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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출가재일 법문
오늘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입니다. 출가하신 날로부터 또 얼마 있지 않으면 열반재일이 다가오지요. 그래서 범어사만 하더라도 전에는 출가에서 열반까지라고 하는 이런 제목으로 오늘이 음력 2월 8일이고 15일이면 열반재일이니까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한다든지 큰 법회를 연다든지 하는 그런 행사를 하기가 딱 좋은 날짜입니다. 그래서 아마 그렇게 행사를 하는 사찰도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출가에서 열반까지 참 제목이 좋지 않습니까? 출가 하셔서 6년 고행 하시고 큰 깨달음을 이루시고 49년간 중생을 위해서 설법 하시다가 열반에 드신 그런 기간이라고 설정을 해서, 큰 행사를 한다든지 경전 산림을 한다든지 하면은 아주 좋은 그런 기간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출가일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음력 4월 초파일 날 탄생하신 내용 잘 아시지요? 그리고 출가일 음력으로 2월 8일 그리고 성도재일이 12월 8일 이지요. 공교롭게도 4대 기념일 중에서 8일이 세 번이나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드린 대로 열반재일이 2월 15일이고 그렇게 날짜가 정해져 있지요.
이것을 이제 세존의 4대 기념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돌아가신 것을 어떻게 기념 한다고 하느냐? 부처님의 열반은 보통 중생의 돌아가심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일이기 때문에 기념일 속에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열반일을 기점으로 해서 열반경 산림을 한다든지 참회 산림을 한다든지 하는 그런 경(經) 산림도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출가일 이기 때문에 출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릴까 합니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는 모두들 잘 알고 계십니다 만은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또 우리가 그것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우리들의 삶과 연관 시켜서 생각하고, 더욱 더 부처님의 생애를 소상하게 반복해서 공부하는 것이 불자로서 바람직한 일이지요.
저희들이 예불할 때 보면은 그렇습니다. “시아본사 석가모니불(是我本師釋迦牟尼佛)” 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저희들의 근본 되는 스승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를 올립니다.”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는 불교를 접하면서 저 경우를 보더라도 출가를 할 때 스승님이 계시고 여기저기 회상을 전전 하면서 만난 훌륭한 선지식들이 또 많이 계시고, 정말 학문이 높아서 이 몸을 의탁해서 공부를 하던 그런 스승님도 계시고 그 다음 경전공부를 하면서 그런 경전상에 나타난 많은 스승님들을 우리는 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반 불자님들은 우리가 떠올린다면 관세음 보살님도 부처님 못지않게 받드는 그런 스승님이라고 할 수가 있고, 지장 보살님을 모시는 분은 지장 보살님이 또 그럴 수가 있고 문수나 보현이나 아미타불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 외 역사상에 그 많은 훌륭한 선지식 분들 용수 마명 백장스님 마조스님 황벽스님 임제스님 그리고, 저희들 교과서에 친숙하게 만났던 대종거스님 원묘스님 같은 이런 이들의 가르침을 공부 하면서 아주 감동을 받았던, 그런 스승님들도 우리 마음속에 스승님이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실정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세속적인 생활 속에서 만난 많은 스승님들도 많지 만은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또 우리가 알게 된 수많은 스승님들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불할 때 꼭 시아본사(是我本師)! 우리들의 근본 되는 스승님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한다 라고 하는 그 점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하고 또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줄 믿습니다.
모든 그런 스승들은 실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인연이 되어서 그런 많은 스승들을 우리가 소개 받게 되고 또 알게 된 것이고, 역사상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간에 석가모니의 교설(敎說)을 통해서 우리가 만나게 되었고 또 알게 되었고, 또 그 나름대로 관세음보살이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면 지장보살! 그런 이들을 석가모니불 이상으로 의지하고 또 모시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분들은 다 석가모니 부처님 교설을 통해서 우리가 의지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분보다도 더 소상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반 불자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또 많이 읽던 책이 팔상록(八相錄)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써져 있는 책인데 책 두께도 나가는 큰 책이지요. 팔상록이 부처님의 일생을 자세하게 설명한 책이고 또 그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불교에 관한 것을 많이 알게 됩니다. 기껏해야 사실은 팔상록 한 권 읽는 정도였지요. 책도 또 흔치도 않았기 때문에 그렇듯이 불교에 입문 하면은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팔상록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입니다.
참 옳은 일이지요. 지금 교양대학 이라든지 어떤 사찰 같은 데서 신도님들에게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요즈음은 많이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만은 그것이 바른길입니다. 팔상록에 의하면 팔상성도(八相成道)! 여덟 가지 모습으로 부처님을 그리고 있다고 해서 “팔상록” 또는 “팔상성도” 이런 말을 쓰는데, 부처님께서 태자로 계실 때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하는 것이 출가의 동기가 되지요.
