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 5회 이상은 고기를 먹는다. 돼지, 닭, 돼지, 닭, 아주 가끔 소(대부분 갈비살). 점심부터 불판 놓고 고기 구워먹는 날도 있다. 건강과 주머니 사정을 위해 일주일간만이라도 고기를 끊어보자고 다짐해보지만, 그게 어디 쉽나. 애연가가 담배 끊는다 끊는다하면서도 결국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입둘레 안팎에 걸쳐서 커다란 뾰루지가 난 블랙 - 이게 모두 고기독이 올라서 그렇다고 생각. 요즘 들어 하는 일마다 둘둘 꼬이는 브라운 - 그 동안 나에게 먹힌 동물들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 얼굴에 새삼스레 돋아난 여드름 때문에 피부과까지 가게 된 귀뚜라미 - 최근 들어 부쩍 먹어대기 시작한 고기가 원인이라고 생각 (귀뚜라미는 메뚜기떼를 만나기 전 식육은 월례 행사 정도였다).
나쁜 일들은 모두 고기의 역습이라고 판단한 우리는, 남들 다해보는 웰빙 한 번 해보기로 결정했다.
‘근데, 고기 말고 맛있는 게 뭐 있지?’ ‘오! 신선한 해물과 11가지 야채가 들어간 해물온밥이란 게 TV에 나왔었군.`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미 자자하게 소문이 나있다는 해물온밥이 있는 ‘인사동 그집’으로 출발. 인사동 그집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ㄷ자형 한옥으로 벽면에는 개화 시절의 흑백 사진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일단 TV에 나왔던 해물온밥 하나 시키고, 또 뭐 먹을까나?” “석쇠너비아니구이가 좋겠다.” “너비아니는 고기잖아.” “너비아니는 예로부터 궁중에서 수라상에나 올릴 만큼 귀한 음식이니 웰빙 음식이라고 봐도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결국 또 고기 주문) |
사실 난, 해물온밥을 해물on밥, 즉 밥 위에 올려진 해물, 퓨전 음식이니 이름도 국어+영어 합성으로 지었구나 하고 멋대로 해석했었다. 메뉴에 ‘그집 온밥’이란 음식도 있는 걸 보고 온이 on이 아니라 溫이라는 걸 깨달았다. 밥 위에 그집을 얹을 순 없겠지.
저녁 시간임에도 비교적 빨리 음식이 나온다.
앗! 해물on밥이 맞는걸. 소스(소스의 주재료는 굴소스)로 촉촉한 해물온밥에 정신 없이 숟가락이 간다. 맛은 ‘아 정말 맛있다’까지는 아니지만 ‘괜/찮/네’라고 평할 수 있을 수준이다.
다음 타자는 석쇠 너비아니구이.
팽이버섯으로 뒤덮힌 불고기 + 불고기 양념 묻은 두부 + 김치 볶음 = 이런 것이 바로 퓨전??
너비아니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불고기 맛이고, 김치볶음 역시 신김치의 새콤함이 있는 보통의 그 맛이다. 이들이 왜 한 접시를 타게 되었을까? 뭐, 아주 상관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음식들인데 말이다. 해물온밥으로 허기를 채운 뒤라 석쇠 너비아니 구이는 결국 반 이상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탤렌트 정혜영이 일행들과 식당에 들어섰다. 사장님은 정혜영이 가게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주위 사람에게 다 들릴만한 목소리로 ‘우리집 음식에 아주 맛들이셨네, 지난 번에는 션이랑 오시더니’ 하며 무지 뿌듯해하신다. 정혜영은 여기 오면 뭐 먹냐고 물어보니 주로 탕 종류를 주문한다고 한다. 이 집은 해물온밥이 아니라 탕이 맛있나보다. 나가다 유심히 보니 정혜영,션 커플이 다정스레 찍은 사진도 가게 벽면에 붙어있었다.
오랜만에 색다른 음식을 먹어본 것 같다. 웰빙 음식이라고 해서인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듯. ^^ 이 곳은 외국인이나,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해서 한국음식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오면 좋을 곳인듯 싶다. 손님 대접할 일이 있을 때 와도 괜찮겠다. 싼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곳은 아닐 듯.
(참, 이 곳에 왔다가 차를 마실 것이라면 같은 골목안에 있는 전통찻집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를 강추. 차가운 차를 시키면 커다란 도자기 잔에 잘게 간 얼음과 함께 하나 가득 담겨 나오는데, 여기만큼 차가 진하고 맛있는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차를 시키면 사람수만큼 절편과 한과가 서비스로 나온다. 새콤한 오미자차. 계피향 가득한 수정과, 구수한 보리미숫가루가 특히 맛있다. 물론, 이 날 우리도 `인사도 그집`을 나와 `달새`에 갔었다.)
▶ 약도 보기 ▶ 가격: 인사동 해물온밥 2인용(22,000원) / 석쇠너비아니구이 2인용(20,000원) ▶ 카드가능/주차장은 따로 없음
* 메뚜기글을 무단으로 퍼가는 분들이 요새 부쩍 많습니다. 미천한 글을 널리 퍼트려 주시는 것은 감사하오나, 출처도 밝히지 않은채 마구마구 퍼가시는건 그닥 유쾌하지 않습니다. 메뚜기떼 은근히 작은거에 집착이 강합니다. 출처 없이 퍼간 분들 반드시 찾아서 응징합니다요. 깨끗한 인터넷 세상을 위해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다시는 이런 유치한 멘트 안날리게 해주세요)
글쓴이 : 메뚜기떼(http://mfbbs.joins.com/Board/List.asp?BoardID=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