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공동 진출은 가능할까. ⓒKFA |
기억은 기록이 되고 추억은 역사로 남는다. 기억과 추억은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의 진행형이다.
한국대표팀이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이 6월7일 새벽 1시15분에 원정경기로 열리는 UAE전을 승리한다면 사실상 본선 진출을 확정한다. 원정 부담은 있지만 UAE가 최하위로 전력이 떨어지는데다 탈락이 확정돼 한국의 우세가 예상된다. 한국이 UAE를 잡는다면 6월10일과 17일 사우디아라비아전, 이란전에서 최소 1무만 거두더라도 본선행 티켓을 쥘 수 있다. 6월6일 북한이 평양에서 이란을 잡고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는 경우다. 한국은 사우디전과 이란전을 홈에서 치른다.
한국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다. 2위 그룹인 사우디(현 4회) 일본(3회)과의 격차를 확대 혹은 유지하는 셈이다. 시선을 세계축구계로 돌려도 흔치 않은 일이다. 단 한 차례도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일이 없는 브라질(18회)을 비롯해 독일(14회) 이탈리아(12회) 아르헨티나(9회) 스페인(8회)에 이어 6번째로 7회 연속 본선행에 성공한 대표팀으로 기록된다. 6회 연속 본선행에 머문 잉글랜드 벨기에 멕시코에 앞선다.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은 FIFA 회원국을 통틀어 6번째의 일이다. 사진은 2006월드컵 프랑스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박지성ⓒ게티이미지 |
대표팀 입장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일이지만 월드컵 본선행과 해당 국가의 축구 인프라와 경쟁력이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냉정한 시선을 요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아시아 최초, 남북한 최초
사상 첫 남북의 월드컵 본선 공동 출전이 가능할지도 관심이다. 북한은 승점 10점으로 사우디와 동률인 가운데 골득실에 앞서 2위에 올라있다. 북한이 6월6일 이란전(홈)과 17일 사우디전(원정)을 모두 승리하면 자력 본선행이 가능하다. 또 이란전에 승리한다면 사우디전에 패배하더라도 최소 조 3위를 확보,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획득한다. 북한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중 한 팀과 경기를 치른다. 승리할 경우 오세아니아 1위를 확정한 뉴질랜드와 최종 플레이오프를 벌인다.
2010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간 순위. 호주와 일본의 본선 진출이 확정적이다.ⓒFIFA |
북한이 본선에 직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이 마지막 2연전을 펼치는 사우디와 이란을 잡아야 북한의 본선 직행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최종라운드를 치르는 6월17일 한국과 이란, 사우디와 북한전의 결과에 따라 북한의 희비가 갈릴 공산도 크다. 한국이 이란전을 앞두고 본선행을 확정할 경우 이해득실을 놓고 논란이 이는 미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경우 역사상 최초의 일이 된다. 아시아 최초의 8강 진출국(북한)과 4강 진출국(한국)이라는 사실을 떠나 남북한의 얽히고설킨 씨줄날줄을 비출 때 사상 첫 남북한의 월드컵 본선 공동 진출은 그 자체로 의미와 파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최다 해외파 발탁
허정무 감독이 2010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월 마지막 레이스를 앞두고 발탁한 선수는 모두 25명. 최종예선전 경기 엔트리 18명을 훌쩍 뛰어 넘는 규모다. 허정무 감독은 이번 명단 중 7명의 선수가 옐로우 카드를 1장씩 받고 있어 경고 누적에 대비해 선수단 규모에 여유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선수 7명은 박지성, 조원희, 기성용, 김동진, 이영표, 오범석, 정성룡이다. 이 선수들은 경고를 추가로 받으면 다음 한 경기 출전이 불허된다.
허정무 체제 출범 이후 최다 해외파인 10명이 엔트리에 포함됐다.ⓒKFA |
이번에 발탁된 선수들은 2010월드컵 본선 멤버의 뼈대이기도 하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지역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장기간 지켜본, 검증한 골격을 유지하는 한편 선수단의 긴장감을 유도하고 부족 포지션에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뉴 페이스 발굴에 중점을 두었다. 큰 뼈대는 유지하면서 부분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뜻으로 이러한 흐름은 인적, 시간적 여유를 고려할 때 본선까지 이어질 공산이 짙다.
