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덩이의 9월 첫번째 산행기
▲ 동래의 주산, 마안산(馬鞍山: 146.5m) 사진산행
◆ 위치와 산이름의 유래 마안산(馬鞍山)은 동래구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도심 산지로 해발 419m인 2개의 종순형 산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면(斜面)은 완만하게 시가지로 뻗어내린다. 마안산이란 산의 모습이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며, 동래의 진산인 윤산에서 뻗어내린 산등이의 봉우리로서 옛 동래읍의 주산(主山)에 해당된다.
◆ 특 징
이 산의 주능선을 따라 동래읍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산정에는 부산지역 3.1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부산 3.1운동 기념탑을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마안산은 일명 대포산과 유방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포산이란 조선후기 이 산에 별포군 200여명이 근무하여 대포를 설치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유방산은 2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의 모양이 여성의 젖가슴을 닮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언 제?: 2005년 9월 17(토)
▶ 어디로?: 동래시장-법륜사-복천동 고분군-복천박물관-마안산(북장대)-3.1기념탑-서장대-동래향교
▶ 누구와?: 수덩이 홀로
▶ 날 씨?: 맑음
아내가 추석 차례음식준비로 큰집으로 간 사이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이기대로 가기로 작정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중도에 내리고맙니다. 흔들리는 버스의 요동조차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내린 곳은 동래로타리를 한정류소 지난 곳, 내리고나니 두다리로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니 편해집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동래구청쪽으로 복천박물관으로 가는 안내판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박물관이 이곳 어느쯤에 들어선 지는 꽤오래되었지만 여태껏 들린 적이 없습니다. 좋은 기회입니다.
배낭에는 자그마한 물통하나와 제과점에 들러 갓구어낸 팥빵 3천원어치, 디카가 내용물의 전부입니다.
창피를 무릅쓰고 목에 개고리(보조기)착용했음은 물론입니다.
▲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음력 3월 3일 전후로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이야기만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동래파전으로 유명한 먹거리골목입니다. 밀가루를 이용하는 다른 지역의 파전과는 달리 동래파전은 파가 부드럽고 맛있는 때인 봄철에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섞고 미나리, 대합, 홍합, 굴, 새우, 조갯살, 쇠고기, 달걀 등을 주재료로 해서 반드시 뚜껑을 덮고 익혀내는 등 조리방법에서도 차이가 나 부산의 대표적 먹거리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 조개류를 즐기지않는 관계로 맛보지는 못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가격이 장난이 아니랩니다. 한접시에 2만원을 웃돈다나 뭐래나?
뻑하면 원조, 원조... 믿을 수 없는 음식점 간판과 수안교회옆으로 전봇대에 걸린 안내판이 없었다면 꽁꽁 숨어 찾기힘든 유적지가 눈에 띄어 들러보기로합니다. 이름조차 생경한 장관청. 포도청의 하부기관인듯합니다.
▲ 태극무늬가 선명한 대문을 빼곱히 들여다보고 고둑 고양이마냥 살며니 대문안으로 발길을 들여다놓자 또하나의 담이 보이고 그 틈사이를 두고 관리인의 거처가 있고 사람이 보였으나 낯선 객의 움직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 대청에 슬리퍼 몇짝이 놓여있어 방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 듯해 숨소리죽여 사진몇장만 얼른 담고 빠져나옵니다.
▲ 추석 며칠전 TV에 방영된 바 있었던 재래시장입니다. 추석 하루전이라 활기넘치는 동래시장과 얼굴을 맞대고있는 또다른 유적지가 보여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 임진왜란 때 순국한 송상현과 전몰 장병을 위한 제단인 송공단(부산 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11호)입니다. 얼마전까지 관리인이 상주해있어 방문객을 맞았으나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자물쇠가 채워져있어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부산에는 이곳 말고도 이러한 제단이 두군데 있다합니다.
동구 좌천동(흔히 자성대라고 불렀던 곳)에 정발장군과 그를 따라 함께 순국한 군민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정공단(부산 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10호)과 같은 동래구 안락동에 위치한 충렬사(부산 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5호)가 그것들입니다. 그러고보니 자성대는 가본 지 30년도 더되었을성 싶습니다.
▲ 송공단 내부를 살펴보지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동래시장을 빠져나오자 언덕배기에 '학소대', '법륜사'란 이정표가 보여 호기심이 발동됩니다. 법륜사는 슬라브지붕을 가진 별도의 신도회관과 부속유치원을 함께 운영할 정도로 꽤 큰 규모입니다. 그렇게 오래된 사찰은 아닌 듯한데 대웅전 옆 한 법당의 현판이 이색적이어서 한번더 쳐다보게 만듭니다.
