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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아침 해가 뜬다.
“은실아!”
“응?”
“준비 됐니?”
“뭐가?”
“아이 참! 오늘 떠나는 날이잖아.”
“맞다. 오늘이지. 드디어 세상구경 시켜주는 거야?”
“은실이 너만 믿고 가는 거니까 잘 달려주련. 네가 도중에 아프거나 퍼지면 난 울어버릴지도 몰라.”
“오빠! 나약한 소리 그만해. 오빠는 세상 누구보다도 강한 남자야. 오빠와 달린지 이제 300km지만 난 알아.”
“은실아! 누가 들으면 네가 여자 친구인 줄 알겠다.”
“호호, 오빠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선 피이…….”
“하하하. 그런가. 참. 은실아! 이제부터 네가 사진 모델이다. 자신 있니?”
“호호. 나야 뭐 항상…….”
나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오토바이 은실이가 좋다.
자신감은 당당함에서 나온다.
비록 말을 못 하는 오토바이지만, 나는 은실 이를 다독이며 세상을 향해 질주할 것이다.
아내는 아침을 성대히 차려준다.
“여보! 한 장 찍을 테니 서 봐요.”
“됐어요. 차린 게 뭐 있다고…….”
아내는 끝내 사진을 남기지 않는다.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요. 나 먼저 출근할게…….”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나의 시선이 무겁다.
아내와의 작별 인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 다시 올 길이기에 가는 걸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아내의 배려일 것이다.
출발하는데 대학생 아들이 주차장까지 내려온다.
“아버지 정말 가시네요.”
“그리 보이냐?”
“예, 이제 실감이 납니다.”
“맞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라. 용돈은 있니?”
“......”
아들에게 조금의 용돈을 건넨다.
출발하기 전에 용인 라이더스캠프점에 들려 엔진오일을 교환한다.
운전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는 센터 사장님과 기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한다.
수원에 잠시 들린다. 도청 앞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다행이다.
꽃이 응원해주는 이 화사한 봄에 떠나서.
다행이다.
바람이 가녀리고 하늘빛이 맑아서…….
은실 이는 목적지를 용인에서 만리포에 두고 달린다.
서해안을 따라 목포까지 내려간 다음 남해안을 타고 부산으로 건너가 일본으로 출발 하는 계획이다.
평균 시속 70km의 속력이다. 전방의 도로에 장애물이 있을 때 피할 수 있는 속도다. 은실이가 소화할 수 있는 속도다. 지나치는 풍경의 아스라함이 눈에 밟힐 속도다. 내 눈의 떨림에도 풍경이 떨지 않을 속도다.
시골길로 향하니 차는 없고 풍경은 온화하다. 논은 갈아엎고 밭은 비닐을 씌운 곳이 많다. 새로 시작하려는 봄의 다툼들이 꽃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들판에서도 저 물길에서도 펼쳐진다.
지나치는 바람에 묻은 흙냄새가 구수하다.
차는 알아서 추월했고 속력이 낮은 차는 은실이가 추월한다.
한 시간 여를 달리니 엉덩이가 아프다. 계속 정좌된 상태에서 운행을 하는 게 고역이다.
그 힘든 자전거도 타는데 이것은 사치다. 나는 힘들 때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시간을 생각한다. 다행이다.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해 봐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고통의 한계점을 안다. 이틀 만에 자전거로 제주도 완주를 했을 때가 그날 자정 무렵이었다. 나는 아스팔트 인도에 드러누웠다. 녹초가 된 몸의 뼈마디가 풀리고 검은 하늘이 들뜰 때 나는 몸의 한계가 찾아왔다.
마라톤을 마친 선수의 표정이 그랬을 것 같고, 철인 삼종 경기를 마쳤을 때의 느낌도 이와 같으리라. 지리산 종주를 마쳤을 때 에너지가 타들어가 뼛속까지 열기가 스며들어 어쩔 줄을 모를 때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날 지친 몸을 인도의 차가운 바닥에 맡겼다. 자정이 지난별의 무더기가 수없이 눈앞에 쏟아지던 밤이었다. 제주의 적요가 깊던 밤이었다.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평택 호에서 잠시 멈춘다.
호수와 산책로와 은실이의 조화가 아름답다.
나도 몇 장 찍어 보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라 자꾸 움츠러든다.
하릴없이 노니는 새들의 날갯짓과 물마루를 타고 흔드는 바람의 살랑거림과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의 풋풋한 미소가 티 없이 맑다.
다시 달려 태안 쪽으로 가는데 날이 어두워진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면 텐트를 칠 자리 찾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수당리쪽 마을길로 이동한다.
