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시위 중인 그레타 툰베리(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Anders Hellberg) |
기성 세대를 향한 10대 소녀의 외침 “큰일을 하는 데 너는 결코 작지 않아!”
이는 지구를 구하는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캠페인을 벌인 10대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를 다룬 책 《그레타 툰베리》의 표지에 적힌 문구이다. 이 문구는 미래세대를 향한 촉구이자, 행동에 인색한 자존감 낮은 어른들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수십억 인구 중 하나에 불과한 내가 버리는 쓰레기, 배출하는 오염 물질, 낭비하는 에너지가 지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겠는가. ‘지구’라는 단어가 너무 커서 우리는 쉽게 그것을 관념 속에 가둬두고, 이미 틀이 견고한 삶의 방식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를 목도하고, 코에 12센티미터 빨대가 꽂혀 죽은 바다거북을 확인한다고 할지라도. 잠시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삶을 바꾸기에는 ‘나’는 너무 작으며, ‘편리함’이 주는 혜택은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바로 내 이야기이다.
나와 같은 어른들에게 그레타 툰베리는 말한다.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훔쳐가고 있다.” “당신들이 좋든 싫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툰베리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소녀의 말대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후위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고, 청소년들이 이를 막고자 일어나기 시작했다. 툰베리로부터 시작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전 세계 2,333개 도시에서 청소년 140만 명이 시위에 나섰고,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후소송단’이 발족했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캠페인도 확산되는 추세다. 제로 웨이스트는 무분별한 소비를 줄여 지구환경에 부담을 덜자는 움직임이다. 산업화 시대 이후로 사회 구조 자체가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끊임없이 소비하고 소비한 만큼 버린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이익은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더 소비하기 위하여 더 일을 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사슬을 끊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자본가도 정부도, 지구 자원의 30% 이상을 써버리는 5% 가량의 제1세계 국가들도 모두, 결국 빨개진 지구에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곧 오고야 말 것이다.
쓰레기 문제는 기후변화와 맞닿아 있다. 생산을 위한 자원 착취에서 시작해 온갖 유해 화학 물질에 버무려진 물건들이 결국 소비되어 버려지기까지, 어느 한 단계도 지구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버려진 쓰레기가 소각되면서 발생하는 유독 물질들은 곧바로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며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 쓰레기 매립은 물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석유계 제품의 재활용률은 저조하며, 재활용을 하더라도 그 단계가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와 유독 물질을 사용하게 된다.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시민의 대응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기후학자 조천호 선생은 최근 출간한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에서 ‘지구 위험한계’에 대해 언급한다. 지구가 충격을 받으면 불확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복원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나면 고위험 영역으로 진입하여 작은 충격에도 전체 균형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구 위험한계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는데, 그 첫째가 기후변화, 성층권 오존층의 파괴, 해양 산성화라고 말한다. 기후변화의 위험지표는 이산화탄소 농도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산화탄소는 대기의 열을 흡수하여 지구를 덥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이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서 지구 온난화가 발생하고, 극지방 빙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구 전체는 ‘오션 컨베이어 벨트’라는 바닷속 해류망으로 연결되어 지구 곳곳에 산소와 영양분, 온기를 이동시킨다. 이 해류망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극지방이 따뜻해지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차가운 물이 해류 깊은 바다로 가라앉지 못하게 된다. 이 차가운 물이 표면에서 이동하는 따뜻한 해류를 밀어주어 해류의 움직임을 촉진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 2억 5천만 년 전에 그와 같은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온난화로 해류가 끊어져 생명체가 전멸한 사례 말이다(BBC 다큐멘터리 〈Earth - The Power of the Planet〉〔2007〕, Oceans 편 참조).
