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바꾼 시대적 판결
26일 사법 60주년 맞아 대법, 12건 선정 예정
쿠데타 정의… 性차별 개선… 댓글 명예훼손
88년 이후에 나온 판결들로 세태 변화 반영
대법원이 '사법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바꾼 시대의 판결' 12건을 선정한다.
여권 신장, 소수자 인권 보장, 민주주의 발전 등에 기여한 12건의 판결은
오는 26일 대법원 청사 내 법원전시관에 그림과 함께 액자 형태로 전시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시관 태스크포스팀이
판사 내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먼저 14건을 추렸고,
이 중 12건이 최종 선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설치된 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그러나 우리 사회를 바꿨다는 평을 들은 판결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88년의 것이었다.
일본 것을 배우고 모방하며 법리를 정착시키는 단계가 그만큼 길었던 탓이다.
대법원이 꼽은 1988년 판결은 바로 여성 노동자의 인권을 향상시킨
여성전화교환원 퇴직 처리 무효 사건.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1년 직원 정년을 43세에서 55세로 높이는 규정을 마련했다가
이후 일부 착오가 있었다며 전화교환원의 정년만 43세로 낮췄고,
대법원은 사실상 여성이 대부분인 교환원의 정년만 합리적 이유 없이 낮게 정한 것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선언하고 있는 남녀평등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판결했다.
2005년 '여성 종중원(宗中員)'의 지위를 인정한 판결도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한 판결로 꼽혔다.
당시 용인 이씨 가문의 기혼여성들은
종중 땅을 팔고 난 돈을 분배 받는 과정에서 차별을 받자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성인 남자만 종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관습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에 어긋나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2006년엔 소외된 삶을 살아온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한 첫 판결이 나왔다.
여성으로 태어난 A씨는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호적 성별란을 수정해 달라고 정정신청을 냈고,
대법원은 "남녀 구별은 정신적·사회적으로 전환된 성을 가졌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또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인정함으로서
'성공한 쿠데타'일지라도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위배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공공기관의 수해방지 및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망원동 수해 손해배상 사건,
여성의류 실제 가격을 할인 가격으로 속인 유명 백화점에
'사기죄'를 인정한 백화점 변칙세일 사기 사건도 목록에 올랐다.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와 피의자 인권을 중시하지 않으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판결도 여럿 꼽혔다.
1990년 걸개 그림을 북한의 평양축전에 보낸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된
화가 A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 접견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러자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 얻은 자백 진술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진술거부권을 알리지 않고 얻은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신이십세기파 사건(1992년),
적법한 압수수색 절차를 강조한 김태환 제주지사 사무실 압수수색 사건(2007년),
수사기관이 함정 수사를 통해 범죄를 유발·권유하는 것은
불법행위임을 명시한 필로폰 함정수사 사건(2005년)도 시대의 판결로 꼽혔다.
또 교사의 체벌 행위가 사회 통념을 넘어선다면
형사처벌 대상임을 판시한 교사 체벌 유죄 인정 사건,
저작물 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유죄 인정 사건,
인터넷 게시글의 명예훼손죄 인정 사건,
운전면허증 부정사용행위 유죄 인정 사건 등이 의미 있는 판결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 중간에 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23명 가운데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판결처럼
우리 법원의 치부(恥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대법원이 뽑은 '시대의 판결' 후보 14]
1. 대판 1988.12.27. 85다카657 (정년퇴직무효확인): 여성 전화교환원 퇴직처리 무효 사건
2. 대판 1990.7.24. 90다카10527 (국가배상): 서울 망원동 수재 손해배상 사건
3. 대판 1990.9.25. 90도1613 (국가보안법 위반): 걸개그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홍성담 사건)
4. 대판 1992.9.14. 91도2994 (사기): 백화점 변칙세일 사기 사건
5. 대판 1992.9.26.(6.23.?) 92도682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신이십세기파 사건
6. 대판(합) 1997.4.17. 96도3376 (반란수괴 등):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내란 사건
7. 대판 2001.4.19. 2000도1985 (공문서부정행사): 운전면허증 부정사용행위 유죄 인정 사건
8. 대판 2004.6.10. 2001도5380 (폭행, 모욕): 교사의 체벌행위 유죄 인정 사건
9. 대판(합) 2005.7.21. 2002다13850 (종중회원확인 등): 여성 종중원 지위 인정 사건
10. 대판 2005.10.28. 2005도1247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필로폰 함정수사 사건
11. 대결 2006.6.22. 2004스42 (개명, 호적정정): 성전환자 성별 정정 인정 판결
12. 대판 2007.10.25. 2007도5077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인터
넷 게시글 관련 명예훼손 사건
13. 대판(합) 2007.11.15. 2007도3061 (공직선거법 위반): 김태환 제주지사 사무실 압수수색 사건
14. 대판 2007.12.14. 2005도872 (저작권법 위반): 소리바다 저작권법 위반 사건
류정 기자 well@chosun.com
입력 : 2008.09.17 00:13 / 수정 : 2008.09.17 09:12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대법원시대적판결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