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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나다나엘선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평택
02월 01일
2 월
FEBUARY
2월.
February는 라틴어에서
「청정(淸淨)의 달」이란
뜻이다.
2월의 백설(白雪)이야말
로「청정」의 상징이 아닐
까. 산과 들에 반짝이는
눈처럼 깨끗하고 속됨이
없는 달이고 싶다.
2월을 여는 기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보잘것 없는 저희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고
이렇게 인도해 가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시작할 때는 많은 것 같았던 시간도
벌써 한달이나 갔음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를 바라보나이다
지난 달의 그 결심을 잊지않게 하시고
이달에도 가던 길을 잘 가게 하소서
입춘에는 입춘답게
믿음의 새봄을 맞게 하시고
우수에는 우수답게
성령의 단비로 적셔 주소서
비록 한달은 갔지만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새해 아침 그때처럼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월 : 새봄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서고 있는 이 달은 절계가 바뀌는 한해의 첫 매듭 일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의 입학시험과 졸업식이 겹치고 각급 학교도 개학을 하게 되어 배우는 세대들에겐 또 다른 매듭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는 농촌대로 오랜 동면의 움츠림에서 깨어나서 한해 농사의 채비에 분주하다.
밀이나 보리밭에 웃거름을 주고 얼부푼 이랑을 밟고 객토를 넣는 등 일손이 바빠진다.
이렇게 도시나 농어촌을 가릴나위 없이 제가끔의 처지따라 새해의 새봄을 맞을 채비에 몸과 마음이 분주한 철인데 아직은 아득할 화신(花信)의 북상(北上)과 더불어 날씨의 변덕이 심한 것도 이 달의 일이다.
봄을 맞을 마련으로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고 향긋한 달래며 냉이며 씀바귀 등 봄나물 무침으로 텁텁했던 입맛을 가셔 보다 밝고 뿌듯한 봄이 되어지도록 모두가 힘을 내어야 할 달이다.
매화(梅花)
마디진 옛가지에
띄엄띄엄
다소곳이 매화는
피었네...
청초하고 우미한 그모습
뉘집 아가씨를 닮았을까
2월의 탄생석 : 자수정(紫水晶 ; amethyst). 고대의 사람들은 이 보석을 가지고 있으면 술에 취하는 일이 없다고 믿었다. 그 뿐 아니라 매사를 감정에 지배되어 잘못 처리하거나, 근심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며, 성실 평온한 심정으로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대 승려(僧侶)들은 높은 덕과 이상을 희구하는 마음에서 이 보석의 지환을 끼었다고 한다. ⇨ 1월 1일.
2월 1일
오늘의 말씀
① 민수기1:1-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2년 2월 1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데,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매 지파의 각기 종족의 두령 한 사람씩 너희와 함께 하라)
② 에스겔26:1 (제 십 일년 어느 달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③ 역대하31:3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 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
④ 민수기1 : 18 -19( 18. 이월 일일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그 명수를 의지하여 자기 계통을 말하매 스2:59, 느7:61
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삼하24:1 )
오늘의 역사
① 귀주대첩(龜州大捷)(1019) : 고려시대 현종10년 거란 침략군을 귀주에서 강감찬 장군이 물리쳐 승리한 싸움.
고려는 태조 때부터 발해를 멸망시키고 압력을 가해오는 거란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진정책을 계속 시행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993년(성종 12) 소손녕(蕭遜寧)이 이끄는 제1차 침입이 있었으나 서희(徐熙)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의 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강동6주(州)가 군사적 거점이 되자 이를 차지할 목적으로 거란은 강조(康兆)의 정변을 구실로 1010년(현종 1) 성종(聖宗)이 제2차 침략을 시도하여 개경까지 함락했으나 별다른 소득없이 다시 철수하였고, 이에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1018년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침략을 감행해왔다.
이때 고려는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8천의 대군으로 맞서 싸우게 하였다.
거란군은 흥화진(興化鎭)을 통하여 내려오다가 그곳에서 패배했지만, 자주(慈州)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경(西京)을 거쳐 개경 부근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병력의 손실이 크자 소배압은 정벌을 포기하고 황해 신은(新恩)에서 회군하여 가다가 청천강 유역의 연주(漣州)․위주(渭州)에서 강감찬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으며, 특히 구주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마판관 김종현(金宗鉉)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배하였다.
이때 살아남은 병력이 수천 명에 불과하였을 정도로 거란의 패배는 심각하였고, 그 결과 거란은 국왕의 친조와 강동6주의 반환을 다시는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② 통감부(統監府) 설치(1906) : 통감부는 1905(광무9).11.16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된 때부터 1910년 한일 합방까지 한국에 설치된 일본의 독점적 지배 기관이며 조선 총독부의 전신이다.
통감 정치. 통감부의 초대 통감은 이토오, 2대는 소네, 3대는 데라우치였으며, 통감부는 왜성대(현 남산, 옛 중앙 방송국 자리)에 있었다.
⇨ 12월 21일.
⇨ 3월 2일.
* 1906년 1월31일자로 한국 주재 일본 공사관이 문을 닫고 통감부가 업무를 개시하면서 한국에서 일제의 통감 정치가 시작됐다.
통감부 설치는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그 전 해 11월 한국 정부와 강제로 맺은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에 따른 것이었다.
한일합방이 공식화한 것은 1910년 8월이지만, 제2차 한일협약에 따라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한국은 이미 전면적으로 일본에 종속되었다.
2월 한 달간 재직한 임시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에 이어 3월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부임하며 통감정치가 본격화했다.
일제는 통감부를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대행한 것은 물론이고, 고문(顧問)정치, 차관(次官) 정치라는 이름으로 내정의 사소한 일들까지 간섭했다.
이미 하세가와 임시 통감 시절 전국 10개 지역에 한국 지방관청을 감독하는 통감부 지방기관 이사청(理事廳)이 설치되고, 일본 경찰이 전국에 배치됐다.
그 해 11월에는 또 다른 8개 지역에 이사지청이 들어섰다.
초대 통감 이토는 재임 중인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뒤, 이완용(李完用) 친일내각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각 부에 취임한 일본인 차관이 실권을 가지고 외교와 내정을 통감의 지휘 아래 집행하는 차관 정치가 시작되었다.
이토는 또 이 협약의 부속밀약을 통해 군대를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의 무력 기반을 완전히 제거했다.
1909년 통감직을 사임하고 추밀원 의장이 된 이토에 이어 소네 아라스케(曾荒助),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통감으로서 한일합방의 사전 공작을 마무리했다.
3대 통감을 지낸 육군대장 데라우치는 합방 뒤 초대 조선 총독이 되었다(고종석,2003).
③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조직(1910) : 독립 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재미(在美) 교포의 자치 단체.
이승만․안창호 등의 노력으로 창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각 지방에 지방 총회와 지방회를 조직.
대의원제를 채택하여 각지방에서 선출된 대표로 국민회를 운영하는 한편 부속으로 감찰도 두었다.
④ '창조(創造)'지 창간(1919) : 한국 최초의 근대적 순문예 동인지.
창간 동인은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 최승만 등 도쿄(東京) 유학생 다섯 사람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주요한.
이 동인지는 그때까지 신문학이 가진 계몽주의 성격을 청산하고 구어체 문장을 확립했다.
또한 새로운 문학사조인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으며, 본격적인 자유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과 <배따라기>, 주요한의 <불놀이>, 김소월의 <그리워> 등이 <창조>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동인지는 1921년 5월 30일 통권 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창간호부터 제7호까지는 도쿄에서 나왔고, 제8~9호는 서울에서 나왔다.
한국 최초의 근대 자유시로 불리는 주요한의 불노리, 김동인의 소설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등의 작품들이 창조를 통해 선을 보였다.
동인지는 상업적 고려를 젖혀두고 공통된 이념이나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주체가 돼 내는 잡지다.
