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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8일
itx청춘열차를 타고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과 자라섬를 가기로 한 날이다. 며칠 전에 열차표를 예매했는데 휴일표는 매진되고 18일표는 남아있어서 예매할 수 있었다. 아침고요수목원을 가려면 승용차로는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지만 기차를 타고 50분을 가서 가평에 내려 가평시티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힌다. 8시 52분 용산역을 출발 11시 35분 수목원에 도착했다. 가평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타니 승객은 나만 빼고 모두 외국인이었다. 시티투어버스에는 가이드가 있는데 갈 때는 남자가 올 때는 여자가 가이드를 했다. 두분 모두 6,70대 노인이었는데 남자가이드는 영어도 잘하고 여러가지 설명도 잘해주었는데 여자가이드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말을 해서 외국인들에게는 무슨말인지 이해가 안될것 같았다. 가평에서 5분정도 가면 남이섬에 도착하는데 거의 모두 남이섬에 내리고 5명만 수목원으로 향했다. 나는 지난번에 남이섬과 쁘띠프랑스는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패스했다. 아침고요수목원은 10월 19일부터 11월 24일까지 국화전시회를 개최하는데 '꽃의 연주'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는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다양한 국화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하여 피아노, 하프, 첼로 등의 악기를 형상화한 작품을 포함하여 다양한 국화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작 전날이어인지 온실은 개방하지 않아 구경 못했다.
수목원 안에 있는 푸드가든에서 미리 점심식사하고 구경한 후 14시에 두 번째 코스인 자라섬을 가기위하여 시티버스에 올랐다. 참 멋진 구경이었다. 가평 시티버스 시티버스에서 찍은 쁘띠프랑스 전경 방랑 시인 김삿갓
박 훈 석 지음
31. 인생자고 수무사 (人生自古誰無死 ), 건곤불노 월장생 (乾坤不老月長生 )
희환산은 황해도와 평안도 사이에 걸쳐 있다. 김삿갓은 그 희환산 기슭에 있는 , 용천관 (龍泉館 )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주모에게 물었다 .
"혹시 이 근방에 구경할 만한 명소가 없는가 ?"
"이곳 용천관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데 그러세요 . 여기서 산속으로 5리쯤 들어가면 환희정 (歡喜亭 )이라는 정자가 있고 , 그 정자 아래에는 오열탄 (嗚咽灘 ) 이라는 유명한 여울이 있지요 ." "오열탄 ? ... 이상하구려 , 이곳에 와보니 산의 이름이 희환산이요 , 정자의 이름도 환희정이라 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 오열탄이라니 ?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선남선녀가 그 여울물 앞에서 이별을 나누며 흐느끼기라도 했던 모양이구려 ." "손님은 오열탄의 유래를 잘도 알고 계시네요 ." "이 사람아 ! 나는 오열탄의 유래를 알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세 . 오열탄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면 , 누구라도 그만한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 "어마 , 그러세요 ? 아닌게아니라 , 오열탄이라는 여울에는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사실 이랍니다 ." "나는 평양으로 가는 길인데 , 오열탄이라는 여울을 꼭 구경을 하고 싶네 그려 . 자네가 그 여울목에 얽혀 있는 설화를 좀 말해 줄 수 있겠나 ?" "그러시지요 . 이 근방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애긴걸요 ."
그러면서 주모는 다음과 같은 말을 김삿갓에게 들려주었다.
오래전에 유홍준(劉弘俊 )이라는 사람이 황주 고을에 선위사 (宣慰使 )로 와 있는 동안 , 안악 기생 옥향 (玉香 )과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
그로부터 얼마 후에 유홍준이 평양으로 떠나게 되자, 옥향은 용천관 여울목 앞까지 전송을 나왔는데 , 서로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자 , 이별이 서러운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목이 메이도록 흐느껴 울었다 . 그러자 여울목도 무심치 않았던지 , 지금까지 조용히 흐르고 있던 여울물이 갑자기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하였다 .
