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이야기 외 1편
Daisy Kim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부터 모자를 썼지
체온을 바꿔 써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머리카락
이마를 감추면 속여야 할 것이 많아진 마음이 있었지
모자에 갇혀서 먹에 끼인 뒷골목의 구름을 읽던 그때
티브이에서는 방배동 모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
바라보면 추워서 어느새 나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지
서로 등을 돌려 닿지 않는 곳
깊은 겨울의 간격
크리스마스의 약속이 깨어질까 두려워 모자 속에서 새를 꺼내어 눈송이처럼 날려 보냈지
접어두었던 날개가 눈을 입고 어깨를 향해 쏟아질 때 겨울은 얼어붙었지
신의 발끝에 촛불을 심어둔 밤
교회 십자가 아래에서
햇살의 손을 놓아 버린 단칸방에서
이건 평등하지 않은 이야기
누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겨울이 뭉쳐지고 있었지
당겨진 눈시울을 감추고
오래 숨기 위해 모자를 눌러썼지
챙이 넓어진 나의 뒤통수를 의심하는 다른 모자들이 내 뒤에는 늘 있지
내일은 도저히 믿지 못할 것이라서
나를 믿지 못하는 나를,
모자에 깊이 감춰두었지
대관령을 지나는 배경에는 덕장이 있다
Daisy Kim
얇은 옷차림으로 떠난 하루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다
열한 살의 축축한 기분을 내다 걸면 당신의 척추 위에서 꾸덕꾸덕 말라가던 성장기
배곯은 허공이 세를 늘리면 겨울은 허리를 접었다
중력을 잃어버린 칼바람은 기다렸다는 듯 검은 목구멍 같은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비릿한 호흡으로 직립을 견디면 다시 바다의 껍질이 속살을 부풀리는 겨울,
어디에도 지붕은 없었다
이국의 이름으로 포장지에 담겨도 날씨에 따라 나는 먹태이거나 황태였다
하늘에 줄 하나를 그으며 부푼 한철에 시간을 걸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
부은 발등 위에 노릇노릇 떨어지는 별똥별
어둠의 뒤꿈치를 밟고 사라진 날들이 신발을 고쳐 신고 있다
『시와문화』 2022년 겨울호 <포커스, 젊은 시 5인선>
Daisy Kim 시인
2020년 『미네르바』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