조천호 선생은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80만 년 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훨씬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415ppm을 기록했는데, 이런 정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과거 300만-500만 년 전까지 가야 찾을 수 있는 수치라고 말한다. 당시 기온은 지금보다 1-2℃ 더 따뜻했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10-20m가 더 높았는데, 인류는 이러한 조건에서 생존해본 경험이 없단다. 파국은 한순간에 찾아올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위험의 징후를 사람들이 과연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의 한 어린 10대 소녀의 현실 인식이 잠자던 어른들을 깨우고, 미래세대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삶의 방식과 산업 구조에 획기적인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온실가스 최다 배출국 미국에서도 청년들의 기후 행동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은 미국에 급진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을 담은 ‘그린 뉴딜’의 중요성을 알리고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10년 내에 미국 전력 수요의 10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고 제조업과 농업 분야의 완전한 탈탄소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 모든 공동체와 노동 분야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 등을 추진하는 제안을 담은 ‘그린 뉴딜’은, 그 재원을 부유세로 확보하자는 내용을 포함한다.
영국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멸종 저항’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멸종 저항’은 비준법 행동으로 런던 시내를 비롯해 영국 주요 장소들을 점거하고 교통 혼란을 일으키는 방식의 시위이다. 드론을 이용해 런던 히드로 공항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예고하기도 하고, 웨스트민스터로 통하는 도로들, 철도 등을 점거하기도 한다. 이 운동의 중심에 선 로저 할람(Roger Hallam) 킹스칼리지 교수는 ‘제도를 만들고 절차를 지키며 천천히 기후변화를 논하기에는 지구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며 준법 저항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가장 시급한 환경 문제는 이기심, 욕심, 무관심에서 기인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화적 정신적인 탈바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는 이미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하고, 대기오염 초저배출구역 제도를 도입하였다. 뉴욕은 기후동원법(기후변화 대응 자원동원법)을 통과시켰는데, 2050년까지 중대형 빌딩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80%까지 줄여야 하고 만일 목표 달성을 못했을 경우 연간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하는 법안이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이유진 박사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7위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렇게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핵발전소 수출과 같은 기존 산업만 끌어안고 있다가는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녹색평론> 167호 참조)
| | | ▲ 기윤실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 포스터.(이미지: 기윤실 홈페이지) |
교회 안에서 함께하는 ‘제로 웨이스트’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있어왔으나 시민저항으로 강하게 일어서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반대 시위를 비롯하여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 거셌으나 언제나 그렇듯 소수의 투쟁에 머물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러한 우리 상황에 대해 ‘기후 침묵’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제로’ 혹은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확산되는 조짐이 보인다. 제로 웨이스트는 오늘날의 산업구조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구호이지만, 위기의식을 가지고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기윤실에서도 올여름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을 진행했다. 쉽게 할 수 있는 행동, 최소한 일회용 플라스틱 컵만이라도 줄이자는 의미로 “불편해도 텀블러, 진부해도 텀블러, 또또또 텀블러”를 외쳤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었지만 매장 내에서만 사용이 금지될 뿐 테이크아웃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먹고 남은 커피 음료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는 여전히 넘쳐난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며 음료들도 너무 쉽게 소비되고 버려진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 속에 힘겨워하면서도, 기후변화와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않는 문제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 삶의 걸음걸음마다 찍히는 탄소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정말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사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고, 언론에서도 잘 다루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더 늦기 전에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특히 지구에 대한 관리의 책임을 의식하고 있는 기독인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소비 중심의 생활 태도는 끊임없이 결핍감에 빠져들게 하고, 욕망을 부추기며, 경쟁심에 불타게 한다. 이 가운데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이제 이 흐름에 역행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윤실의 ‘자발적 불편운동’이 어쩌면 작은 역행인지도 모르겠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자는 것, 어찌 보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그것은 나의 불편을 통해 타자를 이롭게 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웃과 환경에 대한 사랑의 여지를 두겠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가 속한 지구를 돌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관계의 영역에 속한다. 소비와 달리 충만함으로 채워지고 서로를 살리고 함께 가게 한다. 이 위기의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고들 한다. 그 말이 그저 손 놓고 종말을 기다리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점점 더 악해지는 세상에 편승하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신음하는 지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필자가 속한 교회에서는 ‘그린 플래닛’이라는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 만드신 아름다운 지구가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멤버들이 소소하게나마 삶의 전환을 꿈꾸며 쓰레기 없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비누와 샴푸바를 만들어 사용하고, 헌 옷을 모아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DIY(Do-It-Yourself, 손수 만들기)를 하기도 하며, 천연 수세미를 손질하여 주방과 욕실에서 사용한다. 생분해되는 천을 구입하여 비닐 대신 다양한 주머니를 만들어 반복 사용하고, 장을 보러 갈 때에는 장바구니와 다양한 용기들을 미리 준비해서 나갈 것을 서로 권장하고 있다.