그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 여울의 이름을 오열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그것 참 , 기가 막힌 설화일세 . 사람이 흐느껴 울자 , 여울물도 흐느껴 울었다 하는 것은 , <인간과 자연의 동화 (同和 )>가 아니던가 . 이렇게 우리네 조상들은 자연과 어울려 호연지기 (浩然之氣 )를 키우며 함께 호흡하며 살아 왔다네 ! "
인간 세계에서는 만남과 이별이 항상 존재한다. 영원한 삶도 있을 수 없으며 , 백 년 전에 살기 시작한 사람이 지금에 존재할 수 없고 ,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백 년 후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천지자연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만나보고 있는 하늘과 땅과 , 별과 달은 , 천 만 년 전부터 있어 온 것이 아니던가 . 김삿갓은 감회에 젖어 문득 ,
인생자고 수무사, 건곤불노 월장생 , (人生自古誰無死 , 乾坤不老 月長生 ) ... <인생은 자고로 죽지 않는 사람이 뉘 있으리오 , 그러나 하늘과 땅은 늙지도 않고 달과 함께 영원히 살아온다 > 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
희한산 계곡은 과연 천하의 절경이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도도하게 흘러내리는 물은 돌에 부딪쳐 구슬이 되고 , 언덕을 흘러 넘어 가선 폭포가 되었다 . 환희정 (歡喜亭 )이라는 정자는 오열탄을 눈 아래 굽어볼 수 있는 언덕위에 있었다 . 김삿갓은 정자 위에서 쉬고 있는 늙은 나무꾼에게 물어보았다 . 나무꾼은 땀을 닦으며 대답한다 .
"내가 어릴 적만 해도 , 저 여울물을 <황공탄 > 이라 불렀다오 . 그러나 4,50년 전부터 오열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 옛날에 어떤 임금님이 저 여울물을 친히 건너가셨다고 해서 , 그때부터 황공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지요 ."
그러나 임금님이 이 깊은 산속에 올라 저 여울물을 친히 건너셨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열탄을 옛날에 황공탄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틀림없었던지 , 서거정 (徐居正 )의 시 두 편이 정자 위에 걸려 있었다 .
....
皇恐灘前皇恐意 (황공탄전황공의 ) 황공탄 여울 앞에 황공스러운 마음 喜歡山下喜歡情 (희환산하희환정 ) 희환산 아래에서의 뜨거운 애정 如何嗚咽龍泉水 (여하오인용천수 ) 용천물은 어이하여 목메어 우는고 去似情人哭別聲 (거사정인곡별성 ) 애인끼리의 이별로 흐느끼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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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州關裡花滿開 (황주관리화만개 ) 황주관에 꽃이 만발한 걸 보니 前度劉郞三度來 (전도유랑삼도래 ) 지난날의 유랑이 다시 찾아왔던가 嗚咽灘聲何日歇 (오인탄성하일헐 ) 목메어 우는 소리 언제나 끊기려나 朝朝送別哭如雷 (조조송별곡여뇌 ) 날마다 우는 소리 우레소리 같구나 .
...
오열탄 여울로 가까이 내려가 물소리를 들어 보니, 수많은 바위들에 부딪쳐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아닌 게 아니라 흡사 사람이 목메어 흐는 끼는 울음소리와 같았다 . 만남은 한없이 기쁜 일이지만 , 이별이란 언제나 슬프기 그지없는 것이다 . 그러나 당시 , 이별을 그토록 슬퍼했던 그들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모두 저승으로 갔을 것이 아닌가 ?
김삿갓은 문득 한 해 전에 사별한 수안댁을 떠올려 보았다. 한 때나마 정을 붙이고 살던 마누라와 사별한 것은 정녕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
그 옛날, 지금 저 오열탄 앞에서 이별의 슬픔에 흐느껴 울던 유홍준과 옥향의 슬픔도 자기와 다르지 않겠다고 느낀 김삿갓은 , (당신네들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거든 , 저승에서나마 꼭 이루소서 !) 하며, 두 사람에 대해 , 마음으로부터의 축원을 올리며 계곡을 따라 발길을 상류로 옮겨갔다 .
32. 산속에서 만난 사내 , 임 처사 (林 處士 )
오열탄 계곡은 경사가 급해서 물발조차 거셌다.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산산 조각으로 흩어지며 , 뽀얀 물안개로 변하여 눈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 이런 물안개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이따금씩 떠올려 보여주었다 . 물보라에 옷을 적시며 구정양장 (九折羊腸 )의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니 , 높다란 암벽에 커다란 글씨로 "문성대 "(文星臺 )라고 새겨진 글씨가 보였다 .
