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집 만들기 / 전기철 문학박사
③ 합성 혹은 충돌 3-1
시는 정서적인 말을 쓴다.
그 정서적인 말은 울림이 많은 말이다.
그리고 울림이 많은 말이란 노이즈가 많은 말이다.
마크 그라노베터의 「약한 유대 관계」에 의하면, 두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 유대 관계가 약할수록
그 사이에 노이즈가 가득하여 창의력이 생긴다.
하나의 말이 다른 영역의 말을 만나면 서로 충돌하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만들어진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정서이다.
시인은 시를 창작하기 위해서 우선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새로운 말,
즉 시의 재료는 우선 말들 사이의 합성이나 충돌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낱말이나 문장들이 합성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노이즈는 시적 정서를 풍성하게 한다.
합성은 하나의 말을 보다 풍성하게 느껴지도록 앞의 낱말, 혹은 문장을 다른 낱말, 혹은 문장과 연결하여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시의 어법이다.
이는 하나의 낱말이나 문장에 그 낱말이나 문장과 성격이 아주 다른 낱말이나 문장을 합성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게 만들어내는 시의 구성법이다.
하나의 말은 다른 말을 만남으로써 그 느낌이 새로워진다.
그 의미가 고정된 하나의 말에 의미가 아주 다른 말을 잇대어놓으면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은
모두 그 맛이나 의미, 정서가 달리 다가온다.
때로는 무작위적인 여러 말을 섞어놓으면 그 말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새로운 느낌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의 말과 말을 잇대어놓음으로써 새로운 느낌이 나도록 만드는 언어 구사법이 곧 합성이다.
다양한 말들끼리 섞고 버무리고 겹쳐놓으면 그 단어나 문장은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의미가 변하거나 확장된다.
이런 합성법으로 때로는 충돌되는 말들끼리 잇대어놓아 의미 자체를 없대버리기도 한다.
밥 딜런의 「누군가 캄캄한 밤의 굉음」의 한 부분을 보자.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방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 공허, 그 거짓말 같은 분열은 다시금 서명할 점선, 소용없는 동기, 도덕적 유혹 & 바이올린 가방 속에 숨어 있는 백발의 남자들이 있는 아메리카를 생각나게 한다……
위 시는 호주머니 속 나방과 공허, 그리고 점선, 유혹, 남자 등이 나열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순 나열이라기보다 말들의 단독적 의미의 중심을 없앤 합성이다.
호주머니에서 날아오른 나방은 공허 같지만 점선이나 유혹이며, 그것은 다시 어떤 동기이며 도덕적 유혹이고
백발의 남자가 된다.
말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향해 열려 있다.
시란 사실에다 환상을 입히는 것이며, 사실을 환상으로 끌어올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합성은 하나의 단어에 아주 다른 성격을 붙여놓음으로써 그 낱말의 성격을 새로 부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언어를 새롭게 창조한다.
시의 문장에서는 말들이 합성하고 융합하여 말들 사이에 창조적인 세계가 열린다.
그 대표적인 시의 어법에 비유가 있다.
비유는 과거에는 유사한 말들끼리 합성하여 새로운 뉘앙스나 의미를 창출했는데,
현대의 비유나 상징은 전혀 유사하지 않은, 도저히 연결하기 힘든 말들끼리 합성하여 만든다.
왜냐하면 어떤 말을 새로운 정서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서에서 확, 벗어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A는 B이다’라는 어법이나 A 없이 바로 ‘B이다’라는 구문법이다.
이때 A라는 사람의 정서는 사물 B로 치환된다.
다시 말해서 비슷한 속성이나 유사 개념이 아닌 말들을 서로 합성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이때 A와 B 사이가 멀면 멀수록 말이 풍기는 정서, 즉 노이즈는 풍성해진다.
말과 말이 충돌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의미 자체를 없애버리는
무의미, 초의미의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즉 두 말을 합성했는데 아무 뜻이 없는 것이 합성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 낱말이나 문장에서 또 다른 낱말이나 문장 사이로 건너뛰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병치이다.
즉 그 의미나 쓰임이 아주 거리가 먼 낱말들 사이에 어떤 설명이나 해설 없이 두 낱말을 바로 잇대어놓음으로써
두 낱말 사이에 짜릿짜릿 전기가 통하고 번개가 치게 만드는 방법이 합성이다.
