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를 심어 놓고
시월 넷째 금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고향을 찾아 큰형님의 대봉감 수확을 돕고 돌아온 후기를 남겨 놓고 날이 밝아오기 전 텃밭으로 향했다. 엊그제 남산재를 넘어 진례 송정리로 나가 종묘상에서 사다 둔 양파 모종을 챙겨 길을 나섰다. 시골 형님댁에서 마련해 온 비닐과 비료를 챙겨감도 잊지 않았다. 도청 광장 앞을 지나니 거리의 가로등 불빛 아래는 낙엽이 뒹굴었다.
사파동 축구센터 텃밭으로 오르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무렵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경작하는 텃밭 단지에서 근래 가장 관심사는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이다. 관개 시설이 여의치 못한 한시적인 텃밭인지라 가뭄이 오래도록 지속되니 토양에 함유한 수분이 줄어 작물들을 목이 타게 마련이다. 특히 가을 채소를 대표하는 무와 배추는 이즈음에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다.
텃밭 단지 가운데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웅덩이가 하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같이 이른 시간에 텃밭에 닿으니 밤사이 웅덩이에는 물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다. 들통과 커다란 주전자로 물을 길어 와 비탈의 언덕을 오르내리길 몇 차례 반복하면서 무와 배추에 물을 주긴 주어도 흠뻑 주진 못하는 처지였다. 마지막 한 통은 아껴 놓고 준비한 양파 모종 심기를 먼저 해야 했다.
고구마를 캐고 나니 겨울을 맞을 텃밭은 여유 이랑이 많아져 이듬해 봄까지 마냥 놀릴 수가 없었다. 비워둔 땅이 없이 무슨 작물이든지 싹을 틔워 가꾸면 잡초는 기본적으로 관리가 되기에 한 구역에 양파를 심어볼 요량이다. 이미 땅을 파 일구어 퇴비를 뿌려 놓았더랬다. 이번에 가져온 비료를 흩어 뿌려 흙을 잘게 부수고 양파나 마늘을 전용으로 심는 구멍이 뚫린 비닐을 덮었다.
이랑에다 덮어씌운 비닐 구멍에 여린 양파 모종을 하나씩 심어 나갔다. 젓가락보다 작은 양파의 싹은 뿌리가 활착되면 겨울을 넘겨 내년 봄에는 폭풍 성장을 해 주먹만 한 양파가 달리지 싶다. 종묘상에서 준비한 모종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의 적당한 양이었다. 양파 모종과 함께 구한 상추 모종을 몇 포기 곁들여 심고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줌으로써 텃밭 일은 마쳐졌다.
새벽부터 텃밭으로 나와 채소 물주기와 양파 모종 심기를 끝내고 나니 점심나절이 다가오려면 시간이 남았다. 텃밭에서 법원 근처로 내려가 허기가 느껴져 새참인지 점심인지 모를 국수를 들었다. 집으로 곧장 귀가하지 않고 한 군데 더 들릴 곳이 있어서였다. 허기를 때우고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주남저수지를 둘러 가술로 갔다.
일전에 내가 채집해 온 죽동 천변 산수유 열매를 다시 따기 위함이다. 먼저 따다 놓은 산수유 열매는 씨앗과 과육을 분리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아 조금 까다가 멈춰 놓았다. 산수유 열매에 독성이 있다는 씨앗을 하나하나 손으로 벗겨내려니 손톱 밑이 아려왔다. 그러함에도 산수유 열매를 더 따러 나감은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가 따주면 어떻게든 먹어볼 생각이 있다고 해서다.
대산 들녘을 관통해 흐르는 죽동천 천변 산수유나무는 이른 봄 노랗게 핀 꽃마다 이 계절에 빨간 열매가 조랑조랑했다. 지난번 내가 열매를 따 간 이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아 그 많은 열매는 여전히 그대로 달려 있었다. 나는 천변의 산수유나무로 다가가 가지마다 달린 산수유 열매를 주섬주섬 따 모았다.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고도 산수유는 양이 제법 되었다.
산수유 열매를 배낭에 채워 담아 천변에서 들녘을 지나니 농부는 벼를 거둔 논에서 뒷그루 심을 준비를 했다. 대산 들녘은 예전 겨울철은 비닐하우스에 수박 농사를 많이 지엇으나 근년에는 당근으로 바뀌었다. 당근 역시 벼를 거둔 뒷그루로 비닐하우스에서 싱그럽게 키워 늦은 봄날에 캤다. 신전 종점에 다가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산수유 열매는 친구에게 넘겼다. 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