"문성대 ? .... 옛날에 어떤 선비가 저 바위위에 올라앉아 글공부라도 했더란 말인가 ?"
그렇게 생각하며 바위 위에 올라와 보니, 눈 아래 펼쳐진 경치가 천하일품이었다 . 주위에는 수목이 울창한데 , 나무숲 너머로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까지 보였다 .
숲속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끊임없이 지저귀고 있는데, 해는 저물어 서양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 눈앞의 풍경이 마치 선경인 것처럼 너무도 멋있는지라 , 김삿갓은 돌아갈 줄을 모르고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널따란 바위에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주저앉아 망중한 (忙中閑 )을 즐기고 있었다 .
이윽고 동녘 하늘에서 쟁반같이 둥근 달이 밝은 빛을 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공중에 뜬 , 크고 둥근 달을 양 팔을 벌려 가슴에 안아 보이는 사위를 해 보이며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 가운데 계수나무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곱게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고 노래를 불러 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던 김삿갓을 향해,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시오 . 당신은 누구요 ? 귀신이오 ? 사람이오 ?" "엣 ? 이 산중에 누가 ?"
김삿갓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눈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 저만치 암벽 앞에 사람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 머리에는 망건을 쓰고 옷은 바지저고리만을 입었는데 , 내실 (內室 )에 있다가 나온 차림이었다 .
"나는 귀신이 아니오 . 귀공은 무슨 일로 이런 밤중에 산속에 혼자 계시오 ?"
김삿갓은 그쪽으로 두세 걸음 다가가며, 큰 소리로 물었다 . 상대방도 이내 경계를 풀고 , 두세 걸음 가까이 다가오며 ,
"그 말은 내가 노형에게 묻고 싶은 말이오 . 노형은 이 밤중에 무슨 일로 혼자 춤을 추고 있단 말이오 ?"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세상 구경으로 떠돌아다니는 방랑객이오 . 오늘 이곳 문성대에서 보이는 달이 하도 좋기에 눈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워 , 춤을 한번 추어 보았다오 ."
그 소리에 상대방도 소리를 크게 내어 웃었다.
"하하하 . 달을 보며 춤을 추었다니 노형은 멋들어진 풍류객인가 보구려 . 춤을 추려면 술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오 . 내가 거처하는 암굴 속에 술이 있으니 , 이리 내려오시오 . 춤을 추더라도 술이나 한잔씩 나누고 봅시다 ."
김삿갓은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간절했던 판인데, 잘 됐다 싶어 그 사람을 따라갔다 .
그가 거처하는 암굴은 그가 서 있던 바위 옆에 있었다. 출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게 좁았지만 ,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세 사람이 잘 수 있는 넉넉한 크기였다 .
암굴 한복판에는 호롱불이 켜 있는데, 호롱불 주위에는 술병과 북어 같은 마른 안주가 놓여 있었다 . 혼자 술을 마시다가 김삿갓의 인기척을 듣고 잠깐 나온 모양이었다 .
"우리가 이런 데서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오 . 앉으시오 . 술을 한잔씩 합시다 ."
이렇게 말하는 암굴 주인은 한양에서 온 50대의 임채무 (林採珷 )라는 사람으로 망건을 쓴 얼굴은 볼 살이 두툼하게 붙어있었고 , 특히 구레나룻 수염은 유난히 탐스러워 보이는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다 .
김삿갓은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노형은 혹시 산중에서 도를 닦고 있는 도인이 아니시오 ?"
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도인이오 ? 세상에 도인처럼 허황된 인간이 없을 것인데 , 무슨 할 일이 없어 도인 노릇을 한단 말이오 ." "도인이 아니라면 ... 산삼을 찾아다니는 심마니는 아닌 것 같고 ..."
얼굴빛과 차림새를 보아하니 심마니는 아닌 것 같아 김삿갓은 말끝을 흐렸다.
"심마니 ? 심마니는 산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대로 꿈이 있다고는 하겠지만 , 그러나 그들의 꿈은 너무나도 작은 것이지요 . 사람은 모름지기 꿈이 커야 하는 거요 ."
김삿갓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깊은 산중에 홀로 있는 사람이 도인도 아니고 심마니도 아니라면 ,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
김삿갓이 적이 궁금해하는 기색을 보고, 암굴 주인은 웃으며 자기 소개를 하였다 .