이번 명단은 대표팀이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망라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 구성이다.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 최다 해외파가 발탁됐다. 박지성(맨유) 신영록(부르사스포르) 박주영(AS모나코) 조원희(위건) 이영표(도르트문트) 오범석(사마라) 김동진(제니트) 이근호(이와타) 김근환(요코하마) 이정수(교토상가) 등 10명의 해외파가 대표팀에 선발됐다. 조재진(감바 오사카) 설기현(알 힐랄) 등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가용 가능한 해외파를 총출동시킨 셈이다. 유럽리그가 종료하고 평가전을 포함해 4경기를 연속해서 치르는 6월 일정이 해외파를 활용하고 점검할 적기라고 판단한 허정무 감독이다.
2010월드컵 최종엔트리가 보인다
실제 최종예선이 끝나면 월드컵 본선 개막 전까지 해외파를 포함한 대표팀 소집 훈련 기회가 많지 않다.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소집 규정에 따라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내년 1,2월 중 3주간의 소집훈련이 가능하지만 국내 규정의 구속력이 미치지 않는 해외파들의 합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월드컵 본선이 개막하는 30일 전 소집훈련에야 해외파의 합류가 가능하다. 허정무 감독에겐 이번이 해외파들을 점검하고 본선에 대비한 마지막 퍼즐의 윤곽을 그릴 수 있는 적기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소집 대상인 25명이 월드컵 본선 엔트리인 23명과 얼추 규모를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인한 이탈과 프로리그 활약을 발판으로 한 대표팀 입성이라는 기회의 변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번 소집 명단이 남아공 땅을 밟을 주축 자원이라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곽태휘, 강민수, 황재원의 잇따른 부상으로 공백이 발생한 중앙 수비진의 불안 요소는 여전하지만 이는 중장기적으로 대처할 대목이다. 일단 부상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이번 엔트리에서 주목하는 곳은 공격라인이다. 윙과 세컨드 스트라이커는 상대적으로 자원을 확대했지만 최전방은 고민이다. 측면 공격은 전북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3년 만에 대표팀에 재입성한 최태욱과 스피드와 돌파가 장점인 배기종의 합류로 활로를 모색한다. 최근 호조를 보이는 박주영과 이근호가 발탁된 세컨드 공격수 자리도 활용 카드가 상대적으로 넓다. 고민은 양동현과 유병수, 신영록 등이 포진할 최전방 위치다. 양동현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센터포워드가 아니다. 폭넓게 움직이며 공간을 확보해 골을 잡아내는 유병수와 신영록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심이 모이는 배경이다.
파괴적인 신인 유병수, 대표팀에서는?
공격전술과 배치에 시선이 가는 동시에 무서운 신인 유병수의 대표팀 존재감에 눈길이 향한다. 인천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유병수는 올 시즌 신인왕 후보 1순위다. 컵 대회를 포함해 14경기에서 6골 3도움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경기당 0.62개의 공격포인트로, 신인 시절 득점왕에 오른 86시즌 함현기(현대/0.54개) 95시즌 노상래(전남/0.67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탁월한 집중력이다.
무서운 신인으로 불리는 유병수의 대표팀 활약에 관심이 모인다.ⓒ인천 |
역대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은 박주영의 2005시즌 경기당 공격포인트 0.73개와 비교하더라도 크게 뒤지지 않는 폭발력이다. 시대와 상황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직접적인 비교는 곤란하지만 스트라이커 부재에 근심한 국내 축구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대를 한층 더하는 재목의 출현이다.
문전에서의 움직임이 특이하다. 몸과 스텝의 변화로 수비진을 흔든다. 때문에 혹자는 유병수를 인천의 C.호나우도라고 부른다. 슈팅의 파워나 임팩트의 정확도가 뛰어나다. 슈팅을 하기 위한 동작이 빠르고 힘 있다. 허정무 감독은 이 때문에 유병수를 캐논슈터의 원조 노상래와 견준다.
비교 대상이 중요하지는 않다. 유병수의 활약이 그만큼 두드러졌다는 방증이다. K리그에서의 파괴력이 대표팀에서도 통할지가 관심이다. 이는 두 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유병수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의 마련과 유병수 스스로 대표팀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유병수의 말처럼 박지성, 이영표 등 선배들과 한 팀에서 뛰는 것은 영광이지만 필드에 서면 승리를 위해 뛰는 동료일 뿐이라는 마음을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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