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가 만난 전국 교육감>
배움이 즐겁고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최창의 :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예산을 교육청에 떠넘긴 데 홀로 맞서느라 힘드셨지요?
김승환 : 지금 정부와는 잠시 싸움을 멈춘 상태이지요. 6월 23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누리과정 공동선언 전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서 한 게 없어요. 저 혼자 힘으로 간 거예요. 앞으로 몇몇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 파행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일고여덟 군데 교육감은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창의 :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부담은 전국 교육청에 해당되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전북교육청만이 홀로 마지막까지 예산 편성을 하지 않는 까닭이 있을 텐데요.
김승환 : 첫 번째는 정권이 어린이집 무상보육비를 가지고 헌법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거예요. 어린이집 무상보육비는 법률에 뚜렷이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예산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하위법인 시행령으로 교육청에 예산 편성을 떠넘겼어요. 이것은 법률을 짓밟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아니라고 또렷하게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까닭입니다.
그다음에 현 정부가 노리는 건 지방교육재정을 파탄내겠다는 거예요. 누리과정 예산 부담으로 지방교육재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책임 문제잖아요. 재정 파탄을 교육감들의 무능력, 무책임 탓으로 돌리면서 지방교육자치를 끝내려 들 겁니다.
최창의 : 문재인 대표와 누리과정 예산에 관해 공동선언을 발표했는데요. 교육감으로서 어떤 의미를 두는 건가요?
김승환 : 새정치연합에서 요청이 왔는데요. 공동선언 하기 전에 “누리과정 시행령을 폐기하도록 하겠다. 2016년도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지방채 발행 편성은 당력을 기울여 막겠다. 당에서 할 일을 교육감이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으니 최소한의 정치 신의는 지킬 것 아니에요. 누리과정의 부당한 예산 편성에 함께 맞서려는 다른 교육감들에게도 의지가 되겠다 생각해 받아들였습니다.
최창의 : 내년도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문제는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요?
김승환 : 확실한 건 다른 교육감들과 함께 2016 회계연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비는 편성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현재 상황으로는 어떤 선택지가 없어요. 그때 가서는 제1야당도 타협하자고 할 수 없다고 봐요. 분명히 당 대표가 지방까지 내려와서 시행령을 폐기하기로 한 약속입니다.
최창의 : 재선되어 5년째 교육감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임기를 돌아볼 때 의미 있는 변화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김승환 : 첫 번째를 들자면 오물을 다 걷어 내고 청정수로 바꾸었다는 거예요. 그전까지만 해도 전북 교육이 부정비리의 대명사처럼 얼룩져 있었거든요. 2010년도에 교육감 취임하면서 100원짜리 한 개도 안 받겠다고 말했어요. 그 뒤로 2012년도에 국가청렴위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3위를 했어요. 깨끗해지니 교원도 일반직도 자기 삶에 떳떳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혁신학교인데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는 교실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었어요. 철저히 지원만 하고 틀을 짜거나 간섭을 하지는 않도록 했지요. 교사의 전문성을 믿고 갔더니 성과가 컸던 것 같습니다.
최창의 : 결국 교육에서는 사람이 중요한데요. 교육공무원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협력을 이끌어 내셨는지요?
김승환 : 누리과정 문제보다 고통스러운 게 인사 업무입니다. 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없을 때 고통스러워요. 교육계가 사람을 키우는 곳인데 사람을 키우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일도 단순 작업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갖고 일하도록 했습니다. 자기 일터에서 즐겁고 보람과 존재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교육청 공직자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알게 하고 자기 생각을 자꾸 끌어내도록 신경을 썼어요.
최창의 : 처음 교육감을 하던 4년 동안에는 교육부와 긴장 관계가 자주 있었지요.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입장이 달라 교육부와 마찰이 컸는데 주로 어떤 문제들이었나요?
김승환 : 지난 정부 교과부장관이 저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 일곱 차례입니다. 그때도 시행령 국가 체제였어요. 대통령령인 ‘교원 등 연수에 관한 규정’에 ‘교원능력 개발평가’를 억지로 집어넣더라고요. 또 ‘전교조교사 시국선언 징계 요구, 일제고사 대체 프로그램 금지,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같은 중요한 교육 문제들을 장관의 훈령으로 지시했잖아요. 하지만 저는 교과부가 이상한 지침을 내리면 법률에 맞는가 틀리는가 검토했어요. 상위법령에 근거가 없거나 어긋나는 시행령은 당연히 거부했지요.