"나는 한양에 사는 임 처사 (林處士 )라는 사람으로 내세 (內世 )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명산을 두루 편답하는 중이라오 ."
그러고 보니 암굴 한쪽 구석에는 지남철(指南鐵 )이 보였다 . 김삿갓은 그 지남철을 보는 순간 , 자신도 모르게 궁금증이 풀린 듯 소리를 질렀다 .
"아 ! 이제야 알겠소이다 . 노형은 풍수학 (風水學 )을 연구하는 지관 (地官 )이시구려 ?" "옳게 아셨소이다 . 나는 오래 전부터 풍수학을 연구해 오는 지술사 (地術師 )라오 . 풍수학은 보통 학문하고는 달라서 현세 (現世 )가 아닌 , 내세 (內世 )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는 학문이라오 . 따라서 학문 중에서는 가장 원대한 꿈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이 말을 듣자, 사실주의적 생활 철학이 몸에 밴 김삿갓은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 풍수학이 ‘원대한 꿈의 철학 ’이라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임 처사는 좌청룡(左靑龍 )이 어떠니 우백호 (右白虎 )가 어떠니 하며 풍수설을 장황하게 늘어놓더니 , 나중에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
33. 명당에 관한 이야기
(醉抱瘦妻明月中 : 취포수처명월중 . 달밤에 취기가 오르면 파리한 마누라나 품어 주시오 .)
"대지 (大地 )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생기의 근원 ’이예요 . 따라서 대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은 땅이 공급해 주는 생기의 활력도에 따라 근본적 차이가 나는 것이라오 . 풍수(風水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오 ? 풍수라는 말은 ‘장풍득수 (藏風得水 )’라는 말을 두 글자로 줄인 말이라는 것을 아세요 . 따라서 풍수라는 것은 숨겨진 바람 (혈 : 穴 )을 찾고 , 생명의 근원 수 (水 )를 찾는 인간 본연의 생 (生 )을 향한 노력이라오 ."
그러나 김삿갓은 임 처사가 무슨 소리를 하거나, 풍수학을 별로 대견하게 여기지 않았다 . 이유인 즉슨 , 풍수설이란 고대 원시 신앙과 음양 사상이 한데 결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
짧지만 몇 마디 대화로 알게 된 유식해 보이는 김삿갓이 풍수학에 대해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임 처사는 김삿갓을 설복시키려는 듯 이런 말도 덧붙였다 .
"청오경 (靑烏徑 ) 이라는 책에는 , 음양이 부합하고 (陰陽符合 ), 천지가 교통하고 (天地交通 ), 외기가 성형 (外氣成形 )해야만 풍수가 자성 (風水自成 )한다고 했지요 ."
김삿갓은 임 처사의 시답지 않은 장광설(長廣舌 )을 숫제 봉쇄해 버리려고 퉁바리 어린 소리를 했다 .
"풍수설이란 한마디로 요약해 , 자손들의 영화를 위해 조상의 뼈를 명당 자리에 묻고 싶어하는 애기가 아니겠소이까 ? 사람이 살아 생전에 하구 많은 일중에서 , 하필이면 생산성도 없는 그런 허황된 일로 연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단 말이오 !"
그 말을 듣자 임 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허어 ... 노형은 모르는 말씀이오 . 사람은 모름지기 현세만 볼 게 아니라 , 혜안 (慧眼 )을 들어 내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명당에도 ‘청학포란형 (靑鶴抱卵型 )’이니 , ‘미인대경형 (美人對鏡型 )’이니 , ‘노서하전형 (老鼠下田型 )’이니 하는 여러 가지 형국이 있는데 , 어떤 사람을 어떤 형국에 모시느냐에 따라서 그 가문의 흥망이 결정되는 거예요 ." "그러면 노형은 마음에 드는 명당 자리를 찾기 위해 , 한양에서 멀고 먼 이곳까지 내려와 토굴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오 ?" "물론이지요 . 나는 명당 자리를 하나만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 꼭 두 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조상을 명당 자리에 모시면 자손들이 절로 영화를 누릴 수 있을 터인데 무슨 까닭으로 명당자리가 둘 씩이나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
임 처사는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말을 한다.
