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의 '붉은 악마'의 함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해교전 사태로 우리 사회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붉은 악마 신드롬'으로 인해 레드 콤플렉스가 상당히 극복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러나 서해교전 사태 이후 '전쟁불사론'이 나올 정도로 우리사회는 다시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발생한 '미군전차 압사사건'으로 두 여중생의 목숨을 잃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보수언론들이 서해교전 사태 이후 연일 대북 강경론을 쏟아내고 있다.
어린 소녀와 해군 장병의 '죽음'을 놓고 한쪽에서는 "무찌르자 공산당"을, 다른 한쪽에서는 "주한미군의 사과와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 시대 '극단의 두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풍경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의 증언대회가 월드컵 열기에 눌려 뒤늦게 열려 반세기가 넘게 해묵은 한을 토해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7월4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세가지 극단의 풍경'을 동시에 취재, 기사와 동영상으로 중계한다. 이는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또다른 측면에서의 '현주소'라고 하겠다.<편집자 주>
1950년 11월 남원 강석마을에서 발생한국군의 양민학살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김덕호(66)씨.
ⓒ 오마이뉴스 김시연
<3신: 오후 8시40분> 50년의 침묵 깼지만...
장면 셋-한국전쟁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 증언대회 현장
"인민군에게 죽은 것도 억울하겠지만 아군에게 학살당한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당하고도 하소연 할 데가 없었으니까요. 문제제기만 해도 잡아가는 통에 항의도 못했죠."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 주변 주민들은 국군의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에 살고 있는 김덕호(66)씨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 11월17일 한때 공비 치하에 들어갔던 강석마을 수복작전을 편다는 명목으로 1개 대대 병력의 국군 토벌대가 마을 양민 90여 명을 대검과 M1 소총으로 난자, 학살했다. 당시 14세 소년이었던 김덕호씨는 이제 하얀 백발이 됐지만 지난 50여 년은 침묵의 연속이었다.
50여 년만에 말문은 트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나 미군에 의해 학살을 당한 민간인의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 전국 40개 지역,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유족들은 피해보상은 커녕 지난 50여년간 피해 사실을 숨긴 채 숨죽여 살아야했다.
7월 4일 마침내 그들이 입을 열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선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원회) 주관으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피해자 유족들의 숨겨진 진실을 증언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동안 충북 영동 노근리, 경남 거창, 제주 등 일부 지역에서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은 국내외 언론의 보도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고 일부는 국회 특별법 제정을 통해 명예회복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피해지역 유족들은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숨죽여 지내고 있다.
특히 이날 증언대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거나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해 묻혀졌던 학살지역 유족들이 증언이었다.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국군학살을 비롯, 거제 경찰서 수장, 마산형무소 학살, 거창 보도연맹 학살, 완도지역 민간인 학살, 미군 폭격에 의한 단양 괴개굴 학살….
당시 나이가 어려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피학살자 유족들은 이제 초로의 나이가 되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당시 목격담들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지난 50여 년간 묵혀온 침묵의 한을 다 털어 버리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1951년 1월 20일 충북 단양군 가곡면 고습 재동치. 1.4 후퇴를 맞아 피난을 가려던 360여 명의 주민들은 미군의 저지로 어쩔 수 없이 인근 자연동굴(괴개굴)로 피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미군 폭격기 4대의 폭탄과 기총 사격 세례였다. 결국 마을 주민 대부분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 숨졌고 당시 16세였던 조봉헌(67)씨는 인사불성 상태에 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고 이날 증언대에서 당시의 참상을 증언했다.
처음에 떨리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던 유족들은 어느새 자신의 증언에 몰입해 제한시간을 넘기고도 마이크를 쉽게 놓지 못했다. 50년 묵은 침묵을 깬 이날 후련하기도 하련만 자리로 돌아간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입을 열기는 처음이라는 남원 강석마을 김덕호씨.
"이렇게 말 한 마디 한다고 되나. 돌아가신 분들은 당시 군인들에 의해 빨치산 취급을 받았어. 어서 명예회복시키고 위령비라도 세워야 구천에 떠도는 영령들에게 위안이 되지."
그나마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피학살자들은 혼령이나마 위안을 찾게 됐다. 지난 3월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영혼들을 달랬기 때문이다. 1951년 2월26일 새벽 4시경 철천리와 각동리 일대로 들이닥친 경찰과 경찰특공대는 공비 토벌을 앞세워 주민들을 모두 끌어냈고 이중 38명을 인근 동박굴재 고개로 데려가 집단 학살했다.