▲ 이곳이 학소대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지? 경내주위로 담장역할을 하는 아름드리만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려쳐 그너머에 주택가 옥상들이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여 그럴 듯도 해보입니다.
▲ 법륜사와 멀지않은 곳에 복천고분군이 보입니다. 그 뒤쪽 산정에 정자가 우뚝서있습니다. 복천박물관을 들린 후 그곳으로 올라볼 작정입니다.
▲ 복천동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62.5m이고, 현재는 이 구릉의 길이가 약 700m, 폭은 80~100m 가량이지만 원래는 현재의 동래시장 부근까지 이어진 꽤 긴 구릉이었다합니다.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고분군이라는 복천고분군은 1969년 주택공사로 그 일부가 드러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경주지역과 같은 화려한 금은제유물은 많지 않으나, 대신 철제유물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무구류(武具類)가 특히 많아 주목받았던 곳이기도합니다.
▲ 출토유물과 발굴장면을 전시하고 있는 돔형태의 야외전시관입니다. 밖에 보이는 현대식건물이 복천박물관입니다. 선진철기문화를 향유했던 가야시대에 걸맞는 설계였었더라면 좋을뻔했습니다.
▲ 4세기 후반대의 분묘도 꽤 포함되어 있어 4∼5세기경 부산의 정치·사회·문화적인 구조를 비교적 치밀하게 추적할 수는 복천동고분군은 유구가 구릉의 정상부에서 사면에 걸쳐 비교적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는 전형적인 무덤유적입니다.
▲ 유구의 분포상태를 보면, 구릉의 정상부에는 딸린덧널이 있는 큰 무덤이 만들어졌고, 그 주변과 경사면에는 중ㆍ소형급 무덤들이 위치하며, 대체로 중심부 무덤은 구릉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가면서 순차적으로 만들어진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산그늘 누부야께서 좋아하신다해 알게된 배롱나무가 보입니다. 꽃핀 모습은 처음 봅니다. 그 곁에는 흰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도 있었습니다.
▲ 관람시간 입장시간
3월 ~ 10월 09:00 ~ 18:00 09:00 ~ 17:00
11월 ~ 2월 09:00 ~ 17:00 09:00 ~ 16:00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단, 공휴일인 경우는 다음날 휴관함)
토요일은 무료, 관람료 성인 500원, 소인 300원
▲ 보물 제598호인 마두식각배, 오리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방어용 무기인 갑주류(갑옷과 투구)는 복천동고분군의 중요한 유물로서 우리나라 갑옷 연구 및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추석 바로 전날이어서 50여 좌석정도는 되어보이는 1층 시청각실에 혼자서 영상을 감상하고 2층과 3층의 그 너른
제1, 2 유물전시관 역시 홀로여서 기분이 묘해집니다.
▲ 박물관 뒤편 낮은 울타리를 넘어 오랫만에 풀내음 진한 계단을 오릅니다. 5분가량의 오름길 끝에는 배트민턴장과 농구대가 세워진 체육시설. 마안산배터민턴클럽? 처음 접하는 산이름입니다.
검색하여보니 마안산은 아래와같이 설명되어있습니다.
마안산(馬鞍山)은 동래의 진산인 윤산(구월산)에서 뻗어내린 동래의 주산이다.
주능선을 따라 동래읍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산정일대는 이 고장의 사적공원인 마안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마안산의 정상 북장대에 올라서면 발밑에 복천동 고분과 학소대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는 하마정까지 시야가 탁 트인다.
왼편으로는 안락, 명장동, 오른편에는 온천동에 둘러 쌓여있는 마안산은 가히 동래의 중심산이라 할 수 있다. 마안산이란 산의 모습이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래구청 쪽에서 보면 두봉우리(왼쪽은 북장대, 오른쪽은 체육공원)가 솟아 있는 모습이 여자의 젖가슴 같기도 하다 하여 일명 “유방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또, 마안산을 대포산이라고도 한다. 이는 개항이후 이 마안산에 대포를 비치하고 발포병이 오가서 대포산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 안내판을 보고 북장대로 가기전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3.1기념탑까지만 들러 보기로합니다.
