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 천변 산수유 열매
창원 근교 함안에 자양산이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가야읍이 가까워지는 들판에 우뚝한 자양산은 화개지맥의 한 봉우리로 통신사 송신탑이 있어 멀리서도 바라보인다. 산정까지는 송신탑을 관리하는 인력이 주기적으로 오르내려 자동찻길이 닦여져 있지만 차량 통행은 아주 드물었다. 나는 지난날 혼자서나 벗과 동행해서도 화개지맥의 산봉우리들을 등정한 바 있다.
자양산으로 오르는 길섶은 온통 산수유나무가 심어져 수령이 제법 되어 봄날엔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가을이면 꽃이 피었던 가지마다 산수유 열매가 달림은 당연했다. 그 많은 산수유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는 수효는 엄청나 장관이었다. 해마다 단풍이 물들려는 기미를 보이는 즈음이면 어디선가 차를 몰아온 이들이 산수유 열매를 채집해 가던 모습을 흔히 봤다.
나도 가을이 오면 연례행사로 산행을 함께 다니는 벗과 같이 자양산으로 가서 산수유 열매를 몇 차례 따 왔다. 산수유 열매 씨앗에는 독성이 있다기에 씨앗과 과육을 분리해서 씨앗은 버리고 과육만 말려 차를 끓이는데 함께 넣었다. 함께 갔던 벗은 그 과육을 말려 담금주를 담가 먹는다고 했다. 자양산에서 산수유 열매를 딸 때 만났던 두 사내는 열매로 효소를 내어 먹는다고 했다.
산수유 열매를 손쉽게 구하려면 자양산까지 가질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 산이 아닌 들판의 길고 긴 둑길에 가로수를 겸한 조경수로 산수유나무가 심겨 봄에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었다. 그 현장은 주남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대산 들녘 죽동천이었다. 죽동천은 죽동마을에서 시작해 대산 들녘을 흘러 유등 배수장으로 빠져나가는 낙동강의 지류에 해당하는 샛강이었다.
시월 넷째 화요일 이른 점심을 집에서 해결하고 자연학교는 오후반 학생이 되어 길을 나섰다. 목표는 죽동천 천변 산수유 열매를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니 은행나무 가로수는 샛노랗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창원역에서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사무소 앞을 거쳐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들녘을 지나갔다.
마을버스가 대산면 소재지 가술을 지난 송등마을 앞에서 내렸다. 마을 어귀에는 대형 육묘장의 비닐하우스단지가 있었다. 국도 찻길을 건너니 벼농사를 짓는 들녘은 추수를 마치고 뒷그루로 비닐하우스에 당근을 심으려고 준비하는 구역도 보였다. 내가 지난 봄날 봤던 노란 꽃이 화사했던 둑길의 산수유나무로 다가가니 수천수만을 헤아릴 산수유 열매가 익어 빨갛게 달려 있었다.
죽동마을은 들녘에서 저만치 떨어져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농부들의 트랙터나 트럭이 간간이 지나갔다. 나는 길섶으로 비켜 빨갛게 익어 과육이 아른아른해진 산수유 열매를 따 모았다. 높게 자라지 않는 산수유나무인지라 손이 닿기가 알맞아 열매를 따기 수월했다. 파란 하늘의 한낮 가을 햇살 아래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아도 내가 목표로 하는 양만큼의 산수유 열매를 땄다.
내가 딴 산수유 열매는 독성이 있다는 씨앗을 빼서 과육만 말려 몇 가지 건재들과 함께 찻물을 달일 재료로 삼을 예정이다. 죽동천 천변의 산수유 열매를 따 배낭에 챙겨 담아 종점 신전마을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아까 지나쳐 온 주남저수지를 비켜 시내로 들어와 집 근처 가는 버스로 갈아타 명곡 교차로에서 내렸다. 단풍이 엷게 물드는 가로수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거리는 한층 깨끗했다. 창원천 천변을 따라 창이대로의 보도를 따라 걸으니 단풍이 엷게 물드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가로수의 열병을 받으며 지났다. 유목교를 지귀상가의 창원천 2호교를 지나 봉림교를 거쳐 창원천 수변길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평일 낮이었지만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지나갔다. 시가지를 에워싼 정병산에도 단풍이 물드는 기미였다. 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