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회장이 말하는 ‘맘카페 등쌀’
“맘카페 협찬 거절하자 악평 줄줄이”
지난 4월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앞에 폐업 안내문이 붙었다./연합뉴스
“맘카페에서 합심해서 조직적으로 악플을 달면 의사들이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의사회 임원조차 비슷한 피해를 봅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아과의사회) 회장은 소아과 병원을 상대로 한 일부 극성 엄마들의 인터넷 갑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충남 홍성의 어느 소아과 병원이 악성 민원에 못이겨 문을 닫기로 했다는 소식이 논란이 됐다. 한 맘카페 회원이 9세 자녀를 혼자 병원에 보냈다가 ‘보호자가 함께 오라’는 연락을 받고는 보건소에 ‘진료거부’ 민원을 넣었고, 앞서도 비슷한 악성민원을 여러차례 겪었던 원장은 결국 소아과 진료를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소아과의사회는 해당 보호자를 아동학대방임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고발한다고 25일 밝혔다.
임 회장은 26일 조선닷컴 전화 인터뷰에서 “악성 민원을 제기한 보호자를 상대로 강경 대응을 하기로 했다”며 “개업한 소아과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100명의 환자가 오면 98명의 환자와 보호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설명을 잘 따라준다”면서도 “그 중 한두명이 본인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여러 창구로 의사들을 괴롭힌다”고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임 회장은 “맘카페발 악성 민원에 시달린 소아과가 문을 닫은 건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며 “맘카페 괴롭힘을 겪은 소아과 의사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특히 신도시처럼 맘카페 영향력이 막강한 지역에선 소아과를 운영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관련 사례를 열거했다.
우선 소아과의사회가 고발에 나서게된 계기였던 충남 홍성 A 원장의 사례였다. 임 회장은 “A원장은 문제의 9세 환자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도 맘카페에 ‘실력도 없는 주제에’ 등의 글이 올라와 속앓이를 했다”며 “A 원장은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진료시간까지 앞당겨가며 병원을 운영해오던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고는 의욕 상실이 온 것”이라고 했다. 이어 “A원장은 당초 더 이상 맘카페에 시달리기 싫어 진료과목을 바꿀 결심을 했었지만, 지역에 소아과병원이 많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오후에 2시간 정도라도 소아과 진료를 볼까 생각 중이라더라”고 했다.
임 회장은 “몇해 전 경기 북부 한 신도시에서는 맘카페 회원들의 등쌀에 2~3년새 동네 소아과 8곳이 연쇄 폐원한 일도 있다”고 했다. 임 회장에 따르면, 대학교수 출신 B원장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목감기에 걸린 아이를 진료하는 B원장의 진료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맘카페에 악성 평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진했다” “불친절하다” 등의 글이 올랐다.
참다 못한 B원장은 해당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법정에 선 네티즌은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판사에게 읍소했고,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임 회장은 전했다.
이후 B원장은 ‘보호자를 고소하는 소아과’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결국 B원장은 소아과 진료를 그만두고 진료 과목을 바꿨다고 했다.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B원장은 “마음이 편해졌다”지만, 지금도 소아과 시절을 떠올리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폐업 안내문./온라인커뮤니티
갓 개원한 병원으로 맘카페 운영진이 찾아와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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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한 신도시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C원장은 개업초 ‘맘카페 행사를 하는데 찬조금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C원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 병원으로 한 보호자가 찾아와 이리저리 병원을 둘러봤다. 형식적인 진료를 받고 대기실로 나간 이 보호자는 다짜고짜 “뭐 이런 병원이 다 있냐.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아냐”며 소리쳤다.
이 일이 있은 뒤 맘카페에는 C원장에 대해 “진료를 잘 보지 못한다”, “불친절하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고 그때마다 맞장구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고 한다. 해당 병원장은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임 회장은 전했다.
임 회장은 “최근 소아과 의사나 교사 등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군에서 부모들의 등쌀에 고통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자녀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겠지만, 소아과 의사가 다른 전공의보다 보상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저 애들이 예뻐서 선택한 경우도 많은데, 보호자들이 좀 더 배려와 예의를 갖춰 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