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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법문 : 경원사 주지 효림스님
금주의 법어 : 법을 말한 바가 있다고 하지 마라.
보현행자의 서원 ; 10.수순분 봉독
항상 중생을 수순하겠습니다.
진 법계, 허공계, 시방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을 수순하겠습니다.
병자에게는 어진 의원이 되고,길 잃은 자에게는 바른 길을 가르키고 , 어두운 밤중에는 광명이 되고, 가난한 이에게는 보배를 얻게 하면서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받들고,그의 이익을 도모 하겠습니다.....
법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현관에서,엘리베이트에서 자원봉사를 하시고 이번주는 일요법회날임에도 1인 시위 정진을 이어갑니다.
아침일찍 오셔서 상단 공양물을 올리시는 보문부 보살님들과 법당안내팀, 새법우팀, 다도팀 봉사자님들!!!
모두들 부처님을 닮아서 밝고 청정한 모습입니다.
이번주는 송파1구, 송파2구,동대문구,강동1구,대원2구에서 떡과 생수를 준비하시고 정성껏 나누어주십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자광거사님의 인례로 타종과 천수경, 반야심경 봉독과 예불을 올리고 새로 부촉받은 본자운단장님의 헌향과 다도팀의 헌다와 혜안거사님의 사회로 일요법회를 여법하게 열어갑니다.
혜담스님께서 성도재일 축원을 하시고 계십니다. 스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법을 말한 바가 있다고 하지 마라
오늘은 양력으로 14일이고 음력으로는 12월(납월)4일입니다.
4일 후 음력으로는 8일이 성도재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초파일 부처님 탄생하신 날을 가장 큰 기념일로 하고 있고 성대하게 합니다.
인도에 가보니까 성도재일을 가장 크게 하는 것 같아요.저도 한번 성도재일날 붓다가야에 가서 부처님 성도 탑, 대탑이라고 아쇼카왕이 건립했다고 하는 그 당시의 느낌으로는 그 탑의 높이가 여의도의 63빌딩 높이 보다 더 높은 것 같이 느껴져요.달이 밝은 밤에 그 붓다가야에 도착했어요. 인도 사람이 타는 릭샤라고 하는 것을 타고 갔는데 탑이 달빛에 광채가 났는데 멋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아주 단골로 일년에 한번씩 붓다가야에 가시는 스님도 계시고 아주 감명이 깊었습니다. 제가 도착해서 너무 감동해서, 거기 사람들은 오체투지를 배를 바닥에 아주 쫘악 뻗어서 절을 해요. 뒤쪽으로 가니까 보리수나무가 탑에 의지해서 쭈욱 있어요. 그 밑에 흑인 한 사람이 아주 널빤지를 놓고 그기서 쫘악쫘악 절을 하는데, 나도 절을 하고 싶어서 그 사람에게 부탁해서 나도 108배를 감명깊게 했으나 그날 밤 몸살이 나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아마 업장이 녹느라고 몸살이 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불교에서는 성도재일이 아주 중요한 명절입니다. 선원이 있는 사찰에서는 대체적으로 연례행사로 이 때는 용맹정진을 합니다. 오늘 혜담스님께서 성도재일 축원을 하고 아주 감명 깊은 날이다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부연적으로 설명하자면 부처님이 태어나셔서 부처님이 살아가셨든 당시의 인도 사회는 어떤 사회였는가? 문명의 전환이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여기도 매우 문명의 전환기라고 보게 됩니다. 20세기와 21세기 문명은 전기를 사용하는 시대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전기 없이는 한나절도 못살아요. 전기의 사용량이 급성장하고 아주 팽창해서 문명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두배 세배 이상의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나라에서는 초전도체라는 기술이 발달되어서 지금 나오고 있다는데 그것이 나오면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이 많이 절약 될 것이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
그런데 부처님 당시는 청동기 시대에서 우리가 석기시대라고 하는 인간이 연장을 사용할 때 단순히 돌을 연장으로 사용하던 시대에서 청동을 제련해서 청동을 사용하던 시대가 있었어요. 그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올 때 우리 인류의 문명이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생산량이 늘어났어요. 부처님 당시가 바로 그 때에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오는 그 시점이에요. 그런데 그 시점에 문명이 굉장히 급격히 발전하고 금강경에 나오는 수보리존자의 큰 아버지가 수달장자인데 이런 장자가 인도 문명사회에서 그 당시에는 엄청난 재벌인데 절도 짖고 부처님을 후원하는데, 무역 같은 것도 발달하고 그런 시점인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 경제적 변화도 일어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강대한 국가, 제국 인도가 부처님 열반하시고 한 몇 백년 후에 인도가 하나의 나라로 아쇼카왕 때 통일이 되었는데 그 과정이 경에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마갈타국 이라든가 빔비사라왕 또는 여러 나라들이 광대하게 옆에 나라들을 편입하고 그리고 권력이 강화되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런 하극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부처님의 나라가 멸망해서 없어지고 그러는 아주 격변하는 역사의 싯점에 부처님이 나오셨어요. 그런데 인류문명사회 최초로 부처님은 우리에게 아젠다 철학적 용어로 회제 불멸하는 영원한 인류의 회제를 부처님이 던진 거야. 그걸 오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제 21분 비설소설분 대목에서 노래 한곡 듣고 설명해보겠습니다.
