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비슨달은 2011년 그의 논픽션 보고서 에서 세계의 여아 낙태 실상을 취재하고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여아낙태가 보편화되었던 한국과(1990년 성비 불균형은 자그마치 116.5에 달합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상황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죠.
2007년에 한국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출생 성비를 기록했습니다. 이전에 성비 불균형이 나타났다가 해소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 것이죠. 특히 아시아권에 만연한 성감별낙태 문제를 연구하던 인구통계학자들은 이 변화에 긍정적인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런 기대 중 대표적인 것이 2009년 모니카 다스 굽타의 논문. '경제 발전과 새로운 성 인지적 정책 공세가 공조하여 성차별적인 가치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한국의 출생 성비가 균형을 이뤘다'는 그의 논문대로였다면, 한국은 평화로웠겠지만. 그러나 마라 비슨달이 직접 취재한 결과는 다스 굽타의 낙관적 분석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여아가 더 이상 낙태되지 않은 이유를, 그의 취재결과를 근거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의 경제발전과는 별개로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여전히 남성 아래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경제활동과 사회 진출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죠. 조직 내부에는 유리천장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딸보다는 아들이 사회의 지위경쟁에서 더 유리한 성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성차별적 가치의 약화는 아직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성차별적 가치의 약화가, 출생 성비의 균형을 맞춰준 핵심 원인은 아닙니다.
둘째, 그렇다면 여아 낙태의 비율이 줄어든 원인이 무엇인가?
한국의 출생 성비가 균형을 맞췄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의 젊은층이 딸이든 아들이든 일단 아이 자체를 거의 낳지 않는다는 사실의 결과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안 되겠지요. 여아의 가치를 남아만큼 존중하는 사상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과 육아 양자를 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지 않는 사회 덕분에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었고, 결혼과 출산연령이 늦춰진 부부들로서는 여아 낙태를 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조차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일반적으로 자녀 두 명을 가질 것임을 전제하고, 첫째 아이가 딸이면, 둘째 아이가 아들이기를 기대하며 두 번째 임신을 준비했던(바로 이 두 번째 임신부터 본격적으로 여아 낙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에도 첫째 아이의 성비는 정상이었지만, 둘째 아이 이후부터 성비가 확연하게 차이납니다.) 90년대와는 달라졌습니다. 첫째 아이가 딸일지라도, 경제적 이유로 두 번째 임신을 아예 포기하는 부부가 늘었죠.
즉, 딸이든 아들이든 경제적 이유로 하나만 낳기를 원하게 된 가치관의 변화가 성비 정상화의 원인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성비 정상화는 성차별적 가치의 약화 덕분이 아니라, 냉정한 경제적 판단의 결과인 것입니다. 마라 비슨달이 인용한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 김두섭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출생률 저하가 매우 빨랐다', '따라서 부부들은 성별 선호보다 자녀 수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셋째,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만 가져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지난 몇 십년 간 남성 과잉의 인구분포 상황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경제적 불안감 때문입니다. 남성의 수가 늘수록 결혼하지 못하는 잉여 남성의 숫자도 늘어납니다. 마라 비슨달은 아들을 가진 부모가 의식적으로 저축을 늘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산이 많은 남성일수록 결혼하지 못하는 잉여 남성으로 남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 한국의 부동산문제도 겹쳐 있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온전히 결혼적령기 남녀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와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묘하게 남아선호사상과 얽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볼까요. 사실상 결혼 준비 단계에서 한국의 결혼적령기 남녀들은 부모의 자산에 기대게 됩니다. 결혼준비금의 대부분, 더 정확히 말해 신혼집을 마련할 예산은 부모에게서 나옵니다.
즉,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은, 여아를 낙태하고, 대신 남아를 선택하고, 선택한 남아에게 자신의 자산을 상속하고, 그리고 자신의 여아는 자산을 상속받은 타 가정의 남아와 결혼시키는 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마라 비슨달의 말을 빌리자면, '수만 명의 잉여 남성, 교육받지 못한 외국인 아내들의 유입, 가임 여성 감소로 인한 고령화 등 수십 년간의 잘못된 낙태가 남긴 끔찍한 여파를 겪고 있다.
' 그리고 이 수만 명의 잉여 남성들은, 역사상 가장 적극적이고 처절하게, '젊은 여성'에 특정하여 혐오를 외치고 있습니다.
자, 80년대 후반에 최고치를 달렸던 성비 불균형 출생 세대는 이제 결혼적령기의 남녀로 나이를 먹었습니다. (2015년 9월 시사인의 기획 기사에서는, 통계청 인구총조사를 근거로, 연애 시장 핵심 연령대인 20~34세 구간에 최소한 47만명 이상의 잉여 남성 인구가 국내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남자라서 선택받았던' 덕분에, 이제는 '결혼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 남자들끼리 경쟁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경제호황기는 저물고 긴 불황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결혼의 조건은 더 까다로워졌고요. 다수의 여자들은 이제 가사노동 외 경제활동과, 육아 둘을 병행해야 합니다. 다수의 남자들 역시 그런 여자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남자 과잉이었던 이전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은 덕이라도 보아서 결혼이 쉬웠지만, 경제활동까지 할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하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없어서. 더 이전 세대와 비교해보면, 중신 넣어 부모끼리 결정하면 그만이었던 결혼이 아니라, 연애라는 과정까지 필요해졌고. 결혼에 도달하기까지의 기간과 소요되는 노력이 역대급으로 길어진 것이죠.