18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동인지들은 20세기 들어큰 활력을 얻으며 소수자의 사상 전파에 이바지했다.
한국에서는 창조에 이어 염상섭 오상순 황석우 남궁벽 김억 등이 편집한 폐허(1920),홍사용 이상화 박영희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등의 백조(白潮,1922), 김영랑 박용철의 시문학(1930), 최재서가 중심이 된 인문평론(1938),청록파가 활약한 문장(1939) 등 문예 동인지들이 잇따라 나오며 현대 문학의 발전을 주도했다.
창조론은 우주만물이 흔히 하나님(神)이라고 불리는 무제약적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태초 이래로 많은 종교들이 제 나름의 변주를 가미하며 창조론을 수용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 창세기의 기록에서도 드러나듯, 유대교와 기독교는 창조론을 교리의 뿌리로 삼는 대표적 종교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내세운 19세기 이래 창조론은 그 신봉자들을 많이 잃었지만, 아직도 인류 다수의 상상력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고종석,2002)
⑤ 갑오 대전(甲午大典) 시행(1474) :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즉위하자「경국 대전」을 수정하여 1471.1.1 부터 공포하여 시행하도록 했는데, 이것이「신묘 대전」이다.
하지만 이 책은 누락된 조문이 많아 다시 개수하여 3년 뒤인 1474.2.1부터 시행하였는데, 이 책이「갑오 대전」이다.
⑥ 이왕직(李王職) 폐지(1946) : 맥아더 사령부.
⇨ 4월 5일
⑦ 프레스 카드(press card) : 언론의 책임이나 기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사이비 언론 기관에 근무하는 사이비 기자들의 횡포를 없애기 위해 정부 당국에서 취한 조치의 하나이며, 문공부에 정식 등록된 언론 기관의 기자에게 한하여 보도증을 발급한 것이다.
1972.2.1부터 실시, 발행되고 있다.
⑧ 장충 체육관 개관(1963) : 기공은 1960.3.16.
준공은 1962.12.31.
⑨ 한국-헝가리 국교 수립(1989) : 1989년 오늘 !
우리나라는 공산권국가와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헝가리와는 지난 1987년 12월 상호 무역사무소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노력이 계속돼왔습니다.
우리나라는 헝가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동구권 국가들고 잇따라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⑩ 조선왕조 유물 전시회(1963) : 1963년 오늘
조선 왕조 5백년동안의 진귀한 왕실 유물과 전통의상이 일반일들에게 공개됐습니다.
서울 종로구 종묘에 있는 어재실(御齎室)에서는 왕실의 국보급 유물 160여점이선보였습니다.
특히 왕실에서 입던 의상, 옥새, 악기등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수도 여자 사법대학에서는 조선시대 의상 발표회가 열려 여성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발표된 스물 다섯점의 의상은 어린이 의상으로부터 임금니의 관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였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조선시대의 빛나는 전토유물이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됐습니다.
⑪ 서울 특별시 : 1962.2.1의「서울 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 조치법 발효」에 따라 종래의 내무부 장관 감독권 하에서 국무 총리 직속으로, 시장은 별정직(이전엔 도지사와 동급인 1급 공무원이었음)으로 하여 소관 사무에 관해서는 각의에 출석, 발언할 수 있게 하였다.
⇨ 8월 16일.
⇨ 10월 1일
⑫ 국내 FM라디오방송 시작(1970) : 오늘은 왠~지 이 노래가 가슴을 파고드네요.
닐 세다카의 You mean everything to me(그대는 나의 전부) 나갑니다.
1980년대 고등학교 시절. 종종 친구들과 함께 서울 종로에 있는 성전이라는 음악다방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팝송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신청곡을 쪽지에 적어 디스크자키(DJ)에게 전해줬는데 그때는 왜 그리 DJ가 멋있게 보였는지….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렇게 팝송에 심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스테레오 방송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등 팝송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을 스테레오 뮤직으로 들으며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스티비 원더, 올리비아 뉴턴 존 등 추억의 팝스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니 아이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회사의 음질 좋은 이어폰을 하나 장만하면 빵빵하게 들리는 스테레오 사운드에 빠져 하루 종일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한국에서 라디오 FM 스테레오 방송이 처음 시작된 건 1970년 2월 1일부터였다.
모노 방송은 양쪽의 스피커에서 같은 소리가 나오는 데 반해 스테레오 방송은 스피커에서 각자 분리된 소리가 나와 훨씬 생생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양쪽 귀에서 들리는 쿵쾅 쿵쾅 하는 입체적인 소리에 가슴이 쿵쾅 쿵쾅 뛰었던 기억이 난다.
국내 음반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FM 스테레오 방송을 통해 팝음악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지구 오아시스 성음 등 음반회사들은 속속 외국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음반산업은 1970년대 중반 뮤직 카세트테이프가 나오면서 날개를 달았다.
1970년 FM 스테레오 방송을 처음 시도했던 동양방송은 정부의 언론통폐합 조치 때문에 1980년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KBS로 통합됐다.
라디오 서울이 모태인 동양방송은 당시 유럽에서 경쟁적으로 실시하던 스테레오 방송 시스템 기재를 과감하게 도입해 국내 최초의 FM 스테레오 방송을 하는 등 동아방송과 함께 추억의 방송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07)
⑬ 덕유산국립공원 지정(1975) : 국립공원 제10호.
전라북도 무주군․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
그 범위는 전북 무주군을 중심으로 경남 거창군 ․함양군, 전북 장수군에 걸쳐 면적 219km2이고, 1975년 2월 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유산은 약 20km에 걸친 긴 능선을 포함하는 산이다.
즉 북동부의 북덕유산을 주봉으로 남동부의 남덕유산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에 무룡산(舞龍山:1,492m) ․삿갓봉[笠峯:1,386m] 및 동엽령(冬葉嶺:1,328m) 등 산봉과 안부(鞍部)가 이어진 소백산맥의 주맥이 웅대한 능선을 형성하면서 덕유산의 주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들 주봉군의 장엄한 산용은 예로부터 명산의 칭송을 받아 왔으며, 칠연(七連)폭포 ․용추(龍湫)폭포 등이 걸려 있는 계곡미가 훌륭하고, 정상부의 주목군락과 고산식물 및 산체를 뒤덮은 대수해(大樹海)의 경관이 뛰어나다.
그 밖에 무주군으로 내리뻗은 두 갈래의 지맥에 딸린 적상산(赤裳山:1,038m) ․두문산(斗文山:1,051m) ․거칠봉(居七峰:1,178m) 및 칠봉(七峰:1,161m) 등의 산도 훌륭한 경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경승지는 역시 무주구천동이다.
무주구천동은 덕유산 정상부 가까이에서 발원하는 금강 상류의 한 지류인 원당천(元唐川)이 덕유산 북사면을 침식한 계곡으로, 약 25km에 걸친 구간에 33경으로 꼽히는 절경이 줄지어 있다.
절벽 ․기암괴석 ․암반 ․대석(臺石) 등의 암석경관과 폭포 ․급단(急湍) ․벽담(碧潭) 등의 계류경관 및 울창한 수림경관이 조화된 33경 중에는 수성대(水城臺) ․가의암(可意巖) ․추월담(秋月潭) ․수심대(水心臺) ․수경대(水鏡臺) ․청류동(淸流洞) ․비파담(琵琶潭) ․구월담(九月潭) ․청류계(淸流溪) ․구천폭포(九千瀑布) 등이 있다.
한편 국립공원 안에는 구천동의 제32경으로 꼽히는 백련사(白蓮寺)와 안국사(安國寺) 등 사찰 및 나제통문(羅濟通門)과 적상(赤裳)산성 등 사적이 있다.
