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 동쪽의 쪽샘지구에 들어서면 푸른 잔디를 입은 봉분과 어우러진 하얀 돔 지붕의 쪽샘유적발굴관을 만납니다. 쪽샘지구는 대릉원과 맞닿은 4~6세기 신라 귀족의 집단 묘역입니다. 현재의 황오동을 중심으로 황남동과 인왕동 일부에 걸쳐 있으며,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한 고분만 1,100여 기에 이릅니다. 1960년대 이후 민가가 들어서면서 봉분 상당수가 깎이거나 사라졌지만, 장기간에 걸친 발굴과 정비로 땅속에 묻혀 있던 고분의 위치와 규모가 차츰 드러났습니다. 무덤의 축조 순서까지 밝혀내는 일 또한 신라 왕경 묘역이 형성된 과정을 복원하는 핵심 작업입니다.
44호분 출토 유물의 복원 과정을 담은 2층 관람로
매장주체부 출토 유물 분포도를 설명하는 전시
쪽샘 44호분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신라 공주 포토존
쪽샘유적발굴관은 쪽샘 44호분의 조사 현장 위에 세운 보호 시설이자 고고학의 과정을 공개하는 현장 전시관입니다. 흰색 막 구조의 넓은 지붕 아래로 들어서면 중앙의 축조 실험 현장과 이를 에워싼 2층 관람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관람로의 유리 난간 너머로 흙을 파낸 묘광과 나무로 짠 덧널, 그 둘레에 쌓은 돌무지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벽면에는 발굴 당시의 사진과 실측 도면, 출토 유물의 위치, 직물 보존·복원 과정이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이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채 온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신라 왕족의 어린 여성으로 공주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머리의 금동관부터 귀걸이, 영롱한 유리구슬 장식, 발끝의 금동신발에 이르기까지 피장자가 착용했던 장신구들이 제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쪽샘 44호분 축조 현장 실험
2층에서 내려다본 적석목곽묘의 구조
발굴이 완료된 터에서는 조사 결과를 입증하기 위한 ‘쪽샘 44호분 축조 실험’이 한창입니다. 연구진은 무덤 조성 과정을 총 21단계로 세분화하여, 지반 정지 작업부터 나무 기둥과 덧널 설치, 시신 및 부장품 안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실제 크기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례와 매장 단계까지 연구 범위를 확장하여 유물의 안치 순서와 당시의 장례 풍습까지 면밀히 살피는 중입니다. 이는 단순히 옛 무덤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인력과 시간, 부재 결합 방식과 돌 쌓기 기법을 몸소 확인해 가는 고고학적 실증의 과정입니다.
치열한 탐구의 공간을 지나 시선을 돌리면, 통유리창 너머 야외 데크로 풍경이 시원하게 열립니다. 창가 가득 푸른 잔디를 덮은 거대한 봉분들과 경주 도심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천년 전의 역사와 오늘날의 삶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남천 북쪽에 자리한 경주 교촌마을은 신라의 교육 전통과 조선 시대의 생활 문화가 한데 이어지는 마을입니다. ‘교촌’이라는 이름도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황톳빛 길을 사이에 두고 단정한 기와지붕과 낮은 흙돌담이 이어지며, 담장 위로는 소나무와 오래된 나무의 가지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웁니다. 골목 사이로 남산 자락이 내다보이고,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남천과 월정교까지 이어집니다.
우거진 녹음과 한옥 담장이 만드는 호젓한 교촌마을 길
강학 공간인 경주향교 명륜당
옛 성현들을 기리는 경주향교 대성전
마을의 중심에는 경주향교가 자리합니다. 이곳은 신라 신문왕 때 국학이 세워졌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터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향학이 들어섰으며, 조선 시대에는 지방 유생을 교육하고 유교 성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향교가 그 전통을 이은 곳입니다. 교촌이라는 지명에는 신라의 국학에서 고려의 향학, 조선의 향교로 이어진 오랜 교육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경주향교는 제향 공간을 앞에 두고 강학 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 형식입니다. 앞쪽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셨으며, 뒤쪽의 명륜당은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던 강당입니다. 특히 대성전은 공포와 창호 등에서 조선 중기 건축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둔 기와집의 반듯한 비례와 절제된 구조가 배움과 제향을 중시했던 옛 향교의 질서를 보여줍니다.
