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는 여행객들이 주로 몰리는 곳은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이다. 바다 위에 올망졸망 떠있는 듯한 모습이 보기에도 좋지만 그런 천혜의 자연경관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 같은 것도 작용을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주말을 이용해 이들 섬을 다녀올 생각으로 길을 나서면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잦단다. 고군산군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승선표가 매진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군산여객선터미널. 승선 시간을 기다리느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의 눈길이 한결같이 머물렀다 가는 곳, 바로 좌측 출입문 위 공간이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풍경사진 하나 때문이다. 항공 촬영한 사진 같기도 하고, 혹은 높은 산봉우리에 애써 올라 촬영한 듯한 고군산군도 전경. 푸른 바다 위에 올망졸망한 섬과 그 섬들을 연결시켜 주는 몇 개의 다리. 터미널 안 여행객 대부분이 바로 그 고군산군도 중 선유도를 찾아가는 까닭이어서 유난히 관심들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미래를 보여 주는 청사진’이라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망조(亡兆)’라 일컫는 새만금 공사가 어찌될 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고군산군도 특히 선유도의 모습이 어떻게든 변하지 않겠습니까? 격포 채석강 전망대에서 빤히 보이는 거리에 있는 섬들인데. 그전에 한 번 눈여겨보자고 찾아가는 길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첫 고속버스 편으로 왔다는 한 서울 남정네의 이야기인데, 바다 위에 그린 듯 올라있는 그 풍경이 보기에 좋기도 하려니와 그런 천혜의 자연경관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같은 것도 작용을 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새만금’ 후의 이야기지만, 서울에서 보자면 가까운 거리의 섬 마을은 아니니 어렵사리 찾아왔을 그 심정이 이해가 됨직도 하다.
고군산군도의 수산업과 관광 요충지라 할 선유도까지 뱃길은 125리 남짓, 11.90 노트의 속력으로 오가는 여객선 옥도훼리호로 두시간쯤 걸린다. 이 정도의 거리면 배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들에게는 만만한 뱃길이 아니어서 투덜대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 뉴페리호를 이용해 군산을 오가야 했던 섬사람들에게 이 같은 투정은 한 마디로 ‘배부른 소리’로 들릴 밖에. 뉴페리호는 거의 세시간 반이나 힘들게 바다를 헤쳐와야 선유도 선착장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낡은 여객선이었기 때문이다. 야미도와 신시도를 거쳐 30분쯤 달렸을까. 바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섬들이 눈에 들면서 여행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열한 개의 유인도를 거느리다시피 한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가운데께 들어있다. 그 북쪽으로는 횡경도가 먼 바다에서 들이닥치는 파도를 웬만큼 막아주는 한편, 동쪽으로는 신시도, 남으로는 무녀도가 나른하게 누워 있고, 서쪽으로는 관리도와 장자도가 마주하고 있어 바다가 잔잔할 때 하늘에서 보는 선유도는 뭍의 호수 가운데 떠있는 모래 섬을 연상케 한다. 면적이라야 2평방 킬로미터가 조금 넘으니 도시인들의 눈에는 좀 작다 싶겠지만, 그래도 고군산군도에서는 신시도 다음으로 큰 섬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선유도는 지난 1569년(선조2년)에 '신북금영아문'이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수군절제사를 둔 이래, 주변 섬과 바다는 물론 뭍의 만경 부안 김제를 비롯한 여덟 개 군을 그 관할에 두었을 정도니, 그 비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물론 이즈음도 선유도에는 경찰지서며 보건진료소 간이전신전화국 같은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으니 옛날과 다를 바 없다.