"진상규명은 서로 화합하자는 취지"
이날 행사의 2부에서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동안 은폐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별법 제정 등 피해자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있는 사례들이 주민들의 증언과 함께 소개됐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발생한 충북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한때 '전설'로 떠돌았던 전남 진도 갈매기섬 학살 사건 역시 최근 <월간 말>(2002년 6월호) 르포 기사를 계기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충남 공주 왕촌 암매장 사건은 지난해 6월 공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와 <오마이뉴스> 공동조사를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1부 증언이 끝날 무렵 애초 순서에 없었던 김영승(68)씨가 나와 51년 2월 200여 명의 주민이 몰살한 전남 영광군 쌍문리 옴팍골 양민학살사건을 증언했다. 자신의 여생을 전남지역 양민학살 발굴에 쏟고 있는 김영승씨.
"좌우를 떠나 역사가 되풀이 돼선 안되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건 당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해서 서로 화합하자는 취지예요."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며 참가자들이 미2사단 정문에 꽂은 국화꽃을 경찰은 행사가 끝나는 10여분을 기다려 주지 않고, 꽃을 꽂은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뽑아 버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신 대체:4일 낮 7시>
#장면 둘-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규탄 집회
7월 4일. 매년 이 날은 독립기념일 축제를 위해 정문을 개방하던 미군부대지만 오늘 의정부 미2사단 레드클라우드 부대는 전경들에 의해 '밀봉'됐다. 전경들은 5겹씩 부대 벽을 둘러쌌으며, 정문 앞에는 전경들이 12겹씩 늘어서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그 앞에서는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제3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날 대회에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범국민대책위'뿐만 아니라 녹색연합, 민가협,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보건의료노조실천단, 황학동아파트철거대책위원회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회원 500여명이 참여해 이 사건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와 피켓에는 "여중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미군 훈련 책임자를 즉각 처벌하라" "살인 폭력 일삼는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No More Kill"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꽃다운 영혼 편안해지기를...
다음은 가수 김장훈 씨가 유가족들에게 성금과 함께 건넨 편지 내용이다.
미선이, 효순이 부모님께
두 꽃다운 영혼들이 아픔없는 좋은 나라에서 편안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또 오빠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마음 아프구요, 부모님 꼭 기운차리세요.
온 국민이 힘을 합쳐서 꽃다운 두 영혼이 편안해지기를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 김장훈 올림
특히 이 날 집회장에는 가수 김장훈씨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씨는 “순수한 마음으로 여중생들의 부모님을 만나뵈러 왔다”고만 말한 채 1시간 가량 집회를 조용히 지켜보고 자리를 떴다.
김장훈씨는 다른 일정이 있어 이동하다가 집회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 미2사단 앞을 방문했으며 유가족들을 방문해 "급히 오느라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며 각각 500만원의 성금과 직접 쓴 편지를 전했다고 알려졌다.
범대위 측의 발표에 따르면 가수 이선희씨, 신해철씨도 “나도 이번 사건 해결에 동참하고 싶다. 도울 일이 없겠는가”라고 문의해 왔다고 한다.
▲ 4일 오후 의정부 미2사단앞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5백여명의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형사적 재판권 없는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신효순, 심미선 양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이번 범국민대회는 주로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규탄연설로 이루어졌다.
범대위 김종일 위원장은 “오늘 아침에 시도했던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김 위원장은 “미군은 재판관할권을 포기하는 대신 형식적이었던 한미합동조사를 성실히 수행해 한국경찰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으로 법무부나 경찰들과 합의하려 하고 있다. 또한 어제 서둘러 사고운전병과 선임탑승자를 미국군사법원에 기소해 공무중 재판은 직접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형사재판권은 양보하지 않는다면 사과성명은 민심수습용 제스츄어라는 것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오늘 법무부에서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미군이 이 사건에 대한 공무증명서를 법무부에 제출한 것은 지난 20일이며 따라서 공식적인 미군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의 포기신청기한도 7월 11일까지 유효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재판권 포기요구를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인 진관스님은 “오늘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고 하는데 미국 땅의 주인은 인디언이며 미국은 원주민들의 땅을 차지해서 독립이라고 우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정현 신부 역시 “미군의 범죄는 50년 동안 계속 되어왔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더 이상 미군 범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경원대학교의 한 학생은 “어제 농활 도중 경찰 15명이 찾아와 지난 26일 반미집회에 참석했던 후배를 연행해 갔다. 경찰들이 어찌나 짐승처럼 거칠게 끌고 갔는지 바지가 찢기고 신발도 벗겨졌다”고 호소했다.