정원수가 정갈하게 자리한 경주 최부자댁 안마당
붉은 벽돌 굴뚝과 옹기 항아리가 있는 최부자댁 장독대
향교에서 골목을 따라가면 경주 최부자댁과 마주합니다. 조선 시대에 지은 경주 최씨 종가로, 사랑채와 안채, 대문채 등이 넓은 마당을 둘러싼 고택입니다. 안마당의 정원수와 장독대, 붉은 벽돌 굴뚝이 단정한 목조 건물과 어우러져 오랜 살림집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경주 최부자 가문이 오래 기억되는 까닭은 큰 재산보다 이를 지키고 나누는 원칙에 있습니다.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으며,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르침이 대표적입니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높은 벼슬을 경계하는 등 '육훈'에 담긴 나눔과 상생의 가치가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민들과 물을 나누던 최부자댁 마당의 우물터
남천 제방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교촌마을
교촌마을 남쪽 남천을 가로지르는 월정교
골목 끝 남천 제방으로 나서면 마을 풍경이 시원하게 탁 트여 옵니다. 산책로 한쪽에는 잔잔한 남천이 흐르고, 반대편으로는 기와를 얹은 흙돌담과 한옥 지붕이 고즈넉하게 이어집니다. 짙은 나무 그늘 골목과 시원한 수변이 맞닿아 있어 마을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줍니다.
남천을 가로지르는 월정교는 교촌 산책의 여정을 완성하는 하이라이트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덕왕 때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를 놓았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화강암 교각 위에 세워진 붉은 기둥과 긴 회랑, 겹겹의 기와지붕이 남천 위에 웅장한 실루엣을 그려냅니다. 낮은 담장 너머 월정교와 남산이 겹치는 풍경 속에는 경주의 여러 시대가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경주 산내면의 단석산 자락에 자리한 화랑의 언덕은 너른 초원과 소나무 숲, 굽이치는 산세가 어우러진 고원형 정원입니다. 경주 도심의 고분과 유적에서 벗어나 산길을 따라 올라서면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사라지고, 하늘과 초원이 맞닿은 듯한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소나무 아래 놓인 알록달록한 의자와 ‘화랑의 언덕’ 글자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의자 너머로 잔디밭과 산 능선이 겹쳐지는 이곳은 장소의 분위기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대표 포토존입니다. 언덕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가지를 넓게 펼친 나무와 그 아래 놓인 벤치가 이어집니다. 햇볕이 내려앉은 초원과 짙은 나무 그늘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바람이 불 때마다 긴 풀과 나뭇잎이 한 방향으로 잔잔하게 흔들리는 풍경입니다.
그늘 아래의 벤치와 넓은 초원
풀밭 한가운데 있는 어린왕자 조형물
풍금과 멀리 내다보이는 언덕
하늘을 향해 오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천상의 계단'
넓은 부지 곳곳에는 어린왕자 조형물과 붉은 별, 하늘을 향해 뻗은 흰색 계단 등 여러 포토존이 자리합니다. 소나무 아래 놓인 오래된 풍금과 피아노도 자연 풍경에 동화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장치입니다. 짙푸른 소나무와 빛바랜 건반, 멀리 솟은 붉은 지붕이 한 화면에 겹쳐지면서 목장 특유의 이국적인 인상을 전합니다.
수의지에 마련된 휴게 공간이자 조형물
언덕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수의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생식물과 갈대가 자라는 잔잔한 연못으로, 넓게 트인 초원과는 다른 고요한 분위기를 품은 공간입니다. 물가의 흰색 테이블과 의자 등 다양한 조형물 사이로 연못과 산자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깁니다. 바람이 잦아들면 수면 위로 주변 숲의 짙은 초록빛이 비치고, 물가에서는 풀벌레와 새소리가 한층 가까이 들리는 풍경입니다.
단석산 절벽 끝 '명상바위'에서 내려다본 학동마을
초원 산책의 마지막에는 화랑의 언덕을 널리 알린 명상바위가 기다립니다. 바위 앞으로 나서면 가까이 있던 나무와 언덕이 시야 아래로 내려가고, 겹겹의 산줄기와 비지리 일대의 골짜기, 논밭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계절에 따라 논의 색이 달라지며, 흐린 날에는 산 능선이 옅은 안개 속으로 차례로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바위 가장자리는 경사가 급한 지형과 맞닿아 있으므로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는 안전거리를 충분히 두고 조심해야 합니다.
고대의 아득한 흔적에서 오늘의 푸른 풍경으로 이어지는 경주. 서로 다른 높이와 거리에서 마주한 이 특별한 여정은 오랫동안 마음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잔잔한 여운을 안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