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처음 잡아본 건 중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2013년 11월 4일이었다.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난다. 내겐 17년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시 친구는 내게 밴드부에 들어가기를 권유했고, 난 갑작스런 스카우팅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친구는 이미 밴드부에서 기타를 맡고 있었고, '혼자 기타하니 좀 외롭다'란 어정쩡한 이유를 들며 내게 가입을 권유했다. 그때까지 난 아직 '동아리'의 개념을 몰랐고, 그런 데 끼어 버리면 선배들이 날 싸게 보고선 온갖 횡포를 부릴 것 같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 제일 먼저 앞섰었다. 무엇보다도, 밴드부에 가입하면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충격적인 요구사항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더군다나 본인은 '놀토'세대라 토요일에 학교 가는 걸 지지리도 싫어한다) 정말 하기가 싫었으나, 친한 친구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오디션은 일주일 뒤. 친구는 무작정 날 집으로 끌고 간 뒤, 친절히 기타를 쥐어주며 내게 하나하나 코드를 가르쳤다.
연습을 시작한 뒤에 알게 됐다. 기타는 절대로, 절대로 만만한 악기가 아니란 걸. 알다시피 기타는 줄이 스틸, 그러니까 철로 되어 있다. 그냥 철 하나가 아니라 철사 한 가닥에 그보다 더 얇은 철사를 둥글게 감아서 만든다. 그 덕분에 장력이 장난이 아니다. 줄이 굉장히 억세기 때문에, 제대로 치려면 손목과 엄지로 지판을 받치고 나머지 서너 개의 손가락을 지판과 수직으로 세워 잡아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억센 줄이 연약한 손끝과 항시 접촉하기 때문에, 금세 손끝이 아려오고 물집이 쫙쫙 잡힌다. 화상을 입은 것 같이 말이다. 거기다 오랜 시간 연습하면 땀이 차서 손끝이 진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는데, 기분나쁜 건 둘째치고 냄새가 굉장히 괴랄하다. 참으로 악랄하게도, 기타를 놓고 나서도 손끝의 고통은 하루 종일 지속된다. 뜨거운 양은냄비를 손끝으로만 받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난 3일동안 죽어라 코드 3개만 연습했다. 손끝의 감각을 압사시키듯이 연습한 덕분에 왼손을 물집으로 물들였지만, 난 왠지 점점 기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서로 피땀눈물을 주고받은 사이 아닌가(아니면 내가 일방적으로 준 걸지도). 연습한 지 3일째 되어서야 난 엄마, 아빠한테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난 그때 엄마 아빠가 쿨하게 허락하실 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 왔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 바이올린을 배웠을 정도니까. 하지만 신실한 주님의 사도님들께서는 쿨하게 반대하셨다. 내가 왜 안되냐고 조르자, 부모님은 나를 불러 앉히시고는 왜 안되는지 아주 절절히 설명해 주셨다. 밴드부에서는 내가 계속 세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세상의 가사를 듣고 부르게 될 거라 아직 어린 나한테는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나로서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손 한 짝을 제대로 못 쓸 때까지 연습했었는데. 아무리 더러운 똥이라도 싸다가 그만둘 순 없잖은가. 이건 아니라 생각해서 오디션만큼은 보게 해 달라고 구걸했다(왠지 싸구려 하이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구르고 구른 뒤에야 부모님은 오디션 보는 것까진 봐주겠다고 하셨다. 오디션 당일, 내 연습시간처럼 너무나 짧은 겨울의 낮이 저물고 어둑어둑해져서야 학교 체육관에서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한명 한명 체육관 창고를 들락날락하며 줄이 점점 줄어들자 내 가슴도 점점 쫄리기 시작했다. 어젯밤까지 기타를 잡은 끝에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왼손을 몇 번이고 다시 구부려가며 연습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손을 덜덜 떨며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6명의 선배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앞줄 가운데 자리에는 당시 학생회장이자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형이 앉아 있었다. 아직 면접같은 건 한번도 보지 못했던 나였기에 심장이 갈비뼈 사이로 삐져나올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긴장을 달래 보려고 있는 힘껏 커다랗게 인사를 했다. 아무도 동요를 안 해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난 천천히 선배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가라앉은 가슴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창고 문을 나서자마자 깨달았다. 