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추기원 회의, 차기 교황 논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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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로 조국 폴란드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손이 심하게
떨리고 걸음걸이가 불안한 교황의 모습이 유럽에 생중계되어 그간의 건강 악화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
전세계 카톨릭 추기경 183명 중 153명이 바티칸에서 5월 21일부터 3일 동안 진행된 추기원 회의에 참석했다. 이번 회의의 공식 목적은 ‘밀레니엄을 맞는 카톨릭 성직자의 전망’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교황 선출을 위한 예비모임’이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현지 언론에서는 교황 선출권자인 추기경들이 1994년 이후 7년 만에 모인 데다가
공식 주제가 다소 모호한 것과 81세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후임 교황 논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낳았다.
추기경들은 공식 주제인 성직자 활동방안에 대해 ‘회개와 쇄신을 통한 카톨릭 내
친교 강화’와 ‘종교간 대화와 협력’으로 결정지었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바티칸 시노드홀에서 비공개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중요한 연설을
한 장 마리 루스티거 파리 추기경이 후임 교황으로 유력하다는 설이 관측되고 있어, 적어도 차기 교황을 노리는 추기경들이 상대방을 면밀히 관찰하고 누가 교황감인지 가늠하며 교황이 되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기회로 삼은 회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20년간 바티칸 담당기자로 있으면서 교황의 순방에 항상 동행하고 있는 마르코 폴리티는 “지난 몇 달간 교황 후계자 논의를 위한 모임이 바티칸에서 종종 열리고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심각한 질환
요한 바오로 2세는 부활절 후 열린 일요일 미사에서 “해피 크리스마스”라고 축하의 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져서 치매가 오고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또한
폴란드에서 집전한 미사 때에는 손이 심하게 떨리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뿐
아니라 숨소리마저 고르지 못하고 힘겹게 몰아쉬는 모습이 유럽에 생중계되어 건강 악화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7년 전에 발병한 교황의 파킨슨병은 작년부터 눈에 띠게 악화되었다. 뉴욕에 있는
마운트 시나이 의학 학교 정신과장 워렌 올래노우 박사는 최근의 모습과 1년 전
교황의 비디오 테이프를 비교하면서 “목소리가 약하고 기운이 빠져 있다. 얼굴
근육의 마비로 인해 침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자세 또한 앞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으며 손을 떨고 있다”며 악화되고 있는 교황의 파킨슨병 증상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앓고 있는 파킨슨병이 그의 정신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파킨슨 환자가 치매를 앓은 후에도 수년 동안 생존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킨슨병이 치매로 진전될 경우 카톨릭의 교리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의 대리자’라는 교황의 권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는 바티칸 측은 언론이 교황의 건강상태를 밝히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추기원 회의 관계자들은 교황의 정신이 예전처럼 또렷했고 추기경들의 새로운 견해에 흥미를 보이고 현재 직면한 교회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고 전하며 치매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해명에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 파킨슨병으로 인한 잡다한 합병증과 장암으로 인해 교황직을 종신토록 수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며 현 교황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비치고 있는 일부 보도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의 신성한 임무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하여 사임 의지가 없음을 확고히 밝혔다. 바티칸 법에 의하면 교황은 종신직이며, 교황이 병들어서 퇴위하는 데 대한 어떠한 조항도 없다.
감금당한 채 치르는 교황선거
로마 교황은 전세계 10억 카톨릭 신자들의 수장이며 카톨릭 신자들에 대해 최고의 교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교황청 연감은 교황의 지위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규정했다. 게다가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카톨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를 자임하며 신앙적 차원을 넘어 인류가 안고 있는 정치적 당면 과제에
개입하여 교황의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이와 같은 지위와 종신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교황직은 후보자들인 추기경뿐 아니라 세계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밀폐된 장소에서 엄격히 격리된 추기경단에 의한 교황 선출’이라는 현행 선거방식 ‘콘클라베(CONCLAVE)’가 도입되기까지 교황선거에는 수많은 진통이
있었다.
3세기의 자료에 의하면 교황의 선거도 다른 주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지방의 성직자와 민중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즉 로마의 성직자들이 선거인단이고 이웃
관구의 주교들이 회의의 의장과 선거의 판정관 역할을 하고 일반인들이 찬성이나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때문에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분쟁과 분열이 비일비재했기에 세속적인 권력자가 질서를 유지시켜야만 했다.
이로 인해 교황선거에 황제권이 개입하게 되었다. 이 제도가 11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어 교황을 해임할 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해 지자 이에 반발한 교황은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개시했다. 마침내 1059년 교황 니콜라우스 2세가 추기경들이 선거를 주관하는 칙서를 공포했고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는 모든 추기경을 동등한 선거인단으로 정하고 투표수의 2/3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교황에 선출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발생하였다.