"가로수 그늘 아래"를 부르는 거사님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법회형제들을 편안하게 합니다. ]
한시를 하나 가져 왔습니다. 지난여름 장마 때,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 앞에 주먹만한 아주 큰 개구리 한 마리가 놀라서 풀쩍 뛰는데 이놈이 도망을 가지 못하고 내 방 앞 벽으로 자꾸 뛰어가 부딪히면서 도망을 못가요.내가 그걸 보고 쓴 시입니다.
개문안전 경용와
차자우자 용불향
용용우용 불지향
전벽충두 출부지
문을 여니 문 앞에 개구리가 놀라서 펄쩍 뛰는데
이 놈은 어리석은 놈이라서 뛰기만 하지 갈려는 방향을 알지 못하는구나!
뛰고 뛰고 또 뛰어도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구나!
앞에 있는 벽을 머리로 꽝꽝 박는데 나갈 곳을 알지 못하는구나!
지금 현재 우리가 다 그런 지경에 있다 이 말이죠.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우리가 거기에 취해가지고 대단히 만족하여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현재 어디로 나가야할지 인류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단지 불광법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이미 금강경을 통해서 그 출구를 알았다고 봐야 되겠지만, 대다수 60억이니 하는 그 인류들이 어디로 나가야할지를 몰라. 그러니 개구리만 보고 어리석다고 얘기 할 수 있느냐? 우리도 똑 같다. 어디로 나갈지를 모르는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도 역시 똑같다. 한사람 정도가 농사지어서 두 사람 정도가 먹고사는 사회가 청동기 사회였다면, 한사람이 농사를 지어서 열 사람 스무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 당시에 농사를 짓지 않고 놀고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특수한 전문가가 어떤 논문을 쓰서 이걸 얘기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얘기하는 거예요. 인도에서 제일먼저 철기시대가 되면서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느냐 사문이라고 하는 집단이 생겼어요.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나무그늘 밑에 앉아서 명상만하고 있어요. 부처님 탄생하기 전부터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리스에는 소비스트라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서 끊임없이 논쟁을 하는 겁니다. 일하지 않고 생산에 참여하지 안하고도 그 사람들은 먹고 살만하니까. 요즈음 직장에 다니다가 60세 정도 되면 연금족이 되잖아요. 앞으로 120세 정도 산다면 60년 정도 더 살아야하니 그 사람들이 이제 도를 닦아야 합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라는 사람도 원래는 군인 출신입니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였고 그 후에 연금을 받는 거예요. 가난하지만 먹고 살만하니까 맨날 보리수 광장에 나가서 끊임없이 논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특별한 철학이 없어요. 흔히 말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대변하는 말이 무엇이냐? 그게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불분명합니다. 어떤 석판에 누가 낙서 해 놓았는데 거기에 그런 말이 쓰여 있었다는 말도 있고, 위대한 성자를 내가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면 안 되겠지만, 그 사람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는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이게 그 사람이 얻은 결론이에요.