구성원 간 개인차는 있지만, 서로 격려하며 나름의 방법과 경험들을 공유하니 힘이 된다. 한계에 부딪혔다 생각될 때에는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들음으로써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위기를 인식하고 각성한 기독 시민들의 이런 자발적인 움직임이 절실하다. 교회마다 이런 모임들이 생겨나고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며 교회 간 연대도 하면 어떨까.
‘그린 플래닛’ 활동 덕택에 힘을 얻은 필자도 좀 더 과감히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장을 한 번 보거나 택배 상자에 담겨온 물품들을 볼 때마다 좌절을 경험한다. 플라스틱 포장이 안 된 물건이 없고, 택배 상자에 담긴 완충제도 집에 계속 쌓여간다. 심지어 한 번은 카페에 가서 텀블러를 내밀었는데, 음료와 함께 요청하지도 않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꽂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면 ‘아, 내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쉬이 바뀌지 않는 제도에 화가 나면서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 ‘플라스틱 세’로 특정된 좀 더 강화된 환경세가 필요하다. 생산자가 수거와 폐기 비용을 함께 부담하게 한다면 생산단계에서부터 지구에 부담이 덜 되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까. 플라스틱 대신 더욱 친환경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업체에는 플라스틱 세로 거둬들인 세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은 어떨까.
| | | ▲ 미국 환경운동가 비 존슨의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한국어판 표지 |
비 존슨이 제안하는 ‘쓰레기 제로의 원리’ 5가지 때마침, 미국 환경운동가 비 존슨(Bea Johnson) 이야기를 접했다. 미국 중산층의 풍요를 한껏 누리는 가운데 매주 240리터 쓰레기통을 꽉 채우던 그와 그의 가족. 하지만 이제는 그의 가족 전체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쓰레기가 고작 1리터 병 하나에 다 채워진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방금 꺼낸 토마토가 담긴 플라스틱 포장만 해도 1리터 병보다 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관심이 갔고,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그의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청림Life)를 빌려왔다. 단숨에 읽은 그의 이야기는 버리기와 비우기를 통한 단순한 삶의 통찰이 들어 있었다. 소비지향적인 삶, 물질 가치에 천착하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나도 모르게 내 집을 둘러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전하는 많은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쓰레기 제로의 원리’를 소개한다.
우선 1단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거절하기’다. 일회용품, 광고우편물, 공짜로 나누어주는 사은품 등을 거절하자는 얘기다. 공짜라고 받아오면 결국 생산을 늘리게 되고, 대체품을 더 만들게 된다. 우리의 작은 행동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는 강력하고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기억하자. 존슨은 이것을 투표행위에 비유한다.
“우리는 소비 활동을 통해 특정 제조 양식을 더 지지하고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곧장 우리의 환경, 경제, 건강에 영향을 준다. 달리 말하면 쇼핑은 투표이며, 우리가 매일 내리는 결정이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앞의 책, 20쪽)
2단계는 ‘생필품 줄이기’다. 사용하지 않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그러면 중고 시장이 활성화되고, 쓰레기 없는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셈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구매’를 충동하지만, 이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다. 생각해보면 꼭 필요한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아울러 그는 미디어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쏟아지는 광고에 자칫 시간과 물질과 정신을 온통 빼앗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그래서 불필요한 미디어를 소비하지 않고, 그로 인해 얻은 여유와 관계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청소년기 자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그와 관계가 있다고 말이다.
