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동백꽃이더라
한옥순
이모네 집은 두어 시간 걷고 또 걸어서 가야 있었다
스레트울타리 끼고 칠이 벗겨진 파란색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들반들한 툇마루가 먼저 보이는 마당 깊은 작은 집,
이모는 말이 별로 없는 대신 소리 없이 크게 웃는
걸걸한 우리 엄마보다는 아주 조금 이뻐 보이는 여자였다
이모가 국수를 삶아 내오는 동안 쪼그리고 앉아서는
휘 둘러볼 것 없이 작고 좁은 방을 한바퀴 돌아본다
이모네 안방 벽엔 포플린인지 옥양목인지 이름만 아는
흰색의 횃대보가 서커스 천막처럼 늘 씌워져 있었다
그 안엔 이모의 단벌 외출복인 공단한복이 걸려져 있었고
이모부의 잿빛 양복과 겨울 외투가 귀한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나는 이모네 벽에 걸렸던 옷들은 오래전에 다 잊었다
다만 쉰다섯 해가 너머 가도록 잊혀지지 않는 건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빨아 꼭꼭 눌러 다려 놓은 횃대보에 핀
꽃, 아주 붉고 작은 슬픈 얼굴의 꽃송이었다
왜 난 궁금하면서도 그 꽃 이름을 묻지 않았었는지
밤새 하얗게 내린 눈밭에 금방 떨어진 듯한 꽃송이들
맨 처음 생리혈을 묻힌 듯 생경스럽고 가슴 뛰는 그 색 색 색
금세라도 숨이 끊어질 듯 한 그 얼굴 얼굴 얼굴들이
동백꽃이란 걸 너무 많이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생전 처음 본 동백은 이모네 방 바람벽에 피었다가
나이 서른아홉에 모가지 툭 내던지듯 목숨 떨군 이모와 함께
연기로 날아간 흰 색 횃대보에 핀 핏빛보다 더 선명하게 붉던 꽃이었다
여덟살 계집애 가슴을 붉게 물들이며 숨이 막히게 하던
그 꽃 이름이 동백이라 하더라
뭔지모를 어린 시절에도 괜스레 눈시울 뜨겁게 하던 꽃들이,
초겨울 석양처럼 늙어서 가 본 서귀포 낯선 길 가 마다에
이모 얼굴을 수도 없이 그려 놓은 것 같은 꽃들이
그게 글쎄 동백이라 하더라
나는 동백꽃을 너무 어릴 적에 보았어라
―월간『우리시』(201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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