최창의 : 교육감이 교육부와 대립하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요. 더욱이 검찰 조사까지 받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김승환 : 부당할지라도 눈감고 받아들이면 교육감 혼자는 편하겠지요. 충돌하거나 거부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해당하는 교사들과 아이들한테 피해가 되잖아요. 교육감이 화살을 맞아 버리면 교사와 아이들은 화살 맞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불편하긴 했지만 두려움은 없었어요. 왜 두려움이 없을까 했더니 제 마음 속에 욕심이 없더군요.
최창의 : 교육감으로 다시 당선되어 1년이 지났습니다. 재선 교육감으로서 힘을 기울여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김승환 : 그동안에 학부모 교육을 상당히 강화해 왔어요. 학부모들이 교육 권력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눈을 밝혀 주고 귀를 열어 주려 노력한 겁니다. 학부모들이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똑똑한 학부모 만들기’ 강좌를 많이 열고 있어요. ‘우리 아이 어떻게 기를까’ 하는 기본 내용 말고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철학, 역사, 예술, 문학을 들여다보게 했어요.
최창의 : 혁신학교를 시작한 지 5년이 흘렀습니다. 궁극으로 무엇이 달라진 겁니까?
김승환 : 제가 생각하는 혁신학교는 교육 본질을 회복해 나가는 학교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가르침과 배움이 있고, 성장이 있는 거예요. 교사에게 가르침의 즐거움은 세상 어떤 자리에서도 찾을 수 없는 즐거움 아니겠어요? 가르침 속에서 사람의 성장을 일구어 내고 변화를 가져오거든요. 교사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아이들은 교사의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그런 교사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배움이 즐겁고 짜릿할 것입니다. 이것이 혁신학교가 변화된 근본 모습입니다.
최창의 : 교육감님이 줄곧 추구하고 그리는 학교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김승환 : 아이들에게 학교는 언제나 가고 싶고, 들어가면 편안해야지요. 배움이 즐겁고 정말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둥지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학교에 가면 모든 세포가 깨어나고, 상상력이 발동해야 하지요. 학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간다 하면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안전한 곳으로 보낸다는 확신이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결국 혁신학교를 통해 얻어 내고자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 혁신학교 타이틀이 없더라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최창의 : 김승환 교육감님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분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페이스북에도 가끔 아이들 만나는 이야기가 올라오던데요.
김승환 : 저는 천성인지 몰라도 아이들 만나는 걸 매우 좋아해요. 만약 아이들과 만남, 접촉, 사랑 나누기가 없었더라면 벌써 쓰러졌을 거예요. 제가 교육부와 맞서 검찰, 경찰에 불려 다닐 때 아이들이 “교육감님 힘내세요. 힘!” 하면서 손을 치켜들 때 그 표정이 정말 절박해요. 그런 에너지를 누가 줄 수 있겠어요. 이런 아이들 만나는 게 그렇게 행복하고, 치유가 되고, 그래서 버티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했지요. 제 경우에는 아이들이 엄마입니다.
최창의 : 임기 중에 한 학교도 폐교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를 지켜 나가려는 교육 철학이 있으시겠지요?
김승환 : 학교가 단순하게 아이들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지역 사회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문화공동체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마을 어른들은 학교에서 정신의 안정감을 느끼고 막연하게나마 미래의 희망을 품게 됩니다. 쓰러져 가던 폐교가 다시 일어서고 젊은이들이 이사 가지 않으니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 소리 듣는 맛으로 산다고 하시거든요.
최창의 : 역사 교육을 강조하고, 최근에는 전국 최초로 탈핵교과서를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승환 : 교육감이 되어서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니까 변죽만 울리고 가는 수업 연구식 역사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역사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자 했지요.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만 들지 말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첫 번째로 지난해에 나온 책이 ‘동학농민혁명 교과서’이지요.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이고, 올해 나온 책이 ‘탈핵 교과서’입니다. 탈핵 교과서는 전국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최창의 : 끝으로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해 주세요.
김승환 : 어느 누구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가장 섬세하게 바라보고, 가장 정중하게 대하고, 가장 소중하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 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에게 정중한가’예요. 이런 사랑을 받고 이처럼 존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예측이 되는 겁니다. 거기에 대면 우리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너무 거칠게 대해요.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어요.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위해서는 어른들이 욕심을 버리고 때로 소중한 것들을 던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특히 권력자들이 수많은 정책을 만들면서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뭔가 꼭 판단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