"이왕 말이 난 김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하리다 . 내가 풍수학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어떤 대관 (大官 )께서 , 자기한테도 명당자리를 꼭 하나 구해 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시는 거예요 . 그 어른께서 묻힐 명당자리하고 내가 조상을 모실 자리하고 , 그래서 지금 , 두 자리를 물색하고 있답니다 ." "그런 양반한테 부탁을 받았다면 보수가 대단하시겠구려 . 명당자리를 하나 찾아 주는 데 수고비는 어느 정도나 받게 됩니까 ?"
김삿갓은 명당자리 성공 보수가 궁금해 눈 딱 감고 물어보았다.
"그런 일에야 어디 일정한 기준이 있나요 . 명당자리를 부탁하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 적을 수도 있지요 ." "노형의 경우는 그 방면에 권위자인 데다가 상대방은 고관을 지내는 분이라니까 , 수고비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냥 쯤은 받아야 할 게 아니오 ?"
김삿갓은 그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크게 부른다는 것이 겨우 "천 냥 "이었다 . 임 처사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친다 .
"에이 , 여보시오 . 어느 미친놈이 겨우 천 냥을 받고 명당자리를 구해 준다오 ? 그 양반은 자기에게 명당자리를 구해 주면 백 석 타작을 하는 농터 하나를 주겠노라고 하신 걸요 ." "에엣 ?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임 처사가 토굴 생활을 하며 명당을 찾아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날 밤 두 사람은 술을 마셔가며 명당에 관한 논쟁을 늦게까지 계속하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임 처사는 자리에 누우면서 김삿갓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명당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니까 , 노형은 마음껏 주무시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시오 . 아침은 챙겨 놓고 가기로 하겠소 ." "명당자리는 꼭 새벽에 찾아 나서야만 하나요 ?" "물론이지요 . 명당자리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어서 , 꼭 아침 해가 비칠 때 보아야만 형국을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라오 ." "그러고 보면 명당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여간한 고생이 아니로군요 ."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임 처사는 명당자리를 찾아 나섰는지 보이지 않고, 머리맡에는 암죽과 대추 , 날콩 같은 것이 한 접시 놓여 있었다 . 산중 생활에 편리하도록 벽곡을 먹고 지내는 모양이었다 .
김삿갓은 아침 대신 벽곡을 먹으면서 풍수설에 미쳐 돌아가는 임 처사에게 충고가 담긴 시 한수를 써 놓고 암굴을 나왔다.
... 可笑漢陽林處士 (가소한양임처사 ) 가소롭소 한양 사는 임 처사 暮年何學李淳風 (모년하학이순풍 ) 어쩌다가 늙으막에 풍수학을 배워서 雙眸能貫千峰脈 (쌍모능관천봉맥 ) 두 눈으로 온갖 산맥 꿰뚫어 보며 兩足徒行萬壑空 (양족도행만학공 ) 모든 골짜기를 쓸데없이 누비고 다니오 .
顯顯天文猶未達 (현현천문유미달 ) 눈에 환히 보이는 천문도 모를 일인데 漠漠地理豈能通 (막막지리기능통 ) 막막한 땅의 이치를 어찌 알 수 있단 말이오 不如歸飮重陽酒 (불여귀음중양주 ) 두말 말고 집에 돌아가 술이나 마시고 醉抱瘦妻明月中 (취포수처명월중 ) 달밤에 취기가 오르면 파리한 마누라나 품어 주시오 .
34. 평양 기생
황해도 땅을 벗어난 김삿갓은 여러 날을 걸어 석양 무렵에 대동강 나루터에 도착하였다. 김삿갓은 유유히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자 가슴이 설레 와서 ,
"여보시오 . 이 강이 바로 대동강이지요 ?"
하고 감격어린 목소리로 뱃사공에게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뱃사공은 흥청거리는 소리로 대답한다 .
"이 강은 선남선녀들에게는 사랑의 강이요 , 이별의 강이요 , 눈물의 대동강이라오 ."
뱃사공으로부터 "눈물의 대동강 "이란 말을 듣자 , 김삿갓은 다시 한 번 도도히 흐르고 있는 대동강 물을 망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대동강 위에서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이 얼마나 많았으면 , 이름 모를 뱃사공의 입에서조차 , "눈물의 대동강 "이라는 시와 노래 같은 말이 나왔을까 ? ....)