사대문을 나가서 세상을 살피는데 거기서 병든 사람도 보게 되고 장례를 치르는 죽은 사람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수도자를 보게 되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부처님이 인생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인생의 궁극의 문제 늙고 병들고 죽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까 하는 그런 생각으로 출가 수행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출가의 과정이고 그래서 출가를 했습니다. 해서 6년간 많은 스승들을 찾아 다니면서 노병사(老病死)의 문제를 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행도 하고 선정도 닦고 했으나 나중에는 그들이 경험한 그런 경지는 세존이 다 경험 하시고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그런 경지까지 오른 뒤에, 스스로 보리수 밑에서 7일간 정말 올바른 선정에 들어서 샛별을 보고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되는 그런 과정이지요.
깨닫고 나서는 모든 가슴에 쌓였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시원하게 해결 했다 하는 것입니다. 시원하게 노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해결한 그 해결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수용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 하루도 편안할 날 없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설법을 하셨고, 중생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깨우치고 이렇게 해서 일생을 보내신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부처님의 생애인 것입니다.
출가가 없었다면 부처님의 큰 가르침이 있었을까? 진리에 대한 남다른 그런 뛰어난 가르침을 과연 설하실 수 있었을까? 뭐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출가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희 어릴 때 출가해서의 사찰의 분위기라든지 출가 했을 때 출가한 사람들의 기분이라고 나 할까? 신심이라고 나 할까? 이런 것들은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조금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찾아보기 힘들기는 합니다 만은, 태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났지 만은 출가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로서 자기의 삶을 새롭게 시작해 본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출가에 대해서 옛사람들이 말한 가르침을 한 편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옛날 도안법사가 동진 도안법사와는 다른 도안 법사입니다 만은, 도안법사께서 아홉 장에 걸친 경계의 문을 남겼습니다. 모름지기 출가한 사람은 이러이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치문(緇門)이라는 책인데 출가해서 행자 생활을 마치고 강원에 들어가서 1년 차 공부과정에 있는 내용 중에 있는 말입니다.
치문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저런 생활규범이라고 할까? 쉽게 말해서 승려 생활을 하는데 아주 훌륭한 스님들의 잔소리 경책의 말씀과 경계하는 말씀이 주로 많이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천하에 불교 역사에 명문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모아서 치문이라고 하는 책으로 엮었습니다. 도안법사의 유계 아홉 구절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으니 태어난 바를 영원히 어기는 것이라, 머리를 깎아 겉모양을 헐고 법복을 몸에 걸쳤다.
어버이를 이별하던 날에는 위아래가 모두 눈물을 흘렸으니, 사랑을 베어 내고 도를 숭상함에 그 뜻은 맑디맑은 하늘을 능가하였으니 응당 이 뜻을 따라 불도를 수행하여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까닭으로 여전히 빛과 소리에 머물러 있는가? 유유자적하며 나날을 마치니 불경을 익히는 일은 이루지 못하고 덕행이 날로 줄어듦에 더러움은 쌓여서 마침내 넘치기에 이르렀다.
스승과 벗에게는 부끄럽고도 부끄러우며 범부나 속인들이 업신여기는 바가 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그 이름을 스스로 욕되게 할 뿐이다. 이제 그러므로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전심전력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세속을 버리고 임금을 하직하니, 응당 스스로 가르치고 격려하여 푸른 구름 이루기를 마음먹어야 할 것이다. 재물이나 여색은 돌아보지 않아서 세속과 더불어 무리 짓지 말며 금은 보석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직 도道를 진귀한 것으로 여기며, 자기를 검약하게 하고 절도를 지키며 괴로움을 달게 여기고 가난을 즐겨 하며 덕스러움에 나아가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한 능히 다른 사람을 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절 조를 고치고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속을 내달리며, 앉음에 자리가 따뜻해지지도 않아서 동쪽으로 서쪽으로 질주하는가? 그 심하기가 마치 부역을 부림에 있어 관청의 관리가 소매를 끌 듯하니, 경전의 도는 통하지 못하고 계율의 덕은 온전하지 않게 된다. 벗들은 업신여겨 희롱하고 같은 학우들은 꺼려서 멀리할 것이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세월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를 가련히 여겨야 한다.
