳에서 개기기로 했다. 헌데 출발시간이 되어 자리가 남으니 운전수가 직접 표를 끊고 탑승이 가능했다! 1인당 180 꼬른, 옆에 어제 미리 예매한 한인 부녀는 192 꼬른 이라는 데 왠지 횡재한 느낌이다.^^
버스에 별도 짐 하나 더 싣는데 10 꼬른 추가로 더 내야 한다.
가는 길은 우리나라 어느 호젓한 지방 소도시 내려가는 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비는 억수로 내리고 모든 역을 거치기 때문에 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체스키꼬룸로프의 첫 인상은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은 롯데월드라는 느낌을 받았다. 블타바 강이 이 작은 도시를 포근히 감싸고 돌고 거리 어디에서도 내가 외국잡지 책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 그림같이 예쁜 호텔들이 있고 카약을 할 수 있는 강이 있고 아기자기한 상점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갤러리들이 있다.
아침에 차표에 데인지라 우선 돌아가는 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다.
아~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 여기서 린쯔,짤쯔부르크,비엔나 가는 셔틀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러면 구지 프라하에 1박 더하지 않아도 되었는데…띠바
에곤 쉴레 아트센터에 찾아갔다. 정말 기대를 한 곳이었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그 곳 2층 외진 곳을 차지한 쉴레관은 전부 다 모조품이었다. 이건 뭐~ 대 실망이다.인터넷의 관전 평이 환상이란 그 아줌마는 눈을 장식으로 달고 있는겨??? -_-;;;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 댕기다 한적한 곳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수퍼에 들러 바께뜨 빵을 사서 점심으로 대신했다. 일반 수퍼 치고는 맛이 꽤나 있다. 이곳의 빵들은 대개 맛이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어느 곳에서 빵을 사 먹어도 대략은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성의 둥근 탑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두브로브닉도 이렇게 좋을까?
여기는 어디를 찍어도 잡지의 외국 배경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구도를 가진 곳이 참 많다.
프라하로 돌아올 때의 차표가격은 190 꼬른,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곳을 오고 가는데 3가지의 요금이 있다니… 아마 이런게 체코의 국민성이 아닐까? 너무 칼 같지 않고 모든 침략을 다 받아들였다는 그 수더분 함이 이런데 녹아 있는 건 아닐까? ㅋ 그러한 삶이 종족을 보전시키고 장구한 세월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대를 이어울 수 있는 원천이 아닐까?
대충대충 설렁설렁이 우리나라 국민성과 너무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그래서 더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지는가 보다.ㅋ
다시 장장 4시간여를 달려 20시 40분쯤 프라하로 들어와 내일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날 기차표를 예매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중앙역이 아니라 홀레쇼비쩨 역에서 기차가 떠난다기에 거기로 가서 예매를 했다. 근데 우잉? 기차표가 7유로?? 1등석 치고는 너무 싸다 했는데 좌석권이란다. 이와는 별도로 jizdenky라는 입장권을 또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넘 피곤해 내일 일찍 역에 나와서 사야겠다.
어쨌든 내일 08:23분 1등석 열차를 타고 12:28분쯤 WIEN SüDBAHNHOF에 도착예정이라고 기차표에 적혀있네 ㅋㅋㅋ
민박에 돌아와 빈의 1박을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피곤한 하루를 마감했다.
|
첫댓글 여행기 넘 잘봤어요. 님의 루트중에 몇몇 도시는 제가 가본곳입니다만 그래도 그 루트로 저도 여행 한번 하고 싶네요. 제 반쪽이랑... 여행사진 보니 더욱더 부럽구요.
저 16일날 프라하 인 빈 아웃입니다.. 넘 잘봤습니다..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될거 같아요..
즐감 요^^
와우~~~ 멋지십니다. 전 8월 12일 독일하고 체코간답니다. ㅋㅋ 20일간의 여행이 될꺼예요
2주간 여행에 3일 밖에 못 올렸는데 님들의 댓글에 힘이 납니다. 주말에 부지런히 올려 보겠습니다^^
체스키크롬프에 빵집있는데 정말루 맛있는데...님 사진 보니깐 또 가고싶네여~
우와 ~. . . 저두 이번 유럽가서두 프라하 재밌게봤는대 ㅎㅎ 저 시계 보니까 다시 생각나구 좋네요 ^+^;;
섬세한 여행기 잘봤습니다 ^^
두브로브닉까지 올릴겁니다. 보고가세요^^
와우~넘넘 좋아요^ ^
높은곳에서 찍은 사진 젤~부럽구요
세심한 경험과 설명! 감동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