백련사는 구천동계곡이 끝나는 고도 940m 지점에 있는 절로,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과 6 ․25전쟁 때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그 후에 새로 지은 것이며, 1723년(경종 3)에 주조된 범종을 소장하고 있다.
안국사는 적상산의 적상산성 안, 해발고도 1,000m 지점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에 창건하여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에 중수하였다.
극락전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적상산 사고(史庫) 현판을 소장하고 있다.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雪川面)과 무풍면(茂豊面) 사이의 암벽을 뚫은 인공동문(洞門)으로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높이 3m, 길이 10m로 본래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인데, 그것이 뚫리게 된 경위와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본래 나 ․제(羅濟)의 국경이었던 동문은 그후 통일신라 ․고려시대에도 계속 행정구획의 경계가 되어 오다가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에 이르러서 동문 밖의 무풍현(茂豊縣)이 동문 안의 주계군에 합쳐졌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재의 무주군으로 개칭되었다.
그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오늘날에도 동문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 즉 무주 사람과 무풍 사람 사이에는 언어 ․풍습 등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적상산에 있는 적상산성은 1628년(인조 6)에 축조한 산성으로, 사적 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4면이 절벽으로 둘러진 산정부의 분지가 성 안에 해당되며, 본래 성 안에는 사고(史庫) ․선원각(璿源閣) 및 현존하는 안국사 외에 호국사 등이 있었으나, 현재 약 3km의 성지(城址)와 군데군데의 석축 및 높이 1-3m의 북문지 ․서문지 ․사고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산성 일대의 산지는 가을의 단풍이 아름답고, 설천면 남대천 일대는 반딧불의 유충인 다스레기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무주 구천동 심곡리에는 환경단체들의 자연파괴고발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키장 등 레저시설을 갖춘 무주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⑭ 말라위 자치정부 수립(1963) : 1891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프리카의 말라위!
영국군이 철수함에 따라 1963년 오늘 자치정부를 수립합니다.
영국에서 한때 의사생활을 하던 해스팅스 반다가 자치정부의 총리를 맡았습니다.
반다총리는 1966년 개헌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1971년에는 헌법개정으로 종신대통령이 됩니다.
그러나 반다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의 확산으로 1994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⑮ 상파울로 빌딩화재 185명 사망(1974) : 브라질의 최대도시인 상파울로 !
상파울로에 있는 고층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185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빚어졌습니다.
21층자리 고층빌딩에서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은 삽시간에 빌딩 전체로 번졌습니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진화작업과 인명구조작업에 나섰지만 빌딩의 규모가 크고복잡해 불길을 잡는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건물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상사다리를 이용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다리가 17층까지 밖에 닿지않아 18층이상 고층에 있던 사람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⑯ 초미니 모터사이클 등장(1978) : 미국의 발명가 커크 라이트!
1978년 오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모터사이클을 선보였습니다.
길이가 30센티미터 가량되는 이 모터사이클은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습니다.
라이트는 자신이 만든 초미니 모터사이클은 6백 50마리의 닭이 끄는 힘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라이트는 이 모터사이클이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⑰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 귀국(1979) : 이란 시아파 이슬람의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
1979년 오늘!
1964년 팔레비 정권에 의해 이라크로 추방된지 15년만의 일.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그는 팔레비 왕이 임명한 바크티아르 내각을 '불법'으로 선언했다.
1979.2.9 테헤란 교외에서 호메이니를 지지하는 군인들이 봉기했으며 이틀 뒤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그 해 말 국민투표를 통해 채택된 이란의 새 헌법은 호메이니에게 최고 정치-종교 지도자의 지위를 부여했다.
호메이니는 이란을 알라신과 이슬람 법률이 지배하는 국가로 변모시켰다.
서양음악과 음주가 금지되고 남녀공학이 폐지됐으며 여성들은 얼굴을 베일로 가려야 했다.
호메이니는 또 팔레비 정권의 핵심인사는 물론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물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이란 현대사의 주역은 팔레비 국왕(1919-1980)과 호메이니(1900-1989) 두사람였다.
호메이니는 1940년대부터 팔레비 왕조의 이슬람교 탄압에 저항하면서 국민의 90%를 차지하는 시아파이슬람의 최고 지도자로 추앙받아왔습니다.
계속 1960년대 이후 팔레비 국왕의 서구화정책에 반대해온 호메이니!
1962-63년 토지개혁으로 종교영지를 축소시키고 여성을 해방하려는 팔라비의 조치에 격렬히 반대하다가, 1964.11.4 국외로 강제 추방되었다.
1964년 터키를 시작으로 이라크에 머물며 반팔레비 운동을 계속하던 호메이니는 1978년 10월 후세인에 의해 여기서마저 쫓겨나자 프랑스 파리로 옮겨갔다.
이란 혁명은 팔레비와 호메이니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다.
1979.1.16 팔레비국왕은 독재타도 시위에 굴복해 국외로 탈출, 80년 7월 이집트서 사망했고, 호메이니는 종교지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고, 1989.6.3 사망할 때까지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엄격한 통치를 실시 이란 최고의 정치․종교 중재자로 군림했으며, 인접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⑱ 파나마 운하 기공(1881.2.1 - 1914.8.15) : 파나마 지협 횡단의 갑문식 운하.
대서양안「콜론」으로부터 태평양안의「발보아」에 이른다.
길이 81km, 깊이 12.5m이상, 폭 30-90m, 수문은 상하 각각 3개이며, 1년간 교통량은 상선 5600척, 화물 3000만톤(1951) 1883년에 「레셉프스」가 건설에 실패하였고, 1903년의 파나마 공화국 독립 직후 미국 파나마 조약에 의하여 미국은 운하 지대 영구 조차권을 얻어 1904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완성하였다.
⑲ 현대인의 근원을 일깨워준 '뿌리'(Roots)' 방영(1977) : 2월 1일 미국인들은 TV 앞에서 한동안 떠날 줄 몰랐다.
ABC가 8일간 연속 방영한 미니시리즈 '뿌리(Roots)'가 끝나자 그들의 눈에선 눈물이 분출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자유를 찾는 감동적인 '흑인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향수와 미국 땅에 흘러 들어온 과정을 반추하는 이민자 특유의 감상도 작용했다.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식을 치른 다음 해에 일어난,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뿌리'는 흑인 작가 앨릭스 헤일리(1921-1992)가 자신의 가계를 9년 동안 추적해 완성시킨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로 잡혀온 쿤타 킨테로, 6대에 걸친 모계측 내력을 담았다.
'뿌리'는 37개국에 번역됐고, 전 세계 수억명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텔레비전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능가할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작품으로 헤일리는 1977년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일부 흑인들로부터는 비판을 받았다.
"흑인들의 '과거'를 재조명하는데 기여했으나 '오늘'을 밀도 있게 발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헤일리가 흑인 인권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 뿌리'를 본 시청자는 미국 TV사상 최대 숫자였다.
흑인뿐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잃어버린 '근원'을 일깨운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⑳ 유엔 총회와 세계 공용어 : 세계 회의에서 쓰는 공용어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 그리고 중국어로 되어 있다.
이런 공용어는 1946.2.1 제1회 유엔 총회가 열렸을 때 정해진 것이다.
동시 통역이 처음으로 채택된 것도 이때부터의 일이다.
㉑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공중폭발(2003) : 2003년 오늘,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지구 귀환 도중 텍사스주 65㎞ 상공에서 폭발했다.
하늘에서 파편이 흩어지며 화염에 휩싸였다.
케네디 우주센터 착륙 예정 시간을 불과 16분 앞두고 일어난 참사였다.
여성 2명을 포함해 승무원 7명 모두 숨졌다.
1981년 처음으로 우주궤도에 오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
비극적인 28번째 우주여행이 마지막 비행이 됐다.