♤ + ♣ = ▒
○ + ▶ = ▣
위의 그림을 보면 서로 다른 그림을 더하거나 붙여놓았는데 그 답으로 엉뚱한 새로운 그림이 탄생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말을 아주 다른 말로 붙여놓거나 더했더니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구문법이 합성이다.
이때 두 말 사이는 서로 가깝지 않아야 한다.
두 말들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두 말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미를 건너뛰어 새로운 느낌을 준다.
바다 ↔ 나비
두 항목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합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두 낱말이 합치면 정말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원시적 토인과 현대 문화인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오늘날 현대예술에 아프리카 원주민의 예술을 합성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예는 많다.
말도 마찬가지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낱말이나 문장이 하나의 문장이나 단락 속에서 어울린다면 새로운 느낌을 발생시킨다.
그것이 곧 합성이다.
두 낱말이나 문장은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지만 중력이 작용하는 말들이다.
지구와 달처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 말은 새로운 미적·정서적 효과를 발휘한다.
‘바다 쪽으로 나는 나비’처럼 그 말들은 멀리 난다.
■ 다음은 합성의 사례들이다.
① 3월 속에는 오래된 철로가 있다. (관념+사물)
② 가방에는 어머니의 심장이 들어 있다. (사물+사물)
③ 젊음을 끌고 가는 할머니 (관념+사람)
위의 예들을 보면 실재와 실재, 혹은 실재와 관념을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는 말이 만들어졌다.
‘3월’과 ‘철로’ 사이에는 우리의 상상력이 작동한다.
‘가방’과 심장‘, ’젊은‘과 ’할머니‘ 사이에도 노이즈가 일어나 이러한 상상력이 작동한다.
그 말들은 서로를 간섭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느낌이 풍성하게 다가온다.
결국 그 문장은 시적으로 아름답고 새로워진다.
이미 의미가 고정화된 말에다 다른 말을 합성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는 말이 만들어졌다.
서로 거리가 먼 말들끼리 합성하여 새로운, 허구의 의미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허상의 말은 현실적으로는 논리에 맞지 않지만 우리의 정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합성은 이렇게 낱말이나 문장 등 말들끼리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느낌의 정서나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연습 4] 다음의 단어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느낌이 나도록 문장으로 만들어보시오.
물고기 + 놀이터 + 하늘 = (예, 하늘은 물고기의 놀이터다.)
공원 + 청우계 + 아침 = ( )
■ 한 단어에 수식어를 넣거나 서술어를 넣어서 새로운 느낌이 나게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두 낱말들 사이에 의미의 건너뛰기는 필수이다.
두 말들 사이를 잇되 중간의 산문적인 요소를 지워본다.
① 산 위를 걷는 달
② 비가 찾는 연못
③ 비행기는 가래를 끓이며 날아간다
④ 오래된 약속이 묻힌 언덕
[연습 5] 다음의 빈칸을 산문적 설명 없이 정서적으로 풍성한 느낌이 나도록 채워 보시오.
① (아침을 건너뛰는) 맥박/ ( ) 편지/ ( ) 거미
② 문방구는 (기억의 낱말들이 모이는 곳이다)/ 여우가 ( )/ 마네킹은 ( )
[연습 6] 다음 단어들을 합성하여 3행 이상의 구절을 만들어보시오.
단, 낱말과 낱말들을 건너뛰기 방식으로 이어보시오.
담(벼락)/언뜻/커피숍/해바라기/울새
시에서 합성이란 말의 느낌이 풍성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구문법이다.
합성은 A라는 말을 B나 C, D, E 등과 연결해 표현해줌으로써 그 A의 의미나 미감보다 풍성하게 하거나
새롭게 해주는 장치이다.
다음의 문제를 풀어보면서 합성을 연습해보자.
[연습 7] 다음을 리듬이 생기도록 반복 구절을 넣어 합성해보시오.
① 창문을 두드리는 해/인생/기차역/우울 ; 다음 예시를 참고하여 ‘두드린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넣어
연결해보시오.
해가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
기차역에 너무 일찍 도착한
우울 씨는
제 인생의 징검다리를 두드리고 있다
저만치 기차가 철길을 두드리며 온다
② 떠도는 이비행기/물수제비/풍향계/건너/꿈 ; ‘떠돌다’라는 반복 구절을 넣어 연결해 보시오.
③ 구름의 가장자리/무덤/배/거울/백색/사막/안개 : ‘구부러진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써서 연결해보시오.
-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