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다음카페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遺事)>입니다. 이 글을 주변에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정 조성래 합장
오늘 광복절 행사 끝에 조소앙 선생의 증손자 조현재가 만세 삼창을 했다.
상해임시정부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은 함안조가 최고의 인물인 조소앙(1887 - 1958) 선생이고, 해방 후 광복회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은 조소앙 선생의 친 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시원(1904 - 1982) 의원이다.
1919년 3월 1일에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40일 후인 1919년 4월 11일에 상해임시정부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은 함안조가 조소앙(1887 - 1958) 선생이다. 이 사실은 이 카페의 2022. 8. 11일에 올린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소앙 선생은 성균관에서 사서삼경과 역사 등을 공부하다가 18세 때 조선황실 특파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904년부터 1912년까지 8년간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유학 중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었다. 1912년에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그 다음 해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 때 선생은 26세였다. 그 후 조소앙 선생의 형제 등 집안 사람 14명이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온 집안 사람이 다 상해로 망명했다.
해방 후 광복회를 만든 사람은 조소앙 선생의 친 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시원(1904 - 1982) 의원이다. 광복회는 1965년에 만들어졌다. 초대 회장은 이갑승씨가 맡았고, 3대 회장은 조시원 의원이 맡았다. 4대 회장은 조시원 의원의 사위인 안충생(? - 2011)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맡았다. 안충생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다.
1950년 5월 30일에 치뤄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조소앙 선생은 서울 성북구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조병옥과 맞붙어서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됐고, 조시원 의원은 경기도 양주에 출마해 당선되어, 형제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조소앙 선생은 6.25전쟁 때 서울에서 납북되었다.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국제간첩으로 몰려 숙청, 투옥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8년 9월 10일 사망했고, 70년대 말 평양시 신미리에 있는 애국열사릉에 이장되었다.
오늘 광복절 행사 사진을 보자.
사진 1.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 장면
사진 2. 윤석열 대통령
사진 3. 조소앙 선생의 손자 조인래 (조소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광복절 행사 주빈석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조인래 이사장은 이번에 광복회의 감사직을 맡아서 전 광복회 회장 김원웅 등의 비리를 파헤치고,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운영돼온 광복회를 바로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조인래 이사장은 오늘 윤석렬 대통령이 광복절 행사장에 입장할 때 그 일행 15명 중 한 명으로서 대통령과 함께 입장했다. 조 이사장은 대통령 바로 다음 줄의 좌측에서 두 번째 자리를 배석받아 대통령과 함께 입장했다.
사진 4. 조소앙 선생의 증손자 조현재가 독립운동가의 후손 대표로 만세 삼창을 하기 위해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선 모습
5. 조시원(趙時元= 조용원趙鏞元)
조시원(趙時元, 1904 ~ 1982)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조용원(趙鏞元)이며, 아호는 호일(胡逸)이고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조소앙 선생의 친동생이다. 중화민국으로 망명한 둘째형 조소앙과 다른 형들을 따라 1920년 상하이로 건너가서 광복 시점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서 활동했다. 그의 형제들은 6남 1녀중 조소앙 선생과 그 자신을 포함한 여섯 명이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가문이었다.
상하이의 대학에서 수학한 뒤 1928년 청년 조직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베이징, 만주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 상해지부의 김무정, 동만청년동맹의 양세봉 등이 이때 조시원과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1930년에는 상하이에서 통일 전선인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했다. 1935년 조소앙과 홍진의 월간지인 《진광(震光)》의 발행에도 참가했다.
1938년 임시정부 선무단장,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 1940년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을 지냈고, 광복군 창군에 참가한 뒤 간부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1949년 조소앙, 방응모와 함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을 결성했다. 이듬해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경기도 양주갑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그의 부인인 이순승도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으며, 광복군 출신의 딸 조순옥과 사위 안춘생(前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관장)도 독립유공자이다.
학력[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