㉒ 유엔 총회,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1951) : 1950.11.25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북한 공산군을 거의 섬멸함으로써 조국 통일을 목전에 두었으나 뜻밖의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풀은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1951.2.1 제5차 유엔 총회에서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였으며 한국에 모든 원조를 계속 제공할 것과 침략자에게 어떠한 원조 제공도 삼갈 것을 모든 국가에게 요청하였다.
⇨ 11월 27일
㉓ 정성공(鄭成功), 대만 점령(1662) : 1662년 2월1일, 대만 남단 질란디아(Zeelandia). 네덜란드 총독이 정성공에게 고개를 숙였다.
멸망한 명(明)나라 군대가 대만에 상륙한 지 10개월 만이다.
38년에 걸친 네덜란드 식민시대도 이로써 끝났다.
정성공은 멸청복명(滅淸復明)을 도모했던 인물.
정복왕조인 청이 싫어 수많은 한족 지식인이 그를 따라 들어오며 대만은 중국화의 길을 걸었다.
정성공은 이듬해 말라리아에 걸려 39세의 한창 나이에 숨지고 대만도 21년 후 청에 굴복했지만 그는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쉰다.
대만에서는 국조(國祖)로, 중국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승리한 영웅으로 숭상된다.
명의 망명 황실로부터 주(朱)씨 성을 하사받아 국성야(國姓爺)로 불리는 그는 서양에서도 콕싱가(Koxinga)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정성공을 따라 이주했던 본성인(本省人)과 국민당을 쫓아 들어온 외성인(外省人)간 갈등의 뿌리가 이미 345년 전에 싹텄다.
대만은 정성공 일가를 정씨왕조로 부르며 독립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와 평화공세도 청나라의 정씨정권에 대한 강온양면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식민지배를 당했음에도 호감도 1위 국가로 일본을 지목하는 대만인 의식구조의 바탕에도 정성공이 있다.
정성공이 반쪽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중국 해적과 일본인 하급무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고향인 나가사키에서 일곱살까지 후쿠마쓰(福松)로 살았다.
중국 견제용으로 일본과 준군사동맹을 추구하는 대만의 모습은 청에 맞서 일본 막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한 정성공의 복사판이다.
중일 혼혈로 양쪽에서 추앙받는 정성공의 존재는 중국과 대만.일본의 앞날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권홍우 편집위원.서울경제.한국아이닷컴.07)
㉔ 이집트-시리아 통일아랍공화국 성립(1958) : 1958년 오늘 !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방을 선언해 통일아랍공화국이 성립됩니다.
아랍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이집트와 국내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으려는 시리아 정부!
그러나 1961년 9월 시리아는 독자성 확보를 내세워 통일 아랍공화국은 해체되고 맙니다.
㉕ 기타 오늘의 역사
A.D 561(신라 진흥왕 22)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 창녕(昌寧)에 순
수비(국보 제33호)(척경비) 를 세움
1395 우리나라 처음 목활자로 `대명률직해' 간행
1689 기사사화
1774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집필 시작
1790 미국연방대법원 뉴욕에서 처음 소집
1893 발명왕 에디슨, 세계 첫 영화스튜디오 완성
1901 만주에 관한 러청밀약성립
1902 청조, 만인(滿人)과 한인(漢人)의 통혼 허락하는 유서와 전족 금지령 공포
1909 상해에서 제2회 만국 아편금지회의
1910 매켄지 내한.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한국 선교사. 부산 나병원 원장직을 맡아 봉사함.
1912 한국교회 주일학교 위원회 설립
1916 <신학세계> 창간
1917 독일, U보트를 동원해 무제한잠수함작전 재개
1920 독일, 나치스강령 발표
1922 헤이그 국제사법 재판소 개설
1924 영국 소련 승인
1933 「신가정」창간
1934 진광 창간.편집겸 발행인 유기태.발행처 일본 토오쿄오 진광 사. 재일교포들의 선교를 목적으로 발행됨.
1935 현대교회와 종교교육 발행.저자는 미국 시카고대학종교교육 교수 바우어. 역자 유형기. 발행처 감리회총리원 교육국.
한국교회 지도자 양성부 특별 교과서.
1940 리처드슨 내한.구세군 사관.의사.한국명 이치선.미국 출신.
충북 영동에 있는 구세병원의 초대원장으로 초빙되어 의사인 부인과 의료선교활동을 전개함
1942 용산 대신학교 돌연 인가없는 학교라고 강제 폐쇄시키고 대 신학생들을 덕원신학교로 옮김
1944 미군, 마샬군도 상륙
1946 헝가리 인민공화국 성립
1948 말레이지아 연방 수립
1952 한정협회 창설."한국과 덴마크 양국의 친선과 문화교류를 목 적"으로 창설된 민간외교단체.
1952 일본, 경찰 예비대를 중심으로 자위대 창설
1952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창설
1953 일본 NHK, TV 방송 개시
1956 한-미 원자력 협정 조인
1959 한글학회 소사전 원고 완성
1961 장로회신앙 창간.기독교잡지.편집 겸 발행자 이상근.발행처
대구장로회신학교.신학강좌,성서연구,설교등을 내용으로 발 행.
1961 일본 우익청년, 중앙공론사장 살해
1962 주화 투입식 공중전화기 최초 설치
1962 한국광업제련공사 발족
1962 울산공업센터계획 발표
1962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1954년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농촌생활 개선으로 시작함).
1963 국민은행 발족
1968 경부 고속 도로 기공
1969 한국 도로 공사 발족
1970 <기독교 문예> 창간
1970 TBC FM, 한국 최초로 FM 스테레오 방송 실시
1973 소액 사건 심판법 시행
1973 비상국무회의, 국정감사 폐지법 의결
1974 한국방송협회 창립
1974 브라질 사웅파울루시 호텔화재 220명 사망
1981 이란, 요르단-모로코와 단교
1982 서울지법, 윤노파살해사건 고숙종 피고에 무죄선고
1983 손재식 통일원 장관, 남북한 당국 및 정당사회단체 연석 회의 제의
1987 한방의료보험 전국에 확대 실시
1989 가정의례준칙 폐지
1989 개인-기업의 해외부동산 투자 전면 자유화
1989 한국-헝가리 수교
동구권 공산권 국가와는 최초의 국교 수교였다.
1989 분단후 처음으로 북한산 무연탄 2만t 남포에서 인천 항에 직수입
1989 세계일보 창간
1990 민정당 해체, 합당 의결
1991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진도 6.8의 강진, 2백여명 사망
1991 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 인종차별정책 관련법 철폐추진 발
표
1992 행정기관과 정부투자기관의 업무용 및 자가용 차량 10부제 운행 실시
1992 승용차 10부제 실시
1992 부시-옐친, 구소련붕괴후 첫 정상회담
1994 한국-오만, 문화협정 체결
1994 UR준비 거부 농민 3만명 한밤까지 서울 도심 시위
오늘의 인물
① 유길준(兪吉濬 ; 1856 ~ 1914.2.1) : 정치가 ․개화운동가.
본관 기계(杞溪).
자 성무(聖武).
호 구당(矩堂).
서울 출생.
1881년(고종 18)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했다가 1882년 귀국, 1883년 외무랑관(外務郞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을 수행하여 도미(渡美), 보스턴대학을 다녔다.
18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구금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外務參議) 등을 지내고, 1895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무협판(內務協辦)을 역임, 1896년 내부대신에 올랐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사로 귀국했다.
그 후 흥사단(興士團)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국민경제회(國民經濟會)를 설립했으며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설립했다.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훈1등 태극대수장(勳一等太極大綬章)을 받았다.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에서 남작(男爵)을 주었으나 거절했다.
저서에 《보로사국 후례대익 대왕 7년전사(普魯士國厚禮大益大王七年戰史)》 《영법로토 제국 가리미아전사(英法露土諸國哥利米亞戰史)》 《노동야학독본(勞動夜學讀本)》 《대한문전(大韓文典)》 《구당시초(矩堂詩?)》 《구당선생집(矩堂先生集)》 《세계대세편(世界大勢編)》 《정치학(政治學)》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 《이태리 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파란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구당서간집(矩堂書簡集)》이 있다.
