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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에서 머물고 있는 동화작가 이마리 선생이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 서평을 보내왔기에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서평〛
동시대를 관통하는 신라인 이야기
김문홍의 아동역사소설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
이마리
1.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비틀어본 교훈과 해학
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세계 공통설화라니!
김문홍 작가는 해마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영화평론과, 부산 연극계 연극평론의 대부로 영화제뿐만 아니라 문학지에 수시로 미학을 담은 영화 리뷰나 도서평론을 올리고 있다. 그는 평론가, 칼럼니스트, 희곡 작가와 동화작가, 소설가 등 여러 개의 직함을 가진 예술계의 거목이다.
1976년 《소년중앙》 문학상에서 동화 <바닷가의 소년>이 당선되면서 그는 동화작가가 되었다. 1997년 동아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함세덕 희곡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지금까지 희곡집, 소설집, 동화집, 연극평론집, 영화평론집, 연극 관련 도서 40여 권을 냈으며, 소설집 4권, 동화집 22권을 낸 다작가이기도 하다. 2014년 <김문홍 희곡상>이 제정된 이래 부산 연극을 위해 정열을 쏟고 있는 그는, 현재 부산창작극연구회 대표로 있으며, 희곡창작교실과 장편동화 창작아카데미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9년 출간한 가족소설 『감나무 집 동백꽃』은 4대가 살아가는 감나무 집의 삶을 통하여 욕망보다는 순리에 따르며 느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발간한 『얘들아, 선생님 오셨다』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상상력을 주겠다는 작가의 노년의 의지가 듬뿍 담긴 동화이다.
2009년 작가의 희곡세계의 전환점이 된 창작희곡 <대숲에는 말이 산다>는 부산연극제 최우수 작품상과 전극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했다. 그 후 이 희곡을 어린이를 위한 버전으로 각색해보려고 노력했던 꿈이 이제야 이루어진 셈이다. 한없이 눈높이를 낮춰 어린이 세계를 탐구하는 지성과, 끊임없이 샘솟는 창의성을 결합시켜 탄생시킨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고래책빵, 128쪽, 2022.3)는 분명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책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구전으로 전해져 수 세기를 내려오는 동안 설화, 소설, 그림책에 애용되어온 소재이다. 그리스 미다스왕의 당나귀 귀는 기원전 5세기 희극 <개구리>에 언급되고 있으니, 지고한 역사를 지닌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 외에 중앙아시아의 왕, 아일랜드 전설 속의 왕, 그리고 신라 경문왕까지 비슷한 설화가 있으니 이 동화를 읽기도 전에 구미가 당긴다.
그 옛날 교통이 두절된 당시에 세계가 어떻게 한통속으로 언어와 문화의 교류를 했을지 수만 가지 상상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분명히 융성했던 신라가 그리스와도 연결고리가 있다는 자부심으로, 신라 경문왕의 설화 두어 줄에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동시켜 작품을 써나갔으리라 여겨진다. 친친 감긴 암흑 속에서 발견한 한 마리 반딧불을 따라 길을 떠났던 작가가 신라인 이야기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를 가지고 스스로 그 머나먼 길을 돌아왔다.
작가 김문홍은 이렇듯 평범하고 단순한 설화를 비틀고 확장 시켜, 어린 손녀 가실을 주인공으로 근사한 요리 한 상을 잘 차려 놓았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그가 이 동화에서 유유자적하며 환상으로 흡입하는 장치까지 삽입했으니,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고루 갖춘 동화가 무척 반갑다.
2) 앙증맞게 숨긴 상징의 코드들
이 동화는 단순명료한 간결체 문장으로 가독성이 상당히 좋아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른다. 동화에 뭐 그리 대단한 코드가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다시 한번 뒤적이며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찾아낸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은 없지만 두 가지 상징을 찾아내고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듯 뿌듯한 마음 가득하다.
(1) 가실이 범상치 않아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딸 가실이다. 복두장이 할아버지와 함께 궁중을 드나들며 임금님 모자 치수를 재던 어린 가실에게 임금이 묻는다. “사람들이 내 귀를 크다 하던데 과연 큰가?”를. 가실은 자기 눈에 비친 대로 그저 적당해 보인다고 사실대로 직언을 한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와 가실은 임금 주위의 신하들로부터 ‘임금님 귀는 크다고 해라’라는 강요를 받기 시작한다. 귀가 커야 백성의 고통과 슬픔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왕 주변 신하들, 즉 권세를 가진 자들의 작당 모의인 셈이다.
다음 장면은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이른바 언어폭행범이 아닐까?
