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어느 집에 빌붙더라도 제 한입이야 해결하지 못하랴 싶기도 했으리라. 이틀이 지나자 몸을 대강 추슬렀지만 딱히 갈만한 곳이 없는 나실이었다. 일찍이 어미도 없이 아비에게 시달리다가 사당패가 되어 철이 들도록 사내들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나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고창에 주저앉게 된 나실은 이미 누군가의 씨를 태속에 품어 키우고 있었다. 그날 재효는 모갑이와 흥정하여 나실을 사들였다. 나실을 사들인 재효는 인정으로 보살피고 온정으로 살찌워 아내의 말동무를 삼았고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거드는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헌데 나실의 사건이 있고 달포 뒤 밤이 이슥해진 이경 무렵 재효 부부의 신방에 비도를 든 도적이 침입했다.
“암만해도 이 길밖에는 없어서.”
재효의 목에 비도를 겨누었다. 재효는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도적을 살피며 침착하게
“목소리로 미루어 어린사람일 듯한데 필경은 딱한 사정이 있겠구려.”
응수하며 동정을 살폈다. 그러자 오히려 도적이 찔끔하는 눈치였다. 도적은 기가 꺾이지 않으려는 듯
“그건 알거 없구먼. 돈을 내놔”
하며 칼을 더 바짝 들이댔다. 그러나 도적에게서 살의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때 방안의 낌새를 눈치 챈 신부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임자는 그대로 있구려.”
신부는 이내 재효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 상황에서 공연히 소란을 떨어 도적을 자극하여 불상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리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었다.
“나 같은 유생의 침소에 돈이 있을 리 없고.”
침착한 대거리에 도적은 다시 한 번 찔끔하는 눈치다. 그때였다.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나실이 나타났다.
나실은 재효에게 모른척하라는 눈짓을 보내더니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 도적을 부르는 것이었다.
/동선아./
/응, 누구?/
/나야. 나실이야. 칼 치워/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동선은 벌써 칼을 거도고 있었다. 나실이 보다 두어 살 아래인 동선은 사당패의 동패였다. 동패라 해서 꼭 맘이 맞고 뜻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실과 동선은 눈빛으로 서로의 맘을 알고 걱정해주는 오누이 같은 감정을 가지고 지내던 터였다. 그러다가 나실이 떠나자 꼭두쇠 모갑이의 시선이 동건에게로 쏠렸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더라고 나실이를 팔아먹을 때는 달콤한 맛이었지만 그 돈이 다 떨어지자 아쉽기가 그지 없었다. 가끔씩 나실이 몸뚱이를 팔아 용처에 쓰고 술잔이나마 기울이던 것이 그나마 동이 나고 보니 여간 아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남색을 파는 수단이었고 동패 가운데 나이가 구 중 어리고 얼굴이 예쁘장한 동선이를 점찍어놓고 놀이를 편 고을에서 부잣집 사정을 물색하여 은근히 남색을 권하던 것인데 도둑질도 하면 할수록 늘더라고 그 짓거리를 당하는 동선이의 몸과 마음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모갑으로서는 점점 감칠맛이 나는 짓거리였다. 동선은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그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움이 어쩌면 팔려간 나실이를 더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더욱 기겁을 할 일은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어떤 환경에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속성을 가졌던지 동선의 몸도 처음과는 달리 그 짓거리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 짓이 뜸해지면 오히려 모갑이에게 매달려 몸 팔 곳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과연 사람에게는 몸의 일과 마음의 일이 따로인지-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이번에는 모갑이가 막장난을 치고 나왔다. 이전에는 동선이 남색을 팔고 나면 푼돈이나마 손에 쥐어 주었고 동선은 그것을 알뜰하게 간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었으나 사정이 바뀌고 동선이 상대를 찾는다는 낌새를 눈치 챈 모갑이는 이젠 그마저 입을 싹 씻고 말았다. 그렇게 지내던 동선이 동패들을 버리고 도망질 할 작심을 하게 된 데는 또 한번의 곡절이 있어서였다. 모갑이가 옆구리에 늘 꿰차고 다니는 반벙어리 정주댁이었다. 헌데 이 여자가 아는 것이라고는 남자밖에 없는 듯 허구헌날 그토록 남자를 밝혔다. 옴팡지고 다부진 모갑이로서도 혀를 내두르고 어느 때는 몸을 사리는 형편이고 보면 이 여자를 감당할 남자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