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고려말 우왕 13년(1387)에 수축(修築)된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위시한 모든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장렬한 전투를 벌였던 임란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임란 이후 부분 보수되어 온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과거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크게 고쳐 쌓았는데, 이 성이 현재 흔적으로 남아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에는 지희루(志喜樓),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 남문에는 무우루(無憂樓), 암문에는 은일루(隱一樓)가 있었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두고, 문은 앞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의 주조문(朱鳥門)이 있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서문·동문·북문에는 성문 보호를 위해 옹성을 부설하였고, 장대, 망루 및 15개소의 보루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 때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현존하는 성지(城址)를 중심으로 훼손·방치되었거나 유지(遺址)가 확인되는 곳을 보수·복원하고 있고, 동래구에서는 남문(하나은행 수안동지점 옆), 서문(KT동래지사 옆), 동문(동래고교 정문 앞), 암문(동래구청 맞은편)의 옛터에 표석을 세워 문화유적지의 원위치를 보존하며,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 북장대(장수 지휘소)가 있는 이곳이 마안산 정상인가봅니다.
임진왜란 때 격전을 벌인 곳인데 이후 광해군 10년 남이흥이 중건한 건물로서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낭떠러지 밑의 성박은 물론 성내와 외성에 포진한 성벽 까지 지휘할 수 있어 일명 진남루라 부르는 곳입니다.
▲ 해운대 장산에서 시작한 영도에 이르기까지 해안을 정면으로 사직동 올림픽스타디움뒤로 백양산, 금정산, 멀리 영남알프스의 영축산에 이르기까지 개좌산, 철마산 등 동래의 진산답게 사통팔달 막힘이없습니다.
그래서 동래구는 구민들을 위해 매년 1월1일 해운대나 광안대교 등 번잡한 곳을 피해 해돋이행사를 이곳에서 가지기로 했나봅니다.
▲ 다음 행선지인 동래향교로 가기위해서 오르내리면 백살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다해 명명된 백년의 계단을 따라 고도를 낮춥니다.
▲ 동래문화회관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성곽을 따라 내렸더니 북문이 보입니다. 북문과 복천발물관은 지척입니다.
이제보니 박물관 뒷편으로 산능을 따라 한바퀴 휘돌아온 셈이 되었습니다.
▲ 북문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산릉에 또하나의 전망대가 보이는데 안락동로타리쪽 충렬사쪽에서 오를 수있는 동장대입니다.
▲ 이끼껴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는 엣성벽위로 새롭게 쌓아올린 벽돌의 구분이 선연합니다. 발굴단의 휴식처인 천막이 있어 복구공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북문 성곽을 따라 10분가량 돌아가니 2층 구조로 만들어져 독특한 모습의 서장대가 있습니다. 이 또한 장수의 지휘소입니다.
▲ 발굴공사는 서장대 인근에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주택가에 묻혀있는 마지막 종착지인 동래향교로 쏟아지듯 내립니다.
▲ 향교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고,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킵니다.
동래향교는 조선 태조 1년(1392)에 교육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전국의 부·목·군·현에 각각 하나씩 향교를 세울 때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하고, 처음 세울 당시에는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인 읍성 동쪽문 밖에 있었으나, 후에 여러 차례 옮겨 지었다가 순조 12년(1812)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1972. 6. 26 지정)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정문인 2층 문루를 ‘반화루’라고 한 것은 성인을 따라 덕을 이루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동래향교의 교품이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는 반화루에서 볼 때 정면에 명륜당과 동·서재가 모여 배움의 공간을 이루고 있고, 오른쪽으로 대성전과 동,서무가 모여 제사공간을 이루고 있고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 일렬로 놓인 일반향교의 건물배치와는 달리 동서 양쪽으로 구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인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대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합니다.
▲ 향교옆에는 수령 200년이 훨씬 넘어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심겨져있습니다. 향교에는 한결같이 은행나무가 심겨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은행나무는 공자를 상징한다합니다. 공자님이 제자들을 은행나무 밑에서 가르치는 것을 '향단'이라는 것은 공부에 더욱 더 매진하란 뜻입니다.
▲ 명륜초등학교의 벽면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랄적 낙서와는 다른 신세대다운 위트가 재미있어 담아보았습니다.
▲ 이 일대는 동래지역의 모든 문화재가 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 언젠가는 한번쯤은 돌아봐야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책같은 이 코스가 산행기로서의 가치가 있을 지 올리기가 조금은 민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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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선님 뒷산이 마안산이라는 디 정확히 몇번째 사진 어디래요?
ㅎㅎㅎ.... 매일 오가는 길인디 저는 아주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네요. 우리가 해맞이를 한 곳은 북장대이구요.우리 딸이 법륜사 부속 유치원을 다녔고 학소대는 우리 딸 중학교 교지 이름이랍니다. 3.1기념탑에서 떼굴 떼굴 굴러 내려오면 우리집이랍니다.ㅋㅋㅋ...
부산 동래 산성 장말 좋은 곳이네요..저도 그동네 옆에서 태어난는데 한번 가봐야 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