기타를 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다음 날 곧바로 오디션 결과가 나왔고, 당연히 난 떨어졌다. 친구는 내가 인사한 것 덕분에 선배들이 닐 좋게 봤었다는 말로 날 위안시키려 했지만 미안하게도 난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었다. 아쉬워 미칠 지경이었다. 수전증 환자처럼 바보처럼 덜덜 떨기만 해서 옆에 있는 기타를 치지 않았던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뭐, 그 다음부터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부모님도 같이 걱정해 줄 만큼 기분이 다운되어 버렸다. 그저 내가 바보같단 생각만 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내게 기타를 선물해 주셨다. 아니, 선물보다는 '물려줬다'가 더 알맞다. 아버지께서 약 20년 전 기타를 처음 배웠을 때 사셨다는 당시로 10만원 가격의 기타였다. 난 다시 시작해 볼까 마음먹고 기타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기타를 독학했다고 하면 꽤나 놀라워하는데, 나는 진짜 유튜브 영상도 그닥 보지 않았었고, 기초강좌도 듣지 않았었고, 옆에서 코칭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나는 독학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코드를 쥐고 띵가띵가 거리는 스트로크 주법보다 온갖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핑거스타일 주법에 뿅가 버리고 말았다. 또다시 몇번씩이나 손끝을 벗겨내고 벗겨낸 끝에, 그러니까 기타를 독학한 지 2년 만에 난 처음으로 한 곡을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고 1 초반때 교회 선생님께서 찬양단 가입을 권하셨다. 그것도 일렉기타 포지션으로. 난 처음에 뭘 해야 할 지를 몰랐었다. 일렉기타는 그냥 코드만 잡고 친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스러운 멜로디를 홀로 진행시키는 실력과 떠올리는 대로 치는 센스가 필요했었으니까. 난 고1 봄 때부터 찬양단에 서기 시작했다. 찬양단을 서고 나니 찬양 시간이 그렇게 긴 줄을 처음 알았았다. 이게 끝나질 않는다. 한 곡마다 내가 할당해야 할 포지션이 너무 많이 나와서 혼란스러움에 그저 악보만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날 찬양단으로 가입시킨 쌤까지 가끔씩 날 나무라기까지 하시니 더욱 어쩔 줄 몰라 여전히 어색하게 서 있었다. 처음 찬양단을 하면서 난 자연스럽게 기타 치는 척하는 법을 익히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도 실력이 는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일 따름이었다. 결국 고1 여름 때, 나는 기본적인 기타스킬은 거의 다 섭렵한 상태가 되었다. 고2때 되서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나는 이번 기회에는 몰래 밴드부에 가입해 버리겠다 생각했다. 아는 친구가 고등학교 밴드부에 속해 있어서 내가 직접 부탁해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마침 그때 고등학교 밴드부 내에서 이런저런 갈등이 발생하여 핵심멤버 2명이 탈퇴를 해버리는 등 많은 이변이 있었던 참이었다. 덕분에 일렉이 한 자리 비게 되었고, 난 당연히 일렉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기타가 부서져라 연주했고, 혼과 한을 담은 연주 끝에 난 합격했다(오디션을 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차피 일렉을 지원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카더라).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1학기 때 우리 밴드부는 학교를 대표에서 부산 전역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가요제를 나갔고, 전체에서 1등을 하고야 말았다. 나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단지 운이 좋아서 그랬을 뿐. 그 뒤에야 나는 부모님께 내가 밴드부에 가입했었고, 이번에 대회에 나가서 부산 전체에서 1등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자, 부모님은 그동안의 반대가 무색하게도 쿨하게 칭찬해 주셨다. 기분 좋았다.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정말 나빴던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함으로서 일궈낸 일이자 지금까지 혼자서도 열심히 하고 있는지라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다. 밴드부에 들어오기까지 이런저런 갈등이 많았었다. 어찌보면 겨우 밴드부 하나 가입한 일인데도 나에게는 신앙의 갈등, 부모님과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 등, 나 자신과의 갈등 등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내가 거의 맞서 싸우다시피 한 대상에서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음악덕에, 그놈 덕에 한 짓이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은 친구다.
2017. 9. 9. 토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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