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430장 (구 456장) / 골로새서 2 : 16 - 2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3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골로새서 2장 16절 – 2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어느 목사님께서 다른 교회 헌신예배 설교를 부탁받고, 설교 제목을 보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런데 그 교회 간사가 제목이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혹시 제목에서 뭔가 빠진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대답하시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날 헌신예배 설교제목에는 이렇게 실렸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목사님이 이 제목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뭔가가 더 필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시고 또 다른 뭔가가 더 내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제대로 자라고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면 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면, 우리의 신앙은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자꾸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것을 붙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단의 간교함은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보다 다른 – 그들의 교주가 더 크게 보이게 하는 게 이단입니다.
골로새교회가 겪었던 영적 혼란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골로새교회에는 영적으로 혼란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먼저 골로새교회에는 유대주의 혹은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중요하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율법도 중요하기 때문에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저들은 먹고 마시는 것 등, 음식과 관련된 정결규례와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과 같은 날에 대한 의식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류는 신비주의였습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에서 보면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 신비주의자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보다 어떤 신비적인 경험을 더 중요시 하였습니다. 어떤 신비한 세계를 보는 경험이 있어야만 고급신앙이 되고 구원받은 자의 자격을 갖춘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또 다른 부류는 금욕주의였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죄악 된 세상의 것에 대해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금욕적인 삶이 없으면,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금욕하지 않으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오늘 본문 21절, 22절 말씀을 보면 “(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이처럼 금욕 주의자들은 금욕의 삶을 살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단들의 주장을 보면 그럴듯해 보이며, 뭔가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곁눈질 하게 하다가 이단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은 복음 외에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구약에 나오는 모든 규례와 절기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구약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인격, 그의 삶과 가르침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을 따르는 것은 허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비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신비한 체험이 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지, 결코 신비한 체험이 아닙니다. 우리의 체험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되기 때문에, 체험은 아무리 그것이 신비한 체험이라도 체험일 뿐이지 결코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은사주의자나 신비주의자는 주님보다 자신의 체험을 더 앞세웁니다.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권위 있게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런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온전히 자라지 못합니다.(19절)
금욕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릴 것을 강조합니다. 절제하는 삶,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삶, 날마다 나는 죽는다고 고백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인간이 스스로 금욕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거룩한 삶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금욕주의의 삶이 우리의 육체를 괴롭게는 할 수 있겠지만, 내 속에 일어나는 모든 죄의 욕망을 끊게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결코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성숙해지거나 거룩해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하라,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머리를 붙들고 있을 때 자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을 때, 온전히 자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셋째는 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면, 주님은 나의 자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신기하게도 나를 이기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변화됩니다. 나의 힘으로는 절대로 나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할 때 새롭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눈과 귀와 마음과 가슴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 이외에 다른 것에 우리의 눈과 귀를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소리, 세상의 욕망, 우리를 현혹하는 그 어떤 이론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기 위해서 내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기꺼이 다 내려놓고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 순간 내 안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영적으로 혼탁한 시기에는 더더욱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놓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고, 주님께만 가까이 가는 성도들이 되어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