‘라면을 끓여 먹어야지’
라면을 사려고 가게를 찾는데 시골이라 가게가 없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발견한다. 계단식 묘지가 있고 아래쪽 잔디는 비어있다. 나는 그곳에 텐트를 친다. 외딴 집 개가 짖는다.
‘짖어서 너를 표현할 것이니 그래 너는 짖어라!’
텐트를 치니 배가 고프다. 아침은 빵과 우유로, 점심은 식당에서, 저녁은 하루건너 한 번씩 라면을 끓여먹고 하루건너 한 번씩은 사먹자고 계획을 세운다. 종일 오토바이에 앉아만 있는 게 일이라서 딱히 배가 많이 고프거나 그렇지는 않다.
라면이 없어서 가져온 누룽지를 끓인다. 혹시 맛있을까 싶어 고추장을 풀었는데 이런…….
사진을 찍어보니 청승이다. 이따금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란다.
공포를 잊고자 술을 마신다. 가장 큰 공포는 내 안의 잠재의식이다. 나는 안다. 나를 이기는 것만이 공포를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배낭에서 물건을 꺼내놓으니 다시 담을 일이 귀찮다. 텐트 생활 하루 만에 찾아온 귀차니즘이다. 여행은 부지런해야 한다는데 걱정이다. 저녁밥을 지어서 해 먹기는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풀빛님이 주신 미니 오디오를 켠다.
가곡이다. 깜깜한 어둠속 텐트에서 듣는 음악이 멋지다. 나는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글을 쓰려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글의 깊이를 넣기 힘들어서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종일 달리면 더 피곤할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달리는 게 일과가 될 듯하다.
세계일주 출발 첫날밤이 깊어간다.
여기저기 안부를 전하고 잠자리에 든다. 시간이 지나면 안부도 줄어들 것이고 그러다 해외에 나가면 내가 안부를 전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나의 오토바이 은실이도 길 가에서 고이 자고 있다. 추울까봐 커버를 덮어 주었다.
“은실아! 첫날 달려보니 어떠니?”
“......”
“말시키지 마?”
“.......”
은실 이는 이미 꿈나라에 들었나 보다. 긴 거리를 달려 왔으니 피곤할 것이다.
“그래 내일 보자. 잘자!”
무덤가 텐트에 한기가 서리고 새벽부터 나는 덜덜덜 떤다. 발이 시리고 볼이 시리다. 다행이다. 가슴이 시리지 않아서.
새벽에 잠이 깨서 커피를 끓인다. 버너의 온기라도 있어야 추위가 덜 느껴질 듯하다. 추위 때문에 뼈마디가 시리다. 누구라도 나타날까봐 무서운 것보다 추위가 더 고통이다. 야생에 적응이 되지못한 몸 때문이리라. 그동안 편해도 너무 편하게 살아온 티가 난다.
겨우 한 시간 눈을 부친 후에 여섯시쯤 일어난다. 수탉이 먼저 아침을 알리고 이른 해가 산에서 고개 내밀어 아침을 반긴다.
텐트를 열고 밖에 나가보니 서리가 하얗게 쌓였다. 일부는 서리 대신 이슬이 내려 마른자리에 앉는다. 텐트 안은 결로현상이 심했고 서리는 텐트 밖에서만 하얗다.
“은실아! 간밤 춥더냐?”
“응 조금. 오빠는?”
“나도 그렇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혼자 지어내곤 피식 웃는다. 은실 이는 잘 견디는데 나만 엄살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다.
텐트를 걷고 다시 출발하는데 보통 한시간정도가 걸리는 것 같다. 하루 텐트 생활하고선 벌써 귀차니즘 증상이 오려한다.
아파트 알뜰 장에서 장사할 때도 텐트를 걷고 치는 게 싫어서 못하겠다는 상인들이 많은데 딱 그 짝이다.
만리포에 도착한다.
‘정동진’에 빗대어 가장 서쪽에 있다는 ‘정서진’이라는 비석이 놓여있고 거기 만리포가 있다.
우리 아들 백일이 될 즈음이다.
“자기야! 우리도 휴가 가자!”
“차도 없는데 어디를 가요? 그냥 집에 있어요.”
휴가를 간다고 아기를 업고 텐트를 챙기고 버스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만리포까지 왔다가 하루 만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철수했던 곳, 백일도 안돼 보이는 아기를 데리고 휴가를 왔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던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어쩌면 신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것 없어도 사랑하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나이였으니까…….
