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베이징올림픽 대망의 남자유도 결승전에 나선 왕기춘. 하지만 그는 예선전에서 입은 부상 때문이었는지 13초 만에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경기 후 그가 남긴 인터뷰의 내용은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누구보다 힘든 훈련과 노력을 통해 국가대표선발전, 올림픽 예선을 완벽하게 치러낸 그였지만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왕기춘은 2인자, 은메달리스트였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일등’, ‘수석’, ‘금메달’ 을 너무 좋아하게 됐다. 갚진 노력으로 얻어낸 2등보다 어떠한 수단(긍정적, 부정적)으로든지 1등에 올라선 한사람만을 기억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개그프로에서 누군가 외쳤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한낱 웃음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던 개그프로의 대사가 유행어가 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의 병폐를 콕 집어 말해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1등만 기억하고 최고만 대우를 해 준다. 앞서 보았던 스포츠에서의 금메달 지향주의 외에 1등 지향주의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취직하기도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초, 중, 고, 대학 할 것 없이 성적이 우수한 일등만이 모두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책도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다. 또한 일례로 최근 벌어진 카이스트 자살 사태는 1등만을 원하는 지나친 경쟁의식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설 곳이 없어지게 된다. 1등이 아니면 모두가 ‘루저’로 기억되는 세상이다. 그러니 모두들 1등이 되고, 최고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일등에 목말라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겠지만 기업 간의 무한 경쟁 구도,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노력에 대한 성과나 과정보다는 누군가를 누르고 최고가 되는 것, 결과를 치켜세워주는 무한경쟁 구도는 1등을 최고로 여기는 풍조를 이끌어 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업에서는 1등주의를 기업의 모토로 내걸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굴지의 기업인 삼성을 들 수가 있겠다. 물론 결과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삼성의 1등주의 모토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어떠한가? 1등이라는 대기업 아래에서 도산되는 몇 백, 몇 천의 중소기업, 인정이나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빡빡한, 효율성만을 기업시스템은 삼성의 여러 직원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기업 간의 무한 경쟁 구도에 따른 1등주의의 폐해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창조성’. ‘창의성’ 이라는 말이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창조적 인재가 중요하고, 기존의 기업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등장하면서 ‘스펙’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너도 나도 스펙경쟁이라는 현실에 치여 쉴 틈 없이 자격증이 되었든 갚진 경험이 되었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스펙, 자기계발의 시대는 궁극적으로 1등을 최고의 삶의 가치로써 이야기한다.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은 1등이라기보다는 행복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일등이 행복의 조건인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함양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이런 순서를 잊어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서로 돕는 마음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 이제 미덕은 남들보다 자기 스펙이 뛰어난 것이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계속 된다면 사회는 점점 흉흉하고 1등만을 더 치켜세울 것이다. 문제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인 것 같다. 어떤 사회든,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경쟁이 있다면 1등도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평등한 경쟁의 규칙이 필요할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지킨 1등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는 건 정당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일등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필요 없다는 생각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사회과학적인 글의 목적은 인과관계를 밝혀야 합니다. 왜(why)에 대한 답이 나와야 되며, 그 다음은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 사회과학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