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 깡패집단으로 전락하려는가
# 장면 1: 2010년 3월 21일 미국 국회의사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건강보험법’ 제정에 정치 생명을 걸다시피 전력투구 했다. 야당인 공화당은 결사 반대했다. 그러나 하원은 이날 투표로 의결했다. 하원은 집권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전원이 반대표를 던지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끝냈다. 공화당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이 문제를 다시 이슈화하는데 성공,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다수결 원칙에 의해 건강보험법은 의결됐지만, 국민은 중간선거에서 투표로 심판을 했고, 공화당은 다수당이 된 것이다.
# 장면 2: 2010년 10월 27일 프랑스 국회의사당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노동계가 총파업을 벌이고 300여만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며 반대했다. 나라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야당도 맹렬히 반대했다. 야당은 대체입법안 500여 개를 제출,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필리버스터도 구사했다. 그러나 하원의장은 이날 토론 종료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표결에 부쳤다. 야당은 반대표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장면 3: 2010년 11월 2일 미국 국회의사당 21선의 중진인 찰스 랭글 미 하원의원이 이날 하원 의장석 앞으로 불려나왔다. 그는 동료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채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으로 대표적 친한파이자 올해 80세의 고령인 랭글 의원이 왜 이런 수모를 겪었을까? 하원 윤리위원회가 탈세 등 윤리규정위반혐의로 그에게 ‘공개질책’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 공개질책은 의원직 박탈 다음으로 무거운 징벌이다.
# 장면 4: 2010년 12월 8일 다시 미국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가 이날 큰 일(?)을 저질렀다. 2011회계연도 정부 지출 잠정안을 의결하면서 의원들이 요청한 약 4만 건에 이르는 선심성 지역 예산 150조원을 모두 잘라 버린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내년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는 부패 관행’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들의 이른바 ‘선심성 예산과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하원은 ‘선심성 예산 전액 삭감’으로 이에 응답한 것이다.
# 장면 5: 2010년 12월 8일 같은 날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309조567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실로 8년 만에 정기국회 회기 안에 예산안이 처리된 것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 안팎에서는 집단 폭력이 난무했다. 여야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뒤엉켜 피 터지는 싸움판을 벌였다. 조폭깡패들의 패싸움 같았다. 18대 국회는 매년 패싸움을 벌였다. 다행히도(?) 올해는 해머나 전기톱이 안 보였을 뿐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급하게 일 처리를 하다가 중요한 예산을 빠뜨렸다고 대소동이다. 일부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외투쟁에 나섰다. 여야의원들은 그러나 난장판 속에서도 챙길 것은 다 챙겼다고 한다. 도로, 항만, 주택정비 등의 선심성 예산을 정부안보다 6779억 원이나 증액시켰단다. 이른바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들은 대거 예산에 반영됐고 증액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 놓고도 서로 삿대질이다. 서로가 네 탓이라고 떠들고 있지만 결국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지난 11월 19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내뱉은 얘기 두 토막을 소개한다. ‘창피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뗐다’, ‘옛날에는 국회의원이 물에 빠지면 그냥 죽으라고 놓아두고 민간인만 건졌는데 요즘은 물이 오염될 까봐 국회의원부터 구조한다’. 이 정도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11월 26일은 북한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한지 사흘 뒤다. 이 와중에도 국회는 슬그머니 의원 세비를 내년부터 5% 인상, 1억 1870만 원으로 만들었다. 여야 의원들은 ‘청목회 면죄부’ 입법을 위해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려 했다. 여론의 뭇매를 얻어 맞고 일단 연기했다. 그 내용인즉 대가성에 관계없이 단체회원 후원금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청목회 로비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틈을 타 이런 짓을 하려 한 것이다. 연초에는 1인당 매달 120만원씩 국민의 혈세로 연금을 타먹겠다고 국회의원 연급법도 소문 없이 개정한 일도 있다.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가 무엇인가?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법이 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다수결 원칙에 따라 의결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다수 여당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소수 야당의 주장을 경청하고 타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어떤 반대라도 합법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의사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야 모두가 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다음 선거에서 있을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할 것이다.
국회가 폭력만은 영원히 추방해야만 한다. 우리 국민도 이제부터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국회의원은 무조건 낙선시켜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고,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갖추려 애쓰는 선진국 국회의 모습들을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부러워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국회의 선진화는 다른 어떤 선진화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정치가 선진화하면 다른 분야의 선진화는 훨씬 더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선사연 칼럼 전체 목차와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십시오. → [선사연 칼럼] |
필자소개
김강정 ( kims7007@paran.com )
(전) MBC보도국장, 경영본부장, iMBC사장, 목포MBC사장
(전) 우석대 초빙교수, 수협은행 / 방송광고공사 사외이사
(현) 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현)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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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언론인이다. 공감하면서 국회가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