1268년 클레멘스 4세가 죽은 뒤 2년이 지나도 17명이나 되는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자 지역 행정관은 선거인단을 주교궁에 감금했고 주교궁의 지붕을
떼어내고 빵과 물 외에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마침내 추기경들은 그레고리 10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바로 ‘콘클라베’이다. 이 말은 ‘열쇠로 잠근다’는 뜻으로, 감금당한 채 치르는 선거를 두고 유래되었으나 현재는
교황선거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일반적인 콘클라베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교황이 죽으면 일반 교회행정에서 추기경회를 대표하는 추기경 재정관이 바티칸
궁전의 책임자가 되고, 교황이 죽은 다음날부터 교황선거회가 시작될 때까지 매일
아침 전체 추기경들이 모여 현안에 대해서 협의한다.
교황이 죽은 뒤 18일이 되면 교황선거에 들어간다. 교황선거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바티칸궁 선거장소는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며,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도 차단된다. 선거 장소 안에는 선거인단인 80세 이하의 추기경들과 그들의 비서,
의전 담당자들, 특정한 임무를 지닌 일정한 수의 다른 성직자들, 의사들, 봉사단만
들어갈 수 있다. 선거장소 내부는 작은 방들로 나뉘며, 추첨에 따라 추기경 한 사람 당 방 하나가 배정된다. 추기경들은 하루에 2번 시스티나 부속예배당에서 비밀투표를 한다.
개표가 끝나면 바로 투표용지들을 부속예배당에 마련한 난로에 넣어 태우며, 창문으로 낸 연통을 통해서 나오는 연기를 보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은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당선 득표를 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에는 투표용지를 젖은 밀짚과 함께 태워 검은 연기가 나게 하고, 교황이 선출되면 투표용지를 마른 짚과 함께 태워 흰 연기가 나게 한다. 2/3 이상 득표해야 교황으로 선출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변경한 규칙에 따르면, 12∼13일
뒤에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과반수 득표한 후보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까지 난무하는 치열한 선거전
종신제인 교황 임기의 특성상 차기 교황 후보들이 아직 공개적으로 야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나 순회 강연, 언론 인터뷰, 다른 추기경들과의 회동, 미사 등 각종 외부활동에 분주히 참석하여 얼굴을 알리고 있어 정치 유세장을 방불케 한다.
바티칸과 이슬람교의 외교관계를 담당하는 프란시스 아린즈 추기경을 비롯해 현재 10여 명의 추기경들이 이런 ‘사전 선거 운동’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에는 바티칸 전문기자 마르코 폴리티가 교황청의 일부 추기경이 중남미 지역의 젊은 추기경, 대주교 들과 차기 교황자리를 놓고 ‘사전 모의’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교황권을 둘러싼 이런 움직임은 올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LA타임즈는 5월 21일자 신문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심지어 TV 라이브 쇼에 출연하는 추기경도 있다”며 일부 추기경들이 차기 교황자리를 노리고 고요하면서도 치열한 물밑 선거전을 펼치고 있음을 보도했다.
24일에는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교황의 유력한 후보는 신학적 견지와 업적뿐
아니라 나이와 국적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즉, 교황 선출은 세계 정치 판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또한 추기경들은 젊은 교황이 선출되어 종신 집권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차기 교황 후보는 나이가 지긋한 추기경 가운데 뽑힐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현재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므로 차기에는
이탈리아 출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현 로마교구의 사목 대리직을 맡고 있는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68)과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밀라노 대주교(72) 등이 후보로 오르내린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에서 카톨릭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크리스토프 쇤보른 빈 대주교(56)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후보로 먼저 거론된 사람이 교황에 오른 적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상을 뒤엎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도 차기 교황에 접근했다고 할 수 없다.
실례로, 현재의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때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교황 선출 과정에서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는 까닭은, 일단 교황 후보로 거론되면 후보의 숨겨둔 자식이나 여자관계와 같은 비리와 스캔들이 순식간에 언론에
낱낱이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황직을 꿈꾸는 추기경들은 다른
추기경들의 비리를 평소 수집해 두었다가 라이벌 추기경이 막상 교황 후보로 거론이 되면 그의 부도덕한 면을 공개해서 교황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고 한다.
바티칸 전문가인 리처드 맥브라이언 신부는 “차기 교황을 꿈꾸는 인사들의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일들이 앞으로 많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비록 바티칸의 근엄한 추기경일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권을 향해 도전하는 것은 각국의 정치인과 비슷해 보인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병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 대권 야욕을 드러내는 추기경들의 행보에 대해 세계 언론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