② 박인호(朴寅浩 ; 1855.2.1(음12.25) ~ 1940.4.3) :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 밀양(密陽).
자 도일(道一).
호 춘암(春菴).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883년 동학(東學)에 입도,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7,000명의 교도를 이끌고 예산 홍주(洪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천도교의 도통(道統)을 계승, 제4대 대도주(大道主)가 되고, 1919년 3․1운동 때는 손병희(孫秉熙)를 도와 천도교측 독립투사들 연락에 힘쓰며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후에 동덕학교를 창립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③ 신채호(申采浩 ; 1880.12.8(음11.7) ~ 1936.2.1)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사학자․언론인.
⇨11월 7일
④ 조만식(曺晩植 ; 1883.2.1 - 1950.10.18) : 평남 강서 출생.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정치가
한일 합방이 되던 무렵, 도산 안창호의 국내 투쟁 이론에 크게 감명을 받고, 마하트마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인도주의에 공감해 이를 독립운동의 본보기로 삼았다.
민족 지도 이념을 결정, 해외 망명의 길이 열려 있음에도 국내에서 온갖 고난을 동포와 함께 당하며, 무저항 민족 운동을 벌였다.
자신이 한국산 의복과 음식을 먹으며「물산 장려회」를 조직했고, 1932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하여 민족 언론의 사세(社勢)를 복구시켰으며, 해방후 평양에서 조선 민주당을 조직하여 당수가 되었다.
1946년 2월 무장한 소련군이 평남 인민 정치 위원회를 둘러싸고 찬탁을 강요했으나 반대, 이로 인해 연금되었다가 1950년 유엔군이 북진할 때 사형당한 것으로전해졌다.
⑤ 이광수(李光洙 ; 1892.음2.1 - 1950.10.25) : 소설가.
호 춘원.
신문학 운동의 선구자.
현대 소설의 개척자.
1917년에 한국 최초의 현대 소설 <무정>을 발표, 계속해서 <유정> <흙> <사랑> <꿈> <나> 등을 발표하였다.
6.25 사변 때 북한으로 납치후 사망하었다.
⑥ 지석영 사망(1935) : ⇨5월 14일.
최초로 종두법 도입.
현대의학의 개척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두종두법에 의한 종두를 실시한 선생이 1935년 2월 1일 사망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지석영은 의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의학, 특히 종두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20대 들어 '종두귀감'을 읽고 감명을 받은 지석영은 부산에 있던 일본 군의(軍醫)에게 종두법을 배운 뒤 1879년 처가가 있는 충주에서 40여명에게 우두를 놓아주었다.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첫 종두법 실시였다.
지석영은 1880년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본격적으로 종두법을 공부, 귀국 후 전주와 공주에 우두국을 설치하는 등 마마퇴치에 진력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1899년 관립 대한의학교 초대 교장에 임명된 지석영은 다른 질병 퇴치에도 정열을 쏟았다.
지석영은 문신(文臣)이자 국어학자이기도 했다.
50대 들어서는 주시경과 함께 한글보급에 힘썼으며, 특히 한글의 가로쓰기를 주장해 한극보급에 큰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5월 15일
⇨9월 21일.
⑦ 호프만스탈 출생(1874) : ⇨7월 15일
⑧ 요한 프리드리히 디펜바흐(John Friedrich Dffenbach ; 1792.2.1 - 1847.11.11) : 독일의 의사.
정형 외과 대가의 한 사람으로 인도에서 옛부터 행해지고 있던 코의 모양을 바꾸는 기술을 독일에 가져와 소개했다.
「쾨니히스브르크」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1829년부터「샤리터」병원 외과 의사․베를린 대학 교수를 역임.
피하 수술법을 개량하는 등 의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⑨ 몬드리안(Piet Mondrian ; 1872.3.7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 1944.2.1 미국 뉴욕) : 본명은 Pieter Cornelis Mondriaan.
추상미술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
몬드리안이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시인이자 화가 미셀 쇠포르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23년간을 파리에서 보내면서도 그는 이렇다할 개인전 한번 열지 않았다.
그는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고, 그 상대가 몇 명만 있어도 만족했다."
생계 유지를 위해 몬드리안은 평생 도자기에 꽃을 그리는 일을 했으며, 그래서인지 자연을 몹시 싫어했다고 전한다.
1938년 나치의 폭격을 피해 런던에서 뉴욕으로 간 그는 저녁이면 록펠러 부근의 산책을 즐겼는데, 그곳의 불밝혀진 기하학적 형태의 창문들이 자신의 작품과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⑩ 랭스턴 휴스(James Mercer Langston Hughes ; 1902.2.1 ~ 1967.5.22) : ⇨5월 22일.
미국의 흑인 시인․소설가.
미주리주 조플린에서 태어났다.
휴스는 20세기 미국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유대인의 나들이옷(1927), 할렘의 셰익스피어(1942), 편도 차표(1949) 같은 시집에 묶인 그의 시들은 흑인 방언과 재즈 리듬을 과감히 사용하며 도시 흑인들의 삶과 정서를 그려냈다.
휴스와 동세대 시인촵소설가들이 주도한 1920년대 이후의 활기찬 흑인 문학을 미국 문학사에서는 니그로 르네상스 또는 할렘 르네상스라는 이름에 담아내고 있다.
휴스가 1926년에 발표한 흑인 예술가와 인종의 산이라는 에세이는 할렘 르네상스의 선언문 같은 것이었다. 거짓된 통합을 내세워 인종적 긍지를 팽개치려는 작가촵시인들이 있다.
그들은 흑인 시인으로가 아니라 시인으로 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백인 시인처럼 쓰고 싶어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자기자신이 되기를 두려워한 시인이 위대했던 적은 없었다.
우리들 젊은 흑인 예술가들은 이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검은 피부의 우리들 자아를 표현하고자 한다.
만약에 백인들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도 기쁠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그럴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우리들은 우리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에 유색인들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도 기쁠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그럴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의 불쾌감 역시 무슨 상관이랴. 우리들은 내일을 위해 우리의 사원들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자유롭다.
휴스는 흑인이, 백인이나 다른 인종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소망과 상관 없이, 그를 흑인 시인이 아니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종석,2005/01/31).
⑪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 1901.2.1 ~ 1960.11.16) : ⇨11월 16일.
미국의 영화배우.
오하이오주 캐디즈에서 태어났다.
초창기의 영화 배우들이 흔히 그랬듯, 게이블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한 뒤에야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게이블의 아버지는 뜨내기유전(油田) 노동자였고, 게이블 역시 그 직업을 이어받아 유전 인부로 일했다.
그는 이밖에도 벌채 인부, 도로공사 인부, 외무 사원 등 잡다한 직업을 거쳐 유랑극단의 무급배우가 되었다.
유랑극단을 전전하다가 그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해서 갱 역을 맡은 것은 24세 때였고, 대사 있는 역을 처음 맡은 것은 그보다 6년 뒤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에서 신문기자 피터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탄 게이블은 그 뒤 바운티호의 반란(1935) 지구를 달리는 사나이(1938) 바람과함께 사라지다(1939) 등의 대작에 잇따라 출연하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인 1960년에도 거친 말(馬)과 여자에 출연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석양의 붉은 빛을 받으며 게이블(레트 버틀러 역)과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 역)가 입을 맞추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인데, 실상 게이블은 주윗사람들이 숨쉬기도 힘들어할 만큼 입냄새가 심해서 비비안 리가 여러 차례의 엔지를 내며 말도 못할 고생을 치렀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많은 여자가 따랐다.