범교사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꼭 새겨들어야 한다. 앞으로 어느 누가 임금님 귀가 어떠냐고 물으면, 그땐, 두말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크다고 말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
“그래도 이놈들이! 새겨들었느냐 지금 묻고 있지 않느냐?”
“왜 그래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까닭이 뭔지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 그저 누가 물으면 크다고만 하면 된다.”
대답을 망설이자 금군대장이 칼집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섣불리 입을 잘못 놀렸다간 너희 가족들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
범교사가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알아들었느냐?”
- 김문홍,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귀가 크다고 소문내어라, 54쪽.
작가는 동화 내용에서 한 번도 ‘소녀 가실’이라 말하지 않는다. 손녀 가실이나 그냥 가실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면 가실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동화속의 여느 옛 이름들, 개똥이, 소똥이 등과 달리 작가는 주인공의 명칭에 많은 고심을 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소녀는 어찌 보면 청순하고 연약한 여성성을 부여하는 성을 표현하는 단어였기에, 작가가 소설 속에서 한 번도 가실을 소녀라고 칭하지 않은 연유가 이런 사실에서였을까 하고 유추해본다.
어쨌거나 가을은 우리 농사에 여름 내내 가꾸어온 땀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이다. 추수하다’를 우리말로 가실하다’, 또는 ‘가슬하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거둬들인다는 의미이다. ‘가슬’의 시옷이 약화되어 ‘가을’이 되었다 하니 주인공 가실은 소설에서 푸짐한 결실을 가져오는 가을을 상징하는 아이, 완벽을 지향하는 아이라고 여겨진다. 이토록 동화나 소설 속의 이름의 상징성이 중요하니 작가는 허투로 동화 속 주인공을 작명할 수 없다는 의무감을 깨닫는다.
더욱이 배경이 신라 시대이니 동자나 소년이 주인공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작가는 연약하고 조그만 여아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이 아이는 외유내강형의 어린 여자아이로 페미니즘까지는 동원하지 않더라도, 시대와 궁중의 관습을 뒤엎는 가실의 활약은 발랄 통쾌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주인공의 성별과 이름에까지 상징을 부과함으로써 아동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미래를 향해 소신껏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 가실은 어른들의 대화에 당당하게 끼어드는 장면이다.
“이봐, 복두장이 영감! 그럼 왜 그런 소문이 아직까지 떠도는 거요?”
“이젠 저희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젠 이 대숲의 대나무들도 그 소문을 다 알아채고 말았소.”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뭐, 대숲이 다 알아 버렸다고?”
“바람이 불면 이 대숲에서 소리가 납니다.”
가실도 할아버지의 말에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다가도, 또 어느 땐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하고 말하기에......저희들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범교사가 헛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말했다.
“뭐라고? 도림사 대숲이 스스로 말을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 김문홍, 앞의 책, 「11, 서라벌을 떠날 때가 되었다」, 114쪽.
(2) 현대판 소셜네트워크 공간인 대나무숲
현대판 ‘대나무 숲’은 대숲에 비밀을 폭로한다는 당나귀 귀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통관심사나 같은 업종을 가진 사람들이 애환을 나누는 소통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요즈음 온라인 장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활발한 것은, 각 대학마다 ‘대나무숲 레전드’라는 이름하에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오픈된 공간이다. 아득한 신라 시대 당나귀 설화가 메타버스를 탄 우리에게 한몫을 톡톡히 해내는 걸 보면 문화나 설화의 힘은 정녕 위대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에 한 문장 덧붙이고 싶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러나 신념은 영원하다’ 라고 말이다.
신라의 48대 경문왕은 화랑을 등에 업고 다방면으로 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왕비의 말에 너무 쉽게 현혹되고 신하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유약한 군주였다. 이러한 경문왕 쪽에서 오히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귀가 크다는 소문을 냈을 거리는 상상으로 작가의 추적은 시작된다. 노련한 작가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두지 않고 이리저리 비틀어 보았음이 분명하다. 원 설화와는 180도 다른 설정, 즉 임금의 귀는 분명히 크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현실을 뛰어넘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임금은 때로는 귀가 큰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귀가 작은 것을 겁내기도 한다. 자기 소신을 가지지 못한 임금은 계속 신하들에게 묻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휘둘린 왕은 가실에게조차 진실을 듣기를 원한다. 결국 진실은 힘없는 작은 여자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럼 임금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고?”
“마마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귀가 작아진 모양이구나?”
“제 생각으론 그런 것 같습니다.”