뱃사공은 푸른 물결을 갈라 헤치며 노를 흥겹게 저어 나간다.
대동강에는 수많은 놀잇배가 떠 있었다. 저마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이 가득가득 타고 있는 놀잇배에서는 장구소리와 함께 유량한 노랫소리도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
뱃사공조차 노를 저으며 흥얼거리는데, 평양 사람들은 모두가 바람둥이인지 뱃사공의 노랫소리에도 어깨춤이 저절로 들썩거려질 지경이었다 .
"여보시오 , 뱃사공 양반 ! 당신도 노래 실력이 대단한가 보구려 ?"
김삿갓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뱃사공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
"뱃사공의 종자가 따로 있갔시오 ? 돈 떨어지면 뱃사공이디요 . 나도 한 때에는 한가락 하던 놈이 아니갔시오 ." "어쩐지 밑천이 많이 든 노래 같소 . 그러면 기생 외도도 많이 했겠구려 ?" "기럼 , 평양내기 치고 기생 외도 못 해본 놈이 어디 있갔시오 ? 뭐니뭐니 해도 , 기생 - 하면 평양인 줄 아시라요 . 기러니 , 손님도 기왕에 평양에 왔으니끼 , 눈 딱 감고 기생 외도를 꼭 한번 하고 가시라요 .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 인생이란 본시 그런 것이 아니갔시오 ."
김삿갓도 말로만 들어왔던 평양 기생 외도가 노상 생각이 없지는 않아, 뱃사공에게 다시 물었다 .
"기생 외도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나요 ?"
뱃사공이 웃으며 대답한다.
"기야 기생 나름이디요 . 소문난 명기는 돈을 섬으로 퍼부어도 안 되갔지만 , 허접한 기생들이라면 2, 3백 냥쯤 쓰면 문제없을 거외다 ." "2, 3백 냥이라 ! ... 그런데 그만한 돈이 없는데 , 기생 외도를 공짜로 할 수는 없을까요 ?"
김삿갓이 웃으며 그렇게 물어보자 뱃사공은 입을 딱 벌린다.
"아따 그 양반 , 배포 한번 대단하시네 . 범에게서 날고기를 빼앗아 먹을 재주가 있다면 모를까 ? 기생 외도를 어떻게 공짜로 한단 말이오 ?" "하하하하 .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구려 . 그나저나 도대체 평양에는 기생이 몇 명이나 있소 ?" "평양 바닥에는 기생이 백사장에 모래알보다도 많디요 . 거리에 나다니는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자들은 모두가 기생인 줄만 아시라요 ." "백사장 모래알처럼 기생이 넘쳐난다면 , 외도 값도 응당 헐해야 할 게 아니오 ?" "아무리 기생이 차고 넘쳐도 2, 3백 냥 없이는 허접한 기생조차 코빼기도 구경할 수가 없을 것이오 ." "그래요 ? 그런데 따지고 보면 명기나 허접한 기생이나 그 맛만은 같지 않겠어요 ?" "허어 , 이 양반 ! 재미있는 분일세 ." "아무리 그래도 사내가 허접한 기생 외도로 재산을 탕진한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 될 것인데 , 당신은 재산을 얼마나 없애 버리셨소 ?" "나도 강서 (江西 )에서는 조업 (祖業 )을 물려받아 가지고 제법 부유하게 살던 몸이디요 . 평양에 나와서 기생 외도에 맛을 들였다가 이제는 빈털털이가 되었지만 기래도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디요 . 지금은 할 수 없이 내레 ,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뱃사공 노릇을 하고 있디만 말이오 ." "평양에는 당신처럼 기생 외도로 신세가 처량하게 된 사람이 많겠구려 ." "많다 뿐이갔시요 ? 모르면 모르되 기생 때문에 나같이 처량하게 된 놈팡이가 수 백 명은 될 것이오 ." "후회되지는 않소 ?" "눈앞에 향락이 뒷일을 가름하게 하지 않디요 . 또 내가 저지른 일인데 후회 한들 무엇하갔시오 . 다 팔자 소관이디요 ."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하는 방법으로 ‘팔자 ’라는 말을 곧잘 써온다 . 어쩌면 그런 팔자타령 때문에 수많은 인생의 역경을 이겨 나가는 끈기가 그런 데 있는지도 모르리라 싶었다 .