뭐가 이리 힘드냐, 분명 이런 상황은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 원인을 분석하느니 '나를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게 마음 편하다는 남자들이 많아진 것이죠. 그렇습니다. '김치녀'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젊은 여자들은 남자의 능력만 따지는 천하의 개썅년들입니다. (물론 남자가 여자의 생식능력을 따지는 것은, 성욕을 가진 남자니까 당연한 일이고, 남자가 여자의 경제적 능력을 따지는 것은 재벌2세 드라마나 쳐보는 감성적인 여자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남자로서 당연하겠지요.)
여기서 마라 비슨달이 인용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홍콩 중문대학의 공동논문을 참조해볼까요. 성비의 차이가 1%높아지면 범죄율이 5~6% 올라갑니다. '중국의 젊은 남성이 늘어난 것만으로 전체 범죄 증가의 3분의1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연구는 남성 과잉 사회가 폭력과 범죄의 증가에 유의미한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여러 변인들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마도 한국은 연구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나라겠지요. 해결되지 않은 젠더 문제와 경제적 불안감이 연합할 때, 얼마나 비이성적인 젠더 혐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나라이니까 말입니다. 이번 강남역 사건은 여기서 예외일 수 있을까요?
강남의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여자'가 오기를 한 시간동안 기다렸다가 칼로 찌른 남자는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고 발언했습니다. 한 개인의 정신병력이 낳은 문제로 치부할 것인가,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례로 볼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한 개인의 정신과적 질환을 사회적 배경과 격리시켜 철저히 개인 차원의 문제로 보는 건 '귀신들려서 그렇다'와 비슷한 수준의, 근대 이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이 이 범죄자 행동의 배경에 있다는 것은, 비전문가인 저는 둘째치고, 어느 정신과 의사도 발언했더군요.
이 사건 이전에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만연한 여성혐오적 인식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김치녀를 비롯한 특정 단어들과 이별폭력 등의 사례를 통계로 잡아 수치화한 기사들이 증명합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모를까, 일련의 사회상을 두고 관계성을 짚어내지 못한다면(해당 범죄가 개인적이냐 사회적이냐를 떠나, 이 범죄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과 평범한 여성들의 반응은, 분명 다른 사회상과 관계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의도적 회피가 아닐지.
여기에 추가해, 이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수사가 종결된 이후,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병력에 의한 범죄라 결론내려진다 할지라도, 이 사건이 한국의 여성혐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한 사건임은 분명합니다. 왜 한국의 평범한 여자들이 이 사건을 접하고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공포를 느끼겠습니까?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그들이 전부 피해망상증세가 있어서일까요? 적어도 이 범죄 이전에 있어왔던 일련의 여성 대상 혐오 발언, 여성 대상 폭력 사건 등이 눈에 띄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습니다.
정신병자의 '여자가 무시해서 여자를 공격했다'는 행위가 이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정신병자가 아닌 평범한 남자들에게서, 그동안 같은 맥락의 공격성을 일상에서 겪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범죄를 사회적 맥락과 뚝 떼어내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의도적 회피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진 여성혐오는 정당한 것이고, 저 범죄자가 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은 그냥 미친놈'이라고 분리시키고들 있는 것이죠. 왜? '선량한 나는 앞으로도 여성혐오를 계속 할 거니까'.
이게 바로 이 사건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점입니다. 이런 분리로 자신의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는 한 이런 범죄는 계속 일어날 것이니까요. 살인 뿐 아니라, '김치녀' 혐오, 그 배경에 깔린 여성 비하, 그리고 이런 집단적 혐오에 비판의식을 가지지 않는 것, 모두가 그 본질은 같습니다. 같은 카테고리에서 서로 다른 행동으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남자의 가치를 여자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사회를 방관하고 살아온 결과입니다. 한국에 사는 남녀 모두는 회피하지 말고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까요.
세줄요약
1. 남아선호사상이 존재하는 나라인거까지는 알겠는데, 그게 왜 여성혐오로 이어지는지는 이해 못하겠다는 어느 클리앙 글을 보고 이 글을 썼습니다.
2. 남아선호사상이 남성 과잉 사회를 만들었고 잉여 남성 인구들은 결혼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여성혐오를 낳습니다.
3.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정신병력을 가진 자의 행동방식에서 오히려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봅니다. 또는 철저히 개인적인 정신병력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이 사건을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다수 여성들의 공포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http://m.clien.net/cs3/board?bo_style=view&bo_table=park&wr_id=46572835&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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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질듯 아오....
@쿠가야마 무네요시 아 이 댓글을 먼저봤어야하는데.. 게녀들은 보지마..ㅜ
와 이부분이 너무 공감 완전 말잘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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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정신병"을 가진 남자일뿐이라면 그 정신병을 가진 "남성"을 두려워하는 "여자"들은 모두 "과대망상증"환자인가..
이거 진짜 무서운 발언이다
크 남초에서 이런 글 쓰셨다면 이미 역적으로 몰려 남자들 특유의 집단린치 받으셨겠군..원문 안봐도 댓글 예상가능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