임금은 예전처럼 작아진 자신의 귀를 한동안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가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귀는 결국 내 귀가 아닌 모양이구나.”
“네, 그러하옵니다. 그 귀는 백성들의 올바른 소리를 듣는 마마의 마음입니다.”
임금님이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크게 웃었다.
“그래, 내 이제부터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바깥으로 나가면 과인의 귀가 커지도록 빌어줘야겠구나.”
- 김문홍, 앞의 책, 「7. 끝까지 믿음을 버려선 완 된다」, 96쪽.
(3) 소신 없는 지도자에 대한 통쾌한 일침
할아버지와 소녀 가실은 환상의 짝이다. 할아버지의 직업이 귀를 가리는 모자를 만드는 직업이기에 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귀는 크나 작으나 가리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혹시 자신의 소신을 지키지 못한 채 주위의 하찮은 말에 현혹되어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가는 지도자는 없을까. 그러니 귀가 크고 작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위정자의 소신 있는 삶이 중요함을 작가는 호소하고 있다. 결국 새 임금은 억울한 죽임을 당한 복두장이의 집을 방문하고 선정을 베풀게 된다. 이런 임금의 모습을 보며 어린 독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할 것이다.
“아니, 마마께서 그런 누추한 곳엘 어떻게...?”
“아니오. 과인이 직접 그곳을 찾아가 바른 소리 쓴소리를 하다 목숨을 바친 복두장이의 가족들을 위로해야겠소. 그러니 어서 채비하시오.”
새 임금이 행차한다는 소식에 온 마을이 들썩였다.
...(이하 줄임)
“임금님이 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실까?”
“그럼 당연히 오셔야지.”
“아니, 왜?”
“나라님이라면 당연히 오시어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셔야지.”
“그래, 맞는 말이야.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먹여줘야 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귀를 열어 들어줘야 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듬고 다독여 줘야지.”
“맞아! 그게 임금이 할 일이고 관리들이 할 일이지.”
- 김문홍, 앞의 책, 「12.대숲에는 말이 산다」, 120-121쪽.
2. 동화의 3요소가 잘 어우러진 서정동화
1) 할아버지의 죽음에 붙여
앞에서 주인공 가실을 언급했지만 남자 위주의 세상에서 작은 여자아이와 통교하는 임금의 구도가 신선해 보인다. 복두장이 할아버지는 거짓 위정자들에 의해 희생되지만, 대숲은 진실을 말하며 그들의 거짓에 항거한다.
다음 장면은 이 동화의 통쾌한 핵심이자 처절한 백미라고 생각된다. 복두장이는 처절하게 목을 잘리지만 죽는 순간까지 의연하게 지조를 지키는 그의 태도에 어린 독자들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곧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라고 외치는 대나무숲의 우렁찬 외침에 놀라 퍼뜩 눈을 뜬다. 죽은 할아버지의 혼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소멸하지 않은 한 명의 의인이라도 나라를 구할 수 있음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독자는 이에 서서히 안도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이내 눈을 뜨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은 아주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시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커야 한다! 그래야 백성의 아픈 소릴 들을 수 있다. 소문 없앤다고 소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실은 언제고 살아난다.”
범교사는 칼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이 가증스런 머릿속!”
범교사가 복두장이의 목을 내려치는 순간 갑자기 대숲 안이 어두워졌다. 댓잎이 수북한 땅바닥에 뎅겅 잘린 복두장이 할아버지의 머리통이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금군 병사들이 기겁을 하여 뒷걸음질 쳤다.
범교사는 할아버지의 옷에다 피 묻은 칼을 스윽 문질러 닦았다.
범교사가 갑자기 금군 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금군대장! 이놈의 가족들을 뒤쫓아 모조리 잡아오도록 하시오.”
일행이 빠져나간 대숲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대숲 안쪽으로 바람이 휘익 불어왔다. 댓잎들이 서로 몸을 비벼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
-김문홍, 앞의 책, 「11. 서라벌을 떠날 때가 되었다」, 117쪽.
2) 서정적인 배경이 압권
신라의 도림사 주변으로 느리게 전개되는 수채화를 보는 듯, 서정적인 묘사에 잠시 느림의 미학을 경험하는 듯, 독자는 환상에 빠진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신라 시대의 먼 나라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멍해지기도 한다. 1장에서는 뻐꾸기 울음이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리고 2장에서는 찔레꽃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멀미를 느낄 정도로 황홀한 봄이 피부로 느껴지기도 한다.