아주 참 가슴을 찌르는 경책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치문에 수두룩 하지요. 그래서 승려가 되고 강원 생활 1년 차에 이런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의 업장이 워낙 두터운지라 쉽게 세속적인 업이 가라 앉지를 못하고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급기야는 많은 숫자는 아니지 만은, 그 업의 물결에 휩쓸려 버리는 그런 예들도 또한 적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주 무서운 경책의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순간도 마음에 틈을 주지 않도록 그렇게 다그치고 또 다그치고 경책하고 또 경책하고 그런 시간을 만든 것이지요. 또 출가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집에서 나와 가지고 사찰로 들어간다 라고 이렇게 생각해도 또 그것은 잘못이지요. 아주 지극히 세속적인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을 출가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속인으로 살든 출가 인으로 살든 관계없이 출가 인으로 살아도 어떤 속된 일에 마음을 쓰고 거기에 연연해 하고 늘 속된 문제에 마음이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아무리 깊은 산중에 혼자 있더라도 그것은 출가라고 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이고, 세속에 살면서 가족과 더불어 온갖 희로애락을 같이 겪으면서 살더라도 정말 마음이 속되지 아니하면은 그 사람은 세속에 있어도 세속을 벗어난 마음이 진정한 출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가라고 하는 의미도 사실은 그렇게 이해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오늘은 출가일이라고 해서 서울 정각사에 계시는 송원 스님께서 신도 50여분을 모시고 사찰순례 겸 저에게 왔습니다. 작년 가을에도 왔었는 워낙 오랫동안 같이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저의 건강이 염려스러워서 본인도 몸이 그렇게 성한 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작년 가을에도 오셨고 오늘 또 오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연락을 하시고 꼭 오시겠다고 해서 오늘 사찰 순례 겸 신도님들을 모시고 왔었습니다. 송원 스님은 연세가 저보다 상당히 높습니다 만은 참 재주가 많으시고 오늘도 신도님들 앞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아주 불우한 천재다”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옛날에 소설도 여러 번 써서 신춘문예에 냈지만 미역국을 자셨다고 그래요. 또 법대를 나와 가지고 고시공부를 여러 번 해서 또 역시 낙방 하기도 하고 별별 그런 이야기를 해서 될지 모르지만, 오늘 오십 여분의 신도님들과 그런 이야기를 기왕 나누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정각사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사당동에서 과천 넘어가는 남태령 고개 옆에 있습니다. 스님이 조그마한 절을 꾸려 가지고 살고 계시는데 거기에 아주 특색 나는 그런 정신이 한가지 있습니다. 뭔고 하니 포대화상을 사찰 마당에 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대화상에 대한 신앙과 존경심이라고 할까? 그런 마음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좁은 터에 큰 포대화상을 모셔서 달력을 만들 때도 포대화상 사진을 맨 앞에 놓고 하는데, 오늘도 포대화상 선양을 위해서 원고도 좀 써오기도 하고 앞으로 외국에도 좀 선양을 하고 싶다는 그런 뜻을 전해 왔습니다. 좋은 원고가 돼서 우리 염화실 도반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어서 오늘은 이것을 준비를 했습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장정자라 했고 양림사에서 출가했습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 이였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日睹人少 問路白雲頭
일발천가반 고신만리유 청일도인소 문로백운두
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미륵진미륵 분신백천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불식
발우 하나로 집집마다 밥을 빌며
외로운 나그네 되어 만리를 떠다니네.
밝은 대낮에도 보이는 사람 없어
내 갈 길을 흰 구름에게 물어 본다.
미륵불로, 또 미륵불로 천 만 억으로 분신하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나타나도
사람들은 미륵을 아는 이 없다.
운수송(雲水頌)으로 알려진 포대화상(包袋和尙)의 시입니다. 이 시한편이 거의 생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생을 떠돌이 삶을 살았다는 포대화상의 애환이 엿 보이는 내용입니다. 구름처럼 물처럼 정처 없이 떠돌며 유랑으로 일생을 보낸 그도 자신을 알아주는 자가 없이 무척이나 외로워 했는지 모릅니다. 구름에게 길을 묻는다는 마지막 구가 세상을 초월한 자의 자유보다 그리움의 향수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송원 스님이 이 시를 보는 시각이 또한 우리가 무엇을 짐작 하는 그 분의 마음을 짐작하게 하기도 합니다.
발우 하나로 집집마다 밥을 빌며
외로운 나그네 되어 만리를 떠다니네.
밝은 대낮에도 보이는 사람 없어
내 갈 길을 흰 구름에게 물어 본다.