이 학생의 말에 따르면 경원대학교에 재학중인 이성철군은 지난번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정문 앞 철조망을 끊고 부대안에 침입한 혐의로 연행됐으며 현재 의정부 경찰서로 이송됐다. 경찰서 측은 이성철군에 대해 군사시설보호법과 폭력행위 등에 대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의정부역 부근 미군부대를 경비하고 있는 경찰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경들 너머 부대철조망에 꽂힌 국화
집회를 마친 시위대는 고인의 영정에 헌화했고 여성 참가자들은 철조망에 국화를 꽂기 위해 미2사단 정문을 향했다. “길 좀 냅시다. 한국경찰, 우리 같이 추모합시다” 라는 호소에도 겹겹이 막아선 전경들은 틈을 보이지 않았고 오랜 실랑이 끝에 여성 참가자들과 일부 기자들만 정문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이어 굳게 닫힌 부대 정문 철조망에는 10여송이의 국화꽃이 꽂혔다.
시위대는 헌화를 끝내고 의정부 역까지 행진을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주한미군 철수하라’, ‘미군훈련장 폐쇄하라’ 구호는 줄어들지 않았고 시민들도 집에서 나와 시위대를 지켜보았다. 차를 타고 지나는 시민들도 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시위대가 나눠주는 전단을 받아보거나 손을 흔들어주는 등 시위대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효순이, 미선이 생각에 가슴이 아파 투쟁 나섰어요"
이 날 집회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미 집회에 익숙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만큼이나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모습은 만민공동회를 연상시켰다.
한국-터키전 당시 광화문에서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 천을 나눠주었던 한 시민은 “아파트 주민들끼리 밤새 사건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시장에 가서 검은 천을 끊었다”며 “네티즌들이 이 사건 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해 해외 사이트에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이후 범대위와 연대해 부시 공개사과와 책임 규명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우리 아이가 미선이 오빠의 친구”라며 말문을 연 윤순득(45)씨는 이전에는 시위라곤 해본 적도 없지만 이번 사건 발생 이후 관련 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모범 참가자. 윤순득씨는 “아이가 미선이 장례식에서 돌아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에게도 과실이 없을 수 있냐’고 말하는데 가슴이 아파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잘 수 없었다”고 집회 참여 동기를 밝혔다. 윤씨는 “얼마 전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는데 한 한국군 소령이 전단을 뿌리쳤다”며 “우리 나라 군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분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을 마쳤다.
의정부여고 교사 심호진씨는 “어제 천둥치는 소리가 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미군들이 하루 앞당겨 독립기념일 축제를 벌이는 축포 소리였다. 여중생들을 그렇게 죽여놓고 어떻게 불꽃놀이를 할 생각이 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집회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여고생들도 사회자의 요청에 용기를 내 마이크를 잡고 “이건 너무한 일이에요. 미군들은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해요”라고 발언했다. / 권박효원 기자
이날 범국민대회에 앞서 오전 9시부터 낮 1시까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의 유가족과 주민 200여명이 사고 현장에서 시위를 벌였고, 전경 3개 중대가 출동했지만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한편 오늘(4일) 낮 1시30분부터 재향군인회가 집회를 벌인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는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규탄집회가 열렸다. 이 규탄대회는 서울로 상경한 전남 영광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했다.
이날 상경한 사람들은 천주교 영광교회 신도, 영광 농민회, 영광 여성회원 등 30여명. 영광 시민단체들의 '독립기념일 기념 상경'은 올해가 두번째다. 지역 주민들은 작년 초부터 미군 양민학살,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강연을 개최해왔으며, 매년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기해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광 농민회 조국통일위원회 박지우씨는 "오늘은 이 땅의 대립 반목을 만든 악의 근원 미국이 탄생한 날이자 평화를 위해 남북이 손을 잡고 공동선언을 했던 날"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정현 신부가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외치자 집회자들은 능숙하게 "미∼군반대" "반∼전반미" 구호에 이어 '짝짝짝 짝짝' 박수를 쳤다.
영광사목회 회원 정성근(39·농업)씨는 "미군이 이땅에 주둔하면서 한국인들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지만 대책이나 보상이 전혀 없다"면서 "이번에 여중생들도 억울하게 죽었는데 신자들이 가만히 있다는 것은 신앙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신:4일 낮 12시10분>
▲재향군인회 회원들은 4일 오전 10시30분부터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북괴 서해도발' 규탄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장면 하나-상이군경회 등 북한 규탄대회
"소 바치고 쌀 퍼주고 총탄 맞고 전사했네"
"퍼다준 대북지원, 총탄되어 돌아왔다"
"김정일 서해도발, 백배 천배 응징하라"
4일 오전 10시30분, 용산의 전쟁기념관과 여의도공원 두 곳에서 동시에 울려퍼진 구호다. 잠시 후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형상에 불길이 치솟았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4일 오전 10시30분 1만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북괴 서해도발 규탄대회'를 열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등 국가유공자 관련 단체들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5천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유공자단체 합동 대북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다.
