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서면 본래 군서면은 1939년의 기록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여지도서"에서 보면 군서면에 월서화리. 은행정리. 금음동리. 동오리. 오동리. 서정자리 등 6개리가 소속되어 있었으며
1890년 "신묘장적"에는 군서면에 월서하리. 은행정리. 금음동리. 동오리. 오동리. 서정자리. 월이동리. 옥곤리. 각신리 등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08년 군면 조정때 군서일소면이라 하여 상동. 중동. 하동. 월곡. 군전. 오동. 서정. 옥곤 각신리 등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일소면과 이소면이 병합되면서 군북면 백석리와 전라북도 진산군 동이면 검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서면이라 하여 상중. 하동. 월전. 오동. 서향. 옥각. 금산. 동평. 사정. 상지. 은행. 사양리 등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49년 8월 13일 서정리와 옥각리를 옥천읍에 넘겨주어 10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면적은 47.84㎢이며, 옥천군의 서부에 위치하였다.
동쪽은 옥천읍에, 서쪽은 대전시 동구에, 남쪽은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북쪽은 군북면에 접하고 있다.
⊙ 동평리 원래 군서면 월서화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나 1908년 군서이소면 지역이 되어 상동, 중동, 하동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산리, 평촌리, 곡촌리, 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의 동 자와 평촌리의 평 자를 취하여 동평리라 하고 군서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부락은 동산, 벌말, 곡말 등이 있다.
⊙ 금산리 군서면 월서화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나, 1908년 군서이소면이 되면서 금천리와 증산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금산리, 증산리, 곡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의 금 자와 증산리의 산 자를 취하여 금산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금천리는 이 마을에 금이 많이 생산되었고 서대산의 높은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하천이 있기 때문에 금천이라 하였다.
증산리는 옛이름이 "시림이"로서 신라초기인 고시산군의 소재지 였다는 "시듬들"이라고도 부르는데 한자화하면서 시루증 자를 써서 증산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금천, 시림이, 음지서, 잿말 등이 있다.
⊙ 사정리 원래 군서면 은행정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다. 1908년 군서이소면이 되면서 행정리와 사기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사기리와 행정리 일부를 병합하면 서 사기리의 사 자와 행정리의 정 자를 취하여 사정리라 하고 군서면에 편입 오늘에 이른다.
사기리는 이마을에 고려때 부터 청자와 백자를 굽던곳이기때문에 사기점이라 하였다.
행정리는 이 마을에 살구나무가 많았고 또한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살구정" 하다가 한자화하면서 행정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사기점, 살구정, 마전동 등이 있다.
⊙ 상지리 군서면 사음동리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사양리와 상지리로 나뉘었다. 1908년 군서 이소면이 되면서 상보리와 지경리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상보리 와 지경리를, 그리고 전라북도 진산군 동이면 검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상보리의 상 자와 지경리의 지 자를 취하여 상지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 오늘에 이른다.
상보리는 마을의 옛 이름이 "상보거리"라고 하는바, 이는 조선 선조때 농사를 적극 권장하면서 물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군서들이 토지는 비옥하나 물관리를 제대로 못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당시 유명한 지리학자인 이도선이 이곳에 보를 막아 농사를 지으라 일러주어 해마다 풍년이 들게 되었고,
이 보가 맨위에 있다하여 "상보거리"라 부르게 되었고 이를 한자화 하면서 상보라 하였다. 지경리는 마을 이름이 "지경소"라 하는데 이는 마을 앞에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하천을 경계로 하천건너편은 도를 달리 하기때문에 "땅이 경계되는곳"이라 하여 "지경소"라 부르다가 한자화하면서 지경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상보거리, 지경소가 있다.
⊙ 은행리 원래 군서면 은행정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사정리와 은행리로 나뉘었다. 1908년 군서이소면이 되면서 상은리와 하은리로 나뉘어 졌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상은리와 하은리를 병합하여 은행리라 하였다.
은행리라 부르게 된것은 원래 이 부락의 이름이 "양심이"라 불러왔는데 조선초기에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이 마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으니 "양심이"라 하지말고 "은행리"라 부르면 잘 살게 될것이라 하였기 때문에 은행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자연부락은 양심이, 윗양심이 뿐이다.
⊙ 사양리 원래 군서면 사음동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상지리와 사양리로 나뉘었다. 1908년 군서이소면이 되면서 사음리와 백양리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사음리와 백양리, 하은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음리의 사 자와 백양리의 양 자를 취하여 사양리라 하여 군서면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부락은 서성골, 마실미, 뱀골, 논골 등이 있다.
⊙ 상중리 원래 군서면 동오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하동리와 상중리로 나뉘었다.
1908년 군서일소면 지역인데 상동리와 중동리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상동리와 중동리를 병합하여 상중리라 하였는데 상동리의 상 자 중동리의 중 자를 취하여 상중리라 하고 군서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부락은 새터말,능곡,분터,안동오리 등이 있다.
⊙ 하동리 원래 군서면 동오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상중리와 하동리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1908년 일소면과 이소면이 일소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일소면괴 이소면이 합하여 군서면이 되고 동오리를 둘로 나누어 상중리와 하동리가 되었다. 하동리라 부르게 된것은 동오리의 아래쪽에 있다하여 하동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마고실, 마리들, 새터, 옥녀봉 등이 있다.
⊙ 오동리 원래부터 군서면 오동리였다. 1908년 군서일소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혼평동, 무림동, 점촌동을 병합하여 오동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 오늘에 이른다. 오동리라 부르게 된것은 풍수설에 *오동제월*이라는 명당자리가 있어 오동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은 무중골,질벌, 점말, 도래말 등이 있다.
⊙ 월전리 원래 군서면 서정자리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월전리와 옥천읍 서정리, 옥각리로 나뉘었다. 1908년에 군서일소면이 되면서 월곡리와 군전리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월곡리와 군전리를 병합하여 월곡리의 월 자와 군전리의 전 자를 취하여 월전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월곡리는 이 마을 옛이름이 "다리골*이었는데 이를 한자화하면서 월곡리라 하였다. 군전리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을때 군대가 많이 주둔하였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 한다. 자연부락은 다리골, 군전이, 음지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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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요 반갑다 ,뿌리를 알고 이해하게 되여 속이 시원하다~
광재야! 정감어린 우리 고향의 귀중한 자료를 올려주어 고맙다.그저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고향의 지명 하나 하나가 이런 지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니 ............내 자료실에 퍼갈께 .
와요! 정말로 진귀한 자료이네 어쩜 전혀 알지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사는 조상님들 세상을 알게 하네(^^)
동오리 안동오리 군전리 라는 말을 많이 드러서 지나쳤던 지명들을 역사를보니 이해가 가는구먼 친구 진귀한 자료잘보았다 . 나의 자식들에게 부모가 살던곳에 이야기해줄수있는 내고향 역사 자료주어 고마워
친구들 다들 오랫만이네 방가^^* 그런데 월전리가 군서면으로 들어갔었나? 나는 군서가 오동리 부터인줄 알았네 그런데 월전리 친구들은 학교도 옥천으로 다녔는데.......와요 감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