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 루쉰 밀어낸 위화(余華) 중국 문학계 세대교체 바람
이동훈 기자
중국 문학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광인일기’ ‘아큐정전’ 등의 작품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魯迅·1881~1936)’의 작품이 교과서 개편과정에서 줄줄이 제외된 것이다. 2010년 초중등 교과서 개편으로 사라진 작품은 루쉰의 대표작인 ‘아큐정전(阿Q正傳)’과 ‘약(藥)’등 2개 작품이다. 대신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 루쉰의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중국의 신예 작가는 위화(余華·50)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위화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소설가다. 개편된 교과서에는 위화의 단편 ‘십팔 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원제 十八歲出門遠行)’란 작품이 수록됐다. 18세 소년이 집을 나서면서 겪게 되는 풍파를 작가 특유의 필치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금까지 10여편의 소설을 펴낸 위화는 중국 3세대 작가군을 일컫는 ‘선봉파(先鋒派)’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선봉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연한 실험정신과 탐구정신으로 무장한 일련의 젊은 작가군을 일컫는 말이다. ‘신조(新潮·뉴웨이브) 소설가’라고도 불린다. 선봉파는 선두주자인 위화를 비롯해 마위안(馬原), 홍펑(洪峰), 쑤통(蘇童), 거페이(格非) 등이 꼽힌다.
그중 위화는 지난 2002년 중국 작가 중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을 받은 것을 비롯,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1998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2004년) 등 세계적으로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그가 쓴 주요 작품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 일제히 소개된 바 있다.
치과의사에서 소설가로 전업
하지만 위화가 본래부터 필명을 날렸던 것은 아니다. 펜을 잡기 전 위화는 시골마을에서 5년 동안 이를 뽑는 치과의사로 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이후 위화는 “좁은 입구멍만 들여다보기 싫다”며 소설가의 길을 택했다. 일본 센다이(仙台) 의전에서 유학하다 “병든 몸을 고치기보다 중국인의 병든 정신을 치료하겠다”며 소설가로 전향한 루쉰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위화가 주로 작품활동을 하는 곳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다. 그림 같은 풍광의 서호(西湖)를 끼고 있는 항저우는 1960년 위화가 태어난 곳이다. 위화란 이름은 어머니 위페이원(余佩文)과 아버지 화즈츠(華自治)의 성(姓)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다. 항저우는 과거 백낙천(白樂天·백거이)과 소동파(蘇東坡·소식) 등이 머물며 글을 쓴 곳이다. 때문에 위화를 얘기할 때는 항저우의 문학적 전통이 늘 언급된다.
치과 일을 그만둔 후 위화는 베이징에 있는 루쉰문학원에 들어가 소설공부를 하며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1950년 설립된 루쉰문학원은 중국의 젊은 청년작가들을 키우는 산실이다. 위화는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란 작품으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가랑비 속의 외침 ’ ‘산다는 것은’ ‘허삼관매혈기’ ‘형제’ 등의 작품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자리매김했다.
문화대혁명ㆍ개혁개방이 키워드
위화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폭력’과 ‘욕망’이다. 그의 소설에는 개인, 사회, 물질, 성(性)에 대한 온갖 종류의 폭력과 욕망이 얽혀있다. 이는 1960년 태어나 문화대혁명(1967)과 개혁개방(1978) 같은 급격한 변화를 몸소 체험한 작가의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나는 개인들의 욕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며 “욕망은 성격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을 더 많이 드러낸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출판한 장편소설 ‘형제’는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손꼽히는 작품이다. 소설 ‘형제’는 위화가 1996년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를 출간한 후 10년간 은둔 끝에 다시 내놓은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위화는 배다른 형제 이광두와 송강을 통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장쩌민 집권기의 초고속성장을 거치는 중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성욕(性慾)과 사랑을 구분 못하는 졸부 이광두를 필두로 개혁개방 이후의 어두운 면들이 부패, 도박, 매춘과 어우러져 드러난다. 질펀한 욕은 양념이다. 문화대혁명에서 개혁개방 이후 초고속 경제성장까지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다. 위화도 “형제는 양 시대를 어우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형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등 전세계 23개국에 현지어로 번역돼 소개됐다.
위화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로도 소개됐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원제: 活着)’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5년 ‘인생’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도박으로 전재산을 날리며 국공내전, 공산혁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겪어내는 부부의 인생이 궁리와 거요우(葛優)의 연기로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비극 속 통렬한 풍자가 주특기
통렬한 사회풍자는 위화의 주 특기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허삼관매혈기’가 대표적이다. 1996년 출간한 허삼관매혈기는 피를 팔아 먹고사는 허삼관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중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허삼관은 여자를 얻고, 집을 사고,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판다.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은 허삼관의 아내, 그 아이를 9년 동안 키워온 허삼관이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허삼관 아이들의 이름은 일락(一樂), 이락, 삼락이다. 첫 번째 기쁨, 두 번째 기쁨, 세 번째 기쁨이란 말이다. 피를 뽑아가는 ‘혈두(血頭)’는 공산당원이다. ‘자라대가리(남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욕)’란 욕을 듣고 사는 허삼관은 피를 팔고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黃酒·누룩으로 만드는 서민술)를 시켜 먹는다. 그가 각각 보혈기능과 혈액순환기능을 갖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음식들이다.
슬픔과 풍자가 작품 속에 버무려진다. 국공내전, 공산혁명, 인민공사,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같은 굵직굵직한 중국 현대의 역사적 사건도 자연스레 작품 속에 녹아든다. 이 점에서 위화와 루쉰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평가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도 ‘아큐정전(阿Q正傳)’과 ‘공을기(孔乙己)’ 등 작품에서 모순덩어리 주인공을 내세워 중국 근대의 부조리와 위선을 꼬집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