나룻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눈을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니, 왼편으로는 높은 산이 강가의 절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 강 건너 들판에는 수양버들이 실실이 늘어져 있어서 , 마치 산이 강 건너 들판을 감싸고 포옹하는 것처럼 보였다 .
"저 산은 무슨 산이고 , 강 건너 들판은 뭐라는 곳이지요 ?"
눈앞의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뱃사공에게 물어보니, 뱃사공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대답한다 .
"절벽을 이루고 있는 산은 평양의 진산 (鎭山 )인 금수산 (錦繡山 )이고 , 강 건너 수양버들이 무성한 곳은 능라도 (綾羅島 )라오 ." "아 , 저게 바로 유명한 능라도 인가요 ?"
김삿갓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능라도의 푸른 버드나무를 그윽이 바라보며 백호(白湖 ) 임제 (林悌 )의 시가 떠올랐다 .
浿江兒女踏春陽 (패강아여답춘양 )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江上垂楊正斷腸 (강상수양정단장 )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닯다 無限烟絲若可織 (무한연사약가직 ) 가느다란 버들 가지로 비단을 짠다면 爲君裁作舞衣裳 (위군재작무의상 ) 고운 님을 위해 춤옷을 지으리라 .
35. 대동강과 양산도
대동강은 큰 강이다. 김삿갓은 넓은 강을 바라보며 뱃사공에게 물었다 .
"대동강에는 웬 강물이 이렇게나 많지요 ?"
뱃사공은 넓은 강물을 둘러보며 대답한다.
"대동강은 여러 개의 강물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강을 이루고 있지요 . 개천 (价川 )에서 흘러내리는 순천강 (順川江 )과 양덕 (陽德 ), 맹산 (孟山 )에서 흘러내리는 비류강 (沸流江 )과 강동 (江東 ), 성천 (成川 ) 등지에서 흘러내리는 서진강 (西津江 )등 ... 세 갈래의 물길이 함께 모여 대동강을 이루고 있으니 , 물이 풍부할 수 밖에 없지요 . 그래서 이름조차 대동강 (大同江 ) 이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
뱃사공은 이렇게 말하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한 곡조 뽑아내는데, 김삿갓은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도 , 유유자적한 뱃사공의 멋들어진 노랫가락에 저절로 어깨춤이 들썩거려졌다 .
<양산도 >
에헤이예 ~ 양덕 맹산 흐르는 물은 감돌아 든다고 부벽루로다 삼산은 반락에 모란봉이요 이수중분이 능라도로다
에헤이예 ~ 대동강 굽이쳐서 부벽루를 감돌고 능라도 저문 연기 금수산에 어렸네 일락은 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경에 달 솟아온다
에헤이예 ~ 소슬단풍 찬바람에 짝을 잃은 기러기 야월공산 깊은 밤을 지새워 운다 아서라 말어라 네가 그리 마라 사람의 괄세를 네 그리 마라
에라 놓아라 아니 못 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으리로다 에헤이헤 양덕맹산 흐르난 물은 감돌아든다고 부벽루하로다
삼산은 반락에 모란봉이요 이수중분이 능라도로다 에헤이헤 눈 속에 푸른 솔은 장부의 기상이요 학두루미 울고 가니 절세명승이라
삼산은 반락에 모란봉이요 이수중분이 능라도로다.
...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결은 호경(鎬京 )을 품어 안고 , 해맑기가 비단결 같고 거울 같기도 하였다 . 김삿갓은 마치 황홀한 거울과 화려한 병풍 속에 들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조차 느꼈다 . 주변을 살펴보니 날이 저물어 산과 강에는 노을이 짙어 가건만 , 놀잇배에서는 풍악 소리와 노랫소리가 여전히 유랑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
어느덧 놀잇배에서는 등불을 하나 둘 씩, 피어 오르는 꽃처럼 켜기 시작하였는데 , 이 같은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며 ,시흥이 도도해진 김삿갓은 즉흥시 한수를 읊었다 .
...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 피리소리 노랫소리 바람결에 들려오네 길손은 발 멈추고 시름겹게 듣는데 칭오산 빛깔은 구름 속에 저문다. |