반면에 중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책을 구할 수가 없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하지요. 그래서 어떠한 특정한 신분을 갖춘 사람들이 책을 볼 수 있는데 그 책이 죽반이에요. 대나무에요. 지금도 기념품 가게에서 반야심경을 써놓은 죽반이 있어요. 금강경도 죽반이 있는데 글씨가 아름답고 좋지요. 그런 책만 읽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 부류들이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문화를 창조하고 또 중국에서는 중국문화를 창조하는데 그래서 나온 인물이 소크라테스이고, 공자입니다. 학동들을 모아놓고 글도 가르키고 그러면서 중국문화를 만들고 그리고 인도에서는 사문중에서 가장 으뜸인 대 사문 위대한 성자 그분이 석가모니입니다.
부처님 시대상황 등 여러 가지는 다음에 얘기하고 그런데 그런 세 사람 중에 정말 위대한 철학, 위대한 사상 또는 종교로서의 교리 이걸 만든 분이 석가모니입니다.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설소설분 제21분 원문을 얘기하기 전에 또 한번 노래를 하겠습니다.
[마음 둘곳을 찾아]
이게 인류의 영원한 과제예요. 우리가 어디에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돌아가야 되는가?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 유일신 종교입니다. 전지전능한 무불통제한 절대자가 있다. 여기에 의지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온갖 나쁜 짓을 한 추악한 인간이지만 너 훌륭한 인간 될려고 애쓸 것 없어 그냥 이 전지전능하신 유일신을 믿기만 해! 그러면 너는 구원 받을 수 있어. 이런 걸 제시한다 말이야.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도 그렇고 인류의 윤리나 이런 모든 것은 한마디로 그걸 모아가지고 바구니에 집어 넣어서 섞어서 내 놓으면 이데올로기예요.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신이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지 아니하는 신을 만들어서 그 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뭐냐?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겁니다. 그것이 유일신 사상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공자는 이데올로기를 얘기 할 때 사람들이 공자 이데올로기는 인류가 종속하는 한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그것이 윤리이에요. 그 윤리라는 것이 무엇이냐 도덕을 기반으로 한 사람의 도리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어떻게 하느냐? 너를 낳아주고 길러준 너의 부모에게 효도해라. 이거에요. 이 것이 휼륭한 것이지요. 우리 인류에게 이런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을 가르켜 드리는 겁니다.
효도가 나쁜거다 얘기하면 안되 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부작용이 많아요.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는 윤리도 상황윤리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절대 옳았다하는 윤리가 그 시대에 질서를 유지하고 시대 상황을 지배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윤리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무 쓸데없는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이런 윤리가 많아요.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절대 정절을 지키고 한 남자만 섬겨야 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고 하면 복잡한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그런 것을 간단한 윤리로 해결하는 부분이 있어요. 최고로 간단한 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한다 이것만 얘기하면 간단한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조선시대에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뭡니까? 忠(충)이잖아요.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그걸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을 떠 받들고 가장 훌륭한 분들처럼 모셨다 말입니다.그런데 지금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충성한다 하잖아요.
학력은 바꿀 수 없어도 국력은 바꿀수 있다 합니다. 다 키워서 유학 보내었더니 미국 사람 되버리고 이제 국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되어버려서 언제든지 국적을 바꿀수 있게 되어 버렸고...그래서 충성을 강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충이 절대적 윤리가 아닌게 되어 버렸어요.(자성인보살님 녹취)
성도광명일 법회에 보광당을 가득 채운 불광법회 형제님들은 매주 일요법회에서 법문 듣는 것을 최상의 정진으로 생각합니다.
요기까지만 해놓고 인제 본문을 읽으면서 나머지를 한번 부처님은 어떻게 설명하시는가를 한번 얘기할께요. 전문을 다 한번 읽고 인제 읽어가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늘 해오던 걸로 짧으니까.
먼저 한문으로 한번 읽겠습니다.....
한문은 참고만 하시고 한글로 된 거를 한번 읽어볼게 들어보세요.
