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 회원은 열심히 공부해서
창가학회 이념이 불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여기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 내용이 일반ㅇ 불자들에게
이해가 갈 만한 설득력이 부족해보이는 군요)
일반 불자들은 불교의 교리를 바로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수행를 열심히 하면
나와 우리의 불교가 바로 서는 것이지요.
법구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잘 이어진 지붕에 비가 새지 않는다 했지요.
대화와 토론도 아름다운 부처님 말씀으로 하셔야 부처님 제자입니다.
미린다팡하에서 정복자인 미린다(메난드로스)왕이
말을 붙여오자 나가세나 스님이 묻지요.
왕은 왕들의 대화를 원하는가,현인의 대화를 원하는가?
왕이 그 차이를 묻자 스님이 말하지요.
왕들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자기 주장대로 우기기를 즐기고
현인(현명한 이)들은 자기 주장이 틀리고
상대방 주장이 옳으면 바로 수긍한다고...
우리도 그랬으면 합니다.
인연님들의 공부가 성취되시기를...
(여기까지는 제 주장)
일본 불교의 자생적인 종파를 만든 니치렌(日連, 1222~1282)의 교리를 따르는 순수한 종교운동으로 출발한 창가학회는 참된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오랫동안 반전활동을 펼쳐왔다. 초대 회장 마키구치는 반전을 주장하다 옥중에서 사망했고, 제2대지도자 도다는 1957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원자폭탄 및 수소폭탄 금지 선언’을 발표하였다. 평화교육은 창가학회가 펼치는 반전운동의 핵심인데, 이들은 전후 세대들에게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반전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도다에 이어 창가학회의 지도자가 된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1928~)는 현재까지 창가학회를 이끌어 오며 도다가 세운 확고한 기반을 이어받아 창가학회를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사회개혁운동 단체로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 내에서 창가학회의 회원은 1천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대체로 도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창가학회가 오늘날과 같은 거대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힘과 호소력뿐만 아니라 철저한 조직화와 회원들의 열정적인 포교, 2차대전이라는 재앙으로 신뢰를 잃은 신도(神道), 그리고 불교국가의 국민들에게 현대적인 불교를 제공했다는 것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창가학회는 깊고 폭넓은 사회개혁운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일본의 신흥종교 가운데 전례가 없다. 이들은 공명당(公明黨)을 발판으로 하여 정치권에까지 진출하였고, 창가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를 건립하는 등 자체적인 교육제도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활동에 있어서 찰가학회는 UN을 지원하고, 국제 지부라고 할 수 있는 ‘국제창가학회((Soka Gakkai International)'는 비정부기구(NGO) 대표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SGI는 현재 156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전세계에서 평화, 문화, 교육운동을 펼치며 타문화간 인력과 사상의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까지는 실천불교사상에 대한 연구서 중 동국대 박경준 교수의 글 중 일부입니다)
이들은 나무묘법연화경을 일본어로 남묘호렝개교(남묘호렌게쿄)라 발음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묘호렝개교의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현재는 SGI라는 말을 단체어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동방요배라 하여 일본쪽 또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고
늘 남묘호랭개교라는 주문같은 말을 계속 암송하였으며,
법화,천태계열의 종단들이 소의로 하는 나무묘법연화경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 남묘호랭개교이며,전국시대 일연이라는 고승이
중생들의 수준이 낮아서 여러 경전을 다 볼 수가 없으니
나무묘법연화경만 보아도 된다는 신념에서,또 그것도 양이 많고
어여운 중생에게는 제목만 읽거나 외워도 공덕이 된다는 주장으로
남묘호랭개교를 외게 했다.
전국시대의 무사들이 칼을 들면서 좋은 명분으로 삼은 말이
니찌렌스님의 '예토를 싫어하고 정토를 구한다(厭離穢土 欣求淨土)'
는 가르침인데 창가학회는 후대에 성립된 것이지만 그 뿌리는
니찌렌스님에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연(니찌렌)스님의 사상이 맞고 훌륭하다 해도
일본 발음이 아닌 우리말로
나무묘법연화경이라 하거나
인도말로
나모삿다르마푼다리카수트라 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싶다.
그리고 이 종파는 스님들 중심이 아니라 재가자 중심의 신행체계가
이채롭다.
한국에서는 불교의 포용성과 기독교의 적극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장점과
앞에서 말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여기까지는 제 주장)
정말 제대로 공부해야겠군요.
발음도 문제지만
태양과 달의 비유는
전혀 엉뚱한 것이예요.
니찌렌의 불법이 달빛이라면
나의 법은 태양 빛이라고
나의 추종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써 놓는다고
내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석가모니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법=진리를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알았을 뿐이라 했으니
니찌렌이 보았다면 니찌렌도 부처요
이 글을 보는 님이 보았다면
그 님도 부처인 것이예요.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그래도 다른 것도 그렇지만
여기 이 곳에서 창가학회에 대해서는 어떤 일반 불자보다
잘 이해를 하는 편인데
내 이야기에서는
별 잘못이 없으니
그거 트집 잡으려 하지 말고
창가학회의 이념과 실천법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일연상인의 가르침이나
창가학회의 이념을
일반 불자들이 이해알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세요.
좋다,제일이다,훌륭하다고
크게 소리친다고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야 그렇게
되는 것이예요.
해가 동에서 서로 가기때문에 동쪽을 보고 예배한다면
서쪽으로 해가 가니 도달한 결과쪽을 보고 예배하지 않고
왜 동을 보나요?
그리고
예전에 제가 중국어,일본어,영어,독일어로 쓴 불경을 보면서 같이 했던 고민인데
중국어 하나
일본어 하나
영국어 하나
그게 그거예요.
정말 우리에게 좋은 것은
우리말 하는 게 낫고
그게 아니라면
불교의 출발지 언어 즉 인도어(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쓰는 게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래서
불교는 인도어나
우리말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백운락,지용의보살,인간혁명님 등의 글에 대한 제 견해)
*불교의 장점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쉬운 교리부터 어려운 교리 및 실천까지
누구나 다 접하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분들이
쉽게 접근하는 초기수행법을 일러준 것을
일부 종파에서 그것이 전부인 줄 착각하는 예가
지금의 불교에도 있다.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지장보살 등
불보살의 명호를 지극정성으로 염하는
염불,정근의 공덕으로 얻어지는 것은
깨달음을 향해 갈 수 있는 힘이지
그것 자체가 깨달음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제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