한참을 달리는데 먼 곳에 경찰이 있는 게 보인다. 신호를 보니 적색이다. 나는 얼른 멈춘다. 이미 정지선은 넘겼다.
그래도 앞에 있는 보행자 신호등은 넘기지 않은 채 기다렸다가 갔는데 나를 불러 세운다.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면허증 주세요.”
“저기 저 신호보고 세웠는데요.”
“정지선 앞에 서야지요. 넘어서 섰잖아요.”
“저기요. 제가 지금 세계 일주를 가는데 일본으로 갈 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한번만 봐 주세요.”
“지금 장난하십니까? 빨리 면허증 주세요.”
“저기요. 저 면허증 없습니다. 이것 보세요. 이게 뭐냐면 국제 운전 면허증이란 겁니다. 이것은 여권이고요. 저 정말 세계일주 가는 거라니까요.”
“정말 없습니까?”
“예, 국제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어느 나라든 조약이 된 나라는 통과가 된다고 해서요.”
경찰이 갸우뚱한다.
“이런, 알겠습니다. 앞으론 조심 하세요.”
다행이다. 국제 운전 면허증을 이럴 때 쓸 수도 있구나. 그런데 위반한 것은 정말 미안했다.
군산을 들려 친구를 만나고 다시 정읍으로 방향을 튼다.
군산에서 정읍이 생각보다 너무 멀다. 어둠을 뚫고 달리느라 애를 먹는다.
몇 번이나 길을 헤매고 겨우 정읍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인다. 마른 북어가 참 맛있다.
“참! 벚꽃이 장관이라며? 내가 정읍고등학교 나왔잖냐. 가보자. 빨리.”
정읍고등학교 앞 가로수 길은 추억의 길이다.
벚꽃잎 흩날리는 가로수 길을 야간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귀가할 때면 기분은 한층 고무되어있는데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어 참 외로웠던 청춘이다.
그래도 고향의 벚꽃이 온통 나를 반겨줄 때 떠나서 다행이다. 먼 곳에서 친구의 문자가 온다.
-봄꽃이 온통 너를 배웅하는 구나. 잘 다녀와라.
다행이다. 문자 한 구절이 눈물겹다.
어떻게 이 많은 염려 앞에 나를 내 놓고 내가 젖은 눈시울 감추어가며 저 세상을 탐하고 돌아올는지…….
눈에 밟히는 그대들이 있어 나 떠날 수 있다네 고맙다.
찜질방에서 겨우 눈을 부친다.
다음날 나는 이평중학교 앞에 가서 이미 없어진 우리 집의 집터를 보고 이평 중학교 교문을 찍는다.
지난 강연 때 학생들과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다짐도 들어있다. 차마 교장선생님께는 문안을 드리지 못한다. 가야할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냥 가면 다시 오기가 편할까 싶어서…….
내가 고생했던 밭을 지나 태우의 빈 집터를 찍고 아버지 묘에 인사한다.
“아버지 저 세계일주 잘 다녀올게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아버지가 지켜 주세요. 저 그럼 갑니다.”
고부를 거쳐 줄포를 지나 오토바이는 어느새 함평 해안가를 달린다.
뼈해장국이 먹고 싶어 해변 식당에 들어간다. 맛있다.
은실 이는 어느 새 목포에 도착한다.
“은실아! 이곳까지 왔으니 우리 이곳에 사는 김 시인님 좀 뵙고 가자.”
나는 전화한다.
압해대교가 생기면서 압해도는 섬에서 탈출된다. 사진을 찍는데 경찰이 다가온다.
“압해대교를 오토바이타고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예? 통과하지 못한다는 문구 본적 없습니다만, 그럼 이따가 저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3초 동안 경찰은 고민한다.
“할 수 없지요. 이따가 나가세요.”
경찰의 말이 싱겁다.
김 시인님은 수업이 있어서 오래있지 못한다며 커피를 가져오신다. 압해도 초등학교에 잠시 들러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티 없이 맑은 모습들이 참으로 곱다.
김 시인님은 지방에 살지만 많은 활동을 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이렇게 뵙고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압해도 풍경은 조용하며 아늑하다. 오래 머물러도 편안한 섬일 듯싶다.
나는 은실 이와 압해도 끝에 있는 분재원에 간다.
천만 원부터 15억 까지 많은 분재가 있다. 입장료 오천 원을 주고 15억짜리 분재를 보았으니 비록 분재를 사오지는 못하지만 기분은 좋다.