3단계는 ‘재사용하기’다. 한두 번 쓰고 버리는 물건들을 다시 쓸 수 있는 물건들로 바꾼다. 플라스틱 용기를 유리 용기로 바꾸고, 장을 볼 때에도 재사용 가능한 수납도구를 가지고 간다. 대부분의 식품들은 유리병에 넣어 잘 정리해 두고, 꼭 구입해야 하는 물건이 있으면 가급적 중고시장을 이용한다. 중고시장에서는 물건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버려지지 않고 쓸모를 향해 순환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4단계, 반복 사용이 안 되는 물건은 재활용한다. 사실상 제로 웨이스트는 재활용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쓰레기 발생을 막아서 재활용을 적게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도 한 번 재활용하면 다시 재활용이 안 되고, 결국 매립하게 된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 발생하는 유독 물질도 문제이고, 플라스틱 자체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도 잊지 말자. 가급적 유리, 금속, 골판지, 종이, 나무 칫솔 등의 제품을 사용하자.
마지막 5단계는 ‘썩히기’다. 과일, 야채뿐 아니라 썩힐 수 있는 것은 모두 퇴비로 만들 수 있다. 지렁이나 EM효소를 이용해 가정에서도 퇴비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원화·퇴비화·사료화한다. 내가 어디에 사는가에 따라 그 음식물 쓰레기가 자원이나 퇴비, 사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세 경우 모두 다량의 에너지와 복잡한 단계를 거치며, 퇴비나 사료로 재활용되어도 염분이 남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엄청난 에너지만 쓰고 다시 버려지는 꼴이다. 가급적 가정에서 염분을 제거하고 잘 말려서 배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간소화 기술’이 필요한 시대 혹시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화장품이나 비누, 옷, 가방 등을 구입하지 말고 직접 만드는 것도 좋다. 포장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을 살릴 수 있다. 자투리 원단이나 유행 지난 옷, 오래된 이불, 커튼 등을 활용해 각종 쓸모를 재생산해 볼 수도 있겠다.
비 존슨은 이렇게 삶을 간소화하면서 뜻밖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선 생활비가 40% 가량 줄었고, 가족들이 더 건강해졌다고 한다. 삶의 효율성과 시간을 덤으로 얻게 되었고, 낭비적 관행에서 벗어나 경험에 집중하는 삶의 이점을 얻게 되었다. 넉넉해진 시간은 그에게 공동 소비에 참여할 기회를 주었고, 나누고, 교류하고, 함께하는 삶의 기술을 터득하게 하였다. ‘불필요한 것을 거절하고, 쇼핑을 줄이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하고, 썩히자’는 이 단순한 원리는 물건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고 사는 삶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오래 전 환경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2013년 11월호)에 담긴 기사가 하나 떠올랐다. “빌려 쓰고 함께 쓰는 재미”라는 글인데, 날마다 쓰는 물건은 아니지만 없으면 아쉽고 난감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 ‘공구’에 대한 것이었다. 이른바 ‘공구 도서관’이나 ‘공구 공공보관소’ 등을 동네에 유치해 ‘필요’를 ‘공유’하고, 덤으로 ‘관계’도 얻은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동네마다 다양한 아이템으로 실현되면 좋겠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갈수록 물질화되어가는 삶이 주는 공허함을 사람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대문을 걸어 잠그고 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공공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이런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클 수 있다.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삶 속에서 순환도 이루어지고 지구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구, 그 속에 거하는 뭇 생명과 사람들. 이웃, 가족, 그리고 나. 이 하모니를 주신 그분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어쩌다 그 세상을 쓰레기로 뒤덮어 버린 인간, 피조계의 지극히 작은 한 종(種)이 기후를 바꾸고 지구를 병들게 할 수 있다니. 너무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긍휼과 자비가 많고 쉬이 용서하시는 분 앞에 이제라도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제부터라도 삶의 태도를 바꾸고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해보자. 우리 각자의 탄소 발자국을 조금씩 지워보자.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우리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줄 수 있도록.
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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