①
분황사를 지나 언덕에 올라섰다. 저 아래 초가 한 채가 보였다. 가실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팔짝 팔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점점 걸음이 빨라졌다. 가실과 할아버지는 금세 오월의 숲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숲은 어느새 두 사람을 초록으로 물들여 버렸다.
저쪽 산모롱이에서는 벌써 산그늘이 내리고 있었다.
뻐꾹 뻐꾹.
뻐꾹 뻐꾹.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 김문홍, 앞의 책, 「1. 도림사의 봄」, 18쪽.
②
가실은 할머니의 팔다리를 주무르다 말고 문득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 부신 햇살 아래 찔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려니 휘청휘청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고요한 한낮이었다.
산모롱이 저쪽 도림사 대웅전 추녀 끝 풍경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찔레꽃이 또 한 번 어질어질 눈부셨다.
- 김문홍, 위의 책, 「2. 대숲은 늘 말을 들어준다」, 20쪽.
아래 3장의 장면은 그치지 않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불길한 징조를 암시해주는 문장이다. 역시 노련한 작가는 간결한 문장으로 서정성을 가미하여 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기교가 빼어나다.
“안 된다. 너 혼자만 가야 한다.”
할아버지와 가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뒷산 숲속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다른 때와 다른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예고라도 하는 것 같았다. 가실은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김문홍, 앞의 책, 「3. 풍문으로 들었다」, 40쪽.
3) 부분적인 환상으로의 매끄러운 흡입
다음에 오는 구절은 꿈이지만 현실성이 있다. 할아버지는 꿈 이야기로 가실과 독자를 환상으로 끌어들인다. 사실 꿈을 환상으로 들어가는 도구로 사용한 장치는 좀 구태의연한 수법이긴 하지만, 여기서 할아버지는 꿈 이야기를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독자는 대나무 숲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미끄러지듯 빠져든다. 꿈의 도구가 성공적으로 쓰이고 있다 하겠다.
할아버지는 길섶의 돌무더기 위에 앉아 땀을 식히며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도림사 대숲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숲 안으로 당나귀 한 마리가 들어가더라고 했다. 당나귀는 대숲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만 당나귀와 눈을 맞추고 말았다.
히이힝.
히이힝.
(...이하 줄임)
당나귀는 다시 울고는 대숲 저쪽의 흐릿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당나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대숲 안쪽으로 세찬 바람이 휘익 밀려 들어왔다. 댓 이파리들이 서로 몸을 맞대며 서걱거렸다. 바람이 멎었다. 그러자 다시 당나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할아버지는 갑자기 꿈을 깼다는 것이다.
- 김문홍, 앞의 책, 「1. 도림사의 봄」, 10-12쪽.
이번에는 대나무 숲이 말을 한다. 환상으로의 진입이 자연스레 현실과 맞물리는 경지에 이르러, 어디가 환상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보통 환상소설에서 요정, 도깨비, 마술사가 등장하는 대신에, 이 동화에서는 대나무 숲이 말하고 소리를 지르고 바람 소리를 낸다. 그것은 어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환상의 세계이다.
도림사 대숲은 이젠 대놓고 소리를 내쏟았다.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
바람만 불면 궁궐 속 임금님의 비밀을 소문내었다. 어느 때는 당나귀 귀처럼 크다고 했다가. 또 어느 때는 임금님 귀는 크지 않다고 아픈 곳을 콕콕 찔렀다.
-김문홍, 앞의 책, 「11. 서라벌을 떠날 때가 되었다」, 113쪽.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화의 3요소를 유려하게 버무린 걸작임에도, 작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할아버지 죽음의 대처 문제이다. 아동문학에서 창작자가 폭력을 대할 때는 피해자 중심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가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피해자 측의 가족 어느 누구도 강하게 대처하거나 전혀 손을 쓸 수 없음이 슬프다. 그런 인물들을 창조한 작가 자신조차도 말이다.
죽음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족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죽음과 폭력에 대한 대처는 이제 작가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작가가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소극적인 몸짓이라도 해본다면, 어린이 독자에게 조금은 위안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다.
또 하나, 작품에서 제목 다음으로 시선이 가는 12 개 차례의 표제들이 다소 교훈적이고 변화가 없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이렇듯 맛깔스런 신라인 이야기로 돌아온 작가가, 다음엔 어느 시대를 등에 업고 나타날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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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리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원으로 『버니입 호주 원정대』로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 「악동음악회」로 제5회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 아동소설 『코나의 여름』, 『구다이 코돌이』, 『빨강양말 패셔니스타』, 청소년소설로 『대장간 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동학소년과 녹두꽃』 등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시민기자단으로 영화평론도 쓰고 있다. 현재 호주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