수보리야!너는 여래에게 이러한 생각을 하되 네가 마땅히 법을 설한바가 있다고 하지 마라 이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라 어찌한 연고냐 만약 사람들이 말하되 여래께서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곧 부처님을 비방함이요. 내가 설한바를 알지 못하는 연고이니라. 수보리야! 설법자는 법이 없음을 가히 설함이니 이런 설법이니라 이때에 혜명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 사이에 세존이시여 자못 중생이 있어 저 미래의 세상에서 이 설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저가 중생이 아니요.중생 아님도 아니더라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중생이라 함은 여래가 중생 아님을 말하며 이름이 중생이니라 이래 돼 있어요. 인제 어려운 게 하나도 없는데 중생이면 그냥 중생이라 하면 되는데 뭐 이래 보면 수보리야 중생이라 함은 여래가 중생 아님은 말하며 이름이 중생이니라 이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가 헷갈린다 이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걸 보여 줄 설명을 인제 다시 한번 내가 설명할 거를 이렇게 수보리야 너는 여래께서 이러한 생각을 하되 부처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냐 하면 부처님이 내가 마땅히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하지 마라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잖아요. 근데 그러한 부처님에게 법을 설한바가 있다고 하지 마라 이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라 강조하는거죠. 어찌한 연고냐 이유가 인제 여기 밝혀진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법을 설한 바가 없다는 거야.쉽게 말하면, 왜 설법한 바가 없다고 하느냐?
만약 사람들이 말하되 여래께서 법을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혹 부처님을 비방함이요. 내가 설한 바를 알지 못하는 연고이니라 부처님께서 자꾸 이런 설법을 하셨죠.설법하셨습니다. 팔만대장경이나 방대한 설법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 비방하는 거라 수보리야 설법자는 그런데 결론이 이런거예요.
수보리야 설법자는 법이 없음을 감히 설함이니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뭐 노자라는 책에 보면, 도가도는 비상거요 능엄경은 인연이라고 뭐 인연 그런 구절이 있어 가지고 그거 한 구절만 이해하면 노자의 도덕경 이런 건데 그걸 이제 설명하는 걸 들어보면은 대체적으로 부처님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그걸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모르겠으나 불교가 들어온 이후의 선종의 영향을 받아서 선 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까 내가 그랬잖아요.
모든 종교의 교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쳐줍니다. 절대화한다는거야 절대화 특히 부활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 정말 인문학적 의미 철학적 의미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나지 않는 걸 죽음이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건 죽은 게 아니야. 그거는 뭐예요? 죽음 이상의 비슷한 죽음 임상 또는 의사 죽음 비슷한 걸 경험한 것이지 아니 그거는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철학적 의미로도 그렇고 인문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의학적으로도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건 죽은 게 아니고 죽음 비슷한 데까지 간 거지 그래서 뭐예요?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심각하게 그런데 여기에다가 뭐예요?그걸 절대적 이데올로기를 부여해서 확신하는 거예요.
그런 확신을 다른 모든 유사이래 또는 모든 생명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정답인데 오직 거룩한 한 분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런 확신을 가진단 말이야. 그러면 그걸 뭐라고 하냐면 확신 편향주의야 확신 편향주의 이게 이 확신 편향을 극복하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로 불교밖에 없어요.
나는 법을 설했다고 하는 상, 확신 이런 게 없는 사람이다.너는 나의 법을 들어서 설법을 듣고 감동을 하고 충분한 이해를 하고 훌륭한 깨달음을 얻을지언정 그 내가 설하는 법에 대하여 확신 편향을 갖지 마라 이 말씀이죠.(박수)
아니 우리 사회가 확신 편향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확신 편향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할 때 한 사람의 인격을 저런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만 없는 게 아니고 사실은 나쁜 사람이 없어요. 나쁜 행위를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나쁜 행위를 한 사람이 있지 나쁜 사람이라는 건 사실 없는 거야.착한 사람도 마찬가지야 착한 사람 없는 거예요. 착한 행위를 한 사람이 있는 거지. 내가 옛날에 한번 비유를 들어서 얘기했는데 잘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가 모르겠는데 임효림이라는 사람이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임효림이야 근데 나가다가 요 슈퍼 앞에 나가다가 괜히 남의 집 가게에 들어와서 돈도 안 주고 우유 하나 딱 훔치잖아요. 그러면 도둑놈이 되는 거예요.