아주 고독과 외로움이 뚝뚝 뚫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불교에 있어서의 유명한 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마을을 돌아 다니며 주는 대로 얻어 먹고 아무 곳에서나 벌렁 누워 눈을 붙이고는 잠자리로 삼았습니다. 자루에 들어 있는 물건을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주고, 차별 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걸림 없는 대자유인 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을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데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자루를 내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 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그런 말씀입니다. 내가 내려 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이런 기회에 우리들도 우리들 자신이 어떤 짐을 얼마만큼 지고 있는가? 그 짐이 과연 짐으로서 정당한 짐 인가. 이러한 것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참으로 옳지도 못한 그런 짐을 공연히 힘에 겹게 그렇게 지고 있지는 않는가?
포대화상께서 푸대에 온갖 것을 담아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주는 뜻도 중요하지만, 그 무거운 짐을 턱 내려 놓으시면서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이런 명언을 참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선문답이지요.
선문답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아니했을 때 어떻게 합니까?”
“내려 놓아라 방하착 하라.”
불교에서 아주 좋은 말 가운데 정말 빼어난 말이 방하착이지요.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내려 놓기는 무엇을 내려 놓아 란 말입니까?” 라고 되물으니까
“내려 놓기 싫거든 지고 가거라.”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그 스님이 보기에는 한껏 짐을 짊어 지고 있는데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아니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으시대고 자랑하고 대드는 그 꼴이 얼마나 무거운 짐으로 보였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보신 분은 “내려 놓아라” 라고 했고,
“내려 놓기 싫으면 짊어지고 가라.”
내려 놓아 란 말을 이해를 못하면 어쩝니까? 짊어지고 가야지요. 여기도 그런 대화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 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없이 포대를 후다닥 걸머지고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참 아주 멋지네요.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상사이죠. 포대화상의 일상사입니다.
내려놓고 또 후다닥 짊어지고 가는 이것이 포대화상의 일상사이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을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포대화상을 미륵부처님의 화현이라며 그를 존경하여 그의 모습을 그려 봤다는 풍습도 생겨 후대에 까지 전해졌습니다. 실제 포대화상은 단정히 앉아서 입적할 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고 입적 하셨다고 합니다. 포대화상에 대한 시가 딱 두 구절이 있지요. 앞에 말한 “일발천가반” 하고
미륵불로, 또 미륵불로 천 만 억으로 분신하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나타나도
사람들은 미륵을 아는 이 없다.
그렇지요. 포대화상은 미륵보살의 화신입니다. 미륵보살은 또 미륵불의 화신입니다. 어제 법화경 시간에 미륵보살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드렸지요. 그와 같이 미륵보살은 미래의 미륵불이 된다 라고 해서 우리들의 꿈이요 희망이요 우리의 이상이다. 우리의 꿈과 희망과 이상을 포대화상에게 담았고 미륵보살에게 이제 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희망을 던져준 그런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지고 있는 번뇌망상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짐들을 훌훌 벗어버리면 포대화상처럼 무애자재한 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일생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살해 하려는 제바달다를 경쟁자가 아닌 평생의 도반으로 생각하신 한량없이 깊고도 넓으신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포대화상은 늘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남 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들 속에서 이웃집 아저씨처럼 여여 합니다. 이러한 포대화상을 시대적으로 중국 봉화현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지 그야말로 시대가 어찌 되었든 진정 우리들이 기다리던 참다운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포대화상 앞에서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이도 없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연기 법인데 얼싸 안고 크게 웃읍시다. 이렇게 좋은 원고를 써 가지고 오셔서 같이 의논도 하고 이렇게 포대화상을 좀 선양을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중국에는 사찰의 첫 건물이 포대화상을 모신 건물입니다. 건물에 못 모시면 밖에도 모시는데 처음 절에 들어가자 마자 만난 이가 대개 포대화상 입니다.
포대화상은 언제나 넉넉한 웃음을 가지고 맞이합니다. 사찰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누가 되었든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수행하러 오는 사람도 불공 드리러 오는 사람도 관광 오는 사람도 절을 해치고 스님을 해치려고 오는 사람에게도 불교를 해치려고 온 사람인 도둑까지도 웃음으로 맞이하고 웃음으로 보냅니다.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처님의 넉넉한 자비입니다. 부처님의 넉넉한 자비를 포대화상이라 하는 인물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것이 포대화상이 갖는 의미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찰로 규격화된 엄숙한 모습보다는 넉넉한 웃음으로 어떤 사람도 다 감싸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가져봅니다. 오늘 부처님 출가재일 마침 내가 아주 존경하는 송원 스님께서 소중한 옥고를 남기고 가셔서 우리 염화실 법우님들 에게 들려 드리고, 또 포대화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불심을 더욱더 바르게 가지고 돈독히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들려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출가재일 염화실 방송법문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를 가련히 여겨야 한다.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