다시 열심히 달려 강진까지 가려했지만, 날이 어두워져 나는 벌판 시멘트 바닥에 텐트를 친다. 라면이 참 맛있다. 논두렁 한가운데에서 끓이는 라면은 일품이다.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잠이 든다. 곧 있을 일본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는 불안의 연속이다. 잘 견뎌 나갈지…….
전기도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다.
텐트 안을 비추는 것은 작은 양초 뿐, 그래서 밤은 길고 어둠은 잠을 자도 끝이 없다.
날씨가 온화하면 잠이 깊어 새벽이 늦게 오는데, 잠을 설치면 새보다 일찍 일어난다.
가만 보니 새는 새벽 네 시면 울고 개구리는 자정이 돼야 잠이 드는 모양이다. 수탉은 여섯시가 돼야 이제 기지게 좀 켜야겠구나 하는지 그제야 온 동네가 시끄럽다.
나는 새와 비슷하게 일어난다. 그래도 밤 아홉시면 잠이 드니 7시간을 자는 것이다.
강진에서 보성으로 달리는 도로는 한산하다.
휴게소에 잠시 머물러 이도 닦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
다시 달리니 보성이다. 보성은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어서 통과하려다 다시 보고 싶어 핸들을 돌린다. 은실 이는 말없이 나를 태우고 보성으로 향한다.
펜션 편의점에서 먹을 만한 것이 있나 봤더니 없다. 라면을 집에 두고 와서 살까했는데 포기한다. 그리고 빵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대신한다.
녹차 밭이 있고 위로 산이 보인다. 오토바이를 타다보면 운동할 시간이 없다.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게 일이다 보니 시간이 있을 때 운동을 해 주어야 한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나는 산 정상까지 올라간다. 갑자기 뱀이 스르르 지나친다. 올 들어 두 번째로 뱀을 본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갔더니 길이 없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없는 길을 만들며 나는 꾸역꾸역 오른다.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정상은 멀고 땀투성이가 될 때까지 길은 없다. 마침내 정상이다.
그래도 경치가 아름다워 올라가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다시 달려 전에 보았던 녹차밭 입구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진해에서 스님 한 분이 친히 나를 배웅하겠다고 성주에서 내려와 기다리기 때문이다.
가다가 잠시 순천만에 들린다. 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다. 갈대숲을 찍은 사진이 예뻐서 나도 꼭 가보겠다고 생각을 한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돈을 받는다. 굳이 돈까지 낼 필요가 있겠나 싶어 들어가지는 않고 외곽을 돈다.
오히려 외곽이 더 운치 있다. 아무도 오지 않은 길이라 원 없이 사진을 찍고 원 없이 놀다가 출발한다.
갈대숲은 파도와 다름없다.
바다의 책장은 파도가 읽지만, 순천만에서 책은 갈대가 읽는다. 갈대의 책 읽는 소리가 수런거릴 때마다 새가 맞장구치며 읽고 은실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바람으로 듣고 눈으로 읽고 몸으로 느낀다. 내 몸의 언어가 갈대숲에서 들썩거릴 때 순천만 비포장도로의 요동은 온통 나의 몸 안에서 자지러진다.
날선 것들의 물비린내가 몸에 퍼지면 나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멍하니 오토바이의 스로틀을 당긴다. 당기면 달려가는 게 일이라서 은실 이는 말대꾸가 없다.
이 광활한 순천만에서 나는 왜 달리고 있는가?
‘바람같이 달려보자 은실아! 갈대같이 춤춰보자 은실아!’
“오빠! 진해는 언제 가? 스님 기다리시잖아. 아이 내가 못 살아.”
“참, 그렇지. 미안하다. 은실아 자. 달려!”
진해에 도착하니 온통 벚꽃천지다.
처음으로 온 진해지만, 이 아름다운 벚꽃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두 분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는 순대에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진해 구경을 갔다.
러시아부터는 이분들과 동행할 마음 맞추기였는데 이미 두 분은 동남아시아를 자전거로 다녀오신 분들이고 나만 동의를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일단 일본 일주를 혼자 해 보고 같이 유라시아일주에 합류할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진해 벚꽃을 보러 우리나라 전국에서 연인들은 다 모인 듯싶다.
특히 여좌천의 벚꽃과 개울에 매달린 오색우산의 어울림은 마치 중국 리장의 어느 연인의 길을 상상하게 한다.
어디를 가나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은 정말 멋진 모습이다. 이렇게 열정적인 민족이 브라질만 있던가? 우리나라도 이렇게 신명나는 나라가 아니던가?
시간이 없어 아쉽지만, 나는 부산으로 향해야 해서 두 분과 이별했다.
어머니께 간다는 인사는 하고 가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