상이군경회는 지난 97년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남조선(南朝鮮) 명함' 논란 이후 5년여만에 규탄대회를 열었고, 재향군인회는 최근 반미집회가 잇따르자,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친미 시위'를 벌인 바 있다.
▲ 재향군인회의 규탄집회 장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재향군인회 회원들은 규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쟁기념관 본관 앞으로 연신 땀을 훔치며 모였다. 이들의 가슴에는 검은 리본이 달려있었다.
집회는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재향군인회 이상훈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인도주의적인 대북지원이 포탄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며 "정부는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즉각적인 응징 보복 계획을 수립, 재발방지 대책을 국민에게 밝혀줄 것"을 주장했다.
6·25참전전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학호(예비역 소장)씨는 "정부는 북한의 도발행위가 자행되지 않도록 보복 응징할 수 있는 대책 수립, 햇볕정책을 재검토,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지원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며 "정부 내 친북 좌경인사들을 즉시 파면 단죄하고 북괴의 도발이 자행될 경우 열 배, 백 배로 응징하는 국군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오전 10시 55분께 재향군인회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체 사진을 붙인 모형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했다. 사진 가슴 부위에는 '괴수 김정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김정일 모형이 불길에 휩싸이자 해병대 전역자 출신으로 보이는 재향군인회 회원이 뛰어나와 발길로 차고 삽으로 내리찍었다.
이때 행사 사회자는 "이번 화형식은 6·29일 서해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장병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의식이자 김정일 전범집단을 깡그리 쓸어버리는 화형식이다"고 안내방송을 했다.
화형식이 끝으로 전쟁기념관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역으로 도보행진에 나섰다. 도보행진은 이번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4명의 장병 영정이 앞서고 뒤에는 대형태극기, 원로 전쟁 참전용사, 향군여성회 등 7000여명의 집회참가자들로 이어졌다. 참가자들 중에는 고령자들이 많아 걷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해 의료진이 함께 했다.
거리행진에 나선 회원들은 '김정일 방한하면 전법으로 포획하자' '퍼다준 대북지원 총탄되어 돌아왔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후 12시께 서울역광장으로 진입하려다가 경찰의 통제로 멈춰 섰다. 통제에 따라 재향군인회은 이날 집회를 남대문경찰서 부근에서 각 지부별로 참가자 이름을 적고 마무리했다.
하지만 낮 12시 30분께 서울시 재향군인회 200여명은 해산하지 않고 집회에서 사용한 김정일 얼굴 그림과 북한 인공기 사진을 통제된 차도 위에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경찰은 갑작스레 일어난 '화영식'을 막았고 소화기로 불을 끄며 주위 사람들을 통제했다.
한편 대한 상의군경회 등 국가유공자단체(대한민국전몰군경 유족회, 대한미국전몰군경미망인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회원 5천여명은 4일 오전 10시 30분 여의도 광장 '문화의 마당'에 모여 '북한 서해침범 무력도발 규탄합동 결의 대회'를 가졌다.
여의도 광장 곳곳에는 "소 바치고 쌀 퍼주고 총탄 맞고 전사했네" "민족사 최악의 학살자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날 국가유공자 단체 회원들은 '김정일 집단 규탄 궐기대회'라고 쓰여진 노란색 띠를 두른 채 규탄대회에 참석했고, 전몰군경미망인회 소속 회원들은 흰소복을 입고 참석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의 규탄사로 시작했다.
▲ 4일 전쟁기념관 열린 김정일 위원장 화형식 장면.ⓒ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병관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은 북한의 6·29 도발을 "서해안에서의 끊임없이 도발을 일으켜 서해 5도를 장악하여 남침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고도로 계산된 행동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서해안 도발을 자행하여 아군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김정일 집단을 민족의 이름으로 규탄하며 민족과 인류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국가유공자단체는 대통령께 드리는 메시지를 통해 "북한 김정일 집단은 한편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을 획책하여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기만적인 집단"이라면서 "우리는 대통령님께서 햇볕정책을 모독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을 단호히 응징하고, 군의 전투 역량을 재점검하며, 대공업무 종사자들의 사기를 높이고,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국민적 예우와 국가안보를 위해 한마음으로 매진해달라"고 건의했다. 국가유공자단체들은 '대통령께 드리는 메시지'를 국가보훈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또 국가유공자단체는 북한집단의 적화통일 야욕분쇄와 국민의 안보의식 고취, 국군장병의 사기진작을 위한 전·사상자에 대한 보상금 현실화, 북측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규탄대회 말미에 "북한 괴뢰집단의 괴수 김정일 화형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허수아비 모양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형 화형식이 거행됐다. 참석자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날 규탄대회에는 '보수 원조'를 자처하는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뒤늦게 참석했고, 마지막 행사로 예정된 가두행진은 "행진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