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속담(俗談)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얼마나 드넓게 시야를 갖지 못했으면 고희의 포구에 당도해 생경하게 고약한 속담을 처음 접했을까!
얼마나 신발 문수가 좁은지 굽어보고 놀란다.
-검은 머리는 거두는 게 아니다. 최근 Y여류수필가의 수필집을 읽었다. 어제였다. 방송 실제상황에서 계부가 살인 당하기 직전 의붓 새끼한테 소리치는데 여기서도 이 속담을 인용한다.
속담(俗談)이란 무엇인가?
오랜 경험에 바탕을 둔 짧은 문장이다. 내용 또한 깊다. 세세손손 오직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베이컨의 경험주의이기에 하다. 어느 나라나 속담이 존재한다. 직관(直觀)으로 얻어진 속담은 민초들의 아리고 쓰린 경험 속에 만들어져 구전되어 전해온다.
검은 머리는 거두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후처가 전처소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악담이다. 인종(人種)- 그것은 괴로운 인생의 안내자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가족이 붕괴되고 해체될 수 있다. 흐른 물이 고여 다시 물이 차듯 또다시 수습해 원만한 가정을 이루며 그것이 발판으로 가족이란 아름다운 삶에 바탕이 유지되는 것이다. 질병으로 난리로 또 어떤 계급간의 갈등이나 부, 명예, 집안간의 내력으로 가족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모든 발전은 가정에서부터 싹튼다. 힘의 원천이다.
속담은 평상인들의 철학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 많은 속담들이 격에 맞지 않아 고쳐야 할 부분 또한 많다.
가정 구성원이 붕괴되면 가장 큰 것이 후처인 부인이 들어와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그러나 재혼은 또 다른 갈등의 실마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서로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재혼한 남녀의 전처소생이나 후처에 딸린 자식들을 두루 거두기가 참으로 힘들었나 보다.
-전처 자식 두고 후실 장가 가지 마오, 오지적삼 속적삼 눈물닦이로 다 젖는다.
-55세 장가 가네, 머리 흰데 먹칠하고 눈 빠진데 불콩 박고, 전실 자식 있거들랑 후실 장가 가지 마오. 전처 자식 다 죽는다.
조상들의 만류가 아랫지방 동래,경남, 하동의 지방민요들이 슬프게 전해온다. 물론 시대와 크게 뒤져 청산해야 할 산물이다.
독일 속담에도 계모가 좋다는 말은 까마귀가 희다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히 의붓엄마의 설자리는 불안한 백척간두(百尺竿頭)요, 누란지세(累卵之勢)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하므로 부부를 선택한다. 검은 머리는 거두는 게 아니다. 다시 속담을 곱씹어 보면서 자식농사를 과연 거두지 않으면 누가 거두어야 할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지 못할 망정, 경고와 비정한 결론만 제시한다. 물론 예전은 사회보장이 전무해 홀아비의 경우 농사 지어 목구멍에 풀칠하는 자식 키우기란 여간 쉽지 않았으리라.
일전에 남쪽 어느 지방에 대학교수는 재가하지 않고, 자식 둘을 훌륭한 의사로 키워 방영된 적이 있다. 외국에 유학 갈 때도 자식들을 끌고 간다. 노모께 맡기면 오히려 노인 꿈에 맞게 키우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자식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어학에 달인이 되고 자립심도 크게 키우게 되었다고 전한다는 성공담이다. 흔치않은 성공담이다. 유별나다.
최근 불확실한 시대 -. 나 홀로족이 판을 치는 시대다. 과거 농업사회에 비해 시대에 따라 혼자될 확률이 몇 배로 커진 작금의 세태에 실업률이 급증하여 독거가족이 늘어난다. 딸도 아닌 무뚝뚝한 두 아들을 위해 간난신고(艱難辛苦)라고 갖은 고초를 겪어 몹시 힘들어 하며 이복 자식을 출세시킨 Y여류 작가의 글이 감동이다. 분명 신 또한 감동해 동행하시었겠지.
검은 머리는 거두는 게 아니라는 비인간적인 속담은 진정 사라져야 한다. 악담 중에 악담이라 규정짓고 싶다. 갈 년이 보리방아 찧고 가느냐란 매몰찬 속담도 새삼 읊조려본다.
공자는 인간지사 여담수(餘談水)라 했다. 살면서 욕심을 내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물과 같이 사는 게 군자의 마음이라 했다. 그래, 모르고 지나가는 세태라지만 하늘엔 이미 개개인 선이 탑처럼 쌓여있으리라. 자신도 모르게 이룬 티끌만한 선행들이 지층처럼 천상에 쌓여있던 어느 영화를 나는 신봉한다. 여인이시여! 만인은 진정 당신을 존경한다. 미래는 당신의 것-.
공자님의 리인위미(里仁爲美)라고 이런 어진 작가의 향기가 퍼지고 있는 봄내에 살고 싶다는 통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물처럼 흘러도 Y 여류작가의 자식 사랑은 영원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