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수좌
가끔 숲에서 뻐꾸기가 운다. 선실에 앉아서 듣는 새소리는 정겹다.
아침 햇살이 선창에 내릴 때 지저귀는 소리는 맑고 깨끗하다.
또 해질 녘에 먼 숲에서 들려오는 산비둘기 소리는 어쩐지 애달프다.
한 번씩 산꿩이 푸드득 날개짓을 하며 상수리 숲을 차고 오른다. 이 놈은 몸체도 아주 크다.
그 소리가 얼마나 힘찬지 온 숲을 찌렁찌렁 울리고도 남는다.
화두가 성성할 때는 이 놈의 소리에 깜짝깜짝 화두를 놓친다.
간간이 졸음이라도 쏟아질라치면 “꿩 꿩“ 하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스님들은 이 산꿩을 같은 대중으로 생각한다.
아침 입산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뒷숲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힘차게 소리를 낸다.
그러면 스님들은 ”또 꿩 수좌가 왔군“ 한다.
처음에는 정진에 방해가 되니 어디론가 쫓아 버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몇 분 스님이 ”전생에 머리 깎고 공부하던 수좌의 후신인가 봐요. 한 철 정진하러 온 모양입니다.“ 하여 꿩 수좌가 되었다.
꿩 수좌는 스님들을 경책하는 데는 일등이다.
나른한 오후에 스님들이 졸고 있으면 선실 앞에까지 내려와서 소리를 낸다.
이 꿩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스님이 잠을 방해한다며, 돌팔매질을 여러 번 해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킨다.
이상하게도 방선 시간에는 조용하다. 그러다가 꼭 좌복에 앉는 시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날개짓을 한다.
다각 스님이 율무를 끓이고 남는 찌꺼기를 아침마다 꿩 수좌가 사는 숲에 뿌려준다.
그러면 남기지 않고 깨끗이 공양한다. 공부를 게을리 하던 어떤 비구의 후신이라는 말이 꼭 사실 같다.
그래서 꿩 수좌의 울음소리는 날마다 장군죽비 경책보다 더 따끔하게 다가온다.
목탁새도 그렇다. 나무를 따르르 쪼아 대는 소리가 울력 목탁을 치는 소리와 사뭇 비슷하다.
입선을 알리는 목탁 소리까지 흉내낸다.
청명한 날은 따르륵 하는 소리가 진짜 목탁처럼 여운을 남기면서 숲을 빠져 나간다. 딱따구리라고 불리는 이 놈은 얼마나
부리가 견고한지 순식간에 나무를 뚫어 구멍을 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 주로 목질이 약한 오동나무 숲에서 산다.
홀딱벗고새는 또 소리가 우습다. 정확한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스님들 사이에서는 “홀딱벗고새”로 통한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홀-딱-벗-고.”이렇게 소리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는 새소리다.
이 새소리에 다른 말을 대입시키면 또 그럴 듯하게 들린다.
우리는 업습으로 생각하고 듣는 것 같다.
똑같은 새소리를 두고 어떤 이는 “운다”고 말하고, 어떤 일는 “노래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모두 전생에 익힌 습관 탓이다.
그러고 보면 업식의 잣대가 우리 사고의 기준인 것이다.
그것은 같은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과 같다.
알고 보면 빈말도 함부로 할 게 아니다. 업이 그 쪽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산까치소리가 들리는 날은 괜히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반갑게 찾아올 도반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만큼이나 이를 모를 새들도 많다. 모두가 방함록에 오르지는 않았더도 내 도반들이다.
출처 ; 현진 스님 / 삭발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