게이블은 다섯 번 결혼했고, 다섯번째 아내인 십년 연하의 배우 케이 스프레클스에게서 유일한 아들을 얻었다.
그가 죽고나서 5개월 뒤였다(고종석,2002).
⑫ 보리스 옐친(Nicolayevich Boris Yeltsin ; 1931.2.1 - 2003.2. 1현 생존) : 우랄 산맥의 한 농가에서 출생.
전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방 대통령이 공식 사임함에 따라 11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새로운 독립 국가 공동체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로서 세계 무대에 정식 진출하게 되었다.
「옐친」대통령은 소련 땅에서 공산당과 대결, 승리를 거둔 최초의 사람이다.
⑬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 ; 1797 - 1851.2.1) : 영국의 여류 작가,시인.
셸리의 아내.
저서는 <프랑겐시타인> <최후의 한 사람>등.
⑭ 존 포드(John Ford ; 1895.2.1 - 1973.8.31) : 4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
헐리우드에서 고집쟁이 감독으로 유명하다.
⑮ 케틀레(Quetelet, Lambert Adolphe Jacques ; 1796.2.22 ~ 1874.2.1) : ⇨2월 22일.
벨기에의 천문학자․통계학자
헨트에서 태어났다.
강 대학에서 공부하고, 천문학을 연구하여, 24세에 브뤼셀 학사원 회원이 되었으며, 1823년 이후 천문대 건설에 전념하였고, 1833년 천문대가 완성되자 대장이 되어 천문학․기상학․지구 물리학을 연구하였다.
1853년 국제 통계 학회를 조직하여 통계 자료의 국제적 통일에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학 분야에 통계학을 도입하여 생물 통계학을 개척하였고, 인간의 능력을 수적으로 표현하는 평균인 개념을 도입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인간과 능력 개발에 대하여》 《사회 체계》 《사회 물리학론》 등이 있다.
⑯ 기타 오늘의 인물
A.D 523 브리젯 사망.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오래된 한 찬송가는
그녀를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여왕]이라고 부 름.
1674 뒤알드 출생. 프랑스 예수회 회원.예수회의 해외 선교사들에 의해서 씌어진 서신들을 편집한 자로서 르고비앙 신부를 계 승했고. 926권을 편집함.
1801 미국 낭만파 풍경화가 토마스 콜 출생
1809 니콜슨 출생. 미국 남감리교회의 목사.그는 총회에 대표로 여 러번 선출되었으며,그의 연회에서 감독이 부재시에 그 회의 의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함.
1834 터너 출생.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의 감독.그는 흑인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들 자신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 력히 주장하는 주창자.
1859 작곡가 빅토르 헤르베르트 출생
1878 미국 첫 여성상원의원 해티 캐러웨이 출생
1894 이윤석 출생.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1927년 협성신학교 2학년 수료.3.1운동을 맞아 정흥교등과 함께 가평군 만세시위를 주도함.
1897 염학섭 출생. 장로교 목사, 독립운동가. 호는 애은, 아명은 불암.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에서 출생.
1901 미국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출생
1904 유머작가 S. J. 퍼럴먼 출생
1905 미국 물리학자 세그레 출생
1908 포르투칼 카를로스1세 암살, 2세 즉위
1928 한국 정치인 조순 출생
1932 포이트라스 출생. 미국연합감리회 선교사,목사,신학자,
교육가.한국명 박대인.감리신대에서 교회사.교리사 역
사신학 강의.
1937 가수 돈 애벌리 출생
1953 한국 바둑인 서봉수 출생
1965 모나코의 스테파니공주 출생
1968 리자 마리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출생
2000 태고종 송암 대종사 입적
오늘의 세시
① 월삭 : 오늘은 2월의 월삭이다.
⇨ 5월 1일.
② 중화절(中和節)과 중화척(中和尺) : 음력 2월 1일을「중화절」이라 부른다.
나라에서는 중화절을 기념하여 자(尺)를 만들어 재상(宰相)과 시종
(侍從)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이 자를「중화척」이라 불렀다.
중화척(中和尺)은 반죽(班竹)이나 나무로 만들었으며, 중화척을 하사하는 것은 농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였다고 한다.
③ 머슴날(奴婢日) : 농가에서는 음력 2월 1일을「머슴날」이라고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오랫동안 쉬던 머슴들이 이제 2월이 되면 농사 준비를 해야 하므로 그들을 위로한다.
그들로 하여금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며 주인은 술과 음식을 한턱 내고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그 해 20세가 된 머슴은 이날 성인 머슴에게 술을 한턱 낸다.
20세 전에는 미성년으로 취급하여 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20세가 되어 성인에게 한턱을 낸 다음부터는 성인 취급을 받아 그들과「품앗이」를 할 수 있게 된다.
지방에 따라서는 나이가 많아도 2월 1일 머슴날에 한턱 내지 않으면 성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한턱을 내는 것은 성인이 되었다는 신고와 마찬가지이다.
④ 콩볶기 : 각 가정에서는 음력 2월 1일에 콩을 볶는다.
솥에 불을 지피고, 콩을 넣은 후, 주걱으로 타지 않게 젓는다.
볶은 콩은 식구들이 나누어 먹으며 아이들은 좋아라고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며 먹는다.
콩을 볶을 때에 주걱으로 저며, 『새으알 볶아라․쥐알 볶아라․콩 볶아라』하고 주언(呪言)을 한다.
그러면 새와 쥐가 없어져서 곡식을 축내는 일이 없다고 한다. 「
2월 1일에 콩 볶는 것으로 가을 수확을 미리 예상하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콩과 약간의 보리를 섞어서 한 되를 솥에 볶는다.
다 볶은 다음, 담아 한 되가 더 되면 풍년이 들어 추수가 많으며, 한 되가 못되면 흉년이 들어 감수하게 된다고 전한다.
또 이날 콩을 볶아 먹으면 집안에 「노래기」가 없어지고, 청결해서 좋다고 한다.
제주도와 호남 지방에서는 산에 가서「칡」을 캐어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해서 칡뿌리를 캐어 먹는 풍습도 있다.
⑤ 대청소(大淸掃) : 음력 2월 1일 농가에서는「대청소」를 한다.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으며, 거미줄을 털고 외양간 같은 가축 우리도 거름을 치워 둔다.
2월 초면 노래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초목의 썩은 부분에서 더욱 심하게 나오고, 방에까지 기어 들어오므로 이것을 막기 위한 부적을 만들어 붙인다.
백지에「향랑각씨 천리속거(香娘閣氏千里速去)」 또는「노낙각씨 천리속거」라고 써서 기둥이나 벽, 서까래 같은 곳에 거꾸로 붙인다.
⑥ 고놀이 : 원래는「고싸움 놀이」.
무형 문화재 제33호.
전남 광산군 (대촌면 칠석리;옻돌 마을)에서 정월 한달을 두고 놀며 2월 초하루에 끝을 맺던 놀이 이기는 하지만 그 이름에 싸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엄연히 승부가 있는 싸움이다.
양쪽 「고」가 서로 돌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어우르다가 결국 한쪽이 다른쪽「고」를 찍어 누르면 이기는 것이다.
⑦ 영등철 : 바야흐로, 감성돔낚시를 즐기시는 많은 조사님들께서 대물을 노리는 시기인 영등철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흔히, 영등철 이라하면 음력 2월을 영등철 이라 부르고, 음력 2월 보름을 영등사리라 합니다.
1년 중 백중사리(1년 중 가장 큰 사리)와 함께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양력으로는 보통 3월경에 해당하며 이 때 낚이는 감성돔의 평균씨알은 40cm 이상의 대물 급이기에 해마다 감성돔의 기록 갱신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영등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동해안과 남해안의 유래가 각기틀립니다.
영등은 원래 동해안 어민들의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기도 하며 동해안 어민들은 매년 음력 2월 1일을 영등이라 하는데, 이는 영등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20일에 승천한다는 전설에서 기인한 것이라 합니다.