원래 도둑놈이 아닌데 도둑놈이 되는 거예요.원래 도둑놈이 아닌데 도둑놈 행위를 하면 도둑놈이 되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됩니까? 반대로 아이고 이 겨울 추운데 변변한 옷도 없이 노숙자가 벌벌 떨고 있다. 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그사람한테 입혀주잖아. 역시 훌륭한 스님이네 원래 스님이 아니야.임효림이 뭐가 훌륭한 스님이 겠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인데 훌륭한 행위를 옆에 사람이 감동 받을 만한 훌륭한 행위를 하니까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아니 요즘 언론 같은데 보면 어떤 사람을 어떻게 프레임을 씌어가지고 나쁜사람 으로 몰아 붙인다. 온 사회가 그래 가지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까. 사람이 덜컥 자살을 해버려 특정 누구의 잘못이라 하기보다 우리가 지금 현재 미디어가 발달하고 또 사람들이 이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발달했어.
이 촉수가 그래 가지고 떼거리로 몰려가지고 저놈 나쁜 놈 욕하고 천하에 나쁜 놈 저래 쓸모없는 놈 욕을 해갖고는 그렇게 하고 그런 쏠림 현상 그런 것을 그게 확실히 그냥 종교에만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앞으로 불교가 이 인류에 아니 내가 스님이 되니까. 스님으로서 당연히 뭐 스님이니까. 그런 소리를 하겠지 금강경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반드시 그래서만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을 사뢰었다.혜명수보리는 지혜가 출중한 사람이다. 뭐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하는데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이 수보리는 수달장자의 조카입니다. 아니 매번 이소리 한다고 이 수보리가 요즘 말로 하면 갑질을 많이 했어요. 부처님 당시에 인도 사회에서 가장 부잣집 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인제 수달장자의 동생의 아들이야 그러니까 돈이 많고 뭐 어디든 가면 사람들이 다
굽신굽신하니까 기고만장해가지고 갑질을 하는 경전에 보면 자세히 나와있어요.그렇게 한건데 나중에 부처님을 만나가지고 가장 지혜가 출중한 제자가 됐어요. 세존이시여 자못 중생이 있어 미래의 세상에서 이 설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다.이게 참 이 대목에 와서 우리가 참 많이 살펴보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데요.
아니 부처님이 나의 설법은 이데올로기로 하지 마라 이랬단말이야. 절대적으로 이게 옳다 동정녀에게 태어난 걸 절대적으로 믿어야 된다. 이러면 쉬운데 부처님은 그렇게 얘기 안 합니다. 진리라는 거는 어떤 거냐 하면은 진리라는 거는 어떤게 진리입니까? 타당성이 있어야 돼요. 타당성이 그리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돼. 다른 사람은 다 모르는데 나만 특별히 알 수 있는 거 이세상 사람이 다 모르는데 나한테만 비법으로 누군가 가 가르쳐 준 거 거짓말이고 사기입니다.
그런 것에는 진리가 없어 그러면 어떤 가르침이냐 하면 가장 합리적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진리인 건데 그런 걸 믿으라고 하면, 그때 사람들이 그거 뭐 시원찮아서 믿겠습니까? 이 소리에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저가 중생이 아니요. 중생 아님도 아니니 저가 중생일 것 같으면 영원한 중생을 영원한 중생으로 고정화 시켜 놓는다면 확신 편향적인 그런 교리를 가르쳐 줄 수 있지 그래 갖고 너희들은 나의 피조물이니라 너희들은 나의 종이니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중생이 중생이 아니에요. 아니 본인이 도둑놈이 아닌 거 하고 똑같은게에요. 도둑 행위를 하면 도둑놈이 되는 거란 말이야. 아니, 우리가 그런 거 있잖아요. 저 스님이 훌륭한 스님이다. 스님이 훌륭하지 않다 뭐! 뭡니까? 그걸로 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행위 그 사람이 하는 말 절대적 옳은 놈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는 거야. 나는 도둑질을 그동안 도둑질했던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그걸 깨달아가지고.어느 날 생각을 확 바꿔 가지고 도둑질을 절대 안 한다. 그러면 스님이 훌륭한 스님이 되는거지. 그래서 중생이 아니야.
