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과 함께 해온 어부 석대판 님 이야기♣
우포늪과 가까운 마을을 꼽으라면 소목, 주매, 노동, 모곡, 우만, 둔터를 들 수 있다. 석대판 님은 우포늪 어부 중에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이다. 1941년 창녕군 이방면 우만마을에서 태어나 우포늪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소목마을에 살고 계신다. 우만마을에서 농사일과 우포늪 고기잡는 일을 함께 해오다가, 큰 수술을 하게 된다. 있던 돈마저 수술비로 다 들어 가게되고, 빚까지 떠 안는 어려운 살림되었다고 한다. 자식들과 함께 살아야하겠기에 친구에게 그물 사는 돈을 빌려서 본격적인 우포늪 고기잡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목마을로 이사와 전업 우포늪 어부가 된 것이 35년 전 쯤 이라고 한다. 전업 우포늪 어부로 살면서 아들 둘, 딸 한 명을 키워냈다. 요즘 보기 드물게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다.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식 잘 키우고, 살기 위해 직접 만든 늪배와 그물로 우포늪 고기잡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우포늪 어부 산증인 석대판 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 세월 따라 우포늪에서 잡히는 고기들이 다를 것 같은데, 우포늪에게 처음 고기잡이를 할때는 주로 어떤 고기들 이 잡혔습니까? *1960년때 까지만 해도 우포늪은 물반 고기반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였지요. 지금처럼 쪽배를 타고 한 사람이 쳐진 그물을 건져 올리는 방식도 사용했지만, 대망이라고 해서 5~10명이 되는 사람들이 큰 그물로 고기잡이를 해서, 잡아 올린 고기가 한 트럭 되었습니다. 큰 그물 살돈과 차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지주가 되어 고기잡이도 했습니다. 그때는 이런 대형그물을 사용해서 잡는 사람들이 세 사람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쪽배를 타고 혼자서 그물을 놓고 고기잡이를 하거나, 여자들을 주로 고동을 잡았습니다.
그때 가장 비싼 고기가 뱀장어였고, 가물치, 붕어, 잉어 들이 잡혔습니다. 뱀장어는 지금 잡히지 않는 고기입니다. 자라, 남생이, 미꾸라지 들도 많이 잡혔고, 보리잽이, 징검이 이라고 불렸던 민물 새우 종류들도 많이 잡혔습니다. 크기가 작은 새우는 낚시 미끼로 팔렸습니다. 새우하면 바다새우를 먼저 떠 올리겠지만, 국물을 내었을 때 그 시원한 맛은 민물새우를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 여름철에는 고동잡는 아주머니들이 한 40여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농사지으면서 잡는 고동은 부업거리였지요.
- 고동은 주로 어디에 팔았습니까? 세월에 따라 판 곳이 다르지만, 고기들은 상인들이 직접 사려 왔습니다. 고동이 많이 잡힐때는 창녕읍 시장에서 다 내다 팔 수가 없으니까, 대구 염매시장, 칠성시장 마산 부림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사람들이 잡은 고동을 사서 다른 상인들에게 파는 도매상 역할도 몇 년 했습니다. 그때 버스를 이용해서 대구, 마산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때 당시 고동은 찜요리로 많이 해먹었습니다.
- 황소개구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황소개구리에 대해 말씀 해주세요. *198년 중반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포늪에서 처음 황소개구리 울음을 들었을때는 특이 했습니다. 울음소리가 크기도 하고 처음 듣는 소리라 다들 의아했지요. 그런데 그물에 잡혀서 올라온 황소개구리를 보고 다들 놀랬지요. 그 뒤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이 엄청 늘어 나게 되었고, 어떤 날은 그물에 담긴 것이 죄다 황소개구리 올챙이로 가득했습니다. 한 날 그물에 한가득 들어있는 올챙이를 잡아 함지박에 놓은 것을,부곡에서 오리를 키우는 사람이 보고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고 해서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리들이 사는 논에 넣어 주니까 오리들이 그렇게 잘 먹더라고 다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으니까 황소개구리를 먹은 오리들이 한 두 마리씩 죽더라고 했습니다. 다들 황소개구리 올챙이가 독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양식장에서 키우는 뱀장어도 올챙이를 먹고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주지 않았는데, 서로 모르고 한 일이였지요. 황소개구리 올챙이에 독이 있었는지, 아님 처음 먹는 것이라 적응을 못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백로나 왜가리들이 황소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황소개구리는 괜찮고 올챙이만 그렇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황소개구리도 처음 보양식으로 들어 왔으니까요. 우리 아이들도 황소개구리를 튀겨주면 잘먹었습니다. 둘째는 베스를 구워주면 그렇게 잘먹었습니다. *우포늪 황소개구리가 본격적으로 보이고 나서 어느 한 해인가 우포늪에 물이 많이 들어 어린 황소개구리 수백만리가 길에 나왔는데, 무슨 말로 표현 못하겠더라고요. 엄청 많았습니다. *황소개구리가 많이 나타나고 난 뒤에 베스,불루길이 우포늪에 나타났습니다.
- 우포늪 사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30년전에는 우포늪에 줄풀이 많았습니다. 줄풀이 많아야 고동도 많이 살고 하는데, 한 해 고동이 엄청 많이 잡혀 많은 사람들이 늪에 들어가 고동을 잡는다고 줄풀을 쓸어 올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뒤부터 줄풀이 줄어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겠지만,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해 우포늪에 둑 공사를 한다고 중장비를 들여와서 흙을 매우는 작업을 했는데, 우포늪 물이 들여 중장비 있는 곳만 빼고 물이 다 찼습니다. 아마 우포늪에 물이 없을 때만 보고 적당한 둑 쌓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했는데, 막상 작업을 하고 보니 엄청 공사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그만 둔 것 같습니다. 대대제방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포늪에 물이 들면 엄청납니다. 심지어 그 높은 대대제방 둑에 물이 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포늪이 변화는 늘 다양합니다.
- 우포늪에서 고기잡이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예? * 지금은 우포늪과 목포늪은 물 깊이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우포늪은 물깊이가 ?아 물고기가 잘 자라기 힘듭니다. 몇 십년 전에는 우포늪도 깊어서 5자(1m50cm)정도가 되었지요. 물깊이가 깊어 가래도 깊은 가래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가래에 잡힌 물고기를 손으로 잡기 힘들어 깊 쪽대라는 뜰채를 사용했습니다. 가래가 너무 길어 늪 바닥에 닺은 가래발이 부려져, 배에서 작업하다가 늪에 빠지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무엇보다 때가 되면 늪에 나가 고기잡아 먹고 살아온 것이지요.
- 붕어 엑기스 내는 일은 언제부터 했습니까? * 잡은 붕어를 그냥 팔기보다는 엑기스를 내어 파는 것이 수입이 나을 것 같아, 기구를 사서 십년 전부터 했습니다. 주로 붕어엑기스를 하는데 남자들 보양식으로 찾습니다.
우포늪 어부중에 최고 연장자인 석대판 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포늪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 중 물고기와 관련된 이야기 중심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황소개구리가 우포늪 길가로 떼로 나온 모습들은, 고려말 임진왜란때 섬진강가에 떼로 나온 뚜꺼비 이야기를 떠 올립니다. 황소개구리가 숫자가 줄어든 이유, 우포늪 물 수위 조절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 이야기 속에 나올 것입니다.(굴) |
출처: 굴렁쇠배움터 원문보기 글쓴이: 갈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