영등할머니는 바람을 몰고 온다하여 풍신(風神) 또는 풍신할머니라고도 하지요. 영등할머니를 모시는 제(祭)는 그 집 주부 주관으로 부엌에서 이루어지는데, 아침에 영신 제를 올린 후 미리 마련한 초우에 입신시키고 초우를 부뚜막이나 골방에 모셔두었다가 해가 지면 제사음식, 색동보라, 엽전, 실 등을 매달아 바다에 나가 퇴송합니다.
이때는 밤에 식별이 잘 되도록 광솔을 점화하여 초우가 바다 멀리 떠내려가면 퇴송이 잘 되었다고 함성을 지르고 놀이마당을 펼치지요.
한편, 남해안의 진도에서는 또 다른 영등할머니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도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호랑이의 침해가 하도 심하여 호동(虎洞)이라 불렀답니다.
그 후 손동지 자손들이 살아오던 중,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더 심해져 살기가 어렵게 되자, 뗏목을 타고 의산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 중에 뽕 할머니 한분을 호동 마을에 남기고 말았답니다.
뽕 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음력 3월 초 어느 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 는 선봉이 있어서 다음날 모도와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의 뿔치와 모도의 뿔치 사이에 무지개처럼 바닷길이 나타났습니다.
바닷길이 열리자 모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뽕 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 는 유언을 남긴 채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답니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 할머니의 소망이 치등 으로 변하였고 등천하였다 하여 영등 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 풍어와 소원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매년 영등축제가 열리고 있는 회동리는 모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하여 호동(虎洞)을 회동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고, 이 시즌을 영등철 이라고는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이 시즌에 꼭 대물이 찾아드니 아마도 영등 뽕 할머니를 마중 나오다 걸리는 모양입니다.
오늘의 샘터
① 인류의 족보(32대, 이새) : 「에브라임」사람.
「오벳」의 아들.
다윗의 아버지.
아들 여덟과 딸「스르야」와「아비가일」둘을 두었다.
②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 땀흘리는 수고도 없이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을 향해 일깨워 주는 말이다.
남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하루 종일 여기 저기 나다니며 편안히 놀다가 어떤 이익이 돌아올 만한 기회가 엿보이면 민첩한 행동으로 맨 앞자리에 서는 얌체족들이 들어야 할 말씀인 것이다.
③ <사촌누이 베트> : - 발자크 -
나는 당신에게 내 생명 밖에 드릴 것이 없군요.
곧 자유롭게 될 거예요.
내가 죽으면 다시 새로운 부인을 맞으세요.
「아들린」은 「유로」남작에게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숨졌다.
그녀는 남편 유로 남작이 하녀「아가트」를 유혹하는 것을 본 것이다. 아들린이 숨지자 유로 남작은 곧 재혼했다.
1846. 2.1이었다.
④ 조만식의 말 : "고향을 묻지 말자.
우리가 고국에 돌아가게 되면 피차 고향을 묻지 말고 일하자.
인화와 단결이야말로 국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나라가 독립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
⑤ 파스테르나크의 시, ‘2월’ : 잉크를 마시면서
눈물을 흘려라.
울부짖는 진창길이
검은 봄으로 타오를 때에,
흐느끼며 2월에 관해 써라.
⑥ 2월의 인사말 : ◦ 오늘이 벌써 2월입니다.
◦ 노송 위엔 한가롭게 구름이 떠 있습니다. 마치 백학이 앉은 듯 이…
◦ 신생(新生)의 서기 어리는 이 때.
◦ 매화의 꽃소식이 백설을 헤치고 날아 왔습니다.
◦ 2월이라도 아직 설화가 분분합니다.
◦ 졸업 시즌을 맞아.
◦ 새해를 맞은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었습니다.
◦ 분주하던 정월이 가고 2월이 왔습니다.
◦ 하는 일이 없이 1월은 이럭저럭 보람없이 가고 2월이 왔다. ◦ 매화는 벌써 반쯤 피어.
◦ 봄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추위는 아직도 몸에 스며 드는 듯 하옵니다.
◦ 매화 꽃봉오리도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⑦ 황야의 결투 : 미국 개척시대의 한 보안관과 목축업자 일가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흑백 서부영화.
1946년 20세기폭스사 제작.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빅터 마추어․린다 다넬 출연의 흑백영화로 서부극의 명작으로 꼽힌다.
서부개척시대에 있었던 이름난 OK 코랄의 결투에서 제재를 얻어, 보안관 W.애프와 난폭한 목축업자인 클랭턴 일가(一家)의 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줄거리 자체는 서부극의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개척 당시의 도시의 생활상(生活相)과 바텐더 ․유랑극단 배우 ․이발사 등 서부에 사는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
게다가 황량한 풍경 속에 감도는 시정(詩情)이 이 영화의 매력을 더하였다.
일요일 아침, 건축 중인 지붕 없는 교회에서 벌인 스퀘어댄스의 광경은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장면으로 꼽힌다.
또, 최후의 충격전은 J.포드의 종군(從軍) 체험을 살려 박진감있게 묘사되었다.
J.맥도날드가 촬영한 흑백화면의 널찍한 공간 표현과 구름의 아름다움 등도 특기할 정도로 훌륭하다.
주제곡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의 멜로디도 매우 인상적인데,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 이 민요도 유명해졌다.
한국에서는 1949년에 상영되어 서부극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 다.
1년 365일
<성경생활> 7대강령
1 : 성경듣기(귀)(롬10:17)
2 : 성경읽기(눈)(딤전4:13)
3 : 성경쓰기(손)(신6:9)
4 : 성경암송(입)(시119:16)
5 : 성경연구(머리)(시111:2)
6 : 성경운동(발)(에7:10)
7 : 성경생활(몸)(히3:13-14)
1년 365일
<성경생활> 7대강령
1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귀>
2 :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4:13)<눈>
3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6:9)<손>
4 :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아니하리이다(시119:16)<입>
5 :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시111:2)<머리>
6 :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에7:10)<발>
7 :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3-14)<몸>
CCCC ; CICA : 한국나다나엘선양회 ; 民立O군사관학교
김 평 탁 (金 平 卓, Kim Pyeong Tak)
가훈
범사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봉사하자
학력 및 경력
ROTC 예비역 육군공병중위. 교육학박사(총회신학대학). 건국대학교대학원(건축공학석사). 전북대학교공과대학건축공학과졸업. 수원대학건축학과 및 총회신학대학기독교교육학과 교수. 김해김씨(문경공파)종친회 총무 겸 사무총장. 성경일기교육학회설립 및 한국인사장로교회 담임목사. 국민총합학원 및 민족사관교육장인 민립(民立)O영군사관학교 학교장. 한국나다나엘선양회 대표회장.
1942년 1월 8일 전북고창 生
아호는 중촌(中村).
우리민족의 윤리관이 퇴색되고 황금만능사상으로 인한 이기주의 사고가 만연되고 인간의 영혼이 병들고 정서가 고갈된 현대사회는 황금의 노예로 전락되었다.
병들어 타락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뇌에서 허덕이는 사회의 병리를 구원 하는 것을 교역자(敎役者)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인화에 힘쓰고 사회적 신망이 높은 인사로 자신의 그림자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생각하며 한국나다나엘선양회와 민립(民立)O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인사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에서 김운영장로와 조순례권사의 삼남삼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나라 잃은 약소민족의 고통을 겪었고 조국광복 후에는 6.25전쟁의 난민으로 생활하였다.
그리고 민족의 시련기를 생활하여 민족정신이 매우 강하며 전교1등으로 정읍서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정읍중학교를 3등으로 입학하였다.
정읍농림고등학교 축산과2학년을 수료하고 대학입학자격검정고시를 합격하였으며 다양한 지식을 폭넓게 수용하고자 전북대학교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임관하여 중위로 전역하였다.