고정된 중생이란 하나도 없다.에 아님이니라 어찌한 연고 이냐 수보리야 중생이라 함은 여래가 중생 아님을 말하며 언젠가는 다 부처님이 될 사람들이라고 그걸 일러서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중생 한 번 중생이 영원한 중생 그런 거 아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편의상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이게 그 우리가 가장 명심해 둬야 될 게 스님이니까 존경해라,그런 거는 이 도리상 보면 스님이 얘기 안 하고 스님다우면 존경하는 거예요. 스님다운 스님이 된 것은 뭐예요? 스님다워질려고 스님이 된거예요. 스님 다워지려고
그런데 다만 껍데기만 이렇게 스님 옷 입었다고 무조건 존경해라 뭐 스님이니까.
존경해라 스님한테 그래 말할 수 있냐 뭐 자세를 낮추고 그 겸손 할 줄 알고 그럴수 있는 사람이 진짜 스님이 아니냐 이런 뜻입니다. 오늘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자은성보살님 녹취)
맑은 음색으로 음악을 들려주시는 두분 거사님 법문시간을 더욱 안정되게 해주십니다.
찬탄곡 "성도절의 노래"( 샛별 빛날 때)를 부르는 마하보디 합창단 장엄합니다.
새로 부촉받은 명문부회장님께서 불광정상화발원문을 봉독 하십니다.
법회장님의 현안보고 시간에 불광형제님들은 언제나 귀 기우려 들으며 모든 상황을 공유합니다.
오늘도 젊은 새법우님이 오셔서 환영하고 축하드리며 부처님 품안에서 언제나 함께하기를 기원드립니다.
법회 후에 각 구법회 법등모임 시간은 핵가족 생활의 외로움에서 늘 반갑고 즐거운 도반들과의 귀중한 시간입니다.
법회 후 대웅전에서는 언제나처럼 여법하게 금강경독송기도를 이어갑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우렁각시 처럼 조용히 청소하시는 청정팀 형제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를 수희찬탄드리옵니다.
토요일에 오는 스님들과 불자들에게 실상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경찰서에 신고하고 하는 합법적인 시위정진에 종무원이 현수막을 훼손하면서 법적으로 하라고 말했다합니다.
이번주에도 조계사, 동명사 ,불광사에서 용맹정진하는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노고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항상하십니다.
주지 동명스님께서는 아직 불광사태의 실상을 모르는 것인지?
보시 얘기만 하네요. 재정투명화를 하면 수행하는 승려로써 돈 걱정, 돈 얘기는 하지 않아도 절 살림은 풍족하게 잘 굴러갈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금처럼 불광사태의 진실을 외면한 왜곡된 생각으로는 기도가 무슨공덕이 있겠는지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보광당 입구 신발장에는 그동안 주인 없는 신발이 20켤레가 있었다합니다.토요집회에 온 사람을 항상 신발수로 세었으니 20명은 헛수인 셈입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국토 성취하자!
첫댓글 일요법회 *감로법문* 녹취와 편집으로
늦은 시간까지 불광일지 완성하신
보살님 두분 수고많으셨습니다.
애쓰신 노고에 감사와 수희찬탄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_()_
늦은 시간까지 법회일지 편집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법회 현장의 생생한 화보와 빠짐없는 법문 녹취로
흡사 법회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즐겼습니다
오타가 많은데 피곤해서 내일 수정하겠습니다.()()()
법회일지가 여법하게 작성되기까지 녹취, 편집,하신 자은성 보살님, 비로자나불 님, 시위나 법회 현장 사진을 찍어주신 지일심, 송지 보살님 수고에 찬탄 드립니다.
세상에 나쁘거나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좋다, 나쁘다,를 결정짓는 것이다
금강경 21분(非說所說分)을 배우며
다시금 되새겨 보았습니다.
붓다의 선심으로 우주법계중생 모두함께 빤야지혜로 화합가득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