여객선이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눈에 그득하게 들어오는 해발 150여 미터의 선유봉은 그 옛날, 주변 풍경에 반한 신선들이 놀다 가곤 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데, 그 정상에 서면 방축도며 명도나 말도처럼 여행객들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섬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망주봉은 ‘정감록’에도 기록되어 있다는데, 그 내용인즉슨 ‘고군산의 범 씨 천년도읍은 선유도를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망주봉 스스로가 간직한 전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섬사람들은 즐겨 이야기하는데, 천년도읍을 만들기 위해 북쪽에서 임금님이 오실 날만을 기다리던 부부가 오랜 기다림 끝에 죽어 망주봉이 되었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 그런지 망주봉 두 개의 봉우리 중 한 개는 작은 듯 한데, 이는 각각 남편과 그 아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망주봉은 ‘고군산팔경’, 곧 선유팔경이라 하여 따로 간추려놓은 절경 중 첫손에 꼽힌다. 두 번째로는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래톱이 보이는데, 그 모양이 기러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평사낙안(平沙落雁)을 이른다. 가운데쯤엔 풀밭이 둥그렇게 모여있고, 수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노송이 오롯이 서있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모래톱은 큰 파도나 해일이 닥쳐도 제 모양을 잃지 않고, 거센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려 모양이 바뀔 듯도 한데, 전혀 변함이 없다던가. 예전에는 새터(신기리) 앞 백사장에 실제로 기러기 떼가 모여들곤 했단다. 이 외에도 해 지는 모습이 그만이라는 선유낙조(仙遊落照)며 삼도귀범ㆍ장자어화 같은 어민들의 어로와 관련된 풍경이라던가, 한여름 해수욕장으로 몸살을 앓는 ‘명사십리’도 그에 든다.
이런 선유도 사람들은 통계마을(통리, 1구), 진말마을(진리, 2구)과 3구에 새터(신기리) 밭너머(전월리) 나매기(남악리) 등에서 나누어 살고 있다. 그 대부분이 김 양식 등 양식어업과 새우 멸치잡이와 통발 등 어선 어업을 중심으로 어려운 섬 생활을 이겨내고 있다. ‘삼도귀범’이란 옛말처럼 만선기를 달고 귀항하는 어선이라던가, 60여 년 전의 한밤중에 불을 밝혀놓고 고기를 잡아내는 ‘장자어화’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온갖 전자장비를 갖춘 대형어선들이 먼바다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잡아내는데, 여기까지 올 고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배가 작고 사람 구하기가 힘든 우리네들이야 그저 한 겨울 김 양식으로 목돈 좀 만져보고, 물 때 따라 들어오는 잔고기들이나 잡아 반찬에 보태는 정도지요 뭐. 한 십 년 뒤에 새만금 공사까지 끝나면 밖에서 생선을 사다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판인데요 뭘.”
명사십리 가는 길에 만난 한 어민이 명도와 말도 사이에 형성된 새우잡이를 위해 줄지듯 출어하는 덩치 큰 어선들을 건너다보며, 부러운 표정으로 한 말이다.
이 어민의 말대로 새만금 공사는 간단없이 진행되고 있고,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의 섬사람들은 공사가 끝난 뒤 자신들의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가 없단다. ‘계획상의 고군산군도’는 어업전진기지이자,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올라있긴 하다지만, 섬사람들은 어업전진기지와 해양관광이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했다.
“글쎄요. 보상금 가지고 배나 조금 키워서 관광 낚시 배로 밥벌이를 해야 하나...”
마침 낚시가방을 챙겨 들고 곁을 지나치는 관광객들을 보며 무심한 얼굴로 말꼬리를 흐린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섬이 한창 성했을 무렵에는 진말마을을 중심으로 1,000여 호가 넘는 민가가 늘어서 있었고, ‘비가 오면 그 민가들의 처마 아래로만 다녀도 동쪽 끝인 동헌에서 북쪽 끝인 명사십리까지 빗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다녔다’는 선유도 사람들. 이들은 이제 군산 등 뭍에 집을 한 채 마련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들이야 ‘투자니’하고 사둘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섬사람들이 어디 그런가요. 여기저기 빚 얻어 방 한 칸 마련하고, 아이들이 혹시라도 샛길로 나갈까봐 그저 노심초사하면서 섬과 오갈 밖에요.”
자전거를 빌려주고 받는 대여료로 살아가고 있다는 섬 아낙네의 푸념이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선유도 등 고군산군도를 찾아온 외지인들의 여행 패턴이 바뀌었다’는 것 역시 그 아낙네의 말인데, 바로 자전거가 등장하면서부터라는 것. 다리로 이어진 주변의 섬들, 곧 무녀도며 장자도 대장도까지 도로포장이 썩 잘 되어있으니 ‘진또포구’에 내린 여행객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 일주부터 나선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 지긋한 이들이야 ‘선유8경’부터 찾아 나서거나 오로지 해수욕장을 목적지로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일은 선유봉 아래 펼쳐진 갯벌과 명사십리해수욕장 모래펄에서의 갯벌 현장체험. 특히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많이 찾아오는데, ‘서해골뱅이’라 불리는 큰구슬우렁이와 맛조개며, 갯바위에 달라붙은 바윗굴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주인장님 도 건강하시고 해복 하십시요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