그리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석사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대학에서 기독교교육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10세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日記,diary)를 써왔으며 국민교육 진흥에 일익을 하고자 서울 리라고등학교와 충암고등학교, 영동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세속의 온갖 명리에는 초연한 채 성경일기쓰기교육으로 후진양성에 힘썼다.
또한 수원대학건축학과를 창설하여 주임교수로 재직하였고 총회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교역자 양성에도 일익을 하였다.
한국인사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성경일기교육학회를 설립하여 성경쓰기운동본부장 및 일기쓰기운동본부장, 국민총합학원과 민족사관교육 자아초월계발장인 민립(民立)O군사관학교장 한국나다나엘선양회대표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청소년선도를 비롯하여 시니어(senior, 어르신, 선배, 연장자, 노장)캠페인과 상담자원봉사자(counseling volunteer)로 활동하고 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손손 ;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孫孫>을 실천하며, 경천애인, 삼강오륜을 생활 교육 철학으로 김해김씨(문경공파)종친회 총무 겸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종친의 화합과 발전에도 구심적 역할을 하였고 건강생명보존을 위한 봉사와 사랑의전화 상담 활동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서로는 <건축학용어대사전><건축설비학용어대사전><인생상담학><인생상담문답서><1년365일 오늘의 역사<말씀
>><자서전> 등이 있으며, <성경일기와 교육에 관한 연구>의 박사논문이 있다.
부인 정이선(鄭二善)권사와 슬하에, 사위가 UNDP에 근무하는 딸 민하(旼夏)와 KOICA에 근무하는 아들 형주(亨柱,ROTC)
를 두고 있다.
( * 주(註) ; 현대한국인물사. 한국민족정신진흥회. 2012년).
를 두고 있다. (註) ; 현대한국인물사. 한국민족정신진흥회. 2012년).
CCCC는 무엇인가 ?
CCCC ; CICA ! 이것이 "민립(民立)O군사관학교" 입니다.
"민립(民立) O군사관학교"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연구하며 공부하고 가르치고,나아가 평생
실천궁행 솔선수범 생활하면서 아울러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 도리와 본분과 사명
과 목적을 달성하고, 강건한 행복 누리기를 일생 목표로 하여 일기쓰기<성경쓰기>
<성경일기>를 교육과 생활의 표적으로 삼는 인간<평생>국민교육 <민족><가족><총학>
총합학교가 바로 민립(民立)O군사관학교(CICA) 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한 때 <일제 독립 운동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승훈 님 그
밖에 애국선열들께서 민립(民立)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동포 배달 한민족 한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설립한다는 뜻입니다.
******* 교회가 앞장 ; 교립(敎立) = 민립(民立) ; 전국 모든 교회는 민립
O 군사관학교<=성경교육사(聖敎師)관학교=천군(天軍)-=청군(靑軍)-=성군(聖軍;성도
(聖徒)-;사도(使徒)-=사사(士師)-=영군(靈軍;靈群)->의 분교 입니다 ! *******
총합(總合)은 종합(綜合)과 비슷한 말인데 특별히 하나 ― I 하나님과
신구약 성경을 연관하여 종합에 첨(添)하여 <<‘- + ㅈ’ = ㅊ ⇨총합>>이라 한 것
입니다.
하나<하나님>하늘 아래서 <너와나> 우리가 한 울타리 <주안에서> 집안에서똑바로 하나가 되자(父子 夫婦 南北 東西) !
******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손손(孫孫) ! ******
이것을 나타내어 증거, 선포, 전시, 표시, 표현, 행동, 생활하자는 뜻으로
종자(綜字)를 총자(總者)로 특별히 구별하여 표기하는 것입니다(總體 總合 總稱
總信 總論 總合).
총합국민<민족>학교<총합학교>와 민립(民立) O군사관학교는 같은 뜻으로
모든 교육을 공(O ; Ball,입체,立體) 안에 함께한다는 뜻으로 읽을 때는 영군
(O ; 靈, 天, 靑, 群, 軍, 君)이라 읽습니다.
우리 통일 한반도 남북한 민족 동포 그리고 국내외 국민 가족 여러분 !
그리고 수고 많이하신 전 현직 대통령 님들 지도자 영도자 석학 여러분 님들 !
우리 21세기 이시대 어려운 시기에 창설 신생(新生)된 CCCC ; CICA를 잘
살펴보시옵고 후원과 사랑과 관심을 주시옵기 바라마지않습니다(애국애족).
감사합니다.
송구영신 1985-2013
평택 김 평 탁 목사올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
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CICA는 민립(民立) O군사관학교의 약호<약자>입니다.
CICA는 대한국민총합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민족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성경교육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예수기독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건강생명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성도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목사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장로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권사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여성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노년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한국청소년사관학교 입니다.
CICA는 Corea Internet Canon Academy 입니다.
CICA는 Corea Interview Canon Academy 입니다.
CICA는 Corea Institute Canon Academy 입니다
CICA는 Corea International Canon Academy 입니다
CICA는 Corea Internet Christian Academ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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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 행복정부 = 행복 박근혜정부 = 행복한 박근혜정부 = 박근혜 행복정부 >>>>>>>>>>>>>>>>>.
CCCC 나다나엘
민립(民立)Θ군사관학교
CCCC는 한국나다나엘선양회 입니다.
CCCC는 OXCA, CICA, UNIC를 병설 동반 동역 동사합니다.
민립O군사관학교(CICA)를 비롯하여 교회와 학교와 학회(운동본부)와 상담소 출판사를 병행 병설 동시 운영<경영>중입니다.
4대 사역이라 칭합니다.
제1사역 : 교회 목회사역 제2사역 : 학교 교육사역
제3사역 : 상담 친교사역 제4사역 : 1년 365일 오늘의 말씀<역사> 출판사역.
교회는 한국나다나엘상담장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보수]중앙노회소속지교회)
학교는 대한국민총합<융합><통합><연합><화합><종합>교육장이고요, 여기에 학회가 있어요.
성경일기교육학회 곧 성경쓰기운동과 일기쓰기운동을 두 축<십자가>으로 합니다.
다음
상담은 대한국민건강생명사랑상담입니다(전화중심;암으로부터 살아남는법>.
출판은 21세기 1년365일 매일매일 오늘의 역사와 오늘의 말씀(성경공부)를 함에 필요한 각종 자료의 도서 및 간행물 인쇄물 출판인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모두를 통틀어 <총합>CCCC사역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김평탁)
중요한 것은 2013년을 맞이하여 준비된 한국최초의 여성대통령(박근혜님)과 함께 동시에 <대총합>거듭(중생)<탄생>아름다운 동행자 CCCC라 하겠습니다.
CCCC에서는 자랑스런 각분야의 유자격 명예박사 명예석사 명예학사를 양육<육성>교육<훈련>배출하는 이 시대의 민립(民立)초월(超越)총합(總合) 교육기관이라 하겠습니다(***대학입학자격검정고시.한국방송통신대학교.한국독학사학위,한국평생교육원,각종국가기술자격면허법***)
암은 입으로부터 ! 암으로부터 살아남는법 ! 소통은 만남으로부터 !
<만남-소통-대화-상담-토론=경천애인 역지사지 원수사랑 사자사역 삼강오륜>
UNI(U&I ; You & I)
우리 만납시다. 소통해요. 대화, 상담, 토론을 합시다, 가장 먼저전화로 !
그리고 육갑<6값>을 합시다 <水 火 油 血 食 歲>(CCCC C-man).
CCCC(한국나다나엘선양회)
民立O군사관학교
설립자 학교장 평택 김 평 탁 목사
017-727-3863, 031(692)3650(경기평택)
오늘,여기서,지금,곧,바로